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85화 (85/176)

<85화>

격발을 알리는 하진의 목소리 뒤에 쾅! 하고 크레모아 폭발음이 들렸다. 놈들이 사정거리에 접근한 모양이었다.

“일단 전투 끝나고 다시 무전 할게.”

-지원은?

“이쪽 말고, 개백정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가족재단으로 가고 있을지도 몰라.”

-알겠어. 무리하지 말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플랜B로 가.

“라져.”

스위퍼가 무전을 끊고 FM 무전기를 음소거로 바꾼 뒤 소총의 노리쇠를 잡아당겨 전투를 준비했다.

무전기에서는 하진과 옹 상병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 크레모아 격발 완료. 두 명 잡았다. 옹! 밖의 상황은?

- 좀비들이 몰려옵니다! 하진 조장님 일단 빠지셔야 합니다!

- 어, 확인했다.

하진은 상황을 전파한 뒤, 적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슬그머니 탑차 밖으로 나와 뒷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잠갔다. 기회를 봐서 전투에 합류할 요량이었다.

옹 상병은 그 모습을 보며 갈대밭에 몸을 숨기고 접근하는 적들을 저격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쉽지 않았다.

놈들은 철저하게 은폐 엄폐를 하며 이동 중이었고 비스듬한 ‘Z’자 모양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통에 표적이 자꾸만 흔들렸다. 그러다 문득, 흐름을 역행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수는 둘.

-하진 조장님, 지금 계신 탑차 쪽으로 두 놈 갑니다. 시야가 불투명합니다. 조심하십쇼!

몇 명은 둑 건너편으로 모습을 감췄고, 몇 명은 즐비한 원예 비닐하우스 뒤쪽으로, 또 몇 명은 아예 모습을 감췄다. 옹 상병의 조준경에 딸린 망원렌즈로는 적들의 모습을 일일이 확인하기에 어려웠다.

건물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스위퍼가 하진에게 무전을 쳤다.

“외팔이 형씨, 그쪽 걱정 안 해도 되지?”

-너나 잘해라.

“좋아. 아주 듬직해. 다들, 교전 준비해. 나가지 말고 모여 있어. 무리해서 싸우지 말고, 버티기만 해. 옹이는 하진 엄호하고.”

그 무전을 마지막으로 흩어져 있던 조원들이 거의 동시에 무전기 소리를 최소한으로 돌렸다. 여기저기서 전투를 앞두고 숨 막히는 긴장감이 떠돌았다.

스위퍼와 함께 있는 두 수색 조원도 숨을 죽였다. 외부에서 소리는 들어오지 않았으나 그들은 발길은 분명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엎드려!”

스위퍼의 외침과 동시에 세 사람이 동시에 엎드렸다. 문밖에서 사격이 시작됐다.

따다다다-!

자동 연발 사격이 연달아 문에 바람구멍을 냈다. 소총 탄환이 마치 정면에서 비 오듯 쏟아졌다. 대부분의 탄환은 허공을 갈랐다. 일행을 향한 눈먼총알은 미리 준비해 둔 두꺼운 사무용 테이블이 든든하게 막아주었다.

한바탕 세례를 퍼부은 뒤의 침묵.

스위퍼가 총기를 등에 둘러메고 순식간에 문 근처까지 이동했다. 한 손에는 시그니처 무기인 손도끼를 꽉 그러쥐고서.

쾅!

굉음을 내며 너덜너덜해진 문짝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물의 내벽에는 스위퍼가, 건물의 외벽에는 서생연 생존자가 대치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볼 수는 없었으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팅-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스위퍼는 놓치지 않았다.

수류탄 안전클립이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내부에 수류탄이 던져지면 모두가 위험하다.

스위퍼가 순식간에 문 앞으로 돌아 타깃을 확인도 하지 않고 손도끼를 휘둘렀다.

휘두름과 동시에 타깃을 확인, 공중에서 손도끼의 궤적을 바꾸어 수류탄을 들고 있던 손목을 도끼로 후려쳤다.

곧바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백스텝. 이어진 엄호 사격은 빈자리를 타격할 뿐이었다. 한 마리의 벌처럼 날카로운 움직임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쫓을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내벽으로 들어온 스위퍼가 황급히 문을 닫고 벽에 바짝 붙어 엎드렸다.

쾅! 벽이 흔들리고 문이 박살 났다. 벽 하나를 두고 터진 수류탄의 진동이 온몸을 덜덜 울리게 했다.

“안쪽 문으로 붙어!”

스위퍼는 초조했다. 창문을 깨고 나서 수류탄을 던지거나 부서진 문 사이로 수류탄을 던지면 꼼짝없이 당한다.

1층 건물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여차하면 입구는 버리고 한 칸 더 들어가서 농성한다.

쨍그랑!

창문이 깨졌다. 스위퍼가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자세로 몸을 긴장시켰다. 폭발물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두 괴한이 양쪽에서 소총을 다다다 난사하며 밀고 들어왔다.

“왼쪽 사격! 못 들어오게 해!”

스위퍼가 생존자들에게 반대쪽 사격을 지시한 뒤 바로 옆에서 겁대가리 없이 들어온 괴한의 다리를 도끼로 걸어 쓰러트리고 그대로 목을 찍었다. 피가 분수같이 튀었다.

왼쪽에서 들어오던 괴한은 수색 조원들의 사격에 움찔하고 뒤로 물러나 소강상태가 됐다. 스위퍼가 숨을 고르는 사이 다시 한번 옹 상병의 무전이 들려왔다.

-하진 조장님, 탑차에 놈들이 붙었습니다! 너무 멀어서 엄호가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하진이 탑차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는가 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목숨줄이 질긴 형씨였으니까.

* * *

하진이 있는 탑차는 마치 잘 익은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환 공포증을 유발할 만큼 한바탕 총알 폭격이 벌어지고 난 뒤였다.

하진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뚫린 총알구멍 사이로 빛이 틈틈이 들어왔다. 총알이 몸에 닿은 것은 두 발. 한 발은 허리를 스쳐 지나갔는데, 용병들에게 받은 방탄복이 상처를 막아주었다. 또 한발의 총알은 하반신 어딘가를 스쳐 지나갔는지 허벅지 뒷부분이 쓰라렸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끼익- 소리를 내며 탑차의 뒷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지러운 탑차 내부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하진을 찾는 사이, 박스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하진의 권총이 먼저 연달아 불을 뿜었다. 두 사내가 맥없이 쓰러졌다. 후, 그가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하진이 천천히 포복 자세로 기어갔다.

어두운 건물 안에서 차 밖으로 나오자 화이트아웃처럼 햇빛이 눈을 따갑게 찔렀다. 그가 차 뒤편에 등을 대고 시야가 정상이 될 때까지 주변을 경계하듯 총을 두리번댔다.

툭, 서늘한 총구가 하진의 뒤통수를 건드렸다.

“무기 내려놓고 두 손 머리에 대고 깍지 껴.”

날 선 음성이 고막을 찔러왔다. 옹 상병이 놓친 사각에 한 명이 더 있었던 것이다. 낭패감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하진이 천천히 권총을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 뒤로 둘러 깍지를 끼는 시늉을 했다.

한쪽 팔이 없어 깍지를 끼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의수를 낀 손의 보호대 부분을 다른 쪽 팔로 붙잡았다. 놈이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뒤의 사내가 하진의 의수를 경계하는 대신 잘린 팔을 보고선 비아냥거렸다.

“뭐야, 이 새끼는 팔 병신이네? 엎드려. 무전기 어딨어? 빨리 네 편에게 공격 중단하라고 해.”

그때 하진의 잘린 의수에서 벼락처럼 나이프가 튀어 나가 놈의 안면을 꿰뚫었다.

하진은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놈의 옷깃을 잡아 앞으로 내다 꽂은 뒤. 다시 한번 안구에 칼날을 쑤셔 박았다.

하진이 십년감수 했다는 듯 다시금 숨을 골랐다. 만약 놈이 자신을 인질로 삼는 게 아니라 다짜고짜 사격을 했으면 그대로 황천을 건널 뻔했다. 적이 두 명이라는 잘못된 오더로 인한 착오. 사각으로 들어온 건 어쩔 수 없으니 옹 상병의 잘못이 아니었다. 방심한 자신의 탓이다.

하지만 이자는 더 큰 방심을 했다. 전투 중에 인질을 잡으려는 시도는 멍청한 짓이었다. 자신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머리에 바람구멍을 냈을 터다.

하진의 시선이 한창 전투 중인 건물들을 향했다.

- 자원센터 1층에 놈들 들어왔어요! 지원을··· 아악!

무전기 너머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원순환센터에 매복 중이었던 재희의 목소리였다. 하진이 리볼버에 탄환을 보충한 후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지금 센터로 간다. 옹 상병, 엄호해.”

-예!

하진은 허벅지에 안감을 찢어 지혈한 후 고통도 잊고 내달렸다. 그러나 하진이 도착했을 때, 자원센터 1층은 이미 피바람이 몰아친 뒤였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틈틈이 들어오는 어두운 로비 안, 정 중앙에 재희와 애리가 절명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잘린 채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하진이 두 눈을 끔뻑였다.

“조장님······.”

동석의 목소리에 하진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곳을 향했다. 한 명의 적. 그리고 그 한 명의 적은 동석을 붙잡고 그 목에 당장에라도 목을 절단할 만큼 서슬 퍼렇게 날 선 일본도가 드리우고 있었다.

적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하진이 황급히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끄어어-”

팔다리가 잘린 채 좀비가 된 두 사람이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끔찍한 모습에 하진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낯선 느낌이었다. 분노의 화살은 그대로 자신의 동료를 죽인 사내에게 향했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분노가.

이기는 전투만 해와서일까. 아니면 저렇게 잔인한 모습으로 죽었기 때문일까. 휘몰아치는 감정이 생소했다. 조금 전까지 살아 숨 쉬고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죽어 있다.

분명 자신들도 저들을 죽였다. 전투를 준비했고 총격전을 벌였으니 저들에게 일행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건 정말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이었다.

죽고 죽이는 게 싸움이다. 자신이 친구를 잃은 것처럼 그도 저들의 친구, 가족을 죽였다. 그게 전투고 전쟁이다. 저들을 비난할 권리도 없다. 저들도 제 한 몸을 지키기 위해 적을 죽인 거다.

과연 그런가? 정말로?

적을 죽일 땐 아무렇지도 않던 감정이 동료가 죽고 나서야, 그제야 소모된다.

하진은 기둥 뒤에서 울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등 뒤로 낄낄대는 괴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동석을 붙잡고 낄낄대는 괴한은 투명한 안면 방탄유리가 달린 풀 페이스 방탄헬멧을 쓰고, 어디서 훔쳐 입었는지 모를 케블라 방탄섬유로 만든 미군 군복에 더해 온몸을 방탄 합판으로 덕지덕지 처바르고 있었다.

마치 좀비 시대에서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자만한 무장상태였다.

적진 한복판에 서 있는 것치고는 너무나 여유로워서 낯선 모습이었다. 하진은 놈의 정체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서생연 간부이자 개백정의 오른팔 급의 전투 인원. 미친개 정광.

‘정광은 온몸을 방탄으로 도배하고 다니면서도 전투는 일본도로 하는 단거리 전투 성애자야. 그리고 강해. 근접 전투는 피해라.’

놈의 허리춤에는 권총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권총은 둘째치고서라도 동석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권총으로는 그가 가진 방호구에 흠집 정도 내는 게 전부일 터다.

저 칼날. 좀비를 베었으니 스치기만 해도 감염이다. 말도 안 되는 무기다. 좀비 아포칼립스에 일본도가 가당키나 한 소린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요한, 너라면 어떻게 할 테냐.

하진은 대답 없는 물음을 던졌다.

이번엔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군.

하진은 쓰게 웃으며 의수의 칼날을 꺼냈다.

하진이 놈에게 덤벼들려고 마음먹은 순간, 문이 열리고, 스위퍼가 들어왔다.

스위퍼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지가 잘린 채 좀비로 변해 꿈틀거리는 재희와 애리를 보았다. 얼음장 같은 시선과 총구가 일본도를 든 정광에게 향했다.

“···어이, 사무라이 형씨.”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투명한 강화유리 너머 썩은 웃음에서 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친구 놔.”

스위퍼의 말에 정광이 여봐란듯이 천천히 동석의 목을 그었다. 스위퍼가 움직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크게 확장된 동석의 눈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이내 살이 쩍 벌어져 목뼈와 동맥이 보일 정도로 너덜너덜해진다.

정광이 히죽 웃으며 동석을 놓고선 고개를 까딱거렸다. 인질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동석의 단단한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찾아온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손으로 힘겹게 목을 붙잡아보지만 소용없었다. 두 손이 온통 핏물에 물들어 새빨갛다.

“동석!”

조용히 리볼버 공이를 당기고 뛰어들 각도만 재고 있던 하진이 눈을 부릅떴다. 그 위로 스위퍼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지나갔다. 스위퍼의 목소리는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뒤졌다고 복창해라. 나 개 열 받았으니까.”

하진으로서도 처음 듣는 살벌한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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