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탕, 탕! 어디선가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 수색 조원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울타리 같은 화망이 형성됐다.
따당! 땅! 땅! 소총들이 사정없이 불을 뿜었다. 조원들은 쓰러진 생존자들 머리 위로 탄환을 쏘아붙였다. 이미 피투성이로 쓰러졌던 생존자들은 제대로 반격도 못 해 보고 허우적대며 숨이 끊겼다.
오토바이를 세워 총알을 막던 콜라곰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근처에서 사격하는 요한을 향해 컴파운드 보우를 들었으나 요한의 소총 사격이 먼저였다. 요한이 쏜 총알이 콜라곰의 몸통을 관통했다.
“커억!”
놈은 총에 맞고서도 활과 화살을 놓지 않은 채 입으로 피를 토하며 꿋꿋이 활시위를 걸었다. 그러나 활은 몇 센티미터도 날아가지 못하고 힘없이 떨어졌고 그 뒤로 순식간에 쏟아진 일 점 사격이 놈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아악!”
“끄아악!”
비명이 빗발쳤다. 서 있는 사람에게, 주저앉은 사람에게, 이미 쓰러진 사람에게도 총알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열 대여섯 명의 생존자가 순식간에 잘 다져진 난자가 되기까지는 채 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요한이 신호하자 더 이상 꿈틀거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지속되던 사격이 마침내 멈췄다. 수색 조원들의 시선이 시쳇더미 너머 좀비 떼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좀비들이 어느새 도착해 놈들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의 포식을 실컷 즐기기라도 하듯 게걸스러운 모습이다. 좀비들은 양손과 입가에 시뻘건 피를 덕지덕지 묻혀가며 이미 떡이 된 시체를 파헤치고 헤집었다. 얼빠진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혁이 황급히 자신이 숨어 있던 버스 하단의 비상용 문을 열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전히 대피하는 모습을 본 요한이 총구의 연기를 불며 무전기로 상황을 전파했다. 그의 앞에는 난자된 약탈자들의 살점과 피 웅덩이만 즐비했다. 시체조차 남기지 않은 깔끔한 승리였다.
“1조 상황 끝. 사격 종료. 16명 처치. 사상자 없음. 현 시간부로 전원 공용채널로 채널 변경할 것.”
* * *
전용 채널로 채널을 바꾼다는 요한의 마지막 무전 이후, 1조에서는 추가적인 무전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투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스위퍼도 작전을 복기하며 천천히 상황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매복의 위치, 인원, 변수까지. 대장의 지시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에 따라, 가지를 쳐대기 때문에 완벽하게 숙지해 놓지 않으면 돌발상황에서 그대로 따라가기 힘겨웠다.
스위퍼를 포함한 2조의 매복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가지는 아니었다. 그들이 자리 잡은 벌말로는 굴포천을 따라 부천까지 떨어지는 길. 이 길로 들어오면 곧바로 요한의 캠프에 직행하는 경로였다. 스위퍼는 이쪽 길을 지키라는 요한의 말에 의문을 던졌었다.
‘요한, 그런데 이곳은 용산에서 상당히 돌아서 오는 길인데?’
‘맞아. 하지만 이쪽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시가지가 하나도 없어. 올림픽대교나 강변북로를 타고 들어오다 벌말로로 들어오면 도로변을 제외하고선 온통 논밭이나 주유소, 기사 식당, 뿐이지. 좀비들은 대부분 차 안에 갇혀 있을 거고. 크진 않아도 상당히 편하고 유명한 길이야. 외곽순환도로까지 갈 것도 없이 분명 이쪽으로 온다.’
빠른 길은 경인고속도로, 편한 길은 벌말로. 요한은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을 것 같긴 했다. 설마 이렇게 돌아오는데 이곳을 지키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할 테니까.
진짜 놈들이 이곳으로 나타나면 돗자리를 깔고 올해 운세나 점쳐달라고 해야지,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스위퍼가 담배를 꼬나물었다.
담배 연기를 뻐끔거리며 스위퍼가 길게 펼쳐진 4차선 도로를 보며 턱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항상 자신만만한 태도의 그였지만, 오전 전투의 치열함 때문인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2조의 기본적인 전투 골자는 1조와 동일했다. 적을 끌어들이고 크레모아를 터뜨려 격발한다. 그 후 일제사격. 그게 플랜A였다.
만약 놈들이 뭉쳐서 이동하지 않거나, 매복이 발각되었을 때를 대비한 플랜B, 그 외에도 여러 변수를 고려한 대안들이 있었다.
가령, 지금처럼 두 집단이 매복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를 경우라든가를 대비한 대안 말이다. 스위퍼가 옹 상병에게 무전을 쳤다.
“옹아, 뭐 보이는 건?”
-딱히 없습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요한이 매복 장소를 선택할 때, 두 캠프 간의 이동 거리를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서생연의 본거지에서 출발했다면 거의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지점을 예상하고 자리를 정했을 터다.
물론, 좀비 트래픽이라든가 물자의 유무, 인원의 수에 따라 타이밍이 어긋나는 것까지는 그들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변수였지만.
담배 연기 사이로 시든 풀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스위퍼는 지금 문 닫은 화훼 단지의 조경원 한가운데였다.
관리되지 않아 시든 꽃들과 그사이에 솟아오른 큰 잡초와 갈대들이 그의 몸을 완벽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그의 뒤쪽에는 두 명이 몸을 숨기고 엄호 중이었고, 건너편 자원순환센터에는 옥상에서 경계 중인 옹 상병과 1층에서 매복 중인 세 명의 조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크레모아 격발을 위한 전면 매복의 역할은 하진의 몫이었다. 한 손 사격으로 원거리 사격이 어려웠기도 했고 적들이 지나는 한가운데에 배짱 있게 숨어 있을 인원이 그 뿐이기도 했으니까.
“늦는걸.”
스위퍼가 다시 한 대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막 한 모금 내뱉을 무렵, 멀리서부터 모터 소리가 들렸다. 타이밍하고는, 스위퍼가 담배를 끄며 구시렁거렸다.
“바이크 소리 들린다. 옹아, 뭐 보여?”
-그, 그렇습니다. 오토바이 접근 중입니다! 숫자는··· 열 명은 넘는 것 같습니다.
“타깃은?”
-정확하게 볼 순 없지만··· 2m 가까이 되어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지 말입니다?
왔군.
스위퍼가 씩 웃으며 혀로 입술을 훑었다.
스위퍼가 망원경으로 적들의 모습을 훑었다. 이왕이면 이쪽으로 개백정이란 놈이 와주길 바랐다.
요한은 자신이 없는 2조에 전투 경험이 많은 인원들을 몰아넣었다. 아마 리더가 없는 조이기에 불안해서겠지. 하지만 오히려 스위퍼는 요한이 걱정스러웠다.
그는 슈퍼맨도 아니고 초인도 아니었으니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쉽게도 이곳에 개백정은 없었다.
김설화에게 들었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요한의 브리핑을 떠올리며 스위퍼는 적이 누군지 확인했다.
“난쟁이도 없는 것 같고······.”
서생연의 간부는 총 여덟 명.
그중 두 명을 잡았으니 지금은 여섯 명이다.
서생연 생존자들은 개성이 강하고 간부들끼리도 경쟁과 서열 싸움이 심해, 뭉쳐서 다니기보다는 게릴라전이나 여러 방향에서 동시타격을 하는 게 전투 시그니처라 했다.
확실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뭉쳐 다니면서 좀비들을 끌고 다니다가 전멸하는 것보다는 게릴라로 캠프 생존자를 훈련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요한은 덧붙였다.
‘여덟 명을 발견하면 최대한 주의하되 가능하면 우선 제압한다. 당연히 사살 1순위는 보스인 개백정. 2m 가까이 되는 장신에, 주 장비는 K-2 소총. 전투력은 준수한 편 정도지만, 잔인하고 심리전에 능하니 주의할 것.’
경청하는 사람들 뒤로, 요한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미 사살한 수색 조장이나 김설화는 넘어가자. 개백정의 본처이자 오른팔, 서생연의 머리 역할인 지니. 머리께나 쓰는 사내지만 전투력 자체는 평범해. 놈과의 싸움은 내가 하는 셈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잠깐, 본처인데, 사내라고?’
‘놈의 식성은 남녀를 가리지 않아.’
스위퍼는 요한의 뒤를 따먹겠다고 했던 개백정의 무전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농담이 아니었군.
‘대좀비전에 능한 간부가 두 명. 콜라곰이라는 녀석은 컴파운드 보우를 고수하는 활잡이인데, 소리 없이 날아오는 화살만 조심한다면 추가로 주의할 건 없어. 개코 김원진도 추격이나 추적에 능한 인재지만, 신중하게 싸우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고.’
‘현대전에 활이라니 독특한데.’
‘개성들이 강하다고 했잖아. 주의해야 할 건 미친개 정광, 그리고 난쟁이. 정광은 온몸을 방탄으로 도배하고 다니면서도 전투는 일본도로 하는 단거리 전투 성애자야. 그리고 강해.’
웬만하면 근접전은 피해라. 요한이 덧붙였다.
‘난쟁이는 이름처럼 160cm도 안 되는 키라 들어가 있으면 눈에 확 띌 거야. 보이자마자 사살하거나 암살이 어려우면 그냥 뒤로 빠져. 유탄발사기가 달린 무식한 무기를 들고 다니고 등에는 수류탄을 변태적으로 모아서 다니는 놈이니 날뛰게 놔두면 골치 아파진다. 난쟁이 날뛰기 시작하면 웬만하면 대응하지 마. 플랜B로 간다.’
배낭에 식량보다 수류탄 넣는 걸 좋아한다는 설명에 헛웃음을 흘렸던 게 떠올랐다.
스위퍼는 서생연의 요주인물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각인시키면서도 놈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직은 거리가 멀어서 스위퍼는 누가 적인지는 정확하게 알 순 없었다. 놈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좋아, 와라.
스위퍼가 긴장된 손짓으로 손을 풀고 있을 그때, 멀리서부터 폭발음이 들렸다. 들릴 듯 말 듯 한 미미한 소음이었지만, 워낙 조용한 세계였기에 예민한 스위퍼의 귀에는 분명하게 들려왔다.
본격적으로 1조의 전투가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크레모아 터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 것일 터다. 거리가 4km쯤 될 텐데. 요한이 이 소음도 고려했을까 하는 의문점도 잠시, 이동하던 놈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상함을 느낀 옹 상병이 곧바로 무전을 쳐 왔다.
-놈들이 멈췄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러게. 이상하네, 놈들은 모터 소리 때문에 이 소리를 못 들을 줄 알았는데.”
소리를 들은 건 아닐 터다. 그조차도 들릴 듯 말 듯 했던 소리다. 아마도 1조에서 살아남은 적이 무전을 친 모양이었다.
스위퍼가 상황전파를 위해 요한에게 무전을 쳤지만, 반응이 없었다. 전투가 진행 중이어서 무전 소리를 음소거 해둔 듯했다.
“일단 무전기 2조 전용 채널로 전부 돌리고, 전투 준비하자.”
어쩔 수 없지 뭐, 우리끼리 해결할 수밖에. 숫자는 저쪽이 더 많다고 해도 지리적인 이점은 이곳이 가지고 있었다.
-놈들이 뿔뿔이 흩어집니다!
-스위퍼, 어찌할까?
옹 상병의 황급한 상황전파와 하진의 물음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매복이 발각됐다. 놈들은 바이크를 버리고서는 무리를 이탈해 마치 수색을 하듯 서로의 거리를 벌리고 안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크레모아 사거리에 한 놈이라도 들어오면 그냥 격발해 버리자고.”
-어쩌려고?
“농성하자. 형씨는 위험한 위치니까 나오지 말고 잘 숨어 있어.”
크레모아 격발 소리로 좀비들을 불러모으면 놈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주변에는 몸을 숨길 만한 다른 건물도 마땅치 않다. 필연적으로 놈들은 이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들어오는 사람보다는 맞이하는 사람이 유리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개싸움엔 자신 있었다. 스위퍼는 두 조원을 데리고 매장 안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자리를 잡은 스위퍼가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FM 무전기를 끄려던 찰나, 요한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스위퍼. 나다.
“오, 대장 형씨! 살아 있었어? 전투는?”
-깔끔하게 끝났어. 16명 죽이고. 사상자 없음. 그쪽은 어때?
“여긴 아직 시작 전. 그나저나 혹시 놓친 사람 있어? 놈들이 매복을 눈치챘는데.”
-놓친 사람? 없는데. 무전기 잡기 전에 전부 사살했어.
“그래? 이상하네.”
잠시의 침묵 후, 요한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개백정은?
“거기도 없어? 이쪽에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