<122화>
“그걸 내가 어떻게…….”
“좀비 사이에 던져 놓고 같이 싸우기라도 하든가.”
“그러다가 감염이라도 되면?”
“눈치 못 챘어? 동물은 감염 안 돼.”
“어, 정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2번의 생존기 동안 감염된 동물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어뜯기고 할큄을 당해도 설령 죽을지언정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가 좀비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동물들의 혈액 속에 좀비 바이러스가 품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감염되지 않는단 것만큼은 확실했다.
감염의 객체는 오로지 인간뿐이었다.
특이점은 또 하나 있었다. 좀비는 모든 짐승을 잡아먹지만, 변종은 짐승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
“일단 좀 쉬어라, 피곤해 보이네.”
요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세리는 흑구를 품에 꼭 끌어안고선 제집 방향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치열한 한 주가 지나가고, 여전히 달이 지고 해는 떠올랐다. 수색조를 포함한 주민들은 어제의 전투와 희생을 잊기 위해서인 듯, 자신의 할 일에 몰두했다.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며칠 뒤, 요한은 리나를 찾아갔다.
그녀는 교회 한구석에서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입을 앙다문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성전에 앉은 모습은 자못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요한이 다가가자 등 뒤에서 들리는 자박거리는 발소리에 리나가 천천히 눈을 떴다.
“네 신에게서 뭔가 응답이 있던가.”
리나는 그저 희미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글쎄요. 제 믿음이 약한가 봐요.”
요한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근처까지 다가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
“다음 주부터 네 동료들을 새 작전에 투입하려고 해.”
“우리의 동료라고 해주세요, 요한 님.”
“그래. 우리의 새 동료들을.”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아직도 도움이 안 되는 짐인걸요.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쉽지 않네요.”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닌데?”
리나는 입을 가리고 살포시 웃었다. 요한은 뜬금없이 눈웃음을 치는 그녀를 향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걱정하지 마. 넌 뺄 거야.”
“네? 하지만…….”
“어차피 널 수색조로 넣은 건 일종의 인질극이었으니까. 대신 우리가 원정에 나가 있을 때는 항상 상황실에서 대기하면서 특이사항을 전달해줘.”
“…인질극이었습니까.”
“서운해하지는 마. 우리 방식이니까.”
“별로 서운하지는 않아요. 요한 님 가까이에 있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도움 되지 않는 게 슬프지만요. 팔라딘이 되기엔 유전자가 불량한가 봐요.”
“낯간지럽게 입에 발린 소리는.”
그녀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와중, 덜컥 성당의 문이 열리고 세리가 들어왔다.
“오빠, 여기서 뭐 해?”
“아, 리나랑 얘기 좀.”
세리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가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더니 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무슨 일 있어?”
“아냐, 아무것도. 그냥 운동하다가 창가에 오빠 얼굴이 비쳐서 와 봤지. 가자, 흑구야.”
세리가 슬그머니 문을 닫고 나가자 리나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삐치셨네요. 질투하시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분이에요.”
“유난이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가 묻은 엉덩이를 두어 번 털었다.
“아무튼, 그 소식 전해주러 왔어. 혹시 원정 중에 누가 죽어도 원망하지는 마.”
“네. 요한 님도 조심하세요.”
“그래.”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회에서 나온 요한은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섬 한 바퀴를 쭉 둘러봤다.
여기저기서 탈곡기 돌리는 소리, 분주한 사람들이 이동하는 농기계 소리, 뚝딱거리는 목공 소리가 들려왔다.
섬은 분주했다.
“여, 형씨!”
스위퍼와 하진이 지내는 거처에 발길이 닿자 땀내 나는 두 남정네가 눈에 들어왔다.
스위퍼는 웃통을 벗고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고 하진은 한 손으로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하고 있었다. 터질 듯한 그의 근육에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나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남자 둘이서 옷 벗고 찐득거리는 땀 흘리는 모습은 역시 좀 거북스러운데.”
“어이, 말을 해도 좀…….”
하진이 질색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웬일이야?”
“이제 다시 수색 나갈 거야. 전해주러 왔어.”
“아아, 준비하면 되나.”
수색이라는 말에 스위퍼가 힘껏 도끼를 내리찍었다. 콰직! 장작이 양쪽으로 튕겨 나가며 도끼가 받침 통나무에 틀어박혔다. 그가 손을 탁탁 털며 다가왔다.
“역시, 우리 대장 형씨는 부지런하다니까. 그래, 언제 나갈 거야?”
“이번에 두 사람은 안 나가.”
“뭐?”
요한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반문했다.
“이번에는 신입 전투원들에게 실전경험을 쌓을 겸 해서 나가는 거니까.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갔다 올 거야.”
“신입 전투원? 누구누구?”
“피오, 베르다, 소희, 루카.”
“굳이 최소한으로 나갈 필요는?”
“변종 샤크가 한 마리뿐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섬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고. 옮겨올 짐이 많을 거라 많은 사람을 태우고 가기 어려우니까.”
“오, 어디로 가는데?”
“인천항만 물류센터.”
“오오! 외팔이 형씨는 빼고 나만 데려가면 안 돼?”
“안 돼.”
스위퍼가 풀죽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고, 하진은 고소하다는 듯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참, 혁이 또 와서 줘 터지고 갔어. 며칠 전부터 계속 온다.”
“여기를, 왜?”
“강해지고 싶다던가.”
두 사람이 면역자 판정을 받은 것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끼는 건가. 그럴 만도 하다. 똑같이 노력하는데도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괜찮겠어? 정말 걱정되는 파티인데…….”
요한이 씩 웃었다.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어. 그리고 불안해도 나가야지. 중요할 때 발목을 잡으면 안 되니까. 그동안 섬을 잘 부탁한다.”
“그래, 형씨. 죽진 말고.”
요한은 손을 휙휙 저어주고는 그 길로 혁이에게 향했다. 혁의 집 앞마당에서는 멀찍이도 들릴 정도로 살벌한 나이프 붕붕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뭘 그렇게 살벌하게 하고 있어?”
“아, 형.”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효율적으로 해라. 신체는 소모품이니까 괜히 체력만 축내지 말고.”
요한의 조언에 혁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시무룩해 있어, 주인 잃은 강아지마냥.”
“하진 형, 스위퍼 형. 면역자 맞지?”
“어, 직접 봤잖아. 그것 때문에 그렇게 의기소침해 있니.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니야.”
“그럼?”
“단지…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두 사람은 지금도 충분히 강하니까.”
정환의 죽음이 녀석에게 무언가 생각을 바꾸는 트리거가 된 듯싶었다.
“차이가 점점 벌어지는 느낌이네. 사람들을 지키고 구하려면 힘이 필요한데, 한계가 느껴져.”
“어쩔 수 없지. 그건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면역이라는 선물이 어떤 기준으로 생겨나는지, 어떤 사람들이 면역자로 선택받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혁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두 사람이 면역 판정을 받기 전까지 스스로를 단련하고 싸워왔던 것처럼, 그저 그렇게 싸워나가는 수뿐이었다.
“형은 괜찮아?”
“뭐가.”
“정환이 죽은 거.”
“…….”
“미안. 괜찮을 리가 없는데.”
녀석은 건방지게도 정환의 죽음에도 스스로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보처럼 자신이 사람들을 전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한 멍청이.
“원래 대한민국은 말이야, 혁아.”
요한이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종말 전부터 윗대가리들이 책임을 많이 회피해 왔지. 무언가 문제가 터지면 그건 부하직원의 탓이라고. 그들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탓이라고.”
뜬금없는 이야기 전개에 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한이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아포칼립스에서 책임은 곧 목숨이야. 사람들이 맡긴 목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순 없지. 정환이 죽은 건 오로지 내 탓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어. 당연히 괜찮지 않아. 후회되지.”
다정다감한 말투, 약간은 슬픈 듯한 표정. 요한이 짓는 표정으로서는 상당히 낯선 느낌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냥 대응하지 말라고 할걸, 집 안에서 대기하라고, 조금만 시간을 버티라고 했으면 결과가 달랐을까. 아니면 경계방식의 문제가 있었던 걸까, 수없이 반복하고 생각하고 후회했어. 이번뿐만이 아니야. 누군가 죽을 때마다 늘. 그리고 마침내 다짐하는 건 언제나 같아.”
혁이 고개를 들어 요한을 바라봤다. 요한도 그의 눈동자를 마주 봤다.
“더 강해지자. 이제는 누구도 죽게 두지 말자.”
“…….”
“혁아.”
요한이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사고뭉치에, 고집쟁이에, 주제도 모르는 정의 바보지만. 그가 무너지고 망가지는 걸 막아야 했다.
그것 또한 선 안에 들인 사람에 대한 요한의 책임이었다.
“형을 믿어줘라. 너까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응.”
“그리고 좌절하지도 말고. 강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지혜든, 무력이든, 용기든. 포기하지 마라. 넌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
혁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은 안타깝게도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요한은 생각했다.
* * *
요한은 헬기 조종사 루카를 찾아갔다. 최근 얻은 전력 중에, 가장 값진 전력을 한 명 꼽으라면 요한은 단연코 루카를 뽑을 거였다. 그만큼 이번 샤크 소탕전에서 그와 그의 헬기가 보여준 기동력은 훌륭했으니까.
“여, 어린 대장. 무슨 일이야?”
루카는 특유의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요한에게 인사했다.
저 어린 대장이라는 표현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편하게 대하기에는 그와의 나이 차가 상당했다.
원칙상 수색조 직속 부하에게는 존대하지 않는다. 지휘명령 체계가 철저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전투직이었으니까.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에 그의 포지션은 다소 애매했다. 전투직도 아니지만, 전투에 엄청난 효율을 보여준다.
전투 보조직.
엄연히 분류하자면 전투 훈련을 받는 전투직이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조원에게는 하대해. 양해 바라.”
“자꾸 강조하는 걸 보니, 상당히 불편한가 보군. 걱정하지 마. 어린 상사를 모신 게 한두 번은 아니니까. 아니면, 편하게 내가 존대를 해줄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편할 대로 해.”
“그렇다면야 편하게 말을 놓지. 어린 친구가 생겨서 기쁘구만.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부려먹으려고 날 찾아왔을까?”
“다녀올 데가 있어.”
“단둘이? 영계와 에어 드라이브라니, 신나는걸. 으하하.”
나이 사십 먹은 장년 아저씨가 참으로 주책이었다. 요한은 인상을 찡그리고 그의 앞에 챙겨온 지도를 펼쳤다.
“다녀올 곳은 여기야. 인천항 종합 항만 단지. 헬기로 다녀올 수 있을까?”
“흠, 직선거리로 왕복 30km 정도 되네.”
“조금 더 돌아가야 할 거야. 영종도 포대에 경계병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문제없어. 이 정도 거리는 급유 없이도 왕복 가능해.”
“좋네.”
루카는 희끗희끗한 턱수염을 문지르며 지도를 표시했다.
“이렇게 경로를 잡으면 되겠네. 출발은?”
“루카 씨 준비되면 바로.”
“그럼 두 시간 후에 출발하지. 연료를 배합하던 중이었거든.”
연료를 배합한다는 말에 요한이 반색했다. 항공기나 함선이 어떤 연료를 쓰는지, 어떤 식으로 연료를 제조하는지 전혀 문외한인 그였기에, 할 줄 아는 기술자가 있다면 미리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혹시 구경해도 될까?”
“그럼. 얼마든지.”
루카도 그의 관심이 마뜩한지 그를 헬기장 옆 연료창고로 안내했다. 텅텅 비어 먼지만 가득했던 연료창고는 어느새 깨끗하게 정리되어 여러 종류의 드럼통과 스테인드글라스 통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요 스댕 깡통에 들어 있는 게 JP-8이라는 항공연료야. 원래는 제트기용이지. 노란색 스티커가 붙어있는 건 내가 임시로 만들어 놓은 짝퉁 JP-8. 첨가제가 한두 개 빠지고 비율도 황금비율이 아니라서 영 불안해. 짝퉁 연료를 쓰면 헬기 수명이 깎여서 웬만하면 안 쓰고 싶은데… 정비사도 없는 데다가, 헬기 수입도 제대로 안 돼서 고장 나면 끝장이거든. 근데 연료가 넉넉한 상황은 아니라서. 참, 그래서 말인데, 구할 수 있으면 연료도 좀 넉넉하게 구해주면 좋겠네.”
“어디서 구할 수 있지?”
“보통은 해양경찰서나 해경 관제센터, 해경본부가 가장 구하기 쉽지. 인천항에 인천 해경 인향 파출소가 있어. 거기 보급창고에 넉넉하게 있을 거야. 물류센터에서 납품하는 업체 물류창고를 털어도 되고.”
“마침 잘됐네. 산더미처럼 구해주지.”
요한의 말에 루카가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