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뭐? 진짜로?”
“저렇게 타액을 질질 묻혀놨는데 감염되지 않으면 이상하지. 온다.”
요한의 경고에 하진이 사뭇 긴장한 얼굴로 탄통 뚜껑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렸다.
“이런 거로 막아낼 수 있을까.”
하진의 걱정은 합리적이었다. 한 방에 얼굴을 완전히 함몰시킨 공격이다. 그리 두껍지도, 넓지도 않은 탄통으로 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피하는 게 1순위, 막는 게 2순위야.”
피할 수 없을 때 막는다. 요한은 변종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놈과의 거리는 멀지 않다.
오십 미터? 백 미터?
아까 보급창고에서 탈출할 때보다 더 짧은 거리다. 그때보다 공격이 위협적이었으면 위협적이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
다행인 점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놈의 패턴과 약점을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다는 거다.
원거리 공격 시의 저 패턴. 탄환을 만들어내고 던지기까지의 짧은 지연시간은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다. 놈이 철 덩어리를 뱉을 때 주둥이를 벌리는 것도 공략의 키가 될 수 있다.
쐐액!
첫 번째 투사체가 던져졌다.
투사체는 요한을 향해 날아왔다. 요한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투사체를 스웨잉 하듯이 상체를 젖히며 흘려보냈다.
투사체에 묻어 있던 타액이 튀는 느낌에 요한이 인상을 쓰며 얼굴을 닦아 냈다.
변종이 다시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요한의 반격이 이어졌다.
탕, 탕! 소총이 불을 뿜어낸다. 다윗은 요한의 반격이 불쾌하다는 듯이 공격 준비를 하다 말고 다시 한번 괴성을 질렀다.
타격은 전혀 없어 보였다. 딱히 효과를 바라고 쏜 것은 아니었다. 놈이 철 덩어리를 뱉어낼 때까지 사격이 이어졌다. 몸을 푸는 듯한 산뜻한 사격.
놈의 두 번째 공격은 하진을 향했다. 하진은 요한이 한 것처럼 투사체를 피하려고 했으나, 그 속도에 발걸음을 떼지도 못했다. 적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 대신 들고 있던 탄통 뚜껑을 투사체의 궤적에 힘껏 갖다 댔다.
쩡! 하고 날카로운 파찰음이 들렸다. 임시방패가 움푹 들어갈 정도의 큰 타격이었다.
“크으윽······.”
하진이 침음을 뱉었다. 그래도 캠프의 에이스답게 제법 잘 막아냈다. 요한의 사격이 이어졌다.
‘한 번씩만 더.’
지금의 교전은 탐색전에 가까웠다. 하진이 놈의 공격 패턴을 익숙해지게 하고, 어느 정도나 대응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과정.
그런 그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두 번의 공격이 모두 하진을 향했고 그는 너덜너덜한 방패를 들어 올리며 그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번엔 다른 패턴을 확인할 차례. 요한의 말소리가 떨어진다.
“코너로!”
한 차례의 공방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놈의 사각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잠시의 소강상태. 소강상태로 몇 분이 지나도 놈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요한은 공방을 통해 두 가지의 사실을 추측했다.
하진은 놈의 공격을 버틸 수 있다. 하진 혼자만을 데리고 온 것은 절묘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변종 다윗은 공격하던 표적이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사냥감을 따라오지 않는다.
제 발로 내려와 주길 바랐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저 지붕에서 끌어내려야 했다.
그때 스위퍼와 혁이의 무전 소리가 들렸다.
-여기 정문, 탄약고 상황은 어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그쪽은?
-변종 한 마리 처리했고, 두 마리 남았어. 어, 정정. 세 마리째가 나타났네.
-그렇군. 수고해.
희소식이었다. 정문으로 간 일행의 상황은 일단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다. 정문의 시간이 충분하다면 조금 더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다른 조원들은 잘해주고 있었다.
“하진. 어때? 더 할 수 있겠어?”
“손이 아직도 얼얼한데. 해야겠지.”
“두 군데에 클레이모어를 설치할 거야. 그동안에 시간만 벌어주면 돼.”
“혼자서?”
“그래. 장례는 예쁘게 치러주마.”
“재미없는 농담은 집어치워.”
요한의 악의 없는 웃음에 하진이 인상을 썼다. 가끔 이 자식은 무서운 농담을 너무 진담 같은 표정으로 내뱉었다.
하진은 한쪽이 찌그러진 탄통 뚜껑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다 주변으로 시선을 던졌다.
“뭐 다른 쓸 만한 건 없나.”
요한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탄통 뚜껑을 그에게 건넸다.
“너무 무겁거나 크면 움직임이 제한되지. 최대한 피하려고 해 봐. 몸이 아니라 발, 전신이 아니라 상체를 움직여서.”
“말은 쉽지. 지금 바로 나가면 돼?”
“그래. 놈이 움직이거나 상황이 안 좋아지면 바로 무전치고, 내가 신호하면 놈을 향해 수류탄을 던져.”
“그러지.”
시작을 알리는 수신호. 하진이 천천히 코너에서 다시 돌아나갔다. 변종을 향해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요한은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ㅁ’자 모양의 건물. 지금 하진과 다윗이 교전을 벌이고 있는 반대편 코너에 클레이모어를 설치할 생각이었다.
폭발이 놈에게 큰 타격을 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잠깐의 틈. 충격이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었다.
코너에 도착한 요한이 클레이모어를 설치했다.
코너를 꺾기 전에 클레이모어를 설치하고, 놈을 유인해서 자신은 코너를 돌자마자 클레이모어를 격발하면 피해 없이 놈에게 화력을 집중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바로 충격에 멈춰 있는 놈에게 접근해서 결정타를 선사한다.
요한은 그대로 창문을 열고 복지관 안으로 들어갔다. 복지관 이 층. 이 바로 위에 변종 다윗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지붕 위에 올라가서라도 놈을 끌어내리고 싶지만 올라갈 방법도 없을뿐더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고지전은 놈의 싸움이었고, 자신의 싸움은 지상전이어야 했다. 빠르게 마지막 층까지 올라간 요한이 천장을 퉁퉁 두드렸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콘크리트 너머 다윗에게 충격을 주기 힘들어 보였다.
고민이 된다. 이게 맞는 전략인가. 그냥 중요한 카드 하나를 통째로 날리는 것뿐이 아닐까.
고민이 길어지는 와중, 다른 조로부터 무전이 들려왔다.
-두 마리째! 변종들, 너무 허약한데?
-여기는 탄약고. 전선이 위험해. 점점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 지원 가능한 사람 있어?
-기다려 봐, 동석이랑 재희 보낼게.
상반되는 목소리다. 한쪽은 너무 경쾌하고, 한쪽은 너무 음울했다. 요한은 동료들의 목소리에 결심을 굳혔다. 지금은 허황되어 보이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해 볼 때였다.
요한은 들고 온 철사를 걸만한 곳을 찾았다. 못질이 된 곳이든 환풍구든, 가스 배관이든 높은 곳에 철사를 고정할 수 있는 곳에 건물과 건물을 가로질러 철사를 연결했다.
한 줄, 두 줄, 세 줄, 마치 거미줄처럼 철사가 연결되고 해먹처럼 철사끼리 교차시켰다.
드르륵, 드르륵 의자 옮겨지는 소리가 분주했다. 팽팽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클레이모어의 무게를 견딜 정도의 받침판이 만들어졌다.
요한은 그 위에 격발방향이 천장을 향하도록 클레이모어를 올려두었다. 천장으로부터 20~30cm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클레이모어가 설치됐다.
설치를 완료하고 복도까지 걸어 나온 요한이 하진에게 신호했다.
“하진, 요한이다. 준비 완료됐는데, 그쪽 상황은 어때?”
-양호해.
“움직임은?”
-없어. 그대로야.
“좋아. 셋 세면 수류탄 던져. 맞추지 못해도 돼. 지붕 위로만 올려.”
눈대중으로 확인한 위치지만, 예측이 정확하다면 격발되는 곳이 바로 좀비가 있는 아래쪽일 터다. 격발과 동시에 수류탄으로 놈에게 충격을 준다.
하진의 공격이 놈에게 정확하게 들어갈 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꽤 높은 위치다.
아무리 그가 힘이 좋다고 한들 정확하게 맞추긴 어려울 터. 정확히 맞추지 못해도 괜찮다. 목적은 공격이 아니라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었으니까.
“하나, 둘, 셋.”
셋을 셈과 동시에 요한이 클레이모어 격발버튼을 힘껏 눌렀다. 쾅! 건물 안에서 쩌렁쩌렁한 폭발음이 들리고 뒤이어 지붕으로부터 연이어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요한이 연기를 헤치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 다윗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폭발 자체가 놈에게 타격은 입히지 못할지라도, 낯선 위협을 주기엔 충분했을 터다. 자극이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두 번의 폭발은 놈에게 혼란을 주기 충분했다. 다윗은 갑작스러운 진동에 당황하더니 건물 외벽을 타고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따라가!”
소리치며 달려오는 요한을 보며 하진이 내려오는 다윗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변종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놈은 스르륵 벽을 타고 내려오더니 하진이 채 접근하기도 전에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떨어져 있던 관사의 한 난간에 올라탄 변종이 다시 원거리 투척을 준비했다. 까드득! 철제 난간을 씹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하진, 멈춰!”
달려가던 하진이 곧바로 방어를 준비했다. 놈의 움직임이 너무 민첩해 지상에 발을 닿고 있을 때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네 발에 튀어나온 날카로운 발톱 때문에 건물 벽을 자유자재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런 식이라면 근접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요한의 예상이 빗나갔다. 놈을 상대하고 나서부터는 변수의 연속이었다.
‘도망친다.’라는 패턴은 처음 보았다. 변종을 포함한 좀비들은 그저 공격하고, 물어뜯는다, 외의 패턴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최악의 가정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만약 놈이 이대로 도주한다면?
도주해서 웨이브가 멈춘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최선의 결말이겠지만, 숨어서 계속해서 공격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놈은 그저 거리를 벌렸을 뿐 자신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쐐액!
생각할 틈도 없이 투사체가 날아온다. 복지관 지붕에서의 공격보다 먼 거리에서의 공격. 요한은 여유 있게 다윗의 투척을 피해냈다.
다윗이 장전하는 사이 요한은 점점 관사를 향해 접근했다. 어떻게든 변종의 공격 패턴을 바꿔야 했다. 공격 패턴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효타를 먹이는 방법.
요한은 다윗의 지근거리까지 빠르게 접근했다. 그에게 가장 익숙하고, 많은 연습을 했던 거리인 50m 지점까지.
관사의 테라스는 복지관 지붕에 있을 때보다 사격에 용이한 자리였다. 테라스에 매달리듯 서서 난간을 씹고 있는 지금이 적기였다.
천천히 조준점을 놈에게 갔다 댔다.
후욱, 후욱.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조준점을 미세한 지점까지 조정했다. 놈이 빠드득거리며 입을 오물거린다. 잠시 후 고철 덩어리를 뱉어내고, 곧이어 그것을 던지리라.
제 일신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피할 자세를 잡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요한은 순간적인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다소 위험하더라도 유일한 공격 시점.
모든 신경이 한쪽만 뜬 눈에 집중된다. 바늘구멍 같은 가늠자에 가늠쇠를 맞추고 변종의 주둥이를 향해 조준점을 겨냥했다.
한때는 그저 흐릿하게만 보였던 표적이 점점 또렷해진다. 마치 확대경을 단 것처럼.
놈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씹었던 고철이 툭 튀어나온다. 그리고 입이 채 닫히기 전, 바로 지금.
탕! 요한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총알이 슬로우모션처럼 날아가 놈의 목구멍에 박힌다. 명중과 동시에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그저 사격을 했을 뿐인데도 온몸이 운동 직후처럼 열기가 솟아올랐다. 몸이 달아오른다.
예상치 못했던 공격에 짧게 뒷걸음질 친 변종이 포효한다.
‘목구멍에 총알 박힌 건 처음일 테지. 이제 어떡할 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