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다음날 요한은 수색조를 모았다.
“흑구야, 인사해. 대장이야.”
요한이 정환의 강아지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부쩍 큰 강아지가 헥헥거리며 손을 핥았다.
“한 달 만에 많이 컸네?”
“예, 형. 그동안 너무 영양 상태가 안 좋았던 것도 있고, 원래부터 종이 좀 큰 개인가 봐요. 어미 사이즈를 보면 쭉쭉 크지 않을까 싶어요.”
“훈련은?”
“아직은 너무 어리긴 한데 말도 잘 알아듣고 점점 괜찮아질 것 같아요.”
“그렇군.”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저 사람을 찾는 것, 그리고 짖지 않는 것 정도만 되어도 제 몫을 해줄 테니까.
흑구와 장난치는 사이 속속들이 조원들이 모여들었다. 머리가 하도 길어서 아예 목 뒤로 묶어버린 스위퍼가 요한을 보고선 손을 흔들었다.
“대장 형씨, 우리 꽤 오랜만이지?”
“그러게. 다들 잘 쉬었어?”
힘찬 대답이 돌아온다.
하나같이 새 보금자리를 만족하고 있는 상황. 활기차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오늘은 안 좋은 소식을 전해 줘야 하는데.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모인 건 수색을 재개하기 위해서야.”
역시나 수색을 재개하겠단 말에 누군가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을, 누군가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누군가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크, 잘됐네. 안 그래도 조금 뭐랄까, 무료하던 참이었거든.”
물론 저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지만.
다행히 불만스러움을 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하진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올 뿐이었다.
“이유는 뭐지? 사실 지금 타이밍에 꼭 수색을 나갈 필요는 없다고 느껴지는데.”
“지금 이 평화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전력은 계속 유지해야 해. 그리고 위험요소가 있으면 미리 제거해야 하고, 경쟁자들로부터 물자를 미리 확보해야지.”
아직은 생존자들이 많이 남아 있을 시기니까.
짤막한 설명이었지만 하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의 역할이다. 자신이 앞으로 나갈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정리하게끔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것.
다른 사람들은 요한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 배짱이 두둑하지 못했고, 스위퍼나 세리는 그저 요한이 하라고 하면 별생각 없이 한다는 주의였으니까.
물론 하진도 요한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저 다른 조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한 질문에 가까웠다.
“맞아, 파밍은 해둘 수 있을 때 최대한 해 놓는 게 좋으니까.”
스위퍼가 덧붙였다.
“전원이 움직이지는 않을 거다. 본거지를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까. 움직이는 인원은 소수정예로. 남은 인원은 섬 수비에 집중해줘.”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역시 합리적인 판단이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여섯 명은 영종도 수색작전에 참여한다.”
요한이 한번 조원들을 훑어보고는 호명을 시작했다.
“스위퍼, 하진, 세리, 옹 상병, 정환 그리고…….”
호명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듣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위 사수급 정예 멤버들. 나머지 한 명은 보나 마나 뻔했다.
“재호.”
“네?”
재호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곳은 혁이였다. 혁이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은 것에 대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복귀가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어떤 위험이나 위협이 있을지도 모르는 작전인 만큼 최정예 멤버로 데려갈 것이라는 건 예상했다.
그렇다면 수색조 중에서도 발군의 신체 능력과 전투력을 자랑하는 혁이 빠질 이유가 없었다.
과거 사이비 종교집단과의 싸움에서 한번 실패한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도 요한은 혁을 중요 전투마다 중직에 투입했고 혁은 나름대로 잘 해냈다.
내가 뭔가 실수했나?
혁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섬 수비조의 리더는 혁.”
“으, 응.”
“잘 부탁한다.”
“형씨, 그런데…….”
“사수급 중 한 명은 남아야 돼. 여기가 마지막 거점인 만큼 제 목숨만큼 미련하게 사람들을 지켜줄 사람이 좋겠지. 그리고 수색할 때 재호의 다양한 지식은 큰 도움이 될 거다.”
무거워졌던 혁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형에게 신뢰를 잃거나 한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홍일점이네. 우리 세리 아가씨?”
“뭐야 갑자기. 아저씨, 날 여자로 보긴 했어?”
“에이, 그건 아니지.”
“목숨을 내놔라, 아저씨.”
세리의 정권 찌르기가 난사됐다. 두 사람의 콩트에 딱딱해졌던 분위기에 웃음기가 덧칠해졌다.
“두 시간 후에 출발할 테니 신변정리해서 선착장으로 모여. 정수, 지원이는 복지관 들러서 지혜한테 군장 받아오면 돼.”
“예. 형님.”
두 시간 후, 수색조가 선착장으로 다시 모였다.
“필요한 물자는 이게 다인가?”
“주민들에게 들어온 요청은 그거고, 아마 수색 조원들은 각자 알아서 파밍해 올 테니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 올 때는 오토바이 몇 대 더 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우선 선착장에 챙겨 두고 옮기기로 하지.”
“라져.”
요한이 군장 확인을 마친 후 브리핑을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할 일은 인천대교 봉쇄야. 신설된 다리이긴 하지만 영종대교처럼 지하철이 연결된 복합식 다리는 아니니까 같은 방식으로 폭파할 수 있겠지.”
그런 다음 요한은 지도에 동그라미를 쳤다.
“두 번째로는 파밍 포인트들을 점검할 거야. 어차피 한 번에 모든 물자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 근처에 어떤 물자들이 어느 정도 포진되어 있는지 확보하는 거지.”
조원들이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생존자 체크. 생존자 구출이 아니라 생존자 체크야. 명심해. 위협적인 집단이 나타나면 가능한 그 자리에서 모두 제거한다. 만약 규모가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최대한 이쪽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퇴각하는 걸 두 번째 순위로 생각해.”
“좀비 청소는 안 할 생각인가 봐?”
“겸사겸사. 마주치는 좀비들은 당연히 청소하면서 가야겠지만, 대대적인 좀비 청소는 위의 작업이 모두 끝나면 시작할 거야.”
요한이 지도를 허벅지 춤에 넣으며 손을 털었다.
“이쯤 되면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명심해라. 방심하지도 긴장하지도 말 것.”
“예썰. 시어머니.”
“그럴 일은 있어서도 안 되지만, 만약 수색체계가 끊겨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최소 사흘 정도는 숨어 있다가 꼬리가 없는지 확인하고 신도로 모인 다음에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정환아, 흑구 데려갈 거냐.”
“아니요, 저기 아영이 왔어요. 흑구야. 엄마한테 가자.”
정환이 흑구를 내려놓자마자 녀석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아영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가라고 했다지만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아영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가는 흑구를 보며 정환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보나 마나 벌써부터 그보다 그녀를 더 따르고 있는 게 눈에 훤하다. 요한이 혀를 찼다.
“쯧, 원정 갔다 오면 주인도 못 알아보겠네. 원망하지는 마라.”
“……형.”
일행은 곧바로 인천대교로 향했다.
어선을 선착장에 세워 놓고 갈아탄 트럭 안에서 어엿하게 메이저로 올라온 재호가 조잘거렸다.
“이것 참 부담스러운데요. 대장님이 제 가치를 알아봐 주셨다는 게 기쁘기도 하지만 사실 전투에서는 제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텐데.”
“별걱정을 다 하네. 알면 훈련 열심히 해. 일지는 꾸준히 쓰고 있고?”
“그럼요. 여태까지 썼던 일지들은 전부 필사까지 마쳐서 보관해 두었지요.”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재호가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긁적였다.
“마을 내의 책을 모으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행히 섬마을이지만 책은 많이 있더라고요. 근데 책장이 없어서 팔자에 없는 목공 일도 배우고 있다니까요.”
“박 노인께?”
“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 세월의 깊이만큼 지식이 깊어지는 일이리라.’ 박 노인께서는 정말로 훌륭한 분이에요.”
“동감해.”
“벌써 달걀이나 염소젖 생산량이 안정화에 접어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떤 가축이든 어떤 곡물이든 그 고유의 관리법을 거의 몸으로 익히고 계시더라고요. 사람이 조금만 많았으면 지금보다 훨씬 여유로웠을 텐데.”
“그것도 동감.”
“차라리 그 부평에 계신 분들을 모시고 들어오는 게 어때요? 저희한테도 사실 실보다 득이 커 보이는데.”
“시기상조야. 최소한 아직은 득보다 실이 많아.”
“그런가요.”
그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물론 토를 달았다고 해도 기껍게 대답해 주었을 터다.
자신이 신뢰하는 이들은 이런 머리 아픈 문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스위퍼든 하진이든 정환이든, 세리는 더더욱.
재호와의 대화는 색다른 느낌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단어 선택이나 현상을 보는 시각 자체가 조금은 유별난 느낌. 이렇게 문답을 진행하다 보면 점점 머릿속이 정리되어간다.
심지어 박재범 선생과 좀비들의 패턴이나 기원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하는 걸 보면, 그가 과학계가 아닌 언론계에서 일하던 사람인 게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생명 공학자라든가 그런 과학자도 한 명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좀비 사태의 근원에 대한 정보도 더 쉽게 얻었을 테고.
아무튼, 그는 독특한 유형의 인재였다.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그랬다. 아마도 그는 새롭게 살아남을 인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서적들을 수색을 나갈 때마다 조금씩 챙겨올 거다.
요한이 그를 굳이 데려가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만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과 달리, 그는 명확하게 미래 인류를 생각하고 있었다.
“형,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하겠는데요?”
정환이 트럭을 멈추고서는 짐칸 쪽을 향해 외쳤다. 도로가 막혀 있었다.
“스위퍼?”
“다리 위에 좀비, 약 30구.”
트럭 헤더에 한 발을 딛고 쌍안경으로 시야를 확인하던 스위퍼가 상황을 전달했다.
“스위퍼, 하진. 전방 뚫는다. 정환, 재호는 폭탄이랑 드릴 들어. 옹 상병은 여기서 후방진입하는 좀비들 막아. 세리는 옹 상병 엄호.”
지시와 동시에 스위퍼와 하진이 달려나갔다. 힘, 속도, 기술 등등이 골고루 균형 잡힌 스위퍼와 대좀비 전투력만큼은 요한에게도 밀리지 않는 하진의 콤비네이션은 항상 옳았다.
두 사람은 마치 서바이벌 게임이라도 하듯이 좀비들을 깨부숴나갔다.
요한은 쇠뇌를 든 채 상황을 지켜보며 돌발상황에 대비했다. 원거리 전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옹 상병인 만큼 근접해서 튀어나오는 적만 세리가 막아준다면 후방도 철벽에 가까웠다.
전후방 모두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저 쓸데없이 신중할 뿐이다.
폭파지점까지 도착한 요한은 곧바로 하진을 돌려보냈다.
“소리가 커서 좀비들 몰려올 거야. 스위퍼랑 정환은 폭파 준비되기 전까지 전방 좀비 막아주고, 하진은 미리 가서 후방 지원해줘.”
그사이 요한과 재호가 교각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영종대교 때와 마찬가지로 11자 모양으로 양쪽으로 구멍을 낸 후 동시에 폭파해 가운데 강판을 떨어트린다.
이미 한번 해봤던 작업인 만큼 그새 숙련도가 늘어 작업 시간이 빨랐다.
“스위퍼, 후방 지원!”
일사불란하게 폭파 준비를 끝마친 후 폭파. 그리고 보란 듯이 무너지는 강판. 작업은 매끄러웠다.
이제 한반도에서 영종도로 넘어오는 육로는 완전히 끊겼다.
좀비 웨이브가 발생하더라도 좀비들은 서해에 처박히는 삼천궁녀가 될 뿐이었다.
“수고했어. 이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