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내장이 갈기갈기 찢긴 듯 요한을 향해 걸어올 때마다 놈의 육신을 감싸고 있던 빌어먹을 철판 껍질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유효타다. 요한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러나 놈은 쓰러지지 않았다. 수명을 다한 듯 선 채로 축 늘어진 모습이었지만, 확실하게 확인사살을 해야 한다.
혹시라도 회복할지 몰랐다. 요한이 마지막 남은 수류탄의 안전클립을 제거하고 놈에게 다가갔다. 놈의 몸은 삐거덕거렸다.
요한이 다시 한번 놈의 눈에 칼을 꽂고 목을 젖혀 입을 벌리려는 순간, 놈의 긴 두 팔이 요한의 등 뒤로 돌았다. 지금까지 보다도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놈의 얼굴이 거대한 힘으로 요한을 밀어붙였다. 놈의 턱이 딱딱거리며 다가오더니 요한의 어깨를 씹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악!”
찍, 피부가 벗겨져 나가고 다시 한번 주둥이를 벌리는 그의 입속에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이 들어갔다. 요한은 비명을 참으며 두 손으로 놈의 턱주가리를 닫았다.
놈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저 폭발의 영향이 자신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라며 힘껏 놈의 턱을 밀어 올릴 뿐이었다. 몇 초 후, 팍!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회백색 안구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부들부들 떨리던 변종의 몸이 축 늘어진다.
요한은 놈을 밀어냈다.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괴롭혔던 변종의 시체가 힘없이 아스러진다. 시선이 변종으로부터 자신의 어깨로 옮겨 온다.
핏물이 눅눅하게 상의를 적셨다. 상처를 보지 않아도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절단이 가능한 부위도 아니었다. 이 위치라면 5분 내로 감염이 진행될 거다. 요한은 대검을 내려놓고선 터덜터덜 걸어 창문 너머 건물 안으로 들어와 담뱃불을 붙였다.
피식 웃음이 샌다.
처음부터 상처 없이 깨끗하게 이길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기엔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잘 싸운 것 같은데.
혼심의 힘을 다해 피해냈던 수많은 공격이 떠오르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죽는 순간 담배라도 피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요한의 정신이 끊어졌다.
* * *
쨍그랑!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요한은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설마 또 돌아온 건가?
한 번 회귀했으니 두 번 회귀할 수도 있다는 기대는 죽기 직전에 잠깐 하기도 했다. 하지만 뜨인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처음 회귀했던 것처럼 자신의 자취방이 아니었다.
탄약 중대 복지관 1층. 요한이 죽음을 직감하고 잠들었던 그곳이다. 요한이 시계를 확인했다. 작전 시작으로부터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건물 안, 반쯤 깨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좀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좀비가 되어가는 전조증상도 없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요한이 재킷을 벗고 물린 자국을 확인했다. 아직도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물린 자국도 명백했다.
좀비에게 물렸다. 아주 물리다 못해 물어뜯겼다. 그것도 모자라 그 위로 변종의 피를 잔뜩 뒤집어썼다.
그러나 감염이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불현듯 떠오른다.
면역?
면역이라는 개념은 현생과 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겪어본 바가 없었다. 전생의 자신도 분명히 좀비에게 물려 감염으로 죽었다.
그런데 어째서?
열 번도 더 감염되고도 모자란 상황에 자신은 살아남았다. 면역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혹시······.
과거와 달라진 것은 회귀해서 돌아왔다는 것.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요한은 섣불리 확신하진 않았다.
검증된 사실만 본다. 팩트는 변종 다윗에게 물어뜯겼으나, 감염되지 않았다. 감염되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 검증된 것이다.
면역이라는 체계는 우선은 배제했다. 다윗이라는 특수변종이 감염을 유발하지 않는 변이체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정말 운 좋게도 이번만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웠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변수가 존재하던가.
사실 세 가지 가설 중 어떤 경우더라도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가만 보면 악운과 행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행보가 가관이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마치 누군가는 자신이 죽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자신이 살기를 바라는 듯했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다윗의 시체가 여전히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요한은 두돈반 트럭이 세워진 곳까지 걸어갔다. 무전기는 조용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지났는데, 조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변종 다윗을 처치했으니, 십중팔구는 무사할 거다.
군용 트럭 근처에 하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사할까. 전투 때 들렸던 하진의 비명이 이명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요한은 고개를 두어 번 흔들고서는 재킷과 상의, 속옷을 벗고 어깨에 물을 뿌려 핏자국을 닦아 냈다. 속옷은 완전히 피가 굳어 쓸 수가 없어 보였다. 요한은 속옷을 수건 삼아 핏자국을 슥슥 닦았다.
핏자국이 사라지자 뜯긴 어깨의 자국이 선연하게 드러났다. 다른 사람이 보면 기겁할 만한 자국. 요한은 그 위로 새하얀 붕대를 둘둘 감은 뒤 재킷을 걸치고 붕대가 안 보이도록 완전히 잠갔다.
배낭을 메고 탄약고를 향하려던 요한의 발걸음이 멈췄다. 몇 방울씩 떨어진 바닥의 핏자국이 이쪽으로 향한 뒤 되돌아간 게 없다. 요한이 배낭을 내려놓고 트럭 몸통을 바라봤다.
‘설마.’
트럭 위로 올라와 본 요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짐칸에는 하진이 쓰러져 있었고, 그의 주변으로는 피가 낭자했다.
한쪽엔 난도질 되어 있다시피 한 그의 잘린 팔이 뒹굴고 있었다. 스스로 팔을 잘라내고 그 와중에 팔에 붕대까지 감은 모습에 혀가 내둘러졌다.
요한이 그에게 접근해 그의 몸을 두어 번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이번엔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미미하지만, 호흡이 붙어 있었다. 그의 이마에 손을 대자 손을 델 정도로 열기가 홧홧했다.
요한의 두 손가락이 하진의 눈꺼풀을 벌렸다. 흰색 눈동자. 감염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보다도 어이없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저 스스로 팔을 잘라내고 응급처치까지 하고선 감염에서 벗어났다.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정신 나간 터프함이다. 그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요한은 하진이 기대고 있던 트럭의 뒤 칸막이를 내린 후 그를 어깨에 들쳐멨다. 육중한 무게에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땀이 쏟아졌다.
힘겹게 도착한 탄약고는 전투가 이미 마무리되었는지 재호와 은정이 좀비 시체를 양쪽으로 치우며 길을 열고 있었다.
탄약고 주변을 산더미처럼 메운 좀비의 시체가 그 시간 동안의 혈투를 생생하게 밝혔다.
요한은 하진을 창고 한쪽에 내려두었다. 창고 안쪽에는 탄피, 탄창, 피 묻은 총기들과 여기저기 어지러워진 탄약들로 어수선했다. 한쪽 구석에는 수색 조원이었던 두 사람의 사체가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시체 두 구와 두 명의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뇌리에 설마, 하는 불안감이 일시적으로 차올랐다. 요한이 재호를 불렀다.
“재호야, 다른 사람들은?”
“동남쪽 철책에 골리앗이 나타나서 철책이 뚫렸어요. 그쪽으로 전부 움직여서 막고 있어요.”
“두 사람 외의 사상자는?”
“없어요. 뚫리기 직전에 스위퍼 형이 돌아왔거든요.”
요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좀비 웨이브가 끝난 것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예감하고 있었다.
대기를 울리는 좀비들의 하울링이 쥐죽은 듯 사라졌었으니까. 아마도 스위퍼 일행이 마지막 골리앗까지 처치에 성공했으리라.
그리고 지금쯤 뒤처리를 하고 있겠지. 요한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스위퍼, 요한이다.”
-어. 대장 형씨, 왜 이렇게 응답이 없어. 죽은 줄 알고 걱정했잖아.
“전투가 좀 격렬했어.”
-그래? 아무튼, 다행이네. 죽지 말라고. 난 대장 같은 거 부담스러우니까.
묘하게 걱정의 핀트가 빗나간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철책이 뚫렸다며. 상황은 좀 어때?”
-거의 다 끝나 가. 헐크 변종이 그냥 샌드백인 줄 알았는데, 확실히 변종은 변종이더라고. 괜히 다가갔다가 척추 부서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래. 서둘러. 빨리 복귀해야 해.”
-어, 다쳤어?
“나 말고. 하진이 부상이 깊다.”
-라져. 금방 갈게.
요한은 스위퍼와의 무전을 끝낸 뒤 곧바로 채널을 바꾸고 정환을 불렀다.
“정환아. 요한이야.”
-네, 형!
“별일 없지?”
-네네.
“미안한데, 마당 뒤쪽에 바이크 한 대가 있어. 열쇠는 내 서랍에. 지금 빨리 쉘터로 박 선생님 모시고 와.”
-······누가 다쳤어요?
요한의 말을 들은 정환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하진의 팔이 잘렸어. 응급처치에 필요한 건 전부 준비해달라고 해.”
-헉, 알겠어요, 형.
요한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장비와 탄약들을 대차에 싣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탄약을 소비했는데도 여전히 탄약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 예상대로, 좀비 웨이브를 세 번도 더 막을 수 있는 양이었다.
아쉬운 건 클레이모어나 수류탄 같은 폭발물을 거의 다 썼다는 사실이다. 여러모로 유용한 장비인데 애초에 탄약고에 보관되는 수량 자체가 한정적이었다.
요한이 땀을 뻘뻘 흘리며 탄약을 나르는 사이, 온몸에 피범벅을 하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을 한 조원들이 도착했다. 고작 몇 시간 새 몇 년은 폭삭 늙어 보이는 얼굴들이다.
“여, 대장 형씨!”
한 사람만 빼고.
조원들은 팔이 잘린 하진을 보자마자 아연실색했다. 특히나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싸워왔던 세리의 표정은 더욱 어두웠다.
감염되지 않았고, 빠르게 치료하면 괜찮을 거라는 요한의 희망 섞인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녀의 안색이 풀어졌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탄약들 싣자.”
길고 길었던, 그러나 고작 총 네 시간 남짓이었던 좀비 웨이브와의 사투가 끝이 났다.
그 유혈 사투 끝에 전리품으로 얻은 대차 네 대 분량의 탄약과 한 대 분량의 총기를 끌며, 수색 조는 길었던 원거리 원정에서 복귀했다.
* * *
쉘터에 도착한 조원들은 하나같이 쓰러져 잠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치에 다다랐을 터다. 스위퍼마저도 도착하자마자 옷가지를 집어 던지며 침구에 파묻힐 정도였으니까.
하진은 박재범 의사의 치료를 받고 위험한 고비를 넘기는 중이었다. 감염이 진행될 시간은 진작 지났지만, 과다한 출혈과 쇼크가 문제였다.
혈액 성분이 맞는 조원들은 기꺼이 그에게 혈액을 공급했다.
요한은 옥상에서 보초를 서며 앞마당에 세워 둔 대차를 응시했다.
두 명, 어쩌면 세 명의 목숨과 바꾼 캠프의 새로운 화력. 웬만한 변종과 웬만한 적대 조직에 대항하고 견줄 수 있는 화력.
원한다면 어느 곳이든 약탈할 수 있고, 어떤 조직도 와해시킬 수 있는 정도의 강력한 화력.
죽은 조원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희생으로 얻은 것의 대가가 상당히 값지다. 최소한 개죽음은 아니리라.
“후.”
피로가 마수처럼 몰려왔다. 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몇 번이나 애를 써야 했다.
“형.”
“아. 정환아.”
“제가 보초 설게요. 들어가 쉬세요.”
“12시간째 보초 섰다며. 가서 쉬어.”
“괜찮아요. 그냥 앉아 있는 건데요. 형이야말로 지금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이에요.”
사실이었다. 그와 대화하는 이 순간에도 피로도가 아득하게 밀려 들어왔다.
“그래. 부탁 좀 할게.”
“네. 형.”
요한은 거처로 내려오자마자 바닥에 머리를 대기가 무섭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