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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19화 (119/176)

<119화>

정박 저지 조는 곧바로 헬기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 주변일 터. 멀지 않다면 금방 찾아낼 수 있으리라.

“서쪽부터 돌자. 헬기 띄워.”

요한은 중국 쪽에서 넘어온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경로를 지시했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휘청거리는 느낌과 함께 해경 헬기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두두두두!

헬기의 열린 문을 붙잡고 쌍안경으로 해안을 훑는 요한의 모습이 다소 위태로웠다.

그리고 마침내, 요한의 입에서 오더가 떨어졌다.

“NE 방향 선박 발견.”

“NE 방향 확인!”

덜컹, 헬기가 둥실거리며 방향을 틀었다. 확실히 헬기는 기동력이 좋았다. 이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여객선 근처까지 따라붙었다.

“잡았다.”

북서쪽에서부터 정면으로 해류를 타고 느리지만, 분명하게 신도를 향해 다가오는 크루즈급의 대형 여객선.

이대로라면 몇 시간 안에 해변에 닿을 터였다.

거대한 갑판 위에 눈에 보이는 좀비만 해도 기가 질릴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정말 저 안에 최대한으로 사람들을 최대한 쑤셔 박았으면 천 명도 더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굴 죽이려고 이딴 멍청한 짓을… 루카, 헬기 조금만 더 내려봐.”

가장 편한 방법은 상륙해서 키의 방향을 바꾸는 것.

하지만 좀비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저 좀비들을 뚫고 조종석까지 들어가서 키를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플랜 B로 가야 한다.

요한이 떨고 있는 소희를 불렀다.

“소희야.”

“으, 응.”

두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시끄럽다. 헬기 아래쪽에서는 좀비들이 먹잇감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듯 두 손을 허우적거렸다.

“불태우자.”

요한은 짤막한 지시와 동시에 가져온 휘발유를 선박 아래로 뿌렸다. 거의 한 통을 뿌리고도 남은 한 통의 절반을 뿌렸다. 기름 샤워를 한 좀비들이 사정없이 발광했다.

“이 정도 거리면 화살 정확한 위치에 쏠 수 있지?”

“으응.”

소희도 요한이 무얼 하려는지 깨달았는지 제법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은 헬기를 남쪽으로 조금 움직이도록 지시했다. 그녀가 활을 쏘기 편하게 하는 배려였다.

소희가 화살촉에 천을 꽉 동여매고 기름을 잔뜩 먹였다. 요한은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겨냥하기 위해 헬기 문 앞에 선 소희가 머뭇거렸다. 자칫해서 넘어져 선박 위로 떨어지면 그대로 좀비 밥이 되는 상황.

“잠깐.”

요한이 다시 소희를 불러낸 후 그녀의 허리를 하강용 줄로 꽉 묶었다.

“세리, 재호. 줄 꽉 잡고 있어.”

밧줄은 하강기에 묶여있었지만, 보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 세리와 재호에게도 줄을 붙잡고 있도록 지시했다. 그러고선 요한은 마치 ASMR을 들려주듯 차분한 목소리로 소희에게 속삭였다.

“할 수 있어. 안 떨어진다. 차분하게 하던 대로만 해.”

“응.”

답지 않게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고 난리람. 소희가 침을 꿀꺽 삼키고선 헬기의 출입구에 몸을 내밀었다.

끄아아아!

끼에엑!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좀비들의 하울링 소리. 소희는 그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곳엔 오롯하게 과녁과 과녁을 노리는 자신뿐이라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웠다.

“준비됐어?”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휘발유를 잔뜩 먹은 화살촉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화르륵! 화살 끝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쏴!”

핑!

요한의 신호와 동시에 불화살이 기다란 파공음을 흩뿌리며 기름 뿌려진 좀비들을 향해 날아갔다.

화르륵!

화살은 정확하게 기름이 뿌려진 곳에 명중했고 화살이 갑판에 닿은 순간 불길이 타올랐다. 여기저기에 뿌려진 휘발유를 따라 갑판 전체에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계속 간다.”

두 번째부터는 더 쉬웠다. 재호가 화살에 기름을 먹이고, 요한이 불을 붙이면 소희가 갑판에 불화살을 쏘아낸다.

불길이 옮겨붙을 만한 장소이면 어디든지 화살이 쏟아졌다.

검은 연기가 매캐하게 올라왔다.

요한 일행은 연기를 피해 헬기를 움직인 후 끊임없이 불화살을 날렸다.

꾸엑! 꾸에엑!

마치 돼지 멱 따는 듯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염화, 그리고 발광하는 좀비들. 가히 지옥도였다.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지만, 여객선을 침몰시키기에는 무리였다. 요한은 끊임없이 불화살을 쏘라고 지시했다.

“한 번 더!”

-대장 형씨, 대피소야.

그때 스위퍼로부터 무전이 도착했다.

-여기 놈이 온 것 같아.

요한이 무전기를 들었다. 자신들이 섬에서 벗어나자 표적을 대피소로 바꾼 모양이었다.

대피소는 지붕 쪽 출구와 정문이 단단한 철문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아스팔트 건물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농성도 가능할 터다.

다만, 놈의 괴력으로 철문이 뜯겨 나가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변종이 침투하면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바깥에서 막아야 한다.

변종의 침입을 막아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

“무리해서 교전하지는 말되, 놈이 대피소 안으로 침입할 수 없게 놈이 진입하려고 하면 교전해. 안전이 최우선이다. 감염될 수 있으니까 접촉하거나 상처 입지 말고. 근접전 외에는 위협적인 공격이 없으니까 최대한 거리 유지해.”

-라져.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불안감이 자리를 잡았다.

스위퍼, 하진이 있으니 괜찮을 거다.

이미 변종과 몇 차례 싸워본 경험이 있는 이들. 불안하지만, 믿어야 했다. 서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저릿저릿한 위기감에 긴장되다 못해 이상야릇한 희열이 느껴질 지경이다. 전신에 아드레날린이 도는 기분이다.

“오빠, 배가 안 멈춰.”

세리가 요한을 향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소희가 끊임없이 화살을 날리고는 있었으나 배를 전복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괜찮을까?”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100% 장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내려가서 키를 돌리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약간의 후회가 든다.

선박이 열화에 휩싸인 지금은 함선에 올라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동이 느려. 저 속도로는 분명히 육지에 도착하기 전에 배가 불타 없어질 거야.”

엔진이 아니라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상황이다. 마치 거북이가 육지를 기어가듯 느린 속도.

그사이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배는 반드시 침몰한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듯 요한이 중얼거리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상황이 급변했다.

퍼엉! 펑!

폭발음. 그리고 급격하게 번지는 화염.

연료통에 불이 번졌다.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지지부진하던 점화는 순식간에 여객선 전체에 번지기 시작했다.

‘이건, 된다.’

순식간이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여객선을 잡아먹을 기세로 번져 올랐다. 시커먼 연기가 마치 공장 굴뚝처럼 연기를 내뱉었다.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불길에 휩싸인 채 점차 기울어지던 배는 눈에 띄게 망가져 기울어진 갑판에서 좀비들이 우수수 바다로 빠져들었다.

첨벙, 첨벙!

시리얼이 우유에 빠져들 듯, 원두커피 알갱이가 물이 든 종이컵에 빠져들 듯 좀비들이 후두두 떨어져 내린다.

소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박의 움직임이 멈추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금세 표류선은 꽁지만 남기고 물속에 처박힌 난파선이 됐다. 천여 마리의 좀비들을 통째로 수장시킨 채로.

“여기는 요한, 여객선 난파 완료.”

-사장님, 나이스샷. 여기는 놈이 주변을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어. 곧 공격할 것 같은데.

“금방 지원 갈 테니까. 무리하지 마.”

무전을 전파한 요한이 루카에게 지시했다.

“헬기장으로. 대피소 지원 가자.”

“예 썰.”

루카가 엄지를 추켜올리며 헬기의 방향을 돌렸다.

* * *

“거, 조심스럽기도 한 양반이네.”

스위퍼가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변종을 향해 구시렁거렸다.

움직임이 제법 빠르다. 마치 골룸의 몸놀림과 다윗의 격투 능력을 합쳐 놓은 듯한 변종. 더군다나 저 끔찍한 비주얼이라니.

대피소 앞에는 남은 수색조 전원이 긴장한 표정으로 변종과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놈은 많은 숫자가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게 마뜩잖은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까드득거리는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냈다.

“스위퍼, 오더를.”

하진이 스위퍼를 바라보며 말했다. 놈은 이미 화망 안에 들어온 상황.

“그럼 한 번 두드려 볼까. 셋 세면 동시에 때려 박는다. 셋.”

찰칵, 조정 간 바뀌는 소리가 들렸다.

“둘.”

호흡마저 멈춘 시간.

“하나.”

사격이 시작됐다.

따다다다!

탕! 탕!

틱! 틱!

소총수들의 탄환, 대피소 옥상에서 두들겨대는 기관총의 연발 소리, 그리고 옹 상병의 날카로운 저격 총소리가 허공을 사정없이 때렸다. 날아간 총탄들은 동그란 화망을 형성하며 변종 샤크를 두들겼다.

대부분 총탄이 껍데기에 튕겨 나갔으나 일부 총알은 놈의 껍질에 흠집을 냈다. 움푹 늘어간 모양이 마치 흠씬 두들겨 맞은 듯했다.

“AP 탄은 효과가 있는데.”

서생연과의 전투에서 획득한 철갑탄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놈의 몸에 틀어박힌 탄환에 놈이 까드득거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 순간, 놈이 도약했다.

“사격중지!”

스위퍼가 외쳤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놈을 확인하고 스위퍼가 사격을 멈췄다. 가까이서 사격을 계속했다간 유탄에 맞을 위험이 있었다.

“근접전으로!”

하진이 한 손에 철제 방패를 그러쥐고는 반대쪽 손에 의수 칼날을 꺼냈다. 혁과 조원들도 하나둘 대검을 꺼냈다.

“다구리해도 안 돼. 포위만 해! 다른 형씨들은 달려들지 마! 하진, 백업!”

스치기만 해도 감염되는 전투다. 근접전에서 괜히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붙었다가는 피해자만 생긴다.

사람들이 움직여 변종을 둘러싸고 하진과 스위퍼만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위퍼의 인근까지 도착한 변종이 긴 팔을 휘둘렀다.

부웅!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 스위퍼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여 피해낸 뒤 손도끼를 아래쪽으로 휘둘렀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는 생각.

쩡!

쩌렁쩌렁한 쇠 충돌음. 힘껏 휘둘렀으나 놈은 넘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스위퍼를 향해 반대쪽 손톱을 휘둘렀다.

다시 한번 파찰음이 울려 퍼졌다.

“휴, 나이스 백업.”

놈의 공격을 막은 것은 하진의 방패였다. 두 사람은 숨을 고르고선 변종으로부터 환상의 호흡을 과시하며 동시에 한 걸음 떨어졌다.

“다윗보다는 힘이 약해. 발톱이랑 이빨만 조심하면 되겠다.”

정해진 패턴은 없으나, 공격이 단조롭다. 커다란 주둥이로 물어뜯거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퀴는 게 대부분.

공격을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위력이 무식하지도 않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간다.”

‘대부분 변종의 공통적인 약점은, 소화 기관이야.’

스위퍼가 요한의 말을 듣고 챙긴 허리춤에 달린 수류탄을 만지작거렸다. 수류탄을 까 넣어서 배 속에서 아주 뜨거운 맛을 보여주리라.

하진이 먼저 달려들고 스위퍼가 곧장 따라붙었다.

놈이 다시 한번 손톱을 휘둘렀다.

“안 통한다!”

하진이 커다란 방패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놈의 팔이 물살을 가르는 물뱀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하진의 동공이 급격하게 커지고, 옆구리 쪽에서 불에 덴 듯 화끈한 고통이 느껴졌다.

“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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