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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20화 (120/176)

<120화>

하진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자, 스위퍼가 빽 소리를 질렀다.

지금 분명, 손이 뱀처럼 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에 당황했던 것은 두 사람 모두.

하진이 쓰러진 사이 놈의 팔이 또다시 휘어 들어왔다. 순식간에 이뤄진 공격을 거의 본능적으로 피해냈으나 또다시 손톱이 어깨를 스쳐 갔다. 이어진 직선 공격. 스위퍼는 공격을 손도끼를 옆으로 세워 막아냈다.

아니, 정확히는 공격은 막았으나 몸은 충격에 나가떨어졌다. 스위퍼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뛰어오는 변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고 변종의 입이 쩍 벌어졌다. 스위퍼의 손이 황급히 수류탄을 쥐었지만, 놈의 아가리가 덮치는 게 먼저였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탄환이 놈의 혀를 뚫고 들어갔다.

“형님들!”

옹 상병이었다.

옹 상병이 저격 소총을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격발되는 탄환 하나하나가 놈의 입안에 차례대로 처박히자 변종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칫했다.

찰나의 타이밍. 스위퍼가 곧바로 샤크의 입속에 수류탄을 까 넣었다. 제 위장 속에 이질적인 뭔가가 들어왔다는 걸 깨달은 변종이 입을 턱 다물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거나 먹어라, 개자식아.”

3초, 4초, 5초가 지나고 쿵!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충격이 일어났다. 놈이 발광을 시작했다.

끼에에엑!

놈은 마치 알레르기가 심하게 돋은 사람처럼 온몸을 비틀어대며 발광했다. 그사이 스위퍼가 하진을 챙겨 뒤로 물러났다.

“옹이, 나이스.”

스위퍼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옹이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으나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위퍼와 하진, 모두 좀비에 의해 상처가 났다.

이건 감염이다.

더 변명할 여지가 없다.

발광하던 변종의 몸에서 검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선 입을 벌리고 포효하며 이쪽을 노려본다.

‘한 방으론 부족한가.’

움직임은 확실히 굼떠졌으나, 안광은 더 흉흉해졌다. 단단히 화가 난 듯 이쪽을 보며 사정없이 포효했다.

“흐, 개 엿 같네. 형씨, 그렇지?”

“대공감이다.”

대처할 시간도 없이 놈은 아주 교묘하고 교활하게 자신들에게 똥을 뿌렸다.

‘일부러, 마지막까지 공격패턴을 숨겼어.’

신체 능력부터 불공평할 만치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전투 감각이 있다는 건 그들로서는 비극적인 일이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글쎄 몇 분?”

“감염 신경 안 쓰고 싸울 수 있으니 한결 낫겠네. 형씨, 정환이의 복수를 해야지?”

“그것도 동감이다. 옹, 문 열고 다 들어가. 요한 올 때까지 버텨.”

“하지만 형들은……”

“내버려 둬 싸우다 뒤질 거니까.”

“그럼. 정환이의 복수를 해야지.”

이미 감염이 시작된 몸.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최소한 길동무로 녀석을 데려가야 수지가 맞는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으으…!”

“들어가, 사내새끼가 질질 짜지 말고. 옹아, 혁아. 애들 다 죽는다 이러다.”

정신을 차린 혁이 사람들을 수습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스위퍼와 하진이 다시 달려들어 놈의 주둥이를 벌릴 때까지 두드려 댔고 끝내 대피소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옹 상병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변종은 충격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듯 등딱지에 들어간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 와중에도 불쾌하다는 듯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탁!

그리고 도약. 놈이 도약한 곳은, 옹 상병이 있는 곳이었다.

“빌어먹을, 옹아!”

그사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나온 혁이 옹 상병을 향해 달려갔지만, 이미 변종은 옹 상병의 지척까지 달려온 뒤였다.

“피해!”

옹 상병이 놈을 향해 탄환을 쏘아댔지만, 놈의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옹 상병이 마침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퍽!

놈이 골목 안에서 튀어나온 바이크에 부딪혀 뒤로 튕겨 나갔다.

요한이었다.

바닥에 착지하며 몸을 몇 바퀴 구른 뒤 곧바로 일어난 요한이 옹 상병을 일으켜 세웠다.

“수고했어. 대피소로 들어가.”

요한은 말과 동시에 수류탄을 까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놈을 향해 던졌다.

놈이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쌓인 데미지 때문인지, 외부의 충격 때문인지 놈이 비틀거렸다. 요한이 마체테를 그러쥐고 놈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놈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어둠 속으로 휙휙 뛰어 사라졌다.

시야에서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요한이 인상을 찡그린 뒤 두 사람의 상처를 수습하기 위해 다가갔다.

한 명은 허리, 한 명은 어깨.

“아, 대장 형씨, 늦었잖아.”

“…….”

“형씨, 피가 나는데?”

“내 피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

“그래? 피가 철철 나는데.”

요한은 두 사람의 상처를 복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감염이 명백한 상처다.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할 말을 잃은 듯 쭈그려 앉아있었다.

정환, 하진, 스위퍼를 동시에 잃는다고?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캠프의 희망이 사라져간다.

요한은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듯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없으니 할 말이 있다면 남겨.”

“복수해줘.”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해 주마. 하진은?”

“이하 동문이다.”

“…그래.”

끝까지 한결같은 녀석들이다. 요한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아 슬픈 감정마저 들지 않았다. 그저,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

“뭐, 감염되면 뭔가 느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네. 아무튼, 형씨. 함께해서 즐거웠어.”

“…잠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응. 그런데?”

“하진도?”

“난 아프다. 깊게 찔렸거든.”

요한이 황급히 되물었다.

“다친 지 얼마나 지났지?”

“글쎄, 한 십 분?”

이상하다. 변종이 근처에 있을 때 상처가 나면 짧으면 오 분, 길어도 십분 안에 감염이 시작된다. 가장 먼저 시작되는 건 발열.

요한이 그들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이 전혀 없다.

요한이 벌떡 일어나 옹 상병과 혁을 향해 외쳤다.

“소독약이랑 붕대!”

두 사람은 허겁지겁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소독약과 붕대를 가지고 나왔다. 요한은 마치 평소 응급처치하듯이 두 사람에게 소독과 테이핑을 했다.

“뭐야?”

“변종이 주변에 있을 때 감염은 5분 안에 시작돼. 발열, 그리고 충혈이지. 너흰 10분이 넘었는데도 전혀 신호가 없어.”

“그러면…… 설마.”

“면역일지도 몰라.”

죽음을 각오했던 두 사람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정말이지, 벼랑 끝에 떠밀려 있다가 간신히 동아줄을 붙잡은 느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십 분, 이십 분이 지나도 감염은 진행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면역자였다.

“와, 생각도 못 했던 선물이네. 여태까지 몸 사린 게 아까워지는데?”

요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야.

한 캠프에 세 명이나 면역자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지만, 지금만큼은 이 말도 안 되는 우연에 너무나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요한이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니 상반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희열에 찬 스위퍼의 표정과 나라를 잃은 듯한 하진의 표정.

“뭐야, 형씨. 좋은 소식인데 왜 이렇게 똥 씹은 표정을… 아.”

하진의 시선은 자신이 직접 잘라버린 한쪽 손을 향하고 있었다.

“그럼 내 팔은 왜 자른 거야, 씨부럴…….”

두 사람은 그날 하진의 입에서 처음 욕을 들어보았다.

* * *

수색조는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놈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포기한 걸까?”

“그럴 리가 없지.”

좀비와 모든 변종을 통틀어 변치 않는 공통적인 특성은 생명체, 특히 인간을 향한 살육과 섭식이다. 거센 저항에 잠시 몸을 피해 있지만, 여전히 놈은 자신들을 사냥감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놈은 다시 온다. 확신할 수 있어. 지금도 온몸이 저릿저릿하거든.”

“하지만, 우선 체력을 비축해둘 필요는 있겠다.”

하진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나타났을 때, 최선의 상태로 전투하려면 최소한의 수면은 취해 두어야 한다.

“교대로 자자.”

요한은 자신과 하진, 스위퍼를 중심으로 3교대 조를 만들었다. 하루 8시간 수면 패턴을 유지하면, 전투가 장기전으로 이루어지더라도 최선의 상태에서 싸울 수 있다.

“장기전이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장기전은 여러모로 사냥당하는 쪽이 더 불편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변종은 며칠 동안 대피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이 지치길 기다리는 건지, 혹은 누군가 따로 떨어져 나오길 기다리는 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 상태로 언제까지고 버틸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었다.

제 차례에 네 시간만 자고 일어난 요한이 두 사람을 불렀다.

“좋은 생각이 있어. 100% 자신할 순 없지만,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계획이.”

요한은 두 사람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신무기를 사용한 샤크 격추 작전.

“그게 돼?”

“모르지. 안 해봤으니까. 지금처럼은 놈을 잡을 수 없어. 놈은 위협을 느낄 때마다 내빼는 습성이 있으니까. 한 방에 터뜨려야 해.”

“흐음…….”

“전투기 격추용으로 만들어진 무기야. 다윗 때를 떠올려 보면, 크레모아로도 타격을 입는 놈들이 25kg짜리 고폭탄두를 버틸 거라곤 생각 안 해.”

그의 제안은 불확실한 제안이다. 동시에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해 보지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

스위퍼가 낙천적인 웃음을 흘렸다.

“세 사람이 같이 움직이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 이곳에 한 명은 남는다. 놈이 나타나면 교전하지 말고 시간만 끌어.”

요한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을 내뱉는 것도 동시였다.

“네가 남아.”

“형씨가 남아.”

다시 한번 침묵.

“아니. 내가 가지.”

“무리하지 말라고, 형씨.”

“내 팔을 가져간 놈한테 복수는 해야 하니까.”

“……네 팔을 가져간 건,”

다윗이지 않냐고 물어보려던 요한이 말을 흐렸다. 사실, 그가 면역체계를 가진 사람인 걸 고려했을 때, 결국 본인 팔을 가져간 건 본인이다.

하지만 요한은 어울려 주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진은 유독 대기감염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상처만으로도 감염되는 환경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고도 살아남았었으니까.

처음부터 면역이었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그럼, 하진이 함께 가는 거로 하지. 다윗 때가 생각나네.”

“음. 그때는 정말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전투였지?”

“…정말이야?”

스위퍼의 물음에 요한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랬던가. 스위퍼, 뒤를 부탁할게.”

“나만 믿으라고.”

스위퍼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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