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옹 상병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진의 한쪽 손에는 쿠크리 대검이, 한 손에는 의수에 끼워진 칼날이 흩날리듯이 좀비들을 쓰러트렸다. 살이 썩고 뼈가 삭은 좀비들이 마치 스티로폼 흩어지듯 부서졌다.
옹 상병은 마치 거대한 거인이 자신을 지켜 주는 듯한 안정감을 느꼈다. 이 느낌. 항상 느끼고 있었지만 없어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달았던 그 느낌이다.
하진은 홀로 액션 영화 한 편을 찍는 듯이 좀비들을 학살했다. 그의 팔에서 빙글빙글 돌던 쿠크리 대검이 한 번의 휘두름에 좀비의 머리를 목과 분리했다.
가까이 접근하는 좀비가 생겨도 반대쪽 손의 의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 번만 둘러싸여도 끝장인 상황이었지만, 정면을 뚫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 뒤쪽의 좀비들이 따라오지 못했다.
비닐하우스에 도착한 하진이 크게 포효했다.
점점 체력이 떨어져 가는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했고, 옹 상병이 비닐하우스를 오를 수 있도록 좀비들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기도 했다.
옹 상병이 끙끙거리며 흔들리는 비닐하우스를 올랐다. 얄따란 철심이 언제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했다.
하진은 장판파를 지키는 익덕처럼 옹 상병의 앞을 지키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조장님, 괜찮······.”
“사격준비나 해!”
하진이 금세 바닥을 구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싸움을 이어갔다. 전신이 좀비 피로 범벅된 상태였다.
옹 상병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몇 번이나 반복했던 작업이었지만 고작 삼각대 하나 세우는 것도 자꾸만 손이 엇나갔다. 서두르려다 보니 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침착하게!”
하진의 손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전신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고작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팔이 후들후들 떨릴 만큼 많은 좀비를 쓰러트렸다.
치열한 상황만큼 긴장한 근육이 더 땅겨왔다.
“되, 됐습니다!”
설치가 끝나고 옹 상병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몇 번 내리쳤다. 떨지 마라. 떨지 마라.
마침내 차고지, 트럭 위에서 기관총을 쏴대는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망원 확대경 속 동그란 가늠자와 십자 모양의 가늠쇠가 그의 육신을 향했다.
제발, 제발.
옹 상병이 수도 없이 되뇌었다.
여느 때보다 막중한 임무의 무게감이 자신의 검지를 붙잡고 막아섰다. 빗나가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상념들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휘몰아치던 와중,
“쏴!”
하진의 고함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반응했다. 격발된 순간. 소음기 위의 총성은 시끄러운 좀비들의 하울링 속에 사라졌고 쏘아져 나간 탄환은 무수한 좀비들을 지나 정확하게 사내의 콧잔등 위를 꿰뚫었다.
사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 기관총을 난사하다가 입꼬리를 들어 올린 그 표정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헉, 헉······.”
옹 상병은 한순간에 모든 육체의 힘이 탁 풀려버렸다. 하지만 쉴 틈이 없다. 상병은 곧바로 무전을 들어 요한에게 상황을 전파했다.
“놈을 잡았습니다!”
무전을 들은 세 사람의 피로감 가득 찬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드디어 버티고 버티다 기다렸던 순간.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총기를 격발해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좀비 전선이 뒤로 싹 밀려났다.
세 사람은 아낌없이 총알을 쏘아댔다. 무전을 들은 용병들도 밖으로 뛰쳐나와 좀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분명 좀비들의 수는 많았지만, 화기가 가진 압도적인 거리 앞에서는 숫자 또한 무용지물이었다.
대기조들의 지원사격도 삼삼오오 시작됐다.
좀비들을 밀고 나가 차고지까지 도착한 요한 일행은 기관총과 무전기를 확보했다.
역시나 무전기는 수색 조장이 갖고 있었다. 요한이 들고 있던 전투 배낭을 앞으로 메고 뒤쪽에 무전기를 맸다. 묵직하다.
“빠져나가자.”
좀비들의 비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그라들었다.
* * *
세리와 함께 가족재단 캠프를 지키던 노인은 전투의 결과에 탄식했다. 승리했다. 하지만 바랐던 깔끔한 승리는 아니었다.
“단 아홉 명을 상대하는 데, 열 명이나 죽었다고? 열 명, 열 명이라······.”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이렇게 많은 부하가 동시에 죽은 적은 처음이었다.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동료의 죽음에 무감각해졌다고 해도,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죽은 자 중에서는 노인의 조카가 포함되어 있었다. 노인은 마치 주저앉듯이 자리에 앉았다.
처음 좀비 떼를 뚫으며 복귀하는 일행을 보며 노인은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그들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대부분 전신을 피로 염색한 상태였다. 좀비 피가 묻지 않은 곳을 발견하는 게 더 빠를 지경일 만큼.
“유감입니다.”
철구에게 상황을 들어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노인은 원망할 대상을 필요로 할 만큼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거래는 자신이 선택한 거고, 운이 나빴던 거다. 다만 허탈하고 죽은 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순식간에 초라해진 무리를 보며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거래는 완수됐다. 약속을 지켜, 애송이.”
“식량은 바로 보내라 하겠습니다. 좀비의 정보 또한 최대한 아는 만큼 기록해 문서로 남겨드리지요. 그리고 카센터에 다수의 오토바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확보가 어려우니, 나중에 확보하셔서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 거 참.”
노인은 쉽사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사실 그들의 죽음은 요한으로서도 예상 밖이었다. 이 싸움은 전초전이었고 그들은 서생연과의 본선전에서 서생연을 막아줄 방패였으니까.
여기서 열 명이나 죽어선 안 됐다. 사실상 열 명이 단 한 명에게 죽은 셈이다. 뼈아프다.
최선을 다했지만, 불운이 따랐다. 가장 기습에 취약한 시간, 동이 트기도 직전의 시각이었다.
조장이 따로 빠져 있었고, 철갑탄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기관총의 존재는 김설화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철갑탄이라는 개념을 모르고 있었다.
몇 가지의 변수가 동시에 맞아떨어지며 생긴 참사다.
요한이 침음을 삼키며 일어서며 격렬한 전투를 치른 조원들에게 휴식을 권했다.
“수고했어. 다들 쉬어, 특히 옹 상병. 네 덕분에 살았다.”
“아, 아닙니다.”
옹 상병이 바라봤으나, 하진은 그저 씩 웃으며 엄지만 추켜올렸다. 상병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해산. 스위퍼는 잠깐 나 좀 보자.”
요한이 999K 무전기를 한 손으로 들고선 회의실을 나왔다. 스위퍼가 옆줄에 따라붙었다.
“김설화에게 가려고?”
“그래.”
“좀 쉬지그래. 형씨는 강철이 아니야.”
“생각보다 타격이 컸어. 더 확실하고 꼼꼼하고 빠르게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해. 김설화가 얼마나 버틸지도 모르고.”
“새벽에 물이랑 음식 주고 나왔어. 정신은 반쯤 나간 것 같지만, 죽진 않을 거야.”
요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나한테 인간성 어쩌고 하더니, 그 희망 고문이 더 나쁜 거 아닌가. 진짜로 살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꾸 헛바람을 집어넣어. 딴생각하면 어쩌려고.”
“이거 왜 이래, 형씨. 그래도 내 작전 덕분에 늦지 않게 그 아가씨 입을 연 거라고. 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아가씨 살려줄 생각은 없지?”
그의 말은 사실이긴 했다. 이 찜찜한 연극의 아이디어는 스위퍼가 낸 거였다.
한쪽은 절망을, 한쪽은 희망을 불어넣는다. 죽는다는 공포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어지럽게 뒤섞어 오로지 삶을 좇게 하는 방법.
그럼에도 그녀의 말을 100% 신뢰한 것은 아니었지만, 믿어야 할 정보와 아닌 정보를 구분해내지 못할 두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녀가 살아서 그곳을 벗어날 일은 없을 거다. 왜, 살리고 싶어졌어?”
“나야 뭐.”
스위퍼는 히죽 웃었다.
“대장 형씨의 뜻에 따를 뿐이지.”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혹시 살리고 싶어진다면 얘기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 얘기만큼은 진지하게 고려해 볼 테니까.”
“와, 그것참 영광인걸.”
스위퍼가 적잖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첫 만남과 비교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백화점에서 만나 대뜸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대던 사내였다. 그것도 적일지도 모른다는 수상함.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사선을 같이 넘었건만 완전히 신뢰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최근에의 일이었다.
‘나쁘지 않은 느낌인걸.’
스위퍼가 속으로만 웃음 지었다. 사실 그로서도 이 난리 터진 이후 사람을 못 믿어왔고, 그와 함께하기로 선택한 것도 일종의 무의식적인 이끌림에 가까웠으니까.
아직도 왜 그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는지에 대한 동기는 흐릿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치 동족 간의 유대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외국인들이 가득한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났을 때의 그런 느낌.
어찌 됐든 적어도 그와 함께한 이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의 대장은 매력적인 리더였다.
“그럼 휴식을 진지하게 고려해 달라고. 대장 형씨.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걸. 나도 그렇고.”
빤한 시선으로 스위퍼를 바라보던 요한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너무 서두르는 걸 수도 있었다. 그의 말이 백번 맞다. 일을 진행할 때, 휴식과 회복을 간과해서는 안 됐다.
“그래. 그럼 쉬었다가 가자.”
“···어? 어.”
어감이 조금 이상한데. 스위퍼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9. 서울 생존 연합 - 2차전
* * *
스위퍼의 권유에 따라 두 사람은 먼저 휴식을 취했다.
요한은 무전기 너머의 존재들이 신경 쓰이는 탓에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순 없었지만, 적당히 체력을 회복했다. 어차피 수면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사이 정환이 중간보고를 위해 무전을 쳐 오자, 요한은 상황을 설명한 후 그에게 물자를 가지고 이쪽 거점으로 오도록 불러들였다. 남은 수색조 인원까지 전부 챙겨서.
한동안 본 캠프는 서준과 보급캠프에서 직접 보급을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큰 전투를 앞둔 만큼 캠프의 운영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한 요한은 스위퍼를 발로 툭툭 건드려 깨웠다. 그러고선 두 사람은 김설화를 찾아가기 전에 전투상황을 복기하며 시나리오를 짰다.
김설화가 뱉어낸 내용 중 거짓이 있었는가?
답은 아니다였다. 우선 지금 확인 가능한 부분에서만큼은 대부분 진실이었다. 그 덕분에 예순여덟 명 중 열 명을 처리했고, 간부 두 명을 잡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면승부는 위험했다.
어디까지나 유리한 점을 이용해 최소한의 피해로 놈들을 격파해야 한다. 차례차례 사지를 하나씩 끊듯 게릴라전을 펼치는 방법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하나. 개백정을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개백정을 죽이지 못하면 그는 끊임없이 세력을 키우고, 키우고 또 키워서 끝까지 이곳을 괴롭히고 물고 늘어질 거다.
땅을 파서라도 생존자를 찾아낼 터고, 생존자가 없으면 좀비 떼라도 데려와서 자신들을 괴롭힐 이였다.
결국, 안건은 하나였다.
김설화를 이용해 개백정을 끌어낼 것이냐, 아니면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함정을 파고 그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릴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