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08화 (108/176)

<108화>

“합류시킨다.”

“그렇군. 이유는?”

“아까운 인재들이야.”

전투 요원, 의사, 헬기 조종사의 조합에 이만한 식량이다. 수녀를 제외하곤 알맹이뿐인 집단. 만약, 정말 만에 하나라도 수녀가 예지몽을 꾸는 게 맞는다면 그녀의 가치는 천금과도 같다.

달라진 과거를 아는 회귀자 보다는 몇 배 가치 있는 그런 금덩이 말이다.

다섯 명이 지금까지 문제없이 지내왔다는 사실만 봐서는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도 않다.

‘저 피오라는 꼬맹이는 성격 있는 것 같긴 하다만.’

그들이 문제없이 아군이 될 수 있다면, 분명 큰 전력이 될 거다.

생각을 정한 요한은 성당 밖으로 나와 리나에게 말을 걸었다.

“궁금한 건 모두 해결하셨나요?”

“대충.”

“그럼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여쭤봐도 될까요?”

“합류해. 그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와. 리더는 나다. 전투 중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일행을 위험에 빠트리면 죽일지도 몰라.”

“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대답.

이들과의 만남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옆의 네 사람조차도 별 반응이 없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리라.

‘진짜 사실일지도 모르겠는데. 이거.’

그들을 대하는 태도의 온도를 약간은 올리기로 했다. 일부러 중요 전력들과 감정의 골을 깊게 팰 필요는 없으니까.

“리나라고 했지? 너는 우리와 함께 움직인다. 수색조에 참여해서.”

“잠깐, 뭐라고?!”

피오가 목소리를 높였다. 요한이 반문했다.

“우리 방식에 따른다고 하지 않았어? 이게 우리 방식이야. 새로 합류한 인원들은 반드시 한 명 이상 수색조에 참가시켜야 한다.”

“리나는 싸움을 못 해!”

“배워야지.”

“그런… 내가 대신하면 되잖아. 리나 혼자 보내는 건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요!”

피오에 이어 베르다까지 거들고 나섰다. 두 남녀가 땍땍거리는 소리에 귀가 아파져 왔다. 요한이 리나를 보며 말했다.

“말려 봐.”

“죄송합니다. 제가 짐이 되는 건 사실이라서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저들을 설득하기는….”

“한 명 더 받아주지. 둘 중에 누가?”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번쩍 들었다. 요한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누가 들어올지는 알아서 결정하고. 다들 무장해제하고 쉬어. 수녀님은 나랑 얘기 좀 하지.”

“예.”

요한이 앞서 걸어가자 리나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총총걸음으로 요한을 따라 들어갔다.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요한은 성당 사무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기대듯 앉았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고. 그 우리를 습격한 좀비와 변종에 관한 이야기 말인데, 다른 정보는 없어?”

“죄송합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기도 했고… 꿈속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려워요.”

“뭐라도 좋아. 변종의 생김새는?”

“상어처럼 입이 튀어나와 있었고… 아, 손톱이 굉장히 날카로웠어요. 힘도 셌고요.”

상어 입. 처음 보는 종류였다. 그러나 변종들이 가진 특성과 일치한다. 기본적으로는 인간형의 유사 인종에 특별히 발달한 부위들.

그녀의 주장에 한결 힘이 실렸다.

“총알은 먹히던가?”

“아뇨.”

이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한결 단호했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기는?”

“…모르겠어요.”

“뭐라도 기억해 봐. 입은 복장이 어땠는지, 좀비들의 상태는 어땠는지, 주변에 논은? 추수가 끝난 상태였나? 날씨는? 나무들 상태는?”

거의 다그치는 듯한 요한의 물음에 리나는 안절부절못하다 못해 울기 직전의 표정을 지었다.

요한은 자신이 너무 서둘렀나 싶어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차분차분하게 물었다.

“천천히 대답해도 좋으니 정확하게 얘기해. 확실하지 않은 건 얘기하지 마. 잘못된 정보는 혼란만 주니까.”

“예, 알겠습니다.”

다시금 희미하게 웃는 리나. 푸른색의 눈동자가 자꾸만 시선을 잡아끌었다. 요한의 빤한 시선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는지, 잠시 회상하는 듯 눈을 감은 그녀는 길지 않은 시간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논… 에 추수는 끝났었던 것 같아요. 겨울… 이었던 것 같아요. 아, 겨울이에요. 여러분이 입고 있던 옷이 제법 두꺼웠어요. 코트나 패딩을 입었었고요.”

추수가 완전히 끝났고 패딩을 입을 정도라면 최소 12월에서 1월은 되었을 시기다. 아직 3개월 이상 시간이 있다.

“좀비들 옷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자세히 보지 못해서.”

“좀비들의 몸 상태는 어때. 일반 좀비들도 몸이 퉁퉁 불어 있었나?”

대량의 좀비들이 해안으로 떠내려온 것을 상정한 질문이었다.

“어, 네 부분적으로… 그렇지만 전부는 아니었어요. 그건 확실해요. 몸이 불은 좀비들보다 멀쩡한 좀비들이 더 많았어요. 아, 복장이 조금,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상하다면?”

“뭔가, 조금… 촌스럽고 이국적인 느낌?”

“좋아, 더 기억나는 건?”

머리를 싸매는 리나. 그러나 더 이상 떠오르는 건 없다.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요한이 그녀를 끊는다.

“그 예지몽이라는 건 앞으로도 계속 꿀 가능성이 있겠지?”

“네.”

“특정한 주기나 계기는?”

“그런 건 없어요. 그저 신께서 제가 알아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중요한 일이 발생한다면 분명히 제게 알려주실 거예요.”

저놈의 신 타령은 몇 번을 들어도 불편했다. 이부자리에 돌멩이가 하나 끼어 들어온 것처럼.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정리를 끝냈다.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궁금한 게 생기면 다시 물어보지.”

“네. 얼마든지.”

성당 밖으로 나가니 소란이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요한이 헛웃음을 흘리며 조원들을 보고 내뱉었다. 캠프 마리아 인원들과 수색 조원들이 한데 모여 뭔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무얼 그리 열심히 구경하나 했더니 베르다와 피오가 원 중앙에서 마치 종합격투기를 하듯 화려한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다.

얼핏 보면 싸우는 것 같기도 했지만, 사실상 싸움보다는 스파링에 가까워 보였다.

스위퍼는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입에 함박웃음을 걸고 있었고, 그의 옆에는 헬기 조종사 루카가 나란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벌써 친해진 건가.

“요한, 저 꼬마를 봐. 몸놀림이 정말 심상치 않아.”

당당하게 전투 요원이라고 하던 게 허풍은 아니었는지 두 사람의 몸놀림은 상당했다.

베르다는 나무 봉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맨손의 피오가 베르다의 빠른 찌르기를 백 텀블링을 연달아 하기도 하고 허공에서 몸을 비틀기도 하며 날렵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휘둘러지는 나무 봉을 피하는 피오의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봉을 다루는 베르다의 기술도 대단했다.

허공을 붕붕 돌던 봉이 순식간에 피오의 명치를 노리고 날아간다. 잘못 맞으면 기절을 넘어서 죽을 수도 있을 법한 속도.

“어린 나이에 대단한걸.”

“수녀님의 아버지가 대단히 엄격하고 딸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서 소년이나 여자 경호원만 썼다나 뭐라나.”

피오의 몸놀림은 흡사 스위퍼를 보는 듯했다.

‘제법….’

한 차례 대무가 끝나고 마지막에 웃은 것은 피오였다. 피오는 허공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봉을 두 손으로 붙잡은 후 베르다를 자신 방향으로 끌어당겨 자연스럽게 목에 두 다리를 걸어 그녀를 쓰러트렸다.

꿈틀거리며 저항하던 그녀도 점점 옥죄어 오는 그의 다리에 땅바닥을 두드리고 말았다.

“후후, 이거 봐. 베르다. 아직 나한테 안 된다니까?”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베르다를 내려다보는 피오와 분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베르다.

피오는 콧대를 높이며 요한을 향해 말했다.

“리나의 경호 역할은 이 몸이 맡게 됐단 말씀!”

고작 그런 걸로 이 난리를 피웠단 말이야?

“경호가 아니라 수색 임무다 꼬마야. 사적인 감정으로 폐를 끼치면 곧바로 뺄 거야.”

요한의 단호한 말에 금세 풀이 죽은 피오는 옆자리의 정환에게 틱틱거리듯 말을 던졌다.

“너희 대장 고지식하단 얘기 많이 듣지?”

“어유, 제대로 들었으면 귀에 딱지가 앉았을 걸요. 근데 꼬마 경호원 씨, 왜 반말이에요.”

“불만 있으면 너도 말 놓든가. 난 나보다 약한 사람한텐 존대 안 해.”

정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큭큭거리던 스위퍼는 이내 웃음보가 터졌는지 바닥을 데굴거리며 웃어젖혔다.

“와, 이거 안 되겠는데. 어이 꼬마야. 정환이는 나만 괴롭힐 수 있어. 다른 사람이 괴롭히는 걸 보면 조금 질투 나거든.”

“…흥. 어쩌라고.”

“교육 좀 해줘야겠는데. 대장 형씨, 괜찮겠지?”

스위퍼가 손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조금 전의 스파링을 보고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죽이진 마.”

“그럼, 대장 형씨처럼 살벌한 사람은 아니라고.”

“웬만하면 피도 보지 말고.”

“라져 댓.”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대화에 피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위퍼는 제 할 말을 이어갔다.

“네가 이기면 너 편한 대로 지내고. 네가 지면 우리 기준대로 서열을 다시 잡자고. 어때. 체급이 안 맞으니 핸디캡을 줄게. 형은 친절하거든. 어때?”

“핸디캡 따위 필요 없어, 노땅.”

당돌한 말에 스위퍼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다가 호흡곤란에 걸릴 지경이다.

“들어와, 꼬맹이야. 참교육이 뭔지 알려줄 테니.”

“저게, 자꾸 꼬맹이라고…….”

아무래도 신체 능력에 비해 작은 체구가 콤플렉스였는지, 피오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빠르다. 확실히 머리 하나는 더 큰 스위퍼를 상대하기 위해서 속도를 이용하기로 생각한 모양.

사실 체급도 체급이었지만 정보로도 피오가 불리한 싸움이었다.

피오는 스위퍼가 어떤 싸움을 하는지 모르지만, 스위퍼는 이미 한 번 피오의 싸움을 지켜봤으니까.

‘저 자식.’

요한은 웃음을 흘렸다. 스위퍼가 몸을 흔들며 피오의 공격을 모두 흘려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허점이 보여도 한 번의 공격도 하지 않았다.

핸디캡이자 자신의 움직임을 깨달을 때까지, 소위 보여주는 거다.

봐 주는 것 같기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이익!”

분명 날랜 움직임이었다. 스위퍼에게는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이긴 했어도, 최소한 캠프 요한에서도 스위퍼나 하진, 혁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근접전에서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물론 총칼을 들고 싸우는 건 다른 이야기겠지만.’

슬슬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는지 스위퍼가 시동을 걸었다. 공중에 떠올라 돌려차기하는 피오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러자 반동을 이용해 반대쪽 다리를 내질렀고, 그조차 붙잡혔다. 허공에 붙잡힌 피오가 이마를 부딪쳐왔다.

쿵! 묵직한 박치기.

“도그파이트까지. 훌륭한데.”

요한이 솔직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진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스위퍼가 빙글빙글 돌리듯 그를 던져버렸다. 허공에서 다시 한 바퀴 돌아 균형을 잡은 피오. 스위퍼는 그를 던지자마자 곧바로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살짝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은 피오가 자신을 향해 벼락처럼 달려오는 스위퍼를 보고 움찔했다. 야차처럼 달려오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뭐가 이렇게 빨-”

피오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스위퍼의 큼직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강타했다. 짝! 소리가 날 만큼. 피오는 그대로 날아가 나무에 머리를 부딪치고는 기절했다.

“괴, 괴물이야?”

그들의 스파링을 지켜보던 베르다가 입을 쩍 벌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상대가 나빴지, 라고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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