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62화 (62/176)

<62화>

2부-약육강식

* * *

7. 경계선 너머

2017년. 8월.

농민은행 앞.

탁탁탁.

세 명의 사내가 좀비들을 피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위퍼 일행은 경계선의 한 건물, 옥상에서 새롭게 등장한 생존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친 기색으로 달려오던 생존자들이 도로를 가로막은 자동차의 벽을 보고선 당황하며 두리번거렸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그때, 위쪽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거기, 형씨들. 넘어오기 전에 무장해제부터 하고 넘어와서 두 손 머리 위로 올리고 대기해.”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생존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쉽사리 그의 위치를 찾진 못했다. 그러고선 난데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뭐야, 썅! 누구야!”

“야, 일단 넘어가!”

그들을 보며 스위퍼가 헛바람을 뱉었다. 에헤이, 그렇게 나오면 곤란한데.

“형씨들 두 번째 경고하는데 안쪽엔 좀비가 없으니 무장해제부터 하고 넘어오는 게 좋을 거야. 그냥 넘어오면 죽어. 난 분명히 경고했어?”

“닥쳐, 개자식아!”

사내들이 폐차 장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스위퍼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확성기를 내렸다. 간만의 손님인데 환영 인사를 격하게 하게 생겼네.

스위퍼가 옹 상병을 향해 무전을 쳤다.

“옹아. 보고 있지?”

-예, 형님. 어떻게 합니까?

“어쩔 수 없지. 대장 형씨 방침은 무섭다고. 날려버려.”

-예, 알겠습니다.

반대쪽 건물에서 저격을 준비하고 있던 옹 상병이 K-14 저격 소총 확대경에 눈을 갔다 댔다.

조준점이 천천히 이동해 침입자들이 올라오고 있는 폐차 장벽으로 옮겨졌다. 장벽 위에 침입자의 머리가 보인 순간, 소음기를 통과한 발사음이 픽, 소리를 내며 총이 미세하게 반동한다. 한 발의 사격에 한 사람이 그대로 뒤로 쓰러져 넘어졌다.

“뭐야! 야!”

뒤이어 올라온 두 사람도 뒤늦게 돌아서려 하지만 그전에 두 발의 반자동 저격총의 탄환이 두 사람의 머리를 꿰뚫었다. 깔끔한 사격이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사람을 죽이고도 감흥 없는 표정으로 옹 상병이 무전기를 들었다.

“클리어.”

그의 사격을 지켜보고 있던 스위퍼가 휘파람을 불었다. 몇 번을 봐도 훌륭한 솜씨였다.

옹 상병이 ‘애인’이라고 부르는 신무기는 지난주 원거리 수색 원정의 최대 성과였다. 특수부대 출신 생존자 폭력 그룹과 코스트코 물자를 두고 벌였던 전투.

그 전투로 캠프 연합의 무기에는 기관단총 세 정과 저격 소총 한 정이 추가됐다. 그리고 저격 총의 주인은 옹 상병이 됐다. 몇 번의 전투를 통해 정밀한 사격 솜씨를 인정받은 덕이었다.

영점사격 이후 소총 실전 사격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도 옹 상병은 깔끔하게 해냈다.

좀비 한 마리를 잡지 못해 어리바리하던 상병은 어느새 든든하게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스위퍼는 감탄하며 건물에서 내려갔다. 놈들이 끌고 온 좀비들을 처리해야 했다. 자동차 장벽은 나름대로 튼튼하게 설계됐지만, 너무 많은 좀비들이 몰리면 그대로 무너질 위험도 있었다.

한바탕 몰려오는 좀비들의 처치가 마무리되고 시체 태우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탁탁, 손을 턴 옹 상병이 읊조리듯 내뱉었다.

“역시 사람을 죽이는 건 기분이 별롭니다.”

“그건 그렇지.”

아무리 이런 사회라고 해도, 일방적인 무력으로 사람을 해치는 건 찝찝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리더는 이런 방면에서만큼은 단호하고 냉정했다.

무장해제 명령과 이후 수색 절차를 따르지 않는 생존자가 접근하면 예외 없이 죽인다.

삼 주 전, 한 침입자 무리로부터 위협을 받은 이후 생겨난 특단의 조치였다.

경계병이 넘어온 침입자들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다가갔다가 되려 습격을 당해 수색조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크게 다쳤다.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무장해제를 해야 하고,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수색절차를 위해 협조해야 한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라도 예외 없이 두 번의 경고 후 즉각 사살.

최근 들어서는 나타나는 생존자도 드물었지만 나타난다고 해도 경계선 안으로 들어와 캠프의 일원이 되는 수는 그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스위퍼가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경계선 안쪽에서 세리와 정환이 바이크를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미끄러지듯 바이크를 멈춘 두 사람이 헬멧을 벗고선 이륜차에서 내려와 다가왔다.

“오빠, 요한 오빠 못 봤어?”

“응? 뭐, 서쪽 경계선 확장 공사하고 있지 않아?”

“뭐야, 반대로 왔네. 이 오빠는 왜 무전을 쳐도 받질 않는 거야. 오빠도 늦지 말고 두 시까지 새빛 도서관으로 와.”

“아, 맞다.”

관리자 회의가 있는 날이었나.

스위퍼가 잊고 있었다는 듯 말하자 세리가 입술을 내밀었다.

“아무튼, 두 사람만 맨날 회의 까먹고. 회의 때마다 찾으러 다녀야 한다니까. 늦지 마?”

“엉. 알았어.”

“가자. 정환아.”

세리와 정환은 다시 바이크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변종 다윗과의 싸움 이후 2개월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캠프에는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간 제법 많은 전투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새로이 합류했다. 전투는 대부분 멋모르고 들어온 약탈자거나, 경계선 바깥 지역에서 수색 중 만난 다른 생존자들이었다.

캠프 연합은 점점 안정을 되찾아 여러 번의 전투에도 희생자가 거의 없었고 그마저도 새롭게 합류한 인원들의 객기에서 비롯한 희생이 대부분이었다.

캠프는 다섯 개가 되었고 수색조는 삼 개 조로 운영됐다. 새로운 조장으로는 스위퍼가 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장 큰 변화로 캠프 간 도로가 뚫렸다.

남동 공사지구에서 발견된 대형 지게차와 그라플 달린 집게 차. 두 건설기계의 등장으로 캠프 연합은 도로를 뚫고 아예 경계선을 정해 거대한 방벽을 쌓기 시작했다.

10톤 지게차로 차량을 옮기고 집게차로 옮겨진 차를 쌓았다. 큰 도로는 폐차장마냥 자동차로 방벽을 이중 삼중 쌓고 작은 골목골목마다 가시 달린 철조망을 치자 하나의 그럴싸한 경계선이 만들어졌다.

가끔씩 남아있던 좀비들이 기어 나오는 걸 제외하면, 경계선 안쪽에서 좀비를 발견하는 건 생존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 되었다.

세리와 정환은 열기가 아롱아롱 올라오는 아스팔트 도로를 내달렸다.

아무튼, 더워 죽겠는데 꼭 움직이게 만든다니까.

매주 월요일 두 시는 각 캠프의 관리자들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하는 연합 회의 날이었다.

다른 관리자들은 전부 캠프의 중앙, 새빛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수색조 조장들이 하나같이 말을 안 들어먹는다.

수색을 나간 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두 사람이 빠진 회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5분 정도를 달리자 멀찍이 요한의 모습이 보였다. 경계선에는 왜 나가 있나 했더니 경계선 확장 작업 중에 좀비 떼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한쪽에는 그라플 달린 집게 차와 지게차가 멈춰 있고, 아직 미처 막히지 않은 틈 사이로 좀비들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오토바이 소리를 들었는지 요한이 뒤돌아봤다. 달려오는 세리를 보고선 요한이 손짓했고, 건설기계 안에 들어가 있던 수색 조원 두 명이 내려와 그들 자리를 메우고 좀비를 막았다.

“오빠!-”

“어, 왜.”

“왜긴, 두 시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리고 무전기는 왜 자꾸 꺼두는 거야?”

“꺼둔 게 아니라, 시끄러워서 못 들었어.”

요한이 헌팅 나이프에 묻은 검붉은 피를 탁탁 털어내며 손을 휘휘 저었다. 세리의 뒤쪽에 있던 정환과 눈이 마주쳤다. 정환은 간단하게 묵례를 했다.

정환과는 지난주 조 편성 문제 때문에 약간 언성이 높아진 이후부터 아직도 어색한 감이 있었다.

“너는 왜 세리랑 다녀? 스위퍼는?”

“자유 시간이요. 형.”

아직도 앙금이 있군. 요한이 속으로 읊조렸다. 정확히 어떤 불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불만이 있어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닌데, 유독 이번에는 티가 많이 났다.

자신과 같은 조가 아니어서인지, 스위퍼가 조장이 된 게 불만인 건지.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이리라.

“어, 그러냐. 하진, 다녀올게. 나 없어도 되겠지?”

“물론. 다녀와라.”

“뒤에, 좀비 온다.”

요한의 말에 하진이 뒤로 홱 돌며 의수를 정면으로 향했다.

돔 형태의 둥근 의수가 좀비의 머리까지 올려지고, 아래쪽 고정쇠를 당기자 둥근 철판의 가장자리에서 날카로운 대검이 팅, 소리와 함께 쑥 튀어 나가 좀비의 머리를 그대로 관통했다.

그러고선 날붙이를 벽에 대고 누르니 다시 스프링처럼 들어가 딸깍, 고정됐다.

“매번 귀찮게 집어넣지 말고, 그냥 고정해서 쓰라니까.”

“이게 편해. 굳이 힘들게 휘두르지 않아도 알아서 쑤셔주니까 얼마나 좋은데.”

스프링 고정 버튼이 있는데도 굳이 저렇게 매번 집어넣는 건, 분명 새로 갈아 끼운 의수가 마음에 들어서일 거다.

마치 스마트폰을 바꾸면 온종일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사람처럼.

하진은 정말로 팔에 무기를 끼웠다. 지금에야 저렇게 기능이 추가되어서 평소엔 칼을 넣고 다닐 수 있었지만, 처음엔 그냥 의수에 칼날을 납땜한 흉기였다.

실제로도 하진은 제 팔에 흉기가 붙자마자 성능을 확인해보겠다며 한차례 좀비를 도륙한 바 있었다.

무지막지한 의수는 전투용도 말고도 다른 효과도 있었다. 그 특유의 근육질과 상남자 같은 인상에 더해 한쪽 팔에 날카로운 칼을 달고 다니니, 웬만한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공포를 선사하는 비주얼이 되어 버렸다.

파크타운 캠프 인원들이 캠프에 합류할 때, 하진의 비주얼 때문에 약탈자로 오해받아 일을 그르칠 뻔했다.

차라리 그냥 곱게 죽여 달라고 애원하던 그들이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던 건, 하진이었다.

본인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스프링 볼펜 같은데.”

하진이 스프링처럼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는 신무기를 벽에 대고 눌러대며 만족스럽게 내뱉었다. 요한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뭐 본인이 만족하면 됐지.

요한이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연합 안에서 자신의 위치는 여전히 절대적이었지만, 요즘의 관리자 회의는 뭐랄까 약간······.

골치가 아팠다.

* * *

새빛 도서관에는 이미 모든 관리자들이 모였는지 복도에 관리자들을 호위하는 생존자들이 다수 앉아 있었다. 그들은 요한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요한이 손을 들어, 앉으라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복도에서부터 사무실 문을 채 열기도 전부터 가타부타 떠드는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요한은 시작부터 머리가 아파져 오는 걸 느끼며 문손잡이를 열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요한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사무실 안에 침묵이 가득 내려앉았다.

회의 참석자는 수색 3조 조장 스위퍼, 마트 캠프 서준, 교사 캠프 안 중위, 병원 캠프 갑수,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파크타운 캠프 리더 마르코까지. 총 여섯 명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에 혁이 추가되어야 하지만, 그는 지금 장거리 수색을 나간 상황이었다.

요한이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날아와 박혔다. 부담스러운 시선이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흠, 아니야. 제일 바쁜 사람인 걸 아는데 뭘.”

“어서 오시오.”

다들 한 마디씩 인사치레를 건넨다. 요한이 자리에 앉자 서준이 근황을 물으며 서두를 열었다.

“경계선 확장 공사는 어떻게 되어 가냐?”

“거의 마무리단계입니다. 오늘내일 중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고생이네.”

그 뒤로도 캠프별로 간단한 상황 보고가 이어지고, 요한의 주도로 회의가 시작됐다. 요한은 미리 정리된 보고서를 눈으로 훑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첫 번째 안건은··· 연합의 이름에 대한 건이군요. 이거, 아직도 안 끝난 문제입니까? 지난번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던 것 같은데요.”

“이봐, 요한. 연합의 이름은 굉장히 중요해. 소속감이라는 건 결국 소속에서부터 생기는 거라니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제는 관리자들이 이름 후보랍시고 내놓은 것들의 질적 문제였다.

부천연합이니, 생존자 연합이니 하는 것들은 요한에게 강한 거부감을 일으켰다.

구원자들 따위의 거창하고 오글거리는 명칭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요한이 후보들을 쭉 훑어보다가 헛바람을 냈다.

파이브 캠프스는 또 뭐야. 아이돌 그룹인가. 환장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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