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66화 (66/176)

<66화>

“진수는 수색조에 들어오기 위해 몇 주를 악착같이 훈련한 거로 아는데. 힘들게 들어와서 들어온 지 며칠 만에 사고를 칠 이유는 없지 않나. 똘똘한 친구잖아. 나라면 흑심을 품더라도 좀 더 수색조 내에 기반을 다진 다음에 품을 것 같거든. 얘기는 들어 봤어?”

“그건 아직······.”

“한쪽 말만 듣고서 확신하면 안 되지. 말했잖아. 약자가 항상 피해자인 건 아니라고.”

진수는 수색조, 수희는 일반 캠프원.

캠프 내 권한이나 입지로 봤을 때는 진수가 가해자라고 느껴지기 쉽지만, 현행범이 아닌 이상 이런 문제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요한의 말에 세리가 아차 싶은 표정을 하면서도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삼자대면을 해야 할까?”

“그것도 방법이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피해자한테 좋은 일 같지는 않아. 막내는 내가 심문해 보지. 데려간다. 대신 재호를 남겨. 그리고 진수랑 수희는 같은 캠프 출신이지? 동석이 남아있는 동안 두 사람 관계에 대해서 알아봐. 당사자들 말고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 들어 봐. 티 내지 말고.”

“예.”

“그리고 나 없는 동안 캠프에 무슨 일 생기면 중재하려 들지 말고 그냥 기록만 해. 갔다 와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가서 준비해. 바로 출발한다.”

요한의 지시에 조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모두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요한이 의자에 몸을 눕듯이 묻었다. 한동안 평화롭다 싶더니 사건이 터지는 타이밍이 안 좋다.

캠프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수의 인원이 캠프를 비우게 생겼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든다.

‘하지만 캠프 내에도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요한은 고민을 접었다. 큰일을 벌일 만큼 배짱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고, 캠프의 물자를 관리하는 서준이나 박 노인도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혹시 몰라 좋은 전력인 동석도 남겨 둔 만큼 별일은 없을 거다.

생각을 마무리하고 지도를 보며 굴포천 근처를 툭툭 두드렸다.

‘메시아라······.’

유치하고 건방지군.

요한이 중얼거렸다.

* * *

“수색조 출발합니다.”

조원들은 대부분 전투용 D타입 군장을 챙겼다. 간단한 식량과 다수의 탄약이 든 대규모 전투용 군장이다. 단단히 준비한 요한 일행이 경계선을 넘었다.

굴포천역이면 거리상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동안은 서북쪽 개천 쪽으로 수색을 뚫다 보니 조금 늦어진 것뿐. 사실상 지척이었고 곧 뚫을 예정인 지리였다.

“지원, 정수. 안내해.”

요한의 지시에 2조 생존자 두 명이 앞장섰다. 그들은 작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고, 요한이 제지했다.

“왜 대로로 가지 않고 골목으로 이동하지?”

“아 그게, 저쪽 길이 끊어져 있어서요.”

“길이 끊어져 있다고?”

“네, 그 위에 육교랑 고가도로가 다 무너져서······.”

“확인해보자.”

“네? 네.”

길이 끊어져 있는 건 곤란했다. 그쪽 루트는 2차 쉘터로 가기 위해 꼭 지나가야 하는 루트였으니까.

길이야 조금 돌아가면 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상태인지는 확인해 봐야 했다.

요한 일행은 지하차도 앞에서 멈춰 섰다. 그의 말대로 상동 지하차도 사거리에서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무너져 있었다.

마치 한바탕 폭격이라도 맞은 듯 푹석 가라앉아 있었고, 그 밑으로 군용 차량이 다수 뒤엉켜 있었다. 오래된 전투의 흔적이었다.

“이쪽 길이 막혀 있었는지는 몰랐네.”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니까.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도 아니고.”

“잠깐 위로 올라갔다 올게. 스위퍼, 엄호 좀.”

요한은 스위퍼를 호명하고선 무너진 아스팔트 파편들을 밟으며 고가도로 위로 탁탁 튕겨 올라갔다.

무너진 도로 건너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려왔다.

마지막 아스팔트 조각을 밟고 올라선 그들의 눈앞에 아직 한 번도 발을 디디지 않은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무너진 도로 너머로는 끝도 없는 좀비들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파도처럼 혹은 벌레 떼처럼 죽은 자들이 너울거린다.

“Oh, shit······.”

수천 마리는 훌쩍 넘어 보이는 좀비 떼가 무너진 도로 너머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아날 정도로 광기 넘치는 광경이었다.

* * *

회색 방이었다.

마치 무릎 위에 돌이라도 얹혀 있는 것처럼 묵직하게 허벅지가 아려왔다.

뚝, 뚝······.

차가운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져 얼굴을 적셨다. 어둡고 음울하고 칙칙한 공간. 창고로 쓰이던 곳이었을까, 아니면 빨래방? 넓이는 네 사람이 나란히 앉으니 꽉 차는 정도였고 빛은 희미했다.

“읍······.”

입에는 재갈이 물렸는지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아직도 약 기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회색 방 안에는 자신을 포함해 네 명뿐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혁이 몸부림치지만, 속박은 단단했다.

꺽··· 꺽, 끄아아······.

눈앞에 좀비 네 마리가 굶주린 이빨을 딱딱거리며 쇠사슬에 구속된 채 자신을 향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혁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렸다.

‘조장, 그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슬슬 무전기도 전파 밖인 것 같고. 이쪽으로는 처음 와 보기도 했으니까.’

지원이 불안한 듯 혁을 멈춰 세웠다. 수색은 늘 긴장과 두려움을 유발했지만, 이번 원정은 특히나 찜찜했다.

직전에 보고 왔던 무너진 고가도로 입구의 잔뜩 모인 바퀴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좀비 떼의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 잊히지 않는다.

혁은 고개를 저었다. 수색 사흘째. 요 몇 번의 구조 작업 동안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찾아내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꼭 생존자를 구조해 되돌아가고 싶었다.

꺄아악!-

그때,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여섯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렸다.

‘정지!’

골목에 들어온 혁이 일행을 멈췄다. 좁은 골목길, 수십 마리의 좀비가 갓 죽은 시체를 게걸스레 탐닉하고 있었다. 허리춤에서 무기를 꺼낸 조원들이 다가올 전투를 준비했다.

가장 먼저 혁이 달려들어 좀비의 머리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파공음과 함께 쏘아진 대검이 좀비의 미간에 콱, 박혔다.

혁이 박힌 대검을 뽑으며 좀비를 발로 밀어냈다. 뒤이어 조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수색 2조는 일렬로 진형을 짜고 달려드는 좀비들을 처리해나갔다. 신선한 먹잇감을 보고 신나게 달려든 좀비들이 곧 픽픽 쓰러졌다.

수적 열세는 분명했지만, 그들은 훈련됐고 용감했다. 삼십 분쯤 흐르자 거리에는 좀비들이 내뿜은 검은 피와 좀비 시체만 가득했다.

‘이 건물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정은이 옆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6층 정도의 교회 건물이었다. 이 시대의 건물들이 모두 그렇듯 외벽에는 핏자국과 먼지,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다.

‘안에 생존자가 있을 거야.’

혁의 말에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건물을 돌아 정문으로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른 수색 조원들이 총기를 들고 경계한 채 혁이 문을 두드렸다. 몇 번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던 문은 혁이 손잡이를 부수기 직전에야 그 아가리를 쩍 벌렸다.

문 안쪽에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내가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생존자를 보고도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되레 수색 조원들이 그 반응에 당황했다.

‘실례합니다.’

사내는 말없이 들어오라는 듯 뒤로 물러섰다.

혁과 조원들이 찝찝한 표정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 유리문을 열기 전, 사내가 그들을 제지했다.

‘성전 안에서는 무장해제를 합니다.’

마치 군대 조교를 보는 듯한 딱딱한 말투. 그의 말에 조원들이 혁의 눈치를 보았다. 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수를 지목했다.

‘정수만 따라오고 나머진 여기서 대기해. 언제든지 바로 들어올 준비하고.’

‘혁아, 위험하지 않을까?’

‘괜찮아. 위험해지면 소리 지를 테니까 바로 들어와.’

혁과 정수는 총기를 들어 정은에게 건네고 대검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사제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대표로 들어왔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혼란스러워 하실 것 같아서요.’

사제가 두 사람의 몸을 간단하게 수색하고는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따라오시오.’

혁은 사내를 따라가며 내부를 둘러봤다. 외벽과 달리 내부는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듯 바닥도 깨끗했고 벽이나 기둥에도 핏자국조차 없었다.

사내를 따라간 예배당에는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혁과 정수가 들어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날아와 박혔다. 혼란. 그리고 경계가 담긴 눈빛이다.

혁이 그들을 안심시켰다.

‘안심하세요. 구조대입니다.’

구조대라는 말에 안색에 화색이 깃들었다. 사람들은 금세 기도 자세를 풀고 혁이 근처로 모여들었다.

‘정부인가요?’

‘군인인가요?’

‘정부도 군대도 아니에요. 하지만 생존자들을 구조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했는지 몇몇 사람들이 다시금 자리로 되돌아간다. 혁은 남아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캠프 리더분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메시아께서는 지금 금식 기도에 들어가셨어요.’

‘메시아요?’

리더에게 붙이기에는 지나치게 이상한 호칭이었다. 마치 북한 주민들이 자기네 수령을 부르는 듯한 경외감이 담긴 호칭. 혁은 이 이질적인 집단으로부터 묘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 캠프의 리더가 메시아라는 분입니까?’

혁의 질문에 한 생존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예. 맞아요.’

‘별명인가 봐요. 호칭이 독특하군요.’

생존자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정정했다.

‘별명이 아니라 진짜 메시아십니다. 세상을 구원해 주실 마지막 희망이시죠. 형제님은 모르시겠지만, 지금은 성경에 말씀하신 마지막 때예요. 저희는 죄가 커 나팔 부름에 승천하지 못하고 마지막 때에 시련을 받고 있어요. 시련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면 메시아가 하늘나라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어······. 그렇습니까.’

‘저게 대체 뭔 소리야?’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정수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툭 내뱉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혁이 황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친구가 무신론자라서요. 혹시 그 메시아라는 분은 어디에 계시죠? 잠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메시아께서는 한동안 신께서 승천에 대한 응답을 주시지 않아 특별기도에 들어가셨어요. 기도를 마치고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정수의 실언 때문인지 여인의 목소리는 한층 냉랭했다.

혁과 정수가 서로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승천은 무엇이고 응답은 무엇인지. 당최 정체도 영문도 알 수 없는 캠프였다.

가만히 둘러본 사람들의 표정은 그들이 여태까지 만나온 여느 생존자들과는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거리감과 괴리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다행인 것은 그들이 적개심을 보이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그 메시아라는 자와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었다.

‘기다리겠습니다. 외부의 일행을 데려와도 괜찮을까요?’

‘상관없습니다만, 성전에서는 무장할 수 없습니다.’

‘으음······ 그럼 일단 기다리지요. 정수야, 밖의 인원들에게 일단 쉬면서 대기하라고 해.’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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