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18화 (118/176)

<118화>

“이런 개 엿 같은…….”

스위퍼가 입에 욕지거리를 담았다.

그 누구도 입을 쉽게 열 수 없는 침통한 분위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저, 정환아…….”

정환의 죽음.

정환이 죽었다. 이토록 허무하게.

요한과 수색조가 무전을 받고 곧바로 뛰어왔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주택 안에는 두 발이 사라진 채 좀비로 변한 아영과 목 위가 사라진 정환의 시체가 있었다.

주택 전체가 여기저기 흩뿌려진 피로 가득했고 집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쩍은 냄새가 주택을 가득 채운 채였다.

그리고 변종은 자취를 감췄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나 허무한 죽음에 요한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람들 전부 대피소로…….”

목소리마저 떨리게 나왔다. 요한의 지시가 떨어졌으나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죽음이다.

요한이 마트 캠프에 합류했던 그 순간부터 수많은 싸움을 함께해왔던 초창기 생존자이자, 수많은 사선과 전투를 함께했던 이의 죽음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요한. 정신 차려.”

가슴이 따끔거린다.

동료들의 죽음에 무뎌지고 또 무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또 누군가에게 정을 주고 미련을 남겼다.

누군가의 죽음에 화가 날 정도로.

이곳은 종말이 온 세계인데.

언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인데도.

은연중에 ‘설마 내 선 안의 사람들이 죽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위퍼든, 하진이든, 설령 자신일지라도. 누구라도 갑작스러운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세상인데도.

“요한!”

어깨를 꽉 잡으며 힘껏 소리치는 하진의 목소리에 요한이 정신을 차렸다.

“힘든 건 알지만, 네가 흔들리면 안 돼. 아직 놈이 남아있다.”

“…그래. 미안하다.”

요한이 두 뺨을 쳤다.

몽롱해졌던 정신이 되돌아온다. 요한은 아득해질 뻔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지시를 내렸다. 목소리는 여전히 떨린 채였다.

“지금부터 단독행동은 금지야. 무조건 스쿼드 단위로 움직인다. 3, 4조는 지금 상황실로 가서 주민들 대피소로 이동 방송해. 1, 2조는 놈을 추격한다.”

“예!”

대답이 우렁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원들이 정환의 죽음에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그의 복수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잠깐, 대장님. 그런데 놈이 나타날 때 일반 좀비들도 많이 끌고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재호의 말에 요한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변종 샤크.

미공략 변종에, 유일한 접촉자 두 명은 모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여태까지의 변종 중 난이도를 따지자면 단연코 첫 순위에 꼽힐 터다. 철갑에, 치고 빠지는 지능까지 지녔다. 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 그대로 공략 불가 종에 가깝다.

놈 때문에 얼어붙은 심장은 두뇌의 회전까지도 얼어붙게 했던 걸까. 분명 리나의 예지에 이 시기 변종은 좀비 웨이브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섬에 좀비들이 들이닥칠 ‘무언가’의 사건이 터진다는 것.

간과하고 있었다. 좀비들이 어떻게 섬을 건너오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오직 변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리나의 예언은 정확했다. 놈의 생김새부터 특성까지. 그렇다는 건, 변종과 함께 등장하는 좀비 떼도 곧 일어날 현실이리라.

‘……아!’

순간적으로 머리에 경종이 울리며 만약 리나를 만나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의 캠프 요한이 전멸하는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졌다.

변종이 좀비들을 끌고 온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섬에 상륙한 변종 때문에 시선이 끌리는 사이 사건이 터져버리는 거다.

분명 요한은 조금 전까지 주민들을 대피소에 모으고 모든 병력을 대피소 앞으로 집결시켜 변종과의 결판을 준비하려 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해안가에 무슨 일이 터진다면, 대처할 수 없다.

이제야 깨달았다. 이 정도로 경계를 강화했는데도 전멸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이유.

몸이 물에 불은 일부의 좀비들, 낯선 복장의 좀비, 수백 마리가 넘는 좀비들.

‘해안가… 표류선.’

지금 이 순간 중국 대형 여객선이 이 섬을 향해 난파되고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종종 조각배들이나 좀비 시체도 떠내려오곤 했으니까.

한국에서도 한강을 통해 남해로 민간인과 병력을 이동시키는 군사작전이 시행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내부 감염자를 색출해내는 데 실패, 해상 곳곳에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1회차 회귀 전에도 심심찮게 일어났던 일.

하물며 중국 해안 쪽에는 사람들을 욱여넣으면 천 명 가까이 탈 수 있는 대형 여객선이 많다. 그중 하나가 난파되어 이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환아…….’

정환이 먼저 당한 것은 리나 일행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합류하면서 정환이의 거처를 바꿨기 때문에. 다른 사람 대신 정환이 희생된 거다.

요한은 생각을 갈무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대형 여객선이야.”

“여객선이요?”

“중국 해안 도시 쪽에서 아포칼립스 터진 이후에 분명히 생존자들 피난시키기 위해 해상작전을 폈을 거야. 우리나라 잠실 종합운동장 쉘터에서 한강을 통해 남해로 이동하려고 펼쳤던 작전처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좀비들에게 장악된 표류선이 들어오는 거지.”

“설마… 좀비들이 배를 조종할 정도의 지능이 있는 건…….”

“아니겠지.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겠지만, 정말 그렇다면 인류가 말살되어도 할 말이 없을 만하니까. 난파된 수많은 배 중의 하나가 운 나쁘게 이쪽으로 굴러들어온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모든 키워드가 맞아 떨어졌다. 이제는 상륙을 막아야 한다. 변종 하나로도 벅찬 상황에, 수백 마리의 좀비들이 좀비 웨이브까지 일어난다면, 상황은 절망적이다.

“놈은 좀비 웨이브를 일으키지 못하는 게 아니야. 단지 좀비들이 주변에 없어 반응하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그 배가 정박하는 순간, 이곳은 좀비 웨이브와 더불어 다윗급의 공략 불가 판정 변종을 상대해야 해. 그러면 정말 전멸할 수도 있어.”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인다.

“대장, 지시를.”

요한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병력을 나눠야 한다. 다만 생존자들을 지키고 놈을 추격하는 게 아니라, 한 조는 일반 좀비들의 상륙을 막아야 한다.

더 쪼개는 순간 변종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면역을 가진 자신, 그리고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변종들을 상대로 승산을 점칠 수 있는 네 명의 에이스들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시신 수습과 추모는… 미룬다. 위협의 제거가 먼저야. 송전탑으로 간다. 인원은 임시로 재편성. 소희, 루카, 정환… 아, 젠장.”

“대장…….”

“재호, 어선 조종하는 법 이론은 알고 있지? 소희, 루카, 세리, 재호는 날 따라와. 나머지는 주민들 데리고 대피소로.”

“네!”

“바이크 세 대는 우리가 쓸게. 기동력이 생명이니까. 소희는 세리 뒤에 타. 우선 보급창고로 간다.”

임시로 편성된 표류선 정박 저지 조는 곧바로 보급창고로 향했다. 보급창고에서 천, 휘발유, 김 씨가 만들어준 화살 등등을 넉넉히 챙긴 후 다시 바이크 시동을 걸었다.

“오빠, 어디로 갈 거야?”

“송전탑으로.”

유일하게 섬의 전 해안가를 볼 수 있는 곳. 송전탑이었다.

송전탑에 기어 올라간 요한은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으나 어둠과 해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빠! 뭐가 보여?

“아니, 해무가 너무 심해.”

해무만이라도 걷히면 어떻게든 해 볼 텐데……. 요한은 초조한 기색을 거뒀다. 해안가 근처로 접근하면, 그때는 확인할 수 있으리라.

-형씨, 대피 완료했어!

“확인. 놈은?”

-안 보여. 그쪽 조심해.

변종 샤크는 치타나 표범처럼 혼자 사냥하는 육식동물의 성향을 띄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사냥감이 위협할 때는 몸을 뺄 줄도 알며, 무리의 취약한 부분을 먼저 공격해서 물어뜯는다.

지능이 얼마나 높은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일반 좀비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본능적인 판단력을 가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놈은 제 방식대로 철저하게 사냥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오감이 바짝바짝 곤두선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죽음의 감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솜털이 곤두서는 이 생경한 느낌.

상위 포식자를 대하는 듯한, 누군가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어 머릿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또 누군가가 죽지는 않을까, 더 나아가 자신이 여기서 죽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빠!”

처음 마주하는 변종 샤크가 요한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송전탑, 변종 샤크 출현. 지원은 필요 없어.”

요한은 브리핑과 동시에 송전탑을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놈이 이곳에 나타난 이상, 여기서 자신이 끝장낸다.

“전부 떨어져! 접근하지 마!”

여기서 잡는다.

놈만 잡으면 일반 좀비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세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댄 채 당장에라도 놈을 공격할 태세를 하고 있었고, 샤크는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자신의 위치를 교란하고 있었다.

탁, 지면 위에 발을 붙인 요한이 마체테를 그러쥐었다. 총탄은 어차피 안 먹히는 걸 안다.

다윗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간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류는 아니니 입이나 눈에 총알을 박아넣는 것은 어렵다.

저렇게 미쳐 날뛰는 변종의 주둥이 안에 명중시키는 건 옹 상병도 불가능할 거다.

탁!

변종이 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요한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마체테를 휘둘렀다. 놈은 공중에서 움직임을 멈춘 후 다시 뒤쪽으로 튀어 올랐다.

마체테가 붕!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다시금 달려드는 요한. 사정없이 휘두른 공격이 놈의 아가리를 향했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대검이 놈의 잇새를 파고들었다.

“이익-”

요한이 두 손으로 대검을 더 깊게 쑤셔 박기 위해 안간힘 썼다.

세 사람은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요한과 놈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쉽사리 지원사격하지는 못했다.

“하아앗!”

요한이 기합을 내지르며 마체테를 한 층 더 쑤셔 박았다. 그 순간, 놈이 이빨에 힘을 풀고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 후 다시금 입을 쩍 벌리고 그를 물어뜯었다.

딱!

놈의 이빨이 허공을 갈랐다.

패턴을 찾았다.

놈은 공격할 때 아가리를 크게 벌린다. 답은 근접전. 다윗과 비교했을 때 근접전 전투력은 그에 못 미쳤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요한이 한 손에 수류탄을 그러쥔 채 놈에게 시선을 던졌다.

핑!

그때, 소희가 쏘아낸 화살이 샤크의 눈알에 틀어박혔다.

끼에에엑!-

높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그 뒤로 조원들의 사격이 이어졌다.

따다다다!-

놈은 쏟아지는 화력에 몸을 비틀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몸놀림 하나는 놀라울 정도였다.

“오빠! 괜찮아?”

세 사람이 요한을 향해 달려왔다. 요한은 내심 마뜩잖았으나, 티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송전탑에서 교전 후 놈이 도망쳤다. 경계 강화하고 기습 조심해.”

-라져.

요한이 얼얼한 팔을 주무르며 수류탄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기회는 또다시 온다.

“예정대로 우리는 여객선 정박을 막는다. 루카.”

“옙.”

“헬기, 가동 가능하지?”

“물론이지요.”

“헬기장으로 간다. 보이지 않는다면, 찾아내는 수밖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