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70화 (70/176)

<70화>

본능적인 두려움이 차곡차곡 쌓였다. 죽여야 마땅한 놈이라는 것도, 위험한 놈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그가 자신들의 편이라는 데에 끝없이 안도했다.

비 오는 날의 대기만큼 무거운 침묵이 지나가고, 메시아의 경련이 잠잠해졌다. 스위퍼가 다가가 그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죽었는데?”

“상관없어.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좀비가 되는지 아닌지만 보면 돼.”

“아쉽네. 짝퉁은 내 손으로 처리하고 싶었거든.”

“짝퉁?”

“아, 신실한 크리스천이라서.”

“밥 먹을 때 기도하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몰아서 한꺼번에 회개해.”

시답잖은 농을 치는 사이 시간이 상당히 흘러갔으나 놈이 좀비가 되어 일어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좀비에 물렸으니 살았든 죽었든 좀비가 되어야 했다.

“조금 더 기다려 볼까?”

“시간차는 있으니까. 감시 부탁해.”

“라져.”

스위퍼는 짧게 대답하고는 도끼를 꺼내 시체를 내려 쳤다. 시신의 팔다리가 완전히 잘려나갔다. 좀비가 돼서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 치의 방심도 없는 훌륭한 판단이다.

요한은 안심하고 뒤를 돌아 이 캠프 생존자들을 눈으로 훑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생존자들이 공포에 움찔거린다. 노인이나 남성, 중장년층도 있었지만, 그보다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기이한 비율이다.

“지원, 정수는 총기 회수하고 쓸만한 물자들 쓸어 담아. 그리고 이 사람들은-”

요한은 잠깐의 고민 후, 단호하게 내뱉었다.

“다 죽여.”

깔끔한 처리가 최선이다. 그때, 혁이 요한을 말렸다. 힘은 없었지만, 목적이 분명한 목소리였다.

“형.”

“안 돼.”

요한은 듣지도 않고 거절했다. 보나 마나 뻔했다. 이 사람들은 피해자니 무고한 사람이니 떠들어대겠지.

“이 사람들은··· 피해자야.”

이런 일을 겪으면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요한은 보이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혁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린 나이를 떠나 유망한 체육 유망주인 만큼 개인의 피지컬도 손꼽을 만큼 훌륭했고, 등 뒤를 맡길 만큼 신의도 깊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동료의 친동생이기도 했으며,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저 유약한 심성으로는 다른 동료들의 목숨을 맡을 수 없다. 실수를 덮어줄 수도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요한은 혁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의 기본은 신도 사이에 바람잡이를 심는 거지. 저 중에는 저 가짜 메시아의 바람잡이가 있을 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들을 솎아낼 방법이 없지.”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피해자들은······.”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멍청한 짓은 네 조원을 사지로 떠민 거로도 충분하니까.”

혁의 입이 뚝 다물어졌다. 요한의 말이 백번 옳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모자라다.

“이번 일의 책임으로 널 캠프에서 추방하려고 했지만, 수색조 사수들의 만장일치 반대로 이번만큼은 넘어가는 거다. 단, 넌 이제부터 수색 조장에서 해임이야. 수색 1조로 들어와. 2조 조장은 하진과 교체한다.”

“알겠어. 형. 무슨 처벌이든 받을게. 하지만, 제발. 저 사람들은 이미······.”

스무 살 초반의 풋풋한 얼굴에서 간절한 눈빛이 흘러나왔다. 혁이 가리킨 곳에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본인들이 곧 죽을 거라는 두려움? 아니다. 저들은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신실한 믿음이 산산 조각났다. 완전히 개박살 나 곤두박질쳤다. 저들이 승천했다고 믿었던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은 유린당하고 살해됐다. 그 사실에 뒤늦게 슬퍼하는 것이었다.

요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난히 그에게 약한 것도 사실이다. 한없이 냉정해지고 매정해질 수 있는 요한이었지만, 유독 이 녀석만큼은 유별났다.

‘건아, 네가 네 새끼 망쳐놓고 갔다. 이 자식아.’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성을 잃지 마라.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 사람이다.”

요한은 건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을 천천히 읊조렸다. 그 말에 혁의 표정이 살짝 환해졌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겠지.”

“응.”

“그 전의 말도 기억나니.”

“그 전의 말?”

“살아라. 내 몫까지 꼭 살아남아라.”

“······.”

“인간성이고 나발이고, 도움이고 나발이고 그보다 먼저 건이 몫까지 살아남는 게 먼저라고.”

요한의 말 뒤로 세리와 하진의 말이 한마디씩 이어졌다.

“오빠,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쟤. 처맞아야 돼.”

“그래도 난 존중한다. 이런 시대에서 저런 마음가짐을 가지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풀죽은 혁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며 스위퍼가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이 자식아. 그따위로 하면 넌 앞으로 6개월도 못 버티고 죽는다에 정환이 고추를 건다. 참고로 새거야.”

“형!”

“아, 깜짝이야. 언제 왔어?”

“대체 무슨 말을!”

거 참, 목청도 크네. 스위퍼가 구시렁거리며 귀를 후볐다. 요한이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정리하며 하려던 일을 진행했다.

“그럼 지금부터 선량하고 쓸 만한 사람들을 재주껏 골라내 보자고. 전부 손 머리 위로 올린 채로 일어나.”

요한의 말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내가 하는 말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 재깍재깍 든다. 본인이 의사나 간호사다, 거수.”

한 줌의 기대를 걸고 말을 꺼냈으나, 해당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본인이 엔지니어다, 거수. 전기든 자동차든 건설이든.”

없다.

“화약취급기능사 등 화약 및 폭약 기술자다, 거수.”

기대도 안 했다. 생존자들은 그저 불안감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특기 가지고 있는 사람 없어? 좀비 열 마리랑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좋아.”

그때, 한 청년이 손을 들었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향해 물었다.

“특기는?”

“만화가··· 입니다.”

“내려.”

요한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난리 전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하등 쓸모없는 특기 아닌가. 만화가가 위축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세리가 그를 한쪽으로 뺀다.

“뭐야?”

“데려가는 거 아냐?”

“만화가를?”

“응.”

“만화가를 데려다가 어디다 쓰게?”

“야한 거 그려달라고 할 건데.”

“······.”

세리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했다. 요한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고,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들의 반응을 보며 요한이 옅은 숨을 내쉬었다.

요한이 몇 번이나 쓸 만한 다른 특기에 대해 되물었으나 다른 생존자 중에 추가로 데리고 갈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세리, 몸수색해.”

다른 여자 생존자들의 몸수색은 세리에게 맡기고 요한은 직접 세 명의 남자 생존자들의 몸수색을 진행했다. 수색 중 만화가라고 자신을 밝혔던 사람을 제외하고 전체 생존자 중 남자 생존자 두 사람의 몸에서 케이스에 싸인 과도가 발견됐다.

요한은 말없이 권총을 들어 한 생존자를 겨냥했다.

“어어······.”

탕, 탕! 곧바로 요한의 사격이 이어졌다. 두 명이 쓰러지고 갑작스러운 격발에 사람들의 공포 가득한 비명이 들렸다. 당황한 조원들이 요한을 바라봤다.

“뭐, 뭐야 갑자기?!”

“뭐 해? 마저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요한은 작게 내뱉었다.

“바람잡이잖아.”

“···그걸 어떻게?”

“성전은 비무장이니까.”

사람들의 입이 뚝 다물어졌다.

성전은 비무장이다. 이 종교를 믿어 당장 승천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을 어기면서까지 무장을 몰래 하고 있다? 안 봐도 뻔한 이야기다.

믿음 없이 바람잡이로 심어진 생존자라면, 당연히 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예비 무장을 하고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그게 이 시대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자세니까.

만약 정확하게 바람잡이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종교단체에 믿음을 가지지도 않으면서도 몰래 잠입해 신실한 척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상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포박하고 감시해. 내일 이동한다.”

“캠프로 데려가게? 살해하는 건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캠프로 데려가기는 좀······.”

“안 데려가.”

“그럼?”

“이이제이를 할 거다.”

“······?”

요한의 대답에 모든 조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혁을 나무라기는 했지만, 그도 비무장에 위협적이지 않은 생존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찝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수상한 집단을 무조건적으로 포용할 수도,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올린 전략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 골치 아픈 짐 덩이는 떠넘길 거다.

“외부 대기조 전원 들어와.”

요한이 밖에 있는 대기조를 불렀다.

잠시 후 물자를 가지러 갔던 두 명과 밖에서 대기하던 대기조가 모두 예배당으로 모였다. 그들 앞에는 약탈한 물자들이 쌓여 있었다.

요한은 천천히 회전하며 물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쌓여 있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수확에 표정이 절로 밝아졌다. 기존 생존자들도 이만한 물자들이 있는지는 몰랐었는지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많네. 최대한 유용한 것들 위주로 챙겨. 해가 졌으니 오늘은 여기서 숙박한다. 수색 1, 2조가 외부 불침번 서고, 3조가 생존자 감시해. 순서는 번호순으로.”

조원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결국, 메시아는 좀비로 변하지 않았다. 이로써 면역의 가능성은 기정사실화되었다. 면역체계는 실존하고, 한번 좀비에게 물려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두 번째로 좀비에게 물려도 감염되지 않는다. 요한에겐 호재였다.

물론, 안일하게 물려줄 생각은 없지만, 설상 최악의 상황에서 좀비에게 물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요한이 시체를 가리켰다.

“치워, 그리고 면역에 대한 부분은 다른 사례가 나올 때까지는 일단 확신하지 마. 대신 물리더라도 곧바로 사살하기보다는 웬만하면 격리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조원들의 얼굴에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놀라움과 기대가 엿보였다. 이 계기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였다.

“해산. 그리고 막내는 잠깐 나 좀 보자.”

요한이 손짓하자 각자 자리를 잡기 위해 흩어졌고, 생존자 감시역인 하진과 요한에게 호명된 진수만 남아있었다.

요한은 진수를 데리고 예배당 안쪽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제 진짜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때였다. 제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앳된 티가 나는 소년은 그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오늘 고생 많았다.”

“고생은요!”

볼 때마다 느끼지만 참 기운찬 녀석이다. 만으로 따지면 십 대인 나이. 그럼에도 좀비를 보고 기죽지 않고, 첫 장거리 원정에도 뒤처지지 않고 씩씩하게 따라왔다. 확실히 불미스러운 일에 엮일 만한 성격은 아닌 거로 보이는데.

“왜 불렀는지는 알지?”

“그게··· 잘 모르겠어요.”

요한이 지그시 시선을 보냈다. 눈빛만 보고도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진실의 눈 따위 없었다. 오로지 대화와 상황을 통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했다.

판단이 내려지면 누군가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정당한 가해자가 될 수도, 아니면 억울한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난제였다.

“파크타운 캠프의 여성 생존자가 널 고발했어.”

“네!?”

“네가 수색조 권한을 남용해 그녀에게 몸을 요구했다는 내용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누가요?!”

요한은 고민했다. 피해자의 신원을 지켜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정확한 상황파악을 위해 신원을 밝혀야 하는가.

“짚이는 사람은 없나.”

“네, 전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수희. 라는 생존자였어.”

“네?!”

진수는 불안한 눈빛으로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손을 살짝 떨었다.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억울해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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