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57화 (57/176)

<57화>

보급조의 앞에서 화망을 형성하고 있는 사격조 네 명의 안색에도 피로감이 가득했다.

팔다리뿐만 아니라 반동을 받아 내야 하는 어깨도 욱신거렸다. 정확히는 욱신거리다 못해 팔이 통째로 끊어질 것 같았다.

주변에는 흐트러진 탄피들이 쓰러트린 좀비 수보다도 더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 좀비들은 아직도 끝이 안 났다. 여전히 쉴 틈 없이 몰아붙였고 전선은 밀리지도, 당겨지지도 않고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약이 주는 매캐한 냄새, 좀비들의 썩은 피 냄새와 시체 냄새가 뒤섞여 마치 마약이라도 흡입한 것처럼 정신의 끈을 간당간당하게 흔들었다.

철컥, 철컥.

단우의 소총이 탄피가 걸렸는지 격발되지 않고 달각거렸다. 그가 측면의 혁이에게 제 상황을 공유했다.

“혁아, 나 총알 걸렸다. 총 바꾸고 올게!”

“어, 알았어.”

단우가 짧게 전달하고 곧장 총기를 쌓아 둔 곳 엘 트레이너로 달려갔다. 그리고 총기를 집으려는 순간, 엘 트레이너가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으아악! 뭐야?”

단우가 비명을 내질렀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소동의 범인은 다윗에게 원거리 공격을 당해 기절했던 명진이었다. 그는 한쪽 팔이 철사로 트레이너에 묶인 채 다가온 단우를 향해 남은 한 손을 허우적거렸다.

단우가 욕설을 내뱉으며 총기를 옆으로 던져놓고 얇은 과도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친구였던 놈이지만, 그를 애도할 시간조차 없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 또한 동료들이 좀비로 변하는 걸 수도 없이 목격한 생존자였고.

과도를 쥔 손에 힘을 넣고 놈을 향해 찔러 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그를 위험으로 몰아넣었다.

뚜둑, 하고 묶어 둔 철사에서 좀비의 손이 풀려버린 것.

졸지에 반동의 힘까지 얻게 된 좀비가 순식간에 단우를 덮쳤고, 단우는 좀비의 무게에 눌려 쓰러졌다. 땡그랑, 소리가 들리며 과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악, 아악!”

명진은 단우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자마자 그의 목을 물어뜯었다. 찌익, 뜯기는 살점과 함께 피가 튀었다.

그의 입에서 높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단우야!”

“으아아악!”

살이 찢기는 고통에 그저 비명밖에 지를 수 없었다. 그를 물어뜯는 명진의 입과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철사로 고정해두었던 명진의 손목 살갗이 다 벗겨져 있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피부가 괴사할까 봐 꽉 조이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불러온 참사였다.

탄약을 채우던 세리가 잽싸게 일어나서 좀비가 된 명진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경추를 깊게 찔렀다.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들었으나,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세리는 단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 표정은 더없이 망연자실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생경했다. 제법 오랜만에 느껴지는 충격이 낯설다.

수백 미터 앞에 있던 죽음과의 거리감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듯한 급격한 공기 변화가 살갗을 엔다.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버틴 것에 비해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다. 단우가 누운 채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숨을 쉬는 것 같기도.

“제기랄······.”

“······.”

총성과 좀비들의 괴성 속에도 그의 외마디 욕설이 또렷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누구도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지금도 좀비들은 몰아치고 있었고 그에게 위로는커녕 한 명이 빠져 더 전투에 집중해야만 했으니까.

“죽기 싫어, 씨··· 발··· 혁아, 나 죽기 싫다······.”

혁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 없었다.

위로는 주제넘을 뿐이다.

“언니······.”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는 세리를 보며 정은이 작게 그녀를 불렀다.

고통은 길고 애도의 시간은 짧았다.

감염이 명백한 단우의 모습을 더 이상 방관하며 지켜볼 수 없었다.

누가 봐도 감염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모습이었다. 피를 토하고 급격하게 피부가 괴사하기 시작했다.

세리는 일어섰다. 두 번의 실수는 있어서는 안 된다.

“아저씨, 미안해.”

세리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람을 죽이는 건 이번이 두 번째.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침략자들을 죽일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좀비로 변한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했다. 저 말고는 할 사람이 없었다.

요한이 건네주었던 리볼버를 꺼내 단우에게 겨냥했다. 본능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그의 얼굴 근처까지 갖다 대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달달 떨리던 몸이 크게 경련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머리 뒤쪽으로 검붉은 피가 새어 나와 창고 바닥을 적셨다.

“미안해.”

미안해. 세리가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왼쪽! 왼쪽에 셋! 탄약 부족한데, 보충 더 안 돼?!”

정문에서 혁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작 한 명 빠졌을 뿐인데도 벌써 좀비들의 전선이 몇 발 앞으로 다가왔다.

세리는 단우가 있던 자리로 달려가 그의 빈자리를 메웠다. 야무진 손으로 탄약을 보급하던 그녀가 빠졌으니 총알 떨어지는 속도는 지금보다 더 급속화되리라.

하지만 전면이 밀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전면이 밀리면 그대로 끝장. 탄약고 조원들은 전멸한다. 세리가 리볼버를 다시 허벅지께에 차고선 마세티를 꺼내 들었다.

“오른쪽은 내가 맡을 테니까, 총 쏘지 마.”

“아, 그래. 단우는?”

“죽였어.”

“···미안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인데.”

혁의 표정이 어둡고 음울했다. 마치 자신이 그를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양. 좌절한 실패자 같은 표정에 세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흥, 약해 빠져서 비실비실한 강아지상 하고는.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죽을상을 하고 있어?”

세리는 한 마디 툭 던지더니 마세티를 휘둘러 다가오는 좀비의 얼굴에 푹 찔러넣었다. 안와에 깊숙이 박힌 칼날이 좀비의 뇌를 손상시켰다. 세리가 발로 힘껏 놈을 밀어냈다.

“우리 걱정이나 해. 꼬맹이야.”

혁이 표정을 굳혔다. 그녀와 동갑인 건 둘째 치더라도, 그녀의 말은 십분 옳았다.

“총알!”

혁의 외침이 점점 다급해졌다.

탄약 보급이 늦어지며 점점 전선이 밀렸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왼쪽에 있던 재호도 총기를 뒤쪽으로 던지고 헌팅 나이프를 꺼내 들어 근접전을 하기 시작했다.

중앙 두 명은 사격으로 원거리에서 접근하는 좀비들을 타격하고, 사이드 두 명은 새어 나온 좀비들을 근접전으로 잡아 나갔다.

탄약고의 조원들은 유능했으나, 전선은 위태위태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어느 한쪽이 밀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혁이 고민 끝에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때마침, 스위퍼로부터 무전이 도착했다.

-두 마리째! 변종들, 너무 허약한데?

다행히 정문 쪽은 순탄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혁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에게 무전을 쳤다.

“여기는 탄약고. 전선이 위험해. 점점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 지원 가능한 사람 있어?”

* * *

하진과 요한은 갈지자 모양으로 부대 안을 내달렸다.

변종 다윗이 자리 잡은 건물은 ‘탄약 보급 임무 충실’이라는 짧은 표어가 간판으로 붙어 있는 약 2층짜리 복지관 건물이었다.

주변에는 건물들이 몇 개 있었으나, 전부 복지관 건물보다는 낮은 높이였다.

요한은 사각을 이용해 점점 다윗에게 접근했다. 챙겨 온 짐이 많아서인지 두 사람의 얼굴에는 호흡이 올라온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서 짐 풀고 전투 준비하자.”

요한은 복지관 앞마당의 두돈반 군용수송차 앞에 멈춰 가득 찬 배낭을 내려놓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작은 간이 전투용 배낭으로 바꿔 맸다.

“무겁군. 뭘 그렇게 많이 챙겼어?”

“이것저것. 준비물.”

요한의 배낭이 가득 찬 탓에 하진이 대부분의 탄약을 들고나와야 했다. 요한은 소매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 내며 천천히 배낭을 풀었다.

스위퍼 조의 출발은 자신들보다 10분 후. 이제 막 출발했을 터니 슬슬 변종의 시선을 끌어야 할 타이밍이다.

아니, 어쩌면 시선을 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놈도 우리가 이곳까지 접근한 사실은 아마 어렴풋이 느끼지 않을까.

요한이 신문지에 둘둘 싸여 있는 나이프 하나를 건넸다.

“이건 뭐야?”

“새 나이프. 안 쓴 거.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어.”

“재수 없는 소리.”

비상용 나이프의 용도는 명확했다. 하지만 하진은 비상용 나이프의 중요성을 듣고도 들고 다니지 않는 생존자 중 하나였다.

본인은 자신감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요한이 보기에는 객기에 가까웠다.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배낭 옆에 던지듯이 내려놨다.

“크레모아 설치할 줄 알아?”

“예비군 할 때 구경이나 해 봤지, 설치해본 적은 없어.”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이 들고 있던 수류탄과 하진이 들고 있던 탄약을 교환했다.

챙겨온 장비는 철사, 수류탄 다섯 개, 클레이모어 두 개와 간단한 의약품, 그리고 탄약.

그의 사냥 역사상 변종 한 마리를 잡는 것치고는 과한 장비긴 했지만, 그것으로도 안심되지는 않았다.

요한은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놈을 끌어내린다. 그런 다음 대인전투력과 전투패턴을 파악하고 약점을 확인하면 공략. 이 순서야. 디테일한 전략은 없지만 일단 최대한 안전을 일 순위로 생각하고, 네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바로 빠져.”

“걱정하지 마. 발목은 안 잡을 테니.”

“그건 알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넌 우리 캠프의 중요 전력이니까. 원거리 공격은 모르고 당하면 굉장히 위협적이지만 일단 놈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면 완전히 대응 불가능한 건 아니야. 우선 놈의 원거리 공격으로부터 익숙해지는 게 먼저다.”

“어떻게 끌어내릴 생각이지?”

“생각해 봐야지. 작전은 너 하기에 따라 바꿀 거니까.”

우선은 놈의 전력과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다윗이 캠프 파괴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해서, 근접 공격력까지 뛰어나리라는 법은 없다.

요한과 하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주변에 좀비들은 많이 보이진 않았다.

다만 반쯤 뜯어먹힌 채 감염되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좀비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한쪽 다리나 팔 등이 뜯긴 반쪽짜리 좀비들이 미처 탄약고까지 이동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요한은 위협을 제거하는 차원에서 다윗의 공격 사각지대에서 근처 좀비들을 향해 사격했다.

“가자. 열 걸음 정도 떨어져서 날 따라와. 사격하지 말고, 놈의 공격을 피하는 데만 집중해. 좀비가 나타나면 소리치고.”

“그러지.”

마침내 다윗의 시야에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은 마치 방관자처럼 지붕 위에서 캠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무지막지한 쇳덩이를 던질 줄 알았는데 놈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요한은 천천히 다윗과 눈을 마주친 채 복지관 주변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여유만만한데.’

요한이 소총의 노리쇠를 후퇴 전진했다. 첫발은 곧 위협 사격. 소총이 불을 뿜고, 대기를 가르며 날아간 탄환이 놈의 몸통을 때렸다.

끼에에엑!

다윗은 공격당하자마자 허공을 향해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크지는 않지만 날카로운 소음이다.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신경을 박박 긁어댔다. 이어서 변종이 그 특유의 날카로운 이빨로 철제 지붕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드득!

놈의 입안에서 뜯긴 고철 덩어리가 잘근잘근 씹혔고 이내 타액이 잔뜩 묻은 쇳덩이가 입에서 꺼내졌다.

“조심해라. 저거 스치기만 해도 백 프로 감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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