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무난하게 교각 폭파를 마친 일행은 곧바로 다음 포인트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인천공항 물류센터.
일찍이 ‘물류센터’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물자의 보고일 것이라고 요한이 추측했던 곳이었지만, 그곳에 방문한 요한 일행은 생각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자의 보고는 보고다.
다만 너무 현대적인 물자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웬일이래. 우리 대장 형씨가 이런 실수를 다 하고.”
“그러게요.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인천공항 물류센터는 항공화물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창고 대부분이 노트북이나 TV 등 전자기기, 반도체 전자기기 부속 재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약간 상식적인 거긴 한데.”
거의 처음 보다시피 하는 요한의 실수에 조원들이 반쯤 놀리는 기색을 보이자 약간 속이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면세점으로 납품하는 물건들 보관하는 물류창고가 있을 텐데.”
요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재호가 덧붙였다.
“아 그건, 저쪽 특별화물창고에 있을 거예요.”
일행은 평소 갖고 싶었던 사치품만 간단하게 챙긴 후 특별화물창고로 이동했다.
“……털렸네.”
창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창고를 보며 요한이 읊조렸다.
“생존자 집단이 있다.”
“뭐?”
“물자를 뜯어서 챙겨간 게 아니라 팔레트 채로 통째로 옮겨서 실어갔어. 게다가 주변에 좀비들이 없지. 한쪽에서 좀비들을 끌어다가 유인하고 한쪽에서 물자를 옮긴 거야.”
“흠.”
하진이 침음을 한 번 내고는 덧붙였다.
“이로써 신경 써야 할 한 가지는 확실해졌군.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니 기운 내지. 시계라던가 옷이나 담배 같은 건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생겼잖아.”
졸지에 생필품보다 사치품이 더 차고 넘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량이나 식량 보조품은 없더라도 충분히 많은 물자가 존재했다.
“몇 번 더 올 만하겠어.”
요한이 지도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선 마치 중요도를 표시하듯 별을 세 개 반 그려 넣었다. 그리고 생존자가 있다는 표시로 사람 모양을 그려 넣었다.
“인천공항 면세점으로 가볼까? 거긴 아직 안 털렸을 것 같은데.”
“공항은 보나 마나 영종도 좀비들의 절반 이상이 모여 있을 거야. 아비규환이지.”
하진의 물음에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가장 최후의 최후에나 들러볼 만한 곳. 지나오면서 멀찍이서 지켜봐도 도저히 정리할 엄두가 안 나는 좀비 수였다. 요한은 공항 근처를 모두 적색으로 표시했다.
“재호야.”
“예, 이다음은 운서동, 영종동, 이렇게 두 포인트 정도만 확인하면 사실상 영종도는 끝이에요.”
“와, 진짜 뭐가 없네. 여기는.”
“공항 도시니까요. 개발이 완료되기 전에 종말이 터져버렸기도 했고……. 아마 마땅한 파밍 포인트가 없으면 작약도 선착장에다가 중간기지를 만들어서 인천 국제 여객 물류센터를 터는 게 좋을 걸요. 거기가 진짜 보물창고죠.”
재호의 말에 요한이 서둘러 지도를 확인했다. 인천항. 낡은 어선으로 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긴 하지만 확실히 가깝다. 기억해 두어야 할 만한 곳이기는 했다.
“영종도 정리가 끝나면 여기까지는 확장해볼 여지가 있겠다.”
마치 요한의 목소리가 칭찬처럼 들렸는지 재호가 푸흐흐 웃었다. 역시 이 녀석은 인재다. 흔하게 겪어보지 못한 독특한 유형의 인재.
무엇보다 이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회가 오고 리더가 관심을 두기 전까지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놀라웠다.
좋게 말하면 처세도 나쁘지 않다는 것. 요한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재호는 정환을 불렀다.
“정환아, 운전 교대하자.”
“아, 네 형. 감사합니다.”
저렇게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정환이나 식구들을 은근하게 챙기는 것도 그렇고, 사실상 수색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임에도 유일하게 자신에게는 존대를 붙인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하대하면서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흐음…….’
조금 더 신경 써서 키워야겠다.
최소한 의문사나 급사하지는 않아야 할 테니까.
-형, 혁인데.
“어, 무슨 일 있어?”
-옆에 장봉도에 생존자들의 흔적이 보였어.
“생존자들의 흔적?”
-연기가 올라왔어.
순간적으로 혁의 말과 물류센터의 광경이 오버랩됐다.
“알겠어. 일단 그쪽 계속 주시하고 금방 복귀할 테니까 경계 강화하고 있어.”
-응.
요한이 곧바로 조원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일단 이번 원정은 짧게 잡아야겠다. 운서동만 확인하고 바로 복귀하자.”
요한의 지시에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진 바로 옆에 생존자 집단이 발견됐다면 더 이상 수색은 무의미했다. 본진이 안전한 게 더 중요했으니까.
요한이 손을 들자 차량이 멈췄다. 이제 도시 초입.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
일행은 차량을 최대한 외진 곳에 숨긴 채 은폐 엄폐를 진행하며 도시 안으로 침투했다.
사실상 도시하고 하기엔 몇 개의 동 정도의 규모였으나 규모가 작은 만큼 처리되지 않은 좀비들이나 생존자들이 많을 공산이 컸다.
아니나 다를까, 도시 안은 완전히 좀비 밭이었다.
‘싸늘한데.’
요한은 도시 초입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일행을 멈춰 세웠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생존자들의 흔적.
주먹을 두 번 쥐었다가 펴자, 퍼져 있던 수색조가 빠르게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 이상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위험했다.
그가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104동 입구에서 경계하고 기다려. 잠시 상황 좀 보고 올게.”
조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는 사이 요한은 아파트 옥상까지 달리듯 올라갔다. 옥상에서 한 번 숨을 고른 후, 시야를 크게 한 번 훑었다. 맨눈으로 쓱 훑어보기도 하고, 쌍안경으로 구석구석 확인했다.
도로 여기저기에는 불긋불긋한 차량의 바퀴 자국들이 즐비했고, 거리와 아파트 군데군데 좀비들의 시체가 보였다. 특히 아파트 일부 동과 대형 할인점으로 향하는 초입에 좀비들의 시체가 모여 있었다.
좀비들이 밀물처럼 어딘가로 흘러간다. 아직 주변에 생존자 또는 생존자 그룹이 있는 건가. 대형 할인점 근처에 좀비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만약 생존자들이 있다면 마트에 고립된 채이리라. 어쩌면 마트 안에서 전멸했을 수도 있고.
‘저게 끝은 아니야.’
특정 지역에 좀비들의 시체가 모여 있는 걸 보아, 마트로 향한 생존자들과 별개로 이 아파트에도 분명히 생존자가 있었다.
흉수는 화살. 대부분 거리 정 중앙 부분에 시체가 포진되어 있다. 주변은 유독 쓰레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고.
요한이 있는 바로 건너편의 ‘ㄷ’자 모양으로 형성된 아파트 중앙 거리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 좀비들은 멀쩡히 돌아다녔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좀비만 처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런 흔적이 나타나는 경우는 대부분 소수의 생존자일 것.
그때, 요한의 시선에 미세한 일렁거림이 잡혔다. 그가 홱 시선을 돌려 무언가가 꿈틀거렸던 곳으로 쌍안경을 돌렸다. 순간적으로 아파트 창가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뭔가가 비쳤었다. 그의 날카로운 기감을 피해갈 수 없었다.
‘트랩이 있었나.’
생존자가 있고, 그 생존자는 수색조가 이곳을 침입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아파트 내에 누군가가 침입하면 알 수 있도록 뭔가 장치를 해놨을 수도 있다.
걸린 사람은 트랩에 걸린 줄도 모르는 상당한 수준의 트랩이.
상대는 나의 존재를 모르게, 나는 상대의 존재를 알아챈다.
‘좋은 전략인데.’
신경이 빳빳하게 곤두서고 오감이 예민하게 벼려진다. 미지의 생존자가 수색조의 존재를 알아챈 이상, 그리고 그들의 수가 소수라는 것을 안 이상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었다.
요한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대장 형씨, 뭔가 얻은 게 있어?”
“생존자가 있다.”
“이곳에? 수는?”
“한 명 또는 소수. 제법 까다로운 상대일 수 있어.”
한 명 또는 소수라는 말에 긴장됐던 공기가 약간은 느슨해졌다.
“이 구역에서 치킨 먹은 사람인가 보네요.”
재호가 싱글벙글 웃으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 난리 통에 혼자 살아남았다, 대단한 녀석일 수도 있겠는걸.”
스위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이런 세상에서 혼자 살아남으라 하면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 방심하지 말고 전력으로 간다.”
요한이 정면의 아파트 세 척을 지목했다.
“저기 101동부터 103동까지, 그리고 103동과 붙어 있는 상가 건물까지가 놈의 행동반경이야. 이동 경로는 지하주차장. 세 개 동은 같은 주차장을 써.”
요한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놈은 아파트의 물건을 털며 살아가는 유형의 생존자야. 활로 주차장 쪽에 접근하는 좀비들을 우선 처리하고 저기 보이는 깡통 같은 쓰레기를 던져서 지하에 짱박힌 좀비들을 밖으로 유인해서 쏴 죽인 다음에 안전하게 움직이는 거지.”
“근접전에는 자신이 없는.”
“노인, 여자, 어린아이일 수도 있겠네요.”
스위퍼와 재호가 한 마디씩 덧붙였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그저 조심성이 강한 사람일 수도 있지.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니까.”
요한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종이 한 장을 들어 올렸다.
-운서동 대피소 안내
시민 여러분…… 대피를…… 안전하게…….
내용을 확인한 요한은 종이를 구겨 던져버렸다. 좁은 동네이니 대피도 금방 이루어졌을 터다.
자연스럽게 좀비 웨이브의 표적이 되었을 테고.
이 시대에서 뭉치는 게 오히려 죽음에 다가가는 행위란 걸 모르면 압도적인 무력을 지니지 않은 이상 죽음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대피가 급하게 이루어졌다면 텅텅 빈 아파트 내에 물자들이 많이 남았을 테니, 대피하지 않고 홀로 이 정도 기간을 버티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처리한 좀비들의 수를 봐서는 실력도 어느 정도 따르는 것 같고.’
실력 있는 소수의 생존자.
요한이 찾는 동료의 유형에 딱 맞는 타입이었다.
몸이 위험에 반응하지 않는다. 아마도 추가적인 동료를 얻을지도 모르겠군, 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을 정리한 요한은 빠르게 행동을 지시했다.
“바로 움직이자. 101동부터. 전투 타입은 몰이 사냥.”
요한이 뛰쳐나감과 동시에 조원들이 뒤따랐다. 탕! 탕! 몇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멀리서부터 접근하는 좀비들이 픽픽 쓰러졌다.
사냥감이 도주할 수 없도록 일부러 좀비들을 끌어모은 뒤 실내 전투를 유도하는 몰이 사냥.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고 적을 한 명도 놓치지 않고자 할 때 사용하는 전략이었다. 이미 여러 번 교육받은 내용이기에, 조원들은 간결한 지시에도 각자 정확하게 제 임무를 수행했다.
어차피 상대방이 침입자의 존재를 아는 바. 기습의 강점은 포기해도 된다.
가장 좋은 상황은 총소리를 들은 생존자가 저항을 포기해 주는 것. 그게 서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호들의 복도 쪽 창이 대부분 깨지거나 뜯어져 있었다. 수색조는 1층부터 차례차례 문과 창문을 부수고 잠금쇠를 노루발로 떼어내며 올라갔다.
마치 짐승을 몰아가듯. 조금씩,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