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요한은 미스트랄 미사일을 보며 과거 군 생활을 떠올렸다. 2년 동안 다뤘던 장비들을 아포칼립스 시대에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괜히 딸깍거리며 유도탄 장착부를 한 번씩 눌러보고 의자에 앉아 한 바퀴 돌고 있자 옹 상병이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대장님, 뭔가 익숙해 보이십니다?”
요한은 씩 웃어주며 대답했다.
“군 특기였거든. 실전은 한 번뿐이었지만 쏘는 법은 알지.”
그마저도 대천 사격대회에서 부사수로 쌍안경 들고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운용법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스스로 이런 말 하기엔 민망하지만, 군 생활 당시 에이스를 자처할 만큼 열심이었으니까. 시뮬레이터든 적외선 훈련이든 성실하게 임했던 만큼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신체가 장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게 그… 미사일입니까?”
“정확히는 유도미사일이지. 혹시라도 하늘을 나는 변종이 나타나면 솜씨를 보여주마.”
“오오, 기대됩니다. 근데 하늘을 나는 변종도 있습니까?”
“글쎄, 없겠지?”
요한의 대답에 옹 상병이 낄낄대며 웃었다. 요한의 기억 속에 하늘을 나는 좀비들은 없었다. 그리고 희망컨대, 하늘을 나는 좀비 따위는 없어야 한다.
일단 적외선 탐지가 되는 변종이라면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거다. 특히 다윗이나 도살자 같은 변종들처럼 뛰어다니면서 혼란을 주는 고급 변종들을 상대할 때는 아주 유용할 터.
“전투는 마무리된 것 같으니 뒷정리들 하자. 옹아, 발칸이랑 미스트랄에 포 커버 씌워 놔.”
“예, 알겠습니다.”
“혁, 세리는 주민들 상태 확인하고 수습해 주고.”
“네.”
“하진, 스위퍼는 배에 혹시 남아있는 생존자들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안의 물자들 확인해서 옮겨.”
“라져.”
“나머지는 시신들 수습하고 총기 탄약 회수해.”
“예.”
요한은 짤막하게 지시를 마치고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읊조리듯 말했다.
“베르다, 피오, 소희.”
“…….”
“인상 펴.”
생존자 간의 싸움이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 불편해하는 걸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데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니까. 그래도 전투 중에 초를 치거나 당황하거나 하는 일 없이 제 몫을 다해준 것만도 훌륭한 수준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요한이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제 방식을 따르기로 했고, 이게 요한의 방식이었으니까.
요한은 스위퍼, 하진과 함께 남은 병사들이 없는지 함정 안을 샅샅이 뒤졌다.
“없는 것 같지?”
“그렇네.”
예상했던 대로 함정 안에 남은 병력은 없었다. 요한은 함정 수색을 마무리하고 한창 뒷정리로 바쁠 격전지로 향했다.
한바탕 피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전투장소에서는 수색 조원들이 분주하게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목가적인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학살현장. 한 번에 숨통이 끊겨 즉사한 군인들은 차라리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복부나 어깨 등등 중요 부위에 총알은 맞은 채 여전히 고통에 울부짖는 병사들. 그리고 그 병사들을 어찌할 바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피오와 베르다.
수색 조원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시신들을 수습하고 있었고 새롭게 합류한 두 전투원은 그들을 비난이라도 하듯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한쪽에서는 소희가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끅, 으으…….”
복부에 총을 맞은 채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던 병사의 숨이 결국 끊어졌다. 피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는 이내 그의 시신을 시쳇더미로 끌고 갔다.
“저기, 시신 옮기기 전에 건빵주머니랑 탄띠랑 다 확인해서 빼셔야 해요.”
진수가 피오에게 지적했다. 나무라는 듯한 뉘앙스는 아니었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듯한 친절한 음성. 그러나 피오는 배 속에서부터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아니, 지금-”
그러나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뒤에서 그의 어깨를 요한이 붙잡은 것.
“수고들 많아.”
최대한 무표정하게 표정 관리를 하며 일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안색이 다소 창백했다.
요한은 그들의 어깨와 등을 한 번씩 두드려 주었다. 조원들의 안색이 한결 괜찮아질 정도로 세심하게 다독여 준 뒤, 요한은 소희를 한쪽으로 데려와 앉히고선 피오와 베르다를 향해 걸어왔다.
“첫 전투를 함께한 소감은?”
“너희, 대단한 놈들인 것 같아.”
피오의 말은 진심이었다.
세 배가 넘는 전력이었다. 게다가 오로지 권총과 육탄전만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사전에 말을 맞추지도, 신호를 던지지도 않았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전투가 시작됐다.
하진이나 스위퍼 같은 에이스들의 전투력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조원들 한 명 한 명이 침착하고 정확하게 전투에 임했다.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가진 잔혹성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쏴 쓰러트리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빗맞은 사람의 신체를 향해 한 발의 총알이라도 더 박아넣겠다는 각오가 엿보였으니까.
개개인의 무력은 둘째치고, 이 집단의 무력이 압권이었다. 군인들이 어린애들로 보일 만큼.
“꼭 저렇게 다 죽여야 했어?”
“그 질문은 내게는 지겨운 질문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클리셰처럼 반복되는 대화인 것 같아. 그렇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매번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설명하기 힘들다는 뜻이란다. 그런데 시신 수습하고 총기 탄약 회수하라는 말 못 들었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피오는 모르고 있었다. 요한은 늘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와 대화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말려든다는 것을.
“왜, 시신 뒤지는 게 불편한가.”
“당연히… 사람을 죽인 것도 찝찝한데 죽인 사람들 물건을 빼앗아 쓰다니. 불쾌하지도 않아? 총이랑 총알이 모자란 것도 아니잖아.”
“화기든 탄약이든 소모품이야. 우리의 훈련량을 생각하면 절대 넉넉하지 않은데. 게다가 생각해봐. 죽을 때까지 좀비랑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과연 모자라지 않은 걸까?”
“…….”
“시체 수색도 결국 파밍의 일부일 뿐이야. 전투로 죽은 사람이나, 좀비나 똑같은 시체일 뿐이지. 익숙해질 거다. 익숙해 져야 하고.”
나약한 소리를 지껄이는 이들에게는 신랄하게 현실을 꼬집는 요한이었지만, 피오에게는 제법 서글서글한 편이었다.
이들은 처음치고는 제법 훌륭하게 첫 전투를 끝냈고, 불만스러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통제에 따랐다. 적응의 기간이 지나가면 충분히 제 몫을 해낼 터다. 다만 문제라면,
“힘드니.”
시신의 수습은커녕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빈속만 게워내는 스무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너한테는 기회를 주마.”
요한은 소희를 향해 말했다. 그녀가 입가의 침을 닦으며 퀭한 눈빛으로 요한을 올려다봤다.
“아무래도 너는 싸움 체질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든 제 밥값을 해야 해. 수색조에 들어와서 싸움을 배우든, 농사를 짓든, 기술을 배우든. 어느 쪽이든 환영해 줄 테니 원하는 대로 골라.”
“…….”
“뭐, 당장 결정할 필요도 없고 언제든 바꿀 수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봐라.”
말은 이렇게 했어도 그녀는 이미 살상 무기가 손에 익은 사람이다. 아마도, 머지않은 시기에 수색조로 들어올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요한은 현장 정리가 마무리되는 것까지 확인하고 무전으로 세리를 불렀다. 이제 가장 중요한 마무리가 남았다.
“세리야. 이쪽으로.”
-응, 금방 갈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멀리서부터 바이크 소리가 들렸다. 빙그르르 돌며 능숙하게 바이크를 세운 세리가 요한을 향해 달려왔다. 요한은 고생했다며 그녀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사람들은 좀 어때?”
“그냥 뭐, 다들 놀라고 겁먹었지.”
“군인들을 죽인 데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고?”
“그렇진 않은 것 같아. 여기저기서 총알이 날아다녔으니까 아마 놀라서 그럴 정신도 없을걸? 저쪽에서 먼저 총을 겨누기도 했고.”
“다행이군. 그럼 이제 남은 건….”
요한의 시선이 케이블타이에 팔을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잔병들을 향했다.
남은 이들을 갱생해 주민으로 받아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기쁘게 합류해 귀중한 전력이 될지, 속에 앙심을 품은 독이 든 성배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후환이다. 죽이는 게 맞다.
요한이 리볼버의 공이를 당긴 후 잔병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선 가장 계급이 높은 병사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병사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요한이 그의 이름표를 확인한 후 재갈을 풀었다. 병장의 몸이 떨리고 눈빛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조현우 병장. 몇 가지 묻지.”
“으, 으으…….”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를 보는 듯한 표정. 요한은 끅끅대며 신음을 내뱉는 병장을 향해 무감정한 질문을 내뱉었다.
“지금 여기 남은 인원으로 저 함정을 운용할 수 있나?”
병장은 대답이 없었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 어떻게 대답해야 자신을 살려줄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재단하는 듯.
“살려주세요…….”
요한은 그 대답과 표정에서 불가능을 읽었다.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사실도. 그가 다시금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선 총기를 장전했다. 오래 살려두는 것 자체가 후환이다.
천천히 그에게 총구를 겨누자 그와 동시에 피오가 요한을 붙잡았다.
“자, 잠깐만.”
“왜?”
“설마 죽이려고? 저항도 못 하는 상태인데?”
“그럼.”
“대장 기분 나쁘게 하자고 하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 그래도 죽이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어.”
피오는 평소의 깐죽거림도 잊은 채 진지한 얼굴로 요한을 설득하려 했다. 그 진지함에 누군가가 떠올라 요한이 피식 웃어버렸다.
“하지만 이놈들이 복수하겠다고 돌아올 수도 있는걸. 그럼 양손을 자르고 보내주는 정도면 될까?”
“…….”
“왜, 그것도 심해?”
요한이 피오와 대화를 주고받을 때마다 병사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봐 꼬마야. 나는 이제 이 세상의 잔혹함과 후환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도 지겨워. 내 행동의 이유가 궁금하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정 불만이 있으면 네 아가씨 데리고 나가면 돼.”
요한의 말에 피오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오물거렸다. 그사이 함선 청소가 끝났는지 스위퍼와 하진이 수레를 끌고 걸어왔다.
“어휴, 대장 형씨. 왜 신입 갈구고 있어? 뭐 실수라도 했어?”
“아냐. 뭐, 제법 잘해줬지.”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요한이 다시금 병사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읍…. 읍!”
발버둥 치는 병사들. 요한의 손이 격발기를 천천히 당기다가 멈췄다. 그러고선 한숨을 옅게 내쉬고서는 총구를 거뒀다.
“응? 뭐야?”
“마음이 바뀌었어. 정환아, 배에 시동 걸고, 이 사람들 배에 태워.”
“어쩌려고?”
“영종도에 내려놓고 올 거야. 보내주지, 뭐.”
요한이 그들을 놔준다고 말하자 모가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나 자초지종을 모르는 스위퍼나 하진의 경우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의구심 어린 시선들을 뒤로 요한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 다음 일렬로 어선에 옮겨 태웠다.
요한이 막 출항하려는 찰나, 스위퍼가 배 위에 올라탔다.
“가서 쉬지, 왜.”
“나도 가지. 애들 풀어준 순간 달려들면 어떻게 해?”
요한은 잠깐 말이 없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릉,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함께 어선이 바닷물을 갈랐다.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던 스위퍼가 조종실로 들어왔다.
“어이, 대장 형씨.”
“응?”
“지금 무슨 생각해? 아까부터 말도 한마디도 없고.”
“음, 개백정 생각.”
개백정을 생각한다고 대답하자 스위퍼가 마치 못 볼 꼴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윽, 형씨 그렇게 안 봤는데.”
“더러운 생각하지 말고. 가끔 개백정이 설계한 조직도가 떠오르거든. 기이한 조직도지. 수백 명의 사람을 전부 하나하나 서열을 매겨. 본인이 직접. 워낙 사망자도 많은데 한 명이 죽을 때마다 그 짓을 한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