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 *
새로 합류한 피오와 베르다는 무엇보다 전체적인 균형이 상당이 좋았다. 피오는 격투술과 사격술 모두 스위퍼, 하진의 바로 아래 단계 정도는 되었고, 베르다도 혁이나 정환이의 수준을 웃돌았다.
전반적으로 피오의 수준이 좀 더 높았으나, 한 가지만큼은 베르다가 더 훌륭했다.
브리핑.
명확한 목소리로 깔끔하게 브리핑하는 솜씨는 훌륭했다. 세리의 상위 호환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리나는 정말, 모든 전투 상황에서 꽝이었다. 사격술은 물론이고 격투술, 쇠뇌까지도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그저 쓰레기통에 버리듯 탄약을 허공에 처박을 뿐이었다.
차라리 정은이를 계속 조원으로 쓰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지만, 그녀도 전투 요원으로 참여해야 했다.
장거리 원정을 나갔을 때, 미래 예지가 어떤 역할을 해줄지 모르기에 항상 자신과 붙어있어야 했다.
소희는 약간은 특별한 카드였다. 당장은 쓸 데가 없었지만, 언젠가 조커 카드로 활용이 가능할 터였다.
“휴식.”
요한의 입에서 떨어진 휴식지시에 조원들이 그 자리에 철퍼덕 쓰러졌다.
“……빡세.”
“죽을 것 같아요, 형님.”
이미 실전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들이었지만, 요한이 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투성이였다.
A급 생존자인 스위퍼나 하진도 각각 약점이 있었고, 준 A급에 달하는 혁이나 정환이, 옹 상병도 약점이 있었다. 근접전이 취약한 옹 상병, 전반적인 능력치가 골고루 부족한 정환. 한심한 멘탈이 문제인 혁이의 약점은 그나마 나은 수준.
3, 4조의 상태는 사실, 더 심각했다.
요한이 남은 갈 길을 보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경계 임무 쪽으로 완전히 빠진 정은이 요한을 찾아왔다.
“오빠, 상황실에 무전이 왔어요.”
“어, 금방 갈게.”
요한은 조원들에게 섬 한 바퀴를 더 돌도록 지시한 후 상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실에서는 용병단 노인으로부터 무전이 도착해 있었다.
“요한입니다.”
-여, 애송이.
“건강하십니까.”
-계집애 같은 안부 인사는 집어치우자니까.
여전한 독설에 요한이 슬그머니 웃었다.
-한 가지 전달해 줄 게 있어서 연락했다.
“네. 말씀하세요.”
-서울 쪽 거래처에서 전달해준 이야기야.
“네.”
-그 개백정인지 개장순지가 죽은 다음에, 서울 쪽에서 대대적인 생존자들 세력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겠지요.”
대부분 세력은 전부 개백정이 쓸어담듯 했으니, 그가 없는 자리를 누군가가 메웠을 것이다.
-지금 가장 큰 세력은 여의도에 자리 잡은 그룹인데.
“여의도요?”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과거 1회차 여의도 캠프의 핵심은,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자였으니까.
“혹시 리더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신노아라는 사람인데.”
요한의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여의도 캠프 신노아.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동료. 그의 등장이 상당히 빨라졌다. 개백정이 죽은 것 때문일까.
“신노아… 말입니까.”
-왜, 아는 사람이냐?
“조금요.”
-거기도 애송이인데, 제법 수완이 좋은 모양이더라. 근데 최근에 좀비 웨이브를 연속으로 세 번이나 맞아서 내 쪽 거래처를 통해 웨이브에 대한 정보를 사간 모양이야.
“그렇군요.”
-제값 주고 산 정보를 판 건데, 저작권료 안 준다고 삐쳐 있진 않겠지?
“물론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게 중요하죠.”
-쯧,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티 났습니까?”
-그래 이 사이코패스 자식아.
“아무튼, 그런데요?”
-문제는 좀비 웨이브 말고 네가 저번에 말한 그 좀비 행렬 있잖아.
“예.”
-그게 놈들의 캠프 방향으로 직진 거리로 향하고 있나 봐.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야. 그래서 대규모 이사를 준비한다고 하더라고.
“어디로요?”
-그것까진 모르지. 이건 지난번에 준 좀비 행렬에 대한 정보 값이다.
“감사합니다. 참, 변종 두 마리에 대한 정보가 더 있습니다.”
-오, 뭔데?
“근데 이게 좀…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자식아, 난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도 믿기 어렵다.
요한은 두 변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육지와 수중을 자유롭게 건널 수 있는 듯한 변종과 변종을 낳으면서 호흡기로 감염시키는 변종.
-공략 불가 종이네.
“그렇죠.”
-니, 미럴…….
아마 자신이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터다.
“그 여의도 캠프 주시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다. 정보 고맙고.
“네. 저도 늘 감사합니다.”
-또 보자, 애송이.
‘신노아라…….’
요한은 오래된 연인을 부르듯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섬은 평화로웠지만,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의 평화였다.
* * *
어스름이 질 무렵, 해 질 녘의 평온한 바다였다. 해수면은 잔잔했고 바닷가에서 올라온 해무가 섬 전체를 끌어안은 탓에 시야가 불투명했다.
잔잔한 해수면 위로 작은 파문이 일어난 뒤 보글보글 물거품이 올라왔다.
해수면에 점차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이내 붉은빛 생명체가 해수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머리가 올라오고, 어깨가, 긴 두 팔과 날카로운 손톱이, 그리고 물갈퀴가 처져 있는 긴 두 다리까지.
놈이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 * *
정환은 개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정환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갔다. 흑구가 허공을 향해서 왈왈 짖고 있었다.
“으, 흑구야 무슨 일이야?”
정환이 흑구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물었으나 흑구는 그저 왈왈 짖을 뿐이었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소음에 잠에서 깨어난 아영이 2층 계단 옆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정환이 손을 휙휙 저었다.
“아니야, 흑구가 갑자기 짖어서… 뭐가 보이나? 강아지가 허공을 향해 짖으면 귀신이 보이는 거라던데.”
아영이 뭔가 재밌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희미하게 웃었다.
“오빠 잘 때 이불 안쪽 조심해야겠네요.”
“무서운 소리 하지 말고… 또 산짐승이라도 내려왔나?”
정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이에도 흑구는 계속해서 짖고 있었다.
쨍그랑!
그때 뭔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오십 미터 북서쪽 유리 깨지는 소리.”
“네?”
“아, 아니야. 습관적으로 그만.”
정환은 거의 습관적으로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누르고 브리핑을 내뱉는 자신을 보았다.
진짜 주입식 강압 교육이 무섭긴 무섭구나 싶었다. 정환이 다시 한번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누르고 요한을 불렀다.
“요한 형, 일어나 있어요?”
-어, 무슨 일이야?
늦은 시간이라 자는 줄 알았더니 이 와중에 깨어있다. 이 인간은 잠이란 걸 자기는 하는 걸까.
“안 자고 있었어요?”
-방금 깼어. 무슨 일이야?
아, 무전 때문에 깬 거구나.
정환은 괜스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교육받은 대로 한 것뿐이니까.
“흑구가 하도 짖어서 깼는데, 방금 오십 미터 밖에서 뭐가 깨지는 소리가 나서 한 번 가보려고요.”
-정확한 위치 브리핑하고 조심히 확인해라, 지금 바로 출발할 테니.
“예 썰.”
뭐, 이 새벽에 별일이야 있겠느냐마는… 언제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정환은 외투를 걸치고 장비를 한 후 흑구의 목에 목줄을 채웠다. 지난번에 산토끼를 보고 짖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오랫동안 짖은 건 아니었는데.
별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계병들이 철통같이 네 방향을 지키고 있었고, 섬에 들어와서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은 지 벌써 수개월이 흘렀으니까.
하지만 오랜 교육 탓인지 군장을 멘 순간부터는 항상 긴장감이 든다.
정환은 흑구를 따라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소리가 난 방향과 흑구가 향하는 방향이 일치하는 걸 보아 분명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괜스레 소름이 끼치는 밤이었다.
그때, 눈앞에 뭔가 검은 물체가 스치듯 지나갔다. 정환은 화들짝 놀랐다.
이건, 정말 뭔가 있다.
“요한 형, 여기 신도2리 붉은색 2층 건물 앞. 뭔가 있어요.”
흑구는 계속 짖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적의를 품은 것 같기도,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다. 무전기로 흑구 짖는 소리가 같이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정환이 정지한 상태로 견착했다. 총기의 가늠쇠 사이로 다시 검은색 물체가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달빛에 비친 검은색 물체의 눈에는 붉은색 안광이 비치고 있었다.
까득, 까드득!
붉은색 안광과 마주친 순간, 그는 온몸이 얼어붙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한파에 얼어붙은 시체처럼.
‘움직여야…….’
처음 마주친 변종의 존재.
그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감은 상상했던 그 어떤 공포보다 극심했다.
“벼, 변종.”
송신 버튼을 누른 뒤 한 마디를 내뱉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변종 샤크.
요한과 조원들이 대비했던 그 변종이었다. 캠프에 비극적인 미래를 선물한다던.
자신을 향해 한 발 움직이는 변종을 보자마자 정환은 조정 간 위치를 자동으로 바꾸고 격발기를 당겼다.
따다다다!
섬의 침묵을 깨는 격렬한 굉음. 격렬한 반동과 동시에 탄환이 수직으로 쏟아졌다.
놈의 몸체가 순식간에 왼쪽으로 솟구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놈은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 대신, 놈이 선택한 것은 다른 사냥감. 저항하지 않는 연약한 사냥감이 있는 장소로 향하는 것이었다.
놈이 향한 방향은 정환의 집. 아영이 있는 장소였다. 그가 황급히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전을 쳤다.
“신도 2리! 흰색 단독 주택, 변종 한 마리 출현!”
-혼자 교전하지 마! 안전거리 확보해!
몇 초 차이로 요한의 무전이 들렸지만, 정환의 두 다리는 어느새 본능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아영이는 안 된다.
자신이라면 몇 초, 몇 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의 훈련도 받지 않은 고등학생이 변종의 공격을 버텨낼 리가 없다.
정환은 어느새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꺄아악!”
“아영아!”
아영의 비명이 들리자 정환이 소리치며 2층 단독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비명을 들은 순간부터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이 완전히 회까닥 돌아버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미 변종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놈보다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것뿐.
하지만 늦었다.
까득, 까드득!
소름 끼치는 이빨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등 켜진 집 안, 정환은 코앞에서 변종과 마주했다.
입이 귀 앞까지 찢어지고 팔다리가 비정상적으로 긴 괴물.
놈이 자신을 향해 입을 쩍 벌리자 마치 악어 톱날 같은 이빨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끅, 끄윽…….”
아영의 목소리가 변종의 안쪽에서 들리자 정환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아영아!”
그녀는 신음조차 흘리지 못한 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아영아…….”
……한쪽 다리가 뜯겨 사라졌다.
“으아아악! 아영아!”
정환이 다시 한바탕 총알을 쏟아냈다.
죽어, 죽어 이 개자식아!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코에는 콧물이 질질 새어 나오고 있었다. 뿌예진 시야를 털어내며 정환이 놈을 향해 총알을 쏘아 보냈다.
팅! 팅! 총알이 몸체에 부딪혀 유탄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충격에 움찔하던 변종은 상대의 공격이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철컥, 철컥, 빈 탄알집에 공이가 허공을 때렸다.
귀까지 찢어진 입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 이죽거리는 듯.
정환이 허겁지겁 새 탄창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놈이 다시 한번 입을 쩍 벌렸다. 정환의 시선이 순식간에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