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메시아라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혁과 정수는 그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흔히 보기 힘든 수제 쿠키와 따듯한 차가 내어졌고, 그들은 정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행들에게도 차와 간식거리를 내어 주었다.
종종 생존자들이 다가와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형제님. 하고 물어 오는 통에 흡사 자신들이 구조를 받은 느낌이었다.
구조가 필요한 느낌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 쾌적하게 캠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유능하다면, 리더를 메시아라고 부르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캠프 분위기는 희망찼다. 아니, 희망차다고 느껴졌다. 불안과 공포 속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느낌.
마치 물과 기름이 함께 담긴 물컵처럼 수면 아래에 있는 절망과 불안감 위에 희망이라는 얇은 막이 덮인 듯했다. 기묘한 분위기였다.
‘물자들은 어디서 충당하시는 건가요?’
‘메시아와 목회자분들이 직접 하느님께 받아오십니다.’
아무리 들어도 저 호칭은 적응이 안 되네.
평소에는 ‘목회자’들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나눠 주는 물자로 생활한다는 뜻이었다.
방문객에게 호의를 베푼 것에 비해서는 물자가 충분하지는 않은 듯 사람들의 식사는 단출했다.
피골은 상접했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지 행색도 꼬질꼬질했다. 그들은 무엇을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는지 식사를 하면서도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를 일찌감치 끝낸 몇몇 사람들은 계속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느낌이 싸한데.’
혁이 정수에게 작게 귓속말했다. 정수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혁이 참지 못하고 옆 생존자를 괴롭혔다.
‘다들 무엇을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그리고 뒤이어 생존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녀의 말을 정리하면 이랬다.
이 캠프는 메시아가 나팔 부름을 받지 못한 신도들을 승천시키기 위한 장소라고. 메시아가 신께 응답을 받으면 ‘선택절’이라는 행사를 열어 예배를 드리며 승천할 사람을 확정받는다.
그 이후에 선택받은 성도는 영원한 안식과 함께 천국으로 간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선택절이 끝나면 또다시 다음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한다고.
‘저··· 그 승천이라는 것 말인데요.’
‘네, 형제님.’
‘승천이 끝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곳에 계신가요?’
여인이 참 재미난 농담을 들었다는 듯 푸흐흐, 하고 웃었다.
‘농담도 참. 승천한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있겠어요? 천국으로 가는 거라니까요.’
‘······.’
그렇다는 건 선택절이라는 기간이 될 때마다 몇 명씩 캠프에서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확실히 이 캠프는 구린내가 강하게 났다. 승천해서 천국을 간다니. 그런 허황한 이야기를 신앙처럼 믿고 있는 이곳 사람들도 하나같이 이상했다.
혹시 약을 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어딜 봐도 약에 찌든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음울한 신앙이 가득 차 있었다. 오로지 승천만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하듯. 혁의 경계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쯤, 한 사제의 입이 열렸다.
‘메시아께서 나오십니다.’
사람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메시아라고 추정되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홀로 깨끗한 진한 다홍색 성직자복과 무스로 단정하게 넘긴 머리, 턱수염 하나 없이 깔끔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메시아가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오자 그 주변에 목회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주르륵 자리 잡았다.
그들 또한 검은 사제복에 단정하게 머리를 자른 것까지는 똑같았지만, 그중 몇 명은 목회자라기보단 흡사 깡패의 비주얼을 하고 있었다.
‘응답이 내려왔다. 지금부터 선택절을 선포한다.’
메시아의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깜짝 놀랄 만큼 큰 환호성에 두 사람이 화들짝 몸을 떨었다. 환호성 가운데 사제들이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고 여기저기 문을 잠그기 시작했다.
‘뭐 하는 겁니까?’
‘선택절이 열리면 의식이 끝날 때까지 사탄의 기운이 침입하지 못하게 저렇게 막아놓아요.’
거참 쓸데없이 디테일하고 체계적이군. 혁이 혀를 찼다.
메시아는 신도들을 향해 집회 전까지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선 단상에서 내려갔다. 걸어나가려는 그를 혁이 불러세웠다.
‘저기. 어, 선생님.’
혁의 부름에 메시아가 돌아봤다. 그 속에 영혼은 담겨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무색무취한 눈동자였다.
‘대화를 좀 했으면 하는데요.’
‘메시아 님이라고 부르시오.’
옆에서 목회자 한 명이 지적하자 혁이 빠르게 호칭을 정정했다.
‘아, 예. 메시아 님. 대화를 좀 했으면 합니다.’
무감정한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혁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굳게 닫혔던 입술 새로 낮고 갈리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따라와라.’
혁은 메시아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응접실처럼 보이는 방에 들어서자 그는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털썩 걸터앉고선 혁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그래.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목소리에 고저는 없었으나 태도는 고압적이었고, 거만했다. 자신들이 구조대라고 밝혔음에도 그런 사실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혁은 캠프가 주는 흉흉한 위화감 속에서도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다른 캠프에서 왔습니다. 물자도 풍부하고 사람들 개개인의 능력도 뛰어나지요. 저희랑 함께하셨으면 해서요. 함께하시면 안전과 안정적인 물자 보급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아께서 사람들을 좀 설득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혁이 중간에 말을 한 번 더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메시아라는 호칭은 좀처럼 입에 달라붙지 않았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우리는 성전을 떠나지 않는다.’
그의 대답에 혁이 두 번 제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잘 되었다. 어차피 뭔가 조금은 꺼림칙하던 차였다.
구조가 필요해 보이지도 않으니 빠르게 손을 털고 벗어나는 게 좋으리라.
‘그럼 동맹을 하시지요. 이 캠프가 다른 침략자들로부터 위협받으면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혁은 예의상 뒷말을 덧붙였다. 혹시 자신들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두고 떠나는 것이 좋으리라는 판단.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지. 단, 모든 결정은 신의 뜻대로 한다.’
다행히 반응은 긍정적이었지만, 여전히 기분 나쁜 캠프였다.
우선 요한에게 돌아가 사실을 보고하고 성도들을 구조할지 아닐지, 구조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다시 세우는 편이 좋으리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방해가 되는 것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희 캠프의 리더에게 새로운 동맹의 소식을 전해야 해서요.’
‘선택절 중에는 성전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선택절이 끝나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혁의 인상이 미미하게 구겨졌다.
‘그건 강요입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저희를 막으실 권리는 없습니다.’
‘지금 동맹을 제안하자고 떠들어대고선 성전의 규칙과 종교적 신념을 박해하는 것인가. 그런 뜻이라면 순교도 각오하고 항전하겠다.’
‘······.’
메시아의 말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이 사제복 안에서 서슬 퍼런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참으로 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혁은 어쩔 수 없이 숨을 깊게 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을 해제할 순 없습니다.’
‘무장한 채론 성전 안에 들어올 수 없다. 지금처럼 성전 밖에서 기다려도 좋다면.’
‘좋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혁이 일어섰다. 몇 분의 대화였으나 기가 다 빨린 듯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참, 여기 오기 전에 시체 한 구를 봤는데요.’
‘······?’
‘이 교회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그런 일은 없었다. 주변 다른 건물에서 떨어졌겠지.’
혁은 그렇습니까, 하고 간단하게 대꾸한 후 그에게서 벗어났다.
정문 앞에는 몇 명의 사제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한 발이라도 나갈 수 없다는 단호한 얼굴이다.
혁은 그들이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그가 보고 들은 걸 그대로 조원들에게 전달했다.
본인이 느꼈던 개인적인 느낌까지도. 생존자들의 친절 덕분에 한풀 풀어진 경계심이 다시금 차올랐다.
그날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혁과 정수는 예배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선택절 예배에 참석했고, 나머지 조원들은 그 자리에서 대기했다.
예배는 흔히 어릴 때 겪었던 모습과 흡사했다.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문을 낭독한 뒤 메시아의 말씀 낭독과 설교가 이어졌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그의 말에 성도들이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주제는 말세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이비 종교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설교는 제법 흥미진진했다. 어떻게 성도들을 홀렸는지 알 만한.
‘마지막 때는 예견되었다. 이미 많은 형제들이 승천하여 하나님 곁으로 올라갔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은 평생 무저갱에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 고통받으리라. 마지막으로 신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어 메시아를 내려보내셨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적그리스도가 활개 치고 있다. 오로지 내 몸의 징표가 구원의 증거이니.’
메시아의 숨 내쉬는 소리가 예배당을 울렸다. 단 한 사람도 잡담을 하거나 소음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기도하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받으리.’
사람들은 홀린 듯이 ‘믿습니다.’를 연발했다.
설교가 끝나고 기도회가 시작됐다. 예배는 근 한 시간 동안 이어졌고 정수를 바라보니 정수는 거의 졸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마치 신들린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고 여기저기서 이상한 언어가 주문처럼 터져 나왔다.
이윽고 메시아가 한 발씩 움직이며 사람들의 머리에 안수기도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한 사람씩. 그리고 세 명의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세 사람은 마치 선택받은 것처럼 환호를 연발했고 그에 따라 주변 사람들이 더더욱 열을 높여 기도했다.
모든 선택이 끝나고 선택받은 신도들은 사제들에게 이끌려 예배당 밖으로 내보내 졌다.
남은 사람들은 더욱 기도에 열을 띠었다. 선택절의 끝은 선택받은 자가 승천할 때까지.
선택받지 않았다고 기도를 소홀히 하면 회개의 기회마저 박탈당한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호소하는 기도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자신도 홀릴 것만 같은 기분에 혁이 일어서며 옆자리 성도에게 물었다.
‘여기, 남자 화장실이 어디예요?’
‘2층이요.’
여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대답하고선 다시 기도에 열중했다.
혁은 천천히 예배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데려간 사람들을 어떻게 하는지는 꼭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1층은 식당과 커피숍, 지하 1층은 예배당이었고, 2층과 3층은 성도들의 생활구역이었다. 문제는 4층부터였다.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금지구역이라는 표지판이 혁을 가로막았다.
얼핏 보이는 계단 입구에는 사제들이 지키고 있었다. 다른 쪽 비상구도 계단도 마찬가지로 사제 한 명이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제압할까. 한두 명쯤은 소리 없이 제압할 자신이 있었지만 금세 마음을 바꿨다.
혁은 3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을 강제로 열었다. 길고 어두운 통로 한가운데에 엘리베이터를 지탱하는 쇠줄과 벽에 달린 비상용 철제 사다리가 보였다. 혁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끼고선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탁, 4층에 도착한 혁이 고양이처럼 은밀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4층은 간부 생활공간, 5층은 물자창고. 5층까지도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기우였던 걸까.
몸이 점점 속도를 붙여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6층에서 수상쩍은 캠프의 증거물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6층 복도 곳곳에 핏자국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