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97화 (97/176)

<97화>

광견병 바이러스로 인해 감염된 사람들이 같은 사람을 뜯어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좀비들이 특정 인원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좀비 웨이브를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화감이 느껴진다.

모든 무덤에는 이유가 있고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다.

회귀, 그리고 좀비.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흉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후······.”

요한의 지식수준으로서는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저 인류의 말살이라던가 지구의 종말 따위가 아니기를 바랄 뿐.

인류애와 인간성, 존엄성까지 내던져가며 아득바득 살아남은 사람들이 몰살이라는 결말의 최종 성적표를 받아든 채 엔딩 크레딧을 맞이하지 않기를.

거의 한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야 마침내 놈들의 꼬리 부분이 안전거리까지 벗어났다.

결국,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끝까지 요한은 이 특이한 변수를 분석하지 못했다. 그저 염두에 두어야 할 변수 중 하나로 입력해둘 뿐.

“요한이다. 좀비 떼는 우선 지나갔어. 전위부터 천천히 복귀한다.”

캠프의 이동이 재개됐다. 며칠 동안 지지부진하던 전진 속도는 곧 시원하게 뻥 뚫렸다.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난 이후부터는 거의 길이 막혀 있지 않았다. 나들목에서 한바탕 좀비 소란이 일어나 몇 대의 버스가 넘어지고 부서져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탓에, 그 뒤로는 아비규환이었고 그 앞으로는 허허벌판이었다.

요한 일행으로서는 일주일이나 도로에서 지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인 일이었다. 딱 사흘. 사흘 만에 그들은 영종대교로 진입했다.

텅 빈 고속도로를 따라 몇 대의 차량이 달려나갔다. 차창 밖으로는 교량 너머로 바닷가가 자아내는 경관이 스치듯 지나갔다. 특유의 바다 냄새와 바닷바람이 들어왔다.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던 시체 썩는 냄새는 사라지고 언젠가부터 공기에서 청량한 느낌마저 들었다.

약 이십 분 정도를 더 이동한 요한이 전위와 후위의 사람들을 불러세웠다.

“전원 정지. 여기서 멈춘다. 중위로 모여.”

사람들은 대교 한복판에서 세운 요한을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곧 도로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지고서는 아, 하고 탄성을 냈다.

대교 아래로 작은 섬 하나가 있었다. 고작 20분 정도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섬.

공항 방향으로는 갈라진 땅과 그 옆으로 갈대숲이 무성했고, 몇 안 되는 건물들 뒤로는 작은 산이, 그 너머로는 서해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여기저기에 세워진 배들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었다.

“운염도군요!”

“호오. 이런 데가 있었네.”

재호가 섬의 이름을 외치자 스위퍼가 놀란 듯 입을 모았다. 그도 분명히 이 대교를 많이 들락날락했지만, 이런 섬은 기억에 없었다.

“영종대교 입구에서 갓길로 빠지면 들어올 수 있는 접근성이 굉장히 좋은 섬이지만,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 섬이죠. 이 섬은 생명력 뽐내던 뻘이 사라진 섬, 또는 갈라진 땅, 운염도라고 부르는데 60년 전까지는 무인도였다가 50까지 늘어났지만, 최근 간척 공사로 인해 대부분 주민이 이주하고 기반시설만 남아 있는 곳이에요.”

재호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어 운염도의 사진을 찍더니 노트에 붙인 채 뭔가를 끄적거렸다.

“똑똑하네, 기자 형씨. 역시 가방끈이 길어서 그런가.”

“예전에 취재를 나온 적이 있거든요.”

재호의 손놀림이 부산스러워졌다. ‘살아남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당찬 포부를 외친 그는 정말로 매일매일을 사진까지 남기며 꼼꼼하게 기록해 나갔다.

전투가 끝났어도 안전지대로 이동할 때까지는 한눈팔지 말라는 요한의 타박도 재호는 ‘제 기록은 어쩌면 새롭게 쓰이는 인류의 역사서가 될지도 모른다니까요!’ 라며 눙치곤 했다.

기록하는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지금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했다.

요한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요한의 바람대로 누군가가 계속해서 살아가게 된다면 그의 기록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오리라고.

가만히 섬을 지켜보던 박 노인이 다가와 요한에게 말을 걸었다.

“요한 군, 이곳이 최종 목적지라면 한 번 재고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 우선 바다가 있다곤 하지만 정수시설이 없고, 물이 없으면 자생은 어렵다네. 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고 말일세.”

“좋은 지적이십니다. 어르신. 이곳은 최종 정착지가 아닙니다. 그냥 전진기지예요. 수색조, 모여.”

요한이 수색조 인원들을 불러모았다.

“영종도로 들어오는 다리는 두 개. 우리는 이 두 개의 다리를 모두 끊어 영종도를 하나의 요새로 만들 거다. 이 섬은 내륙에서 들어오는 침입자와 좀비 웨이브를 차단하기 위한 일차적인 저지선이지.”

요한이 백색 종이를 꺼내 대략적인 근처의 지형도를 그려냈다. 서생연과의 전투에서 지도는 소실되었지만, 이미 이 근처의 지형과 지리는 머릿속에 저장해놨다. 그가 잠시 손을 몇 번 끄적이자 흰 종이 위에 영종도와 주변 섬의 지리가 완벽하게 구현됐다.

“운염도에 임시 캠프를 만들고 영종대교를 먼저 끊는다. 이곳에서 이틀 정도 휴식을 취하고 체력을 회복한 후 두 번째 거점인 예단포 선착장으로 이동할 거야. 도로가 막혀 있지 않는다면 금방 갈 수 있고 예단포 선착장에는 내가 준비해둔 어선이 있어.”

요한이 워커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며 조원들에게 들어 보였다. 세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우와 배까지 준비해 뒀어?”

“사용이 중지된 폐선이고, 일 년간 빌린 것뿐이지만, 운행에는 문제없어. 최종 목표는 삼형제섬. 그곳에는 저수지와 논밭, 그리고 야생이 잘 보존된 구봉산이 있어. 거주민도 적으니, 좀비도 적을 테고. 본대가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이 수색조가 신도로 넘어가 좀비들을 정리하고 안전을 확인하면 차례차례 이동한다.”

요한이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 전에, 선착장과 신도 사이에 있는 무인도를 먼저 들러야 해.”

“무인도는 왜?”

“닭, 돼지, 염소들을 풀어놨어. 각종 씨알, 곡식의 종자도. 느닷없이 좀비가 생겨나지 않았다면 전부 무사할 거야. 작고 외진 섬이니까.”

“허······.”

“우리는 이곳을 최종 목적지로 삼고, 보급을 위한 주 무대를 영종도로 삼는다. 영종도에도 물자를 공급할 만한 도시들이 있고, 결정적으로 화물청사가 있지.”

화물청사.

물자의 보고(寶庫)다.

항공편으로 오는 화물은 유통기한이 긴 보존식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보관량의 규모로 따지면 대형 마트나 식료품점 한두 개를 터는 것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할 터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영종도도 좀비가 없는 땅으로 만드는 게 선행 목표고, 최종적인 목표는 이곳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거다. 십 년, 아니 이십 년 이상. 이 세상의 모든 좀비가 썩어 가루가 될 때까지.”

요한의 브리핑을 들은 생존자들의 등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아났다.

* * *

“폭파 위치는?”

“운염도에서 최소 1k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해. 좀비들이 바다에 빠지더라도 신도까지 흘러 내려오지 않으려면.”

요한 일행은 다리를 폭파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다리 폭파는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게 전부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한다고 생각할 순 없었다.

안 되면 아쉬운 대로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쓰는 방법을 써도 괜찮다. 다리를 끊는 것은 하나의 보험이었다.

하지만 역시 요한의 성격상, 차량으로 막아두는 것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요한은 손재주가 좋은 조원 몇 명을 골라내고 남은 인원을 후방으로 보내 경계를 서게 했다. 그런 다음 운염도에서 1km 떨어진 거리에 공업용 드릴로 강판에 구멍을 냈다.

아스팔트를 뚫는 소음이 제법 쩌렁쩌렁했다. 요한은 최대한 팔 수 있는 만큼 깊숙이 파 내려갔다. 최대한 많이 챙겨오긴 했지만, 폭약의 양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다리에 11자 모양으로 구멍을 낸 다음, 가진 폭약의 절반을 구멍에 쏙쏙 집어넣고 도화선을 줄줄이 연결했다.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요한이 직접 용병단 노인의 가이드를 꼼꼼히 하나하나 확인하며 설치했다. 그러고 나서 아래쪽 지하철 철로로도 내려가 아래쪽에도 평행선의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

교각과 교각 사이에 강판을 양쪽으로 폭파해 가운데를 무너트린다는 계획. 실제로 다리를 무너뜨렸던 영상들을 참고해 준비하기는 했지만, 역시 폭약의 수가 적은 게 불안요소였다.

그나마 이중 강판 구조라 바닥의 두께가 얇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준비가 끝난 뒤, 요한은 조원들을 뒤쪽으로 물렸다. 정환이와 재호가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요한의 뒤쪽으로 와서 섰다.

“으, 불안한데. 다리 무너지면 어떻게 해요?”

“소형 교량 하나 무너트리는 데도 몇 톤의 폭약이 들어간다. 지금은 그보다 다리에 구멍을 낼 수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해. 개인적으로는 성공하면 기적이라 생각되니까.”

요한은 대기 중인 경계병들에게 폭파할 것이라는 신호를 준 후 격발기를 그러쥐었다. 그러고선 망설임 없이 카운트를 셌다.

“삼, 이, 일, 폭파.”

콰아앙-!

귀를 울리는 굉음이 바다 한가운데서 퍼져나갔다. 드릴 소리가 쩌렁쩌렁했다면 폭발 소리는 웅장했다. 세 사람이 귀를 세게 틀어막고 곁눈으로 폭발 장소에 눈길을 줬다.

폭발과 동시에 뿌연 회백색 연기가 솟구쳤다. 연기가 퍼져나가자 목이 칼칼해지며 절로 기침이 새어 나왔다.

다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폭발 지점은 마치 모래를 흙으로 파내듯 구멍이 뚫렸으나, 흔히 동영상으로 봤던 다리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며 무너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한의 눈동자에 실망감이 깃들기 직전,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부터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쩍, 쩌저적!-

강판에 생겨난 구멍은 거미줄처럼 그 크기를 점점 키워나가더니 큰 소리와 함께 지면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산사태처럼.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이채와 경악이 담겼다.

“와······.”

거대한 아스팔트 덩어리가 바다에 처박히고 커다란 물기둥을 만들어냈다. 솟구친 물웅덩이는 허공에서 흩어져 시원한 바닷바람을 만들어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두 사람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적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네요.”

요한이 피식 웃으며 뒤돌아섰다.

뒤에는 무너진 다리. 앞에는 소리를 듣고 몰려드는 좀비들. 어쩌면 배수진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만한 진형이었지만, 그들에게 이 전투는 그저 생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신이 우리를 비호하는 거겠죠?”

“그럴지도.”

무너진 다리를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는 재호의 얼굴은 들떠 있었다.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성공적으로 다리를 끊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생존자 대부분이 마찬가지로 느낄 터다.

이제 한 발,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된다는 희망.

좌절이 컸던 만큼 찾아온 희망이 달다. 생존. 그리고 삶. 지금 이 순간만큼 그들에게 이보다 더 값진 가치가 있을까.

“가자. 도와야지.”

재호는 벅차오르는 감성을 담아 시 한 소절을 슥슥 적어넣고선 요한의 등 뒤를 따라갔다. 서두름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끄적인 글귀가 다소 삐뚤빼뚤했다.

석양을 삼켜도 밤은 저문다.

새벽을 삼켜도 태양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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