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12층 클리어.
-13층도요.
수색조는 두 개조로 나뉘어 각기 홀수와 짝수 층을 수색했다.
‘슬슬 나올 때가 되었는데.’
똥줄이 타고 있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이 작업이 저를 노리고 진행된다는 것도 알 테니까.
요한은 쓰러진 좀비 한 구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정면에서 튀어나온 좀비의 눈에 화살을 손으로 박아넣었다. 원거리 전투력뿐만 아니라 돌발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엿보였다.
“14층 시작합니다.”
“정환아.”
“예?”
“슬슬 튀어나올 때가 됐으니. 속도를 조금 줄이고 안전 위주로 진행해.”
“예. 형.”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힘껏 문을 뜯어냈다. 삐삐거리는 잠금장치의 비상알림음이 시끄럽게 복도를 메웠다.
‘여기도 빈집 같은데….’
정환이 들어간 집은 이전까지 보다는 상당히 깨끗한 집이었다. 딱 문을 연 순간 살짝 멈칫하게 되는 그런 느낌. 지금까지보다 더 숨을 죽이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집을 뒤졌다. 한 손에는 나이프를 꽉 쥔 채로.
숨을 만한 곳은 전부 뒤졌으나 생존자는 없었다.
이곳에서 지내다가 다른 곳으로 숨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정환이 무전을 쳤다.
“여기 1405호, 흔적 발견했지만, 생존자는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아요.”
정환이 무전기를 어깨에 꽂고 거실의 작은 캐비닛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성인이 들어가기엔 다소 작은 느낌의 캐비닛. 정환의 손이 습관적으로 문을 딸깍 열었고,
쿵!
그 순간 캐비닛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며 정환의 코를 강타했다.
“아악!”
“정환아? 뭐야?”
어린아이처럼 작은 인영이 쏜살같이 정환을 스쳐 지나갔다. 정환이 코를 부여잡으며 무전을 쳤다.
“1405호! 생존자 발견!”
생존자는 재빠르게 복도로 튀어 나가 비상구 쪽으로 내달렸으나 이미 그곳은 세리가 지키고 있었다. 생존자는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양궁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비켜.”
“여자아이?”
세리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에게 화살을 겨냥한 생존자는 다름 아닌 고작해야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세리는 생존자의 정체에 그녀를 제압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당황한 채였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총을 본 생존자는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사이, 수색 조원들이 도착해 그녀를 둘러쌌다. 아이를 본 조원들의 표정에 이채가 서렸다.
“이건 의외인걸.”
중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앳되고 보이시한 여자아이.
내심 새로운 전력을 기대했던 요한으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꼬마야. 위험하니까, 그건 내려놓고 오빠랑 이야기 좀 할까?”
스위퍼가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아이는 시위를 당긴 손을 더 뒤로 당길 뿐이었다. 그 뒤로 오빠는 좀 심하지 않나, 라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다 여기서 나가.”
소녀가 제법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더 차가운 목소리였다.
“윤세리, 총 들어.”
“하, 하지만.”
“총 들어.”
그녀를 받아들이고 말고는 나중의 문제였다. 우선 자신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상대에게 무방비하게 있는 것부터 교정해야 했다.
“지, 진짜 쏠 거야.”
소녀는 말을 더듬으며 당황했다.
“활 내려. 셋 셀 동안 내리지 않으면 전신에 총알구멍을 내주지.”
“잠깐만 오빠. 그렇게 심하게 말할 것까진…….”
“셋.”
“오빠!”
“둘.”
“소원 카드, 소원 카드 쓸게!”
요한이 인상을 찌푸린다. 대치 상황에 무슨 헛소리냐는 듯.
“왜 기억 안 나는 척이야. 어젯밤에 나랑 약속했잖아.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세리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요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날 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세리의 속살거림에 마지못해 사인해 주었던 소원 카드.
“술 먹어서 기억 안 난다고 해도 소용없어. 이건 오빠 자필 사인이니까.”
제기랄, 대체 뭐 하는 거야.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요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가관인 건 조원들의 반응이다. ‘어린애한테 좀 심한 것 같은데….’ 따위의 유약한 반응들.
전형적인 언더도그마다.
당해보지 않아서 모른다. 중학생이면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나이라는 걸.
“장난은 집어치우고…….”
“한 입으로 두말하기야? 이제 와서 말 바꾸면 곤란한데…….”
“…….”
“이번엔 나한테 맡겨줘. 부탁할게.”
“무장부터 해제시켜. 타협은 없어.”
“그, 우리부터 총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 꼬마도 활을 쏠 생각은 없어 보이고.”
이때다 싶어 하진이 끼어들었다. 그 또한 세리만큼이나 이 상황이 불편한 듯 보였다.
“들었지? 다들 총 내려줘.”
“후우.”
요한이 깊게 한숨을 내쉬자 곤란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요한이 총을 내렸다. 어차피 누가 한 명 다쳐도 이건 제 영향 밖의 일이다. 어쩔 수 없지. 값비싼 교훈을 치렀다 생각하는 수밖에. 요한이 총을 내리자 다른 이들도 이때다 싶어 밝은 표정으로 총을 내렸다.
한 마디씩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대장 형씨, 제법인데.”
“역시 송사는 베갯머리 송사가. 최고지 말입니다.”
“화끈하긴 하지만, 그래도 애가 듣고 있는데. 세리야. 자중할 필요가 있겠다.”
누구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세리와 요한의 대화는 성인이라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대화였다.
분위기를 환기한답시고 시답잖은 농담을 툭툭 던지는 통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건 덤이었다.
“아가야. 너도 활 좀 내려줄래? 해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잠깐 언니랑 이야기 좀 해.”
세리의 간곡한 어조에 소녀는 머뭇거리다가 활을 내렸다. 그러나 이어진 소녀의 말은 여전히 냉소적이었다.
“부탁이니 그냥 가. 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도 어리지도 않으니까.”
“혼자 있는 거니?”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고 언니랑 같이 가자. 여기는 위험해.”
“너희는 안 위험하고?”
“…위협한 건 미안해. 하지만 네가 먼저 활을 겨누었잖아. 우리도 우리 안전을 위해 그런 것뿐이야.”
“신경 써 줘서 고마운데. 오지랖이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단호한 대답에 세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요한의 옆에서 낄낄대던 스위퍼가 요한에게 귓속말했다.
“저 꼬맹이, 형씨랑 성격이 똑같은데?”
“시끄러워.”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세리는 열심히 소녀를 설득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느 정도는 넘어온 것도 같았다.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힐끔.
대화가 길어지자 요한은 초조한 얼굴로 시계를 바라봤다. 주변에 다른 생존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무의미했다.
“세리, 그만해.”
“응?”
요한이 세리를 확 끌어당겼다. 세리가 어어, 하며 소녀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네 말 잘 알겠고, 해치지는 않을 테니. 서로 무장해제하고 갈 길 가자. 너희도 그만 포기해.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다.”
“아, 다 넘어왔는데. 오빠도 뭐라고 한마디 해 봐. 이렇게 어린데도 저런 재능이면 데려가서 키워볼 만도 하잖아? 오빠 인재 욕심 엄청 많은 거 아니었어?”
이번엔 요한이 말을 잃었다. 사실 그도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린애가 아니래도.”
다시 소녀가 끼어들었지만, 그녀의 자그마한 목소리는 저들끼리 대화하는 스위퍼와 정환의 목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근데 형, 어차피 싸우려면 사격술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쇠뇌도 아니고 양궁은 좀.”
“궁수는 아예 쓰임새가 다르니까.”
“쓰임새요?”
“대좀비전에서는 아주 유용하지. 일단 발사음이 없으니까. 쇠뇌도 발사 소리가 없는 건 아니고, 총기에 아무리 소음기를 껴도 소리를 다 잡을 순 없잖아. 생각을 좀 하고 물어봐 주겠니, 새 고추 정환아?”
“아, 정말 형!”
“왜 아니야? 너 설마 아영이한테 그런 쓰레기 짓을…”
“형!”
쇠뇌도 소음이 있다. 총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 해도, 어쨌든 기계적인 힘으로 쏘는 무기다. 양궁에 비하면 소음이 큰 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같은 이유로 대인전에서도 최대한 조용히 적을 제압할 때는 좋은 무기라고 할 수 있지. 장전도 빠르고.”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세리가 방심하고 있는 소녀의 양궁을 잽싸게 뺏어 들었다.
“아앗!”
“이런 무서운 무기를 쓰려면 아직 더 커야 할 것 같아. 아가야.”
“나 안 어리다고!”
소희가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물론 다들 어린아이의 생떼 정도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뒤바뀐 것은 몇 분 후, 소희가 자신의 신분증을 들이민 이후였다.
[98년생 최소희.]
“어…….”
“실화야, 이거?”
“98년생? 언니 민증 아니고?”
“아니라니까! 이 멍청이들아!”
하지만 이건 그들로서도 억울한 일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아무리 봐도 중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와, 이거 완전 합법 로읍-”
스위퍼의 말을 황급히 하진이 틀어막았다. 왜 이러느냐는 눈빛에 하진이 단호하게 내뱉었다.
“인간으로서 담지 말아야 하는 종류의 단어도 있는 거다.”
짝, 요한이 박수를 한 번 치자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됐다. 슬슬 그의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만. 타임아웃이야. 주변에 좀비들을 데려온 건 최대한 정리해놓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대신 뒤통수 치다 실패하면 성인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할 거야.”
요한이 소희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덧붙였다.
“애초에 난 애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만… 운 좋은 줄 알아라. 꼬맹이. 다들 정리해. 복귀한다.”
“오빠.”
“명령이야. 두 번 말하지 않아.”
순간 모든 조원의 몸이 흠칫 떨렸다. 저렇게 단호하게 명령이라 말하는 경우는 정말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곤 드문 일이었으니까.
너무 풀어졌다. 이 건은 여기서 정리해야 한다.
“세리야,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진의 말에 세리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다들 소희를 설득해서 캠프로 데려가는 것은 포기했는지 휙휙 돌아섰다.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오히려 당황한 건 소희였다. 내심 따라가도 괜찮을 거라는 방향으로 마음이 돌아서고 있었기 때문.
“자, 잠깐만!”
요한이 무감정한 표정으로 되돌아봤다.
“조금, 만 더 고민해 볼게.”
“무슨 소리야. 제안은 이미 끝났는데.”
“그런…….”
“왜? 네 입으로 성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네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 아, 주변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더군. 놈들도 과연 우리처럼 관대할지는 의문이네.”
그녀가 놀란 토끼 눈을 떴다.
“혼자 잘 살아남아 보라고. 우리는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 억지로 끌고 갈 정도로 사람이 급한 것도 아니니까. 그나마 네 실력이 중학생치곤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했으니 발전 가능성을 본 거지, 지금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이라면 딱히 더 성장할 것 같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데. 그나마 네 그 꼬맹이 같은 외견 때문에 살려라도 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요한의 음성은 무뚝뚝한 걸 넘어 냉기가 뚝뚝 떨어졌다. 뒤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중얼거림이 들렸으나,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