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요한과 하진이 탄 바이크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갔다. 등 뒤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서늘한 감촉 사이 싸늘한 위화감이 함께했다. 금세 놈이 따라붙은 듯.
“쫓아오고 있나?”
“그런 것 같아.”
하진의 물음에 요한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끼이익-!
요한이 바이크를 기울여 방향을 급선회했다. 목표는 놈이 모습을 숨길 수 없는 탁 트인 지역까지. 순간적으로 바이크의 속도가 급상승했다.
마침내 더는 모습을 숨길 수 없는 지역까지 내달리자 변종이 그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는 표범처럼 네 발로 뛰어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변종 샤크.
‘주력과 지구력까지…….’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는데도 조금씩,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명실공히 요한이 만난 최강, 최악의 변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요한은 마치 곡예를 하듯 바이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목표했던 지점까지 놈을 끌어들였다.
마침내 눈앞에 군함이 보였다.
“하진, 부탁한다.”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해.”
“죽기 충분한 시간은 아니고?”
“죽으면 노고지리 우는 양지바른 곳에 예쁘게 묻어주지.”
“…고맙다.”
요한이 바이크 브레이크를 잡으며 동체를 비스듬하게 꺾었다.
끼이이익-!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바이크가 멈추고 하진이 바이크 뒷좌석에서 뛰어내렸다.
요한은 하진이 내린 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속력을 높였다. 목표는 군함.
하진은 맹렬하게 달려오는 변종과 마주 섰다. 놀라운 느낌이다. 마치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맹수와 마주 선 느낌. 오금이 저리고 전신이 저릿저릿하다. 당장에라도 놈이 달려들어 제 육신을 난도질할 것처럼.
찰칵, 하진이 의수 칼날을 꺼내고 등 뒤에서 철갑 방패를 반대쪽 손에 단단히 그러쥐었다.
옆구리가 욱신욱신했지만,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덤벼 봐.”
하진의 디딤발이 살짝 뒤로 움직였다. 피하지 않는다.
변종 샤크의 몸이 가까워졌다. 50m, 30m, 그리고 충돌.
쿵!
놈이 전력으로 달려들어 하진의 방패에 몸통을 부딪쳤다.
첫 번째 격돌. 느껴지는 충격.
하진이 바닥에 길게 이어지는 발자국을 그려내며 뒤쪽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러나 버텼다.
“힘이 빠졌군.”
며칠 전보다 현저히 힘이 떨어졌다. 확실히 그때 먹은 수류탄 애피타이저의 매운맛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똑똑한 척하지만 역시 좀비는 좀비다. 이렇게 100% 몸 상태도 아닌데 튀어나온 걸 보면.
지능이 더 높았으면 체력과 몸 상태가 회복될 때까지 버텼겠지.
쿵! 하진의 방패가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돌덩어리를 내려친 듯 손이 얼얼하다.
끼에엑-!
놈은 여전히 본능에 충실한 상태다.
눈앞의 인류를 먹어치우는 것, 그저 그 강렬한 욕망이 전신을 사로잡은 상태일 터다.
고맙다.
덕분에 승리의 확률이 한 층 올라갔으니까.
깡!
하진이 다시 한번 놈의 몸통을 방패로 후려쳤다. 이번에도 손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세게 내리쳤지만, 놈은 움직이지 않았다.
타격은 여전히 안 먹힌단 거냐.
놈의 반격이 이어졌다. 더는 숨기지 않겠다는 듯 휘어져 들어오는 손톱. 하진은 방패를 수평으로 회전시키며 공격을 빗겨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방패를 떨어지게 놔둔 채로 한쪽 팔로 놈의 다리를 붙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끼에엑!-
하진에게 사정없이 집어 던져진 샤크가 공중에서 회전해 착지한 뒤, 불쾌한 듯 포효를 내질렀다.
“하아아아!”
이에 질세라 하진도 똑같이 괴성을 내질렀다. 마치 누가 더 목청이 큰지 내기라도 하듯.
캬아아악!
“하아아아!”
또 한 번 주고받는 포효.
요한은 포 커버를 벗기며 그의 전투를 곁눈질했다. 도대체 왜 따라 소리를 질러대는지 요한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시간을 끄는 역할만큼은 아주 제대로 소화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괴물인걸.’
변종을 지칭한 게 아니었다.
하진은 늘 자신과 스위퍼를 보며 인간 같지 않다고 말했지만, 요한이 보기에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전투력도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온몸이 철갑처럼 단단한 변종이다. 그 무게만 해도 얼마나 묵직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
그런데 한 손으로 놈을 잡고 집어던졌다. 이 정도라면 이미 기인에 가까운 힘이었다. 아무리 한 손으로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밥 먹듯이 하는 그일지라도.
요한은 함 내 탄약고에서 꺼내온 미스트랄 탄통의 앞뒤 뚜껑을 열고 묵직한 실탄을 들어 발사대에 얹었다. 그런 다음 앞뒤 스티로폼 덮개를 벗겨낸 뒤 사격을 준비했다.
사격을 준비하는 내내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지대지 타격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배우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지대공 미사일이다. 과연 사격이 될까.
수병들을 고문해서라도 다른 공용화기에 대한 사용법을 알아냈어야 했나.
그들은 살려두면서 발생하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들을 즉결 처분했으나,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 다시금 아쉬움으로 다가올 줄은.
삑, 삑.
전류가 공급된 조준경에 여러 알림 아이콘이 반짝이며 점멸한다. 기계는 정상.
우우웅! 자이로스코프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정없이 회전했다.
“하진! 준비됐어!”
“하아압!”
변종의 공격 한번 한번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며 내몰리던 하진이 요한의 외침을 듣자마자 놈을 세게 밀어낸 뒤 바닥에 연막탄을 터뜨렸다.
매캐한 연기가 시야와 후각을 가로막자, 당황한 변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하진이 연기를 헤치고 튀어 나갔다.
하진이 달리는 곳은 세워 놓은 SUV 차량이 있는 곳, 변종이 하진을 발견하자마자 그에게 달려들었을 때는 이미 하진이 시동을 건 후였다.
SUV는 사정없이 RPM을 갈며 정면으로 튀어 나가 변종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직! 놈이 앞범퍼에 맞고 보닛과 앞 유리를 굴러 천장 판 뒤쪽으로 굴러떨어졌다. 범퍼와 보닛이 너덜너덜해지고 유리창이 깨지기 직전까지 금이 갔다.
부딪힌 변종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선 하진을 향해 괴성을 토해냈다.
끼에에엑!
단단히 열 받았군. 하진은 중얼거리며 액셀러레이터를 전력으로 밟았다. SUV가 해안가를 전력으로 내달리고, 변종이 뒤늦게 그를 뒤쫓기 시작.
동시에 요한의 조준경에서 적외선 탐지기가 작동했다.
“제발, 제발 탐지해라.”
하지만 각도가 너무 낮았다. 발사각을 최저로 맞춰놓았지만 그래도 역부족.
그 순간에도 하진의 SUV는 해식 절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한 손 주행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운전 솜씨였다.
마침내 하진의 차량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잠시간의 부유 후 바닷속으로 빠져들었다.
‘제발, 뛰어라. 뛰어.’
하나의 계산이라도 어긋난 순간, 모든 계획이 비틀린다.
뒤따르던 변종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약했다. 마치 바닷속조차 제 영역이라고 과시라도 하듯.
그 순간 조준점이 점멸하고 두 번째 조준점이 점등한다.
탐지 완료와 동시에 격발.
미스트랄 유도미사일이 순식간에 굉음을 내며 허공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유도탄은 마치 전투기처럼 잔상을 남기며 놈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1초의 시간마저 잘게 쪼개진 영 점 몇 초의 순간,
공중으로 쏘아져 가던 미사일은 변종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중에서 U자 곡선을 그리며 유도탄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변종, 샤크를 향해.
콰왕!-
허공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폭발, 비산하는 파편. 울부짖음마저 집어삼킨 폭발음.
변종의 파편이 바닷가에 벚꽃처럼 흩날렸다.
해수면 바로 위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요한이 황급히 바이크를 일으켜 세운 후 해식 절벽을 향해 내달리자, 바닷가에서 온몸이 물에 젖은 하진이 콜록거리며 짠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 * *
변종 샤크와의 전투가 끝났다.
다윗과의 싸움보다, 서생연과의 싸움보다 더 충격적인 죽음을 선사한 놈을, 하진과 요한은 단 한 점의 살점조차 그대로 남겨두지 않았다.
놈의 죽음을 확인한 두 사람이 대피소로 돌아온 뒤 신도에서는 곧장 정환과 아영의 장례가 열렸다.
지금까지는 죽은 이를 위한 추모를 술 한잔으로 끝냈지만, 이번만큼은 모든 이가 정환과 아영의 장례를 치르기를 원했다.
“흐윽, 흑… 끅….”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분위기는 처절했다.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신도 주민들은 울거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연달아 줄담배를 피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린 여고생과 정신적인 지지대의 죽음은 생존자들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사람들은 스위퍼나 요한, 하진보다 정환을 더 많이 의지했었다.
세 사람은 든든한 우방이지만, 특유의 전투적인 분위기나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비인간적인 강함을 가졌기에, 사실상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었던 것은 혁, 세리, 그리고 정환이었다.
누구보다도 평범했던 이들. 평범하지만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싸웠던 이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알뜰살뜰하게 주민들을 챙겼던 정환이었기에,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마트에서 가장 먼저 출입구를 봉쇄하고, 첫 번째 좀비 웨이브에서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으며, 어떤 전투에서든 선두에 서고, 결국 서생연의 메인 간부 한 명을 죽이고 결국 여기까지 살아남았던 그가.
결국, 여기에 잠들었다.
신도에는 새 무덤이 두 개가 생겼다. 정환과 아영이는 나란히 묻혔다.
무덤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과 술잔이 올려졌다. 정환이 자주 쓰던 물건들과 함께.
그와 특별히 애틋했던 세리와 지혜는 사정없이 무덤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고 혁이는 그저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후우…….”
요한이 담배를 비벼 껐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연 언제까지?”
누군가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그마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똑바로 해라, 정환아.’
‘죄송해요, 형.’
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죄송하다는 말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저 너를 살리고 싶었었는데, 네가 죽지 않기를 바라서 그리도 모질게 굴었건만.
요한은 울지 않았다.
자신마저 눈물을 보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울고 있었다.
하나 심장이 제법 아프다.
* * *
요한은 털고 일어났다.
매정하다고 욕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죽은 자에 대한 애도는 하루면 족했다. 오늘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오늘을 마저 살아가야 했으니까.
전투의 결과물은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신도 앞바다에 난파시킨 여객선에서 좀비들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왔다.
개중에는 몸이 퉁퉁 불은 채 살아 움직이는 놈들도 있었다. 수색조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다.
해변에 기어 올라오는 좀비들을 모두 처리하고 그 시체를 모두 불태웠을 땐, 꼬박 하루가 지난 뒤였다.
다음날 동이 터서야 지친 사람들은 하나둘 쓰러지듯 잠자리로 돌아갔다.
요한은 정환의 무덤에 쓰러지듯 엎드려 있는 세리, 지혜, 혁이를 돌려보내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들어가 자라. 이제. 궁상 그만 떨고.”
매정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너무나 그다운 타박에 다들 묵묵히 일어났다.
“…잠깐만.”
세리가 비척비척 걸어가 무덤 앞을 지키고 있는 흑구에게 다가갔다.
졸지에 가족을 잃어버린 흑구는 주인을 지키지 못한 채 그저 짖고만 있었던 자신을 자책하는 듯 기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리가 흑구의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네 탓이 아니야.”
흑구는 세리의 위로에도 여전히 풀죽은 모습으로 낑낑거렸다.
“누가 돌보지 않으면 여기서 뼈를 묻을 기센데. 데려가 키울 사람 있니.”
요한이 묻자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세리가 손을 들었다.
“내가 키울게.”
요한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세리가 쏘아붙였다.
“뭐야, 그 표정은. 완전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인데.”
“내가 가끔 말했지?”
“뭘.”
“넌 정말 예리할 때가 있다고.”
세리가 힘없이 눈을 흘기며 흑구를 챙겼다. 그러나 녀석은 무덤에서 떨어지게 하자마자 낑낑거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세리가 안절부절못하자 요한이 녀석의 목덜미를 홱 들어 올렸다.
“주인도 못 지킨 게 뭘 잘했다고. 넌 한 번만 더 도망치면 진짜 보급창고 행이야. 알겠냐, 비상식량.”
녀석이 낑낑거렸지만, 요한의 억센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냉혈한.”
요한이 휙 세리에게 흑구를 던졌다. 세리가 녀석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사냥개가 아니라 전투견으로 만들어 놔. 싸움에서 도망치는 사냥개는 필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