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87화 (87/176)

<87화>

안 중위와 서준이 토론을 하고 있자 갑수와 마르코도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도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서준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안 돼, 안 돼. 요한의 지시대로 해. 군말하지 말고.”

“서준 님!”

안 중위가 답답함에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서준이 눈을 부라렸다.

“근데 이 사람이 얻다 대고 언성을 높여?”

“자자, 진정들 하시고. 제 생각에도 여기는 그리 안전해 보이지 않소. 중위님의 말대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지난번에도 침입자들을 한번 막아낸 경험이 있으니.”

“그때는 수색 조가 구 할 이상 해줬잖냐.”

“그렇다고 우리가 참전하지 않은 건 아니잖소. 그들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라고 어려울 게 뭐가 있겠소.”

갑수가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두 사람 사이를 끼어들었다. 서준이 기가 차 반박하려 하자 마르코가 한 마디 덧붙였다.

“저도 중위님 의견에 동의해요. 무엇보다 여기는 너무 열악합니다. 며칠은커녕 하루도 못 가 사람들이 미쳐버릴 거예요. 잠자리도 그렇고 특히 화장실이······.”

마르코가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하자 몇몇 생존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중위는 자신의 의견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화색이 깃든 표정으로 밀어붙였다.

“층마다 전투 조를 배치해서 습격에 대비합시다. 저희는 군인들입니다. 민간인 폭력집단 따위······.”

안 중위는 요한의 지시에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이건 그냥 숨어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제때에 구조가 오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곳에 숨는 게 오히려 독이 될 터다.

서글서글하고 단정한 품행으로 제법 캠프 내에서 평판이 좋았던 안 중위였기에,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그의 의견에 기울고 있었다.

“그럼, 다 함께 농성하는 거로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잠깐! 당신이 뭔데 함부로 결정한다 마라야!”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높아질 때쯤, 정환으로부터 무전이 울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멈추고 무전을 들어 보였다.

-정환입니다. 모두 대피 완료하셨죠?

“어 그래, 정환이냐. 아영이는?”

-찾았어요. 근데 지금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요. 놈들이 왔어요.

“뭐, 벌써?”

-네. 말씀드린 대로 꼭 전부 지하실로 내려가셔서 한 발자국도 나오시면 안 돼요! 꼭입니다!

정환의 목소리를 들은 서준이 여봐란듯이 세 사람을 쳐다봤다.

“거봐, 정환이 말 들었지?”

“아니, 높은 곳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고지에서 싸워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뒤지려면 너 혼자 뒤지라고!”

“아니, 서준 님! 말이 심하지 않습니까?!”

불붙은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커지다가 마르코와 갑수까지 합세하자 눈 뜨고 볼 수 없는 추한 도떼기시장처럼 변했다. 안 중위가 휙 몸을 돌려 남성 생존자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어떤 게 더 살 확률이 높아 보이십니까? 놈들이 건물에 불을 붙이면 여기서 살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안 중위는 놈들이 건물에 방화를 할 게 기정사실인 양 떠들었다. 안 중위가 화두를 던지자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위험하니 그냥 있어라, 여기가 더 위험하다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부분 남성 생존자들의 의견은 가족이나 동료, 연인을 위해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굳어지고 있었다.

서준이 후,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내보내는 게 답이리라.

“좋아. 그렇게 해. 대신 싸우는 건 전투조만이다. 기술조는 전부 여기서 숨어서 대기해. 그리고 전투조. 지더라도 지하실로 내려올 생각 하지 마. 문 잠글 거니까. 나가. 나가 빨리.”

서준이 총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거의 밀치듯 내보냈다. 전투 가능한 거의 대부분의 인력이었다. 내보내면서도 정말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요한이, 하다못해 정환이라도 있었으면 상황이 달랐을 텐데. 요한과 수색조의 말에는 네네, 하면서 받들지만, 저들은 자신의 말만큼은 듣지 않는다.

경쟁자에게 밥그릇을 뺏긴다고 생각하니까.

“퉷.”

서준은 그들이 나가자마자 이중 잠금장치를 모두 걸어 잠갔다. 덩치 큰 사내들이 수십 명 빠져나가자 그제야 한결 지하실 내부의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서준은 그러고 나서 물자가 쌓인 한쪽 귀퉁이를 비우고 그곳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었다.

비워낸 물자들은 입구에 바리케이드처럼 쌓았다. 가구처럼 무게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나으리라.

서준이 잊고 있던 무전기를 다시 들었다. 정환으로부터 무전을 들려오지 않았다. 정환이 걱정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건물 안에서 흡사 폭격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몸을 벌벌 떨었다. 곧이어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소리만 들어도 예상보다 격한 전투였다. 여기의 그 누구도 생존자들끼리 이런 식으로 총격전을 벌이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바란 사람은 없었다. 좀비들만으로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훌쩍거리는 흐느낌 소리가 공간 내부를 메웠다.

서준이 문을 지키면서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굴렀다. 어느새 가족이나 친지가 밖에 나가 있는 생존자들이 문 앞으로 모여들어 있었다.

서준은 그들 앞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이 문은 절대 열 수 없는 문이다. 지금 당장 용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때, 문밖에서 누군가 철문을 두드렸다.

“살려줘! 문, 문 열어줘!”

‘이런 쳐 죽일!’

서준이 인상을 팍 썼다.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덕분에 이곳에 생존자들이 있다고 세상천지에 다 까발려지게 생겼다.

차라리 TV 광고를 하지 그러냐!

“마르코? 마르코!”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은 수희가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생존자들이 발을 동동 굴렀지만, 서준이 제지했다.

“문 열 생각 하지 마! 다들 뒤지고 싶냐?”

“이봐요, 아저씨! 마르코가 밖에 있다고요! 우리 캠프 리더가 밖에 있다고!”

“바, 밖에 아들이 있어요!”

“남자친구가······!”

“닥쳐, 좀! 그럼 나갈 때 말렸어야지!”

생존자들이 거머리처럼 들러붙자 서준이 몸부림치며 그들을 떼어냈다. 대체 왜 죽고 싶어서 이 난리를 치는 건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발, 문 좀 열어줘! 나 죽어! 지금 근처에 적이 없어! 제발!”

두두두 하고 울리는 총소리가 가슴을 선득거리게 만들었다. 나밖에 없다, 적이 없다는 목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울렸다. 눈에 핏발 선 생존자들을 보며 서준이 권총을 찬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여차하면 위협이라도…….’

그때 생존자들이 서준을 밀쳤다. 그러고선 우악스레 문을 열어젖혔다. 이마에 피를 흘리고 있는 마르코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가 문을 닫으려는 찰나, 계단 위에서부터 갑수가 생존자를 부축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생존자들이 황급히 손짓했다. 갑수와 부상당한 전투 조원이 무사히 들어오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 총성이 울렸다.

생존자들이 꺄악 소리를 내며 혼비백산하게 넘어지고 무너졌다.

끼익거리는 철문이 닫히기 전, 그 문을 붙잡고 고개를 들이민 것은 온몸을 시커멓게 무장한 침입자였다.

서준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시부랄······.”

* * *

다시 20분전,

개백정의 본대.

개백정이 이끄는 삼십 명의 본대는 강서구청을 지나 부천 국도로 직행했다. 시가지를 통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일이었다.

개코와 그 수하 한 명이 앞서 길을 뚫고 그 뒤로 본대가 따른다. 뒤쪽으로도 두 명의 정리 조가 소음을 내며 좀비들의 시선을 끄는 방식으로 이동하면 큰 전투 없이도 이동할 수 있었다.

혹시 모를 변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탄약과 식량을 포함한 두 개의 별동대를 더 꾸려 십 분에 한 번씩 무전을 치도록 지시한 후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하도록 안배했다.

여성가족재단이라는 맛있어 보이는 캠프를 잡아먹는 건 삼 주 전부터 준비해왔다. 중간에 예상치 못한 반격이라는 변수는 있었지만, 저항이 클수록 열매가 단 법이다. 개백정은 대형 버스들이 가로막은 정체불명의 캠프에 도착하기 전까지, 다디단 열매를 따 먹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건 대체 뭐지?”

건물과 건물 사이 큰 도로는 대형 버스와 중소형 차량으로 막았고, 작은 골목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다. 개백정이 철조망을 발로 툭툭 차며 지니에게 물었다.

“수색 조장이 보고했었던 그건가 보네. 최근에 동쪽에서 공사장 소리가 난다고 했었잖아.”

“그런가, 캠프가 하나 더 있었다니. 이건 놀라운걸.”

개백정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도심 한복판에 인공적으로 장벽을 세웠다. 강도도 제법 견고했다. 어지간히 공을 들인 벽이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먼저 방벽 위로 올라간 개코가 꼭대기에서 소리쳤다.

“생각보다 큰 캠프인데요.”

부하들에게 철조망을 치우도록 지시하고 개백정과 지니가 폐차 방벽을 올랐다.

그의 말대로 장벽 안의 공간이 제법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이 안에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입니다.”

“흐음······.”

지니가 고민하는 사이 개백정이 개 코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야. 한 바퀴 쭉 둘러보고 와.”

한쪽 철조망을 뜯고선 오토바이들이 줄줄이 들어갔다. 지니가 개백정에게 말했다.

“허니, 여기는 그 여성가족재단과는 다른 캠프야. 거기가 이쪽의 식민 캠프겠네. 즉 이 캠프에도 생존자들이 있어.”

“그래서?”

“뒤져 보자.”

“이 넓은 데를 언제 다 뒤지고 있어. 보니까 진작에 다 도망간 것 같은데. 그리고 있다고 해도 여기서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끙, 지니가 앓는 소리를 냈다. 리더의 지적이 옳긴 했다. 사람들이 있는 위치를 안다면 모를까, 이 넓은 곳을 다 뒤지려면 하루를 꼬박 써도 모자라다.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게 있다.

콜라곰과 미친개에게서도 얼마 전부터 무전이 되질 않는다. 10분 간격으로 연달아 무전이 끊겼다.

많은 집단과 싸움을 치러봤지만, 이번 싸움은 유난히 이상했다. 단순히 적이 강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던 지니의 안광에 이채가 서렸다.

오호라.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는 그를 개백정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저 머릿속에 이번엔 어떤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셨나.

지니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개코의 부하가 도착하자 그에게 질문했다.

“크기는?”

“한 바퀴 도는데 오토바이로 15분쯤 걸려요.”

“제법 넓네. 개코는?”

“여자 냄새가 난다고 뒤져볼 테니 먼저 가랍니다.”

“쓸데없이 일관적인 자식.”

지니가 쏘아붙이듯 불퉁거렸다. 하여간 그의 여성 편력은 알아주어야 한다.

여성 생존자들이 있는 곳은 귀신같이 알아채는 그이니만큼 허언은 아닐 터다. 물론 추적은 그가 아닌 그가 기르는 사냥개, ‘스왈로우’의 몫이지만.

“정리해보자. 이 캠프에는 지금 생존자들이 있어. 게다가 상당히 많이. 울타리를 이렇게 크게 쳐놓은 이유가 뭐겠어? 캠프가 여러 개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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