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골리앗의 신장은 그냥 큰 농구선수 정도였지만 덩치가 마치 스모 선수처럼 장대했다.
단단해 보이는 붉은 근육 위에 툭툭 튀어나온 혈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다행히 덩치 때문에 민첩성은 많이 떨어지는 듯 보였다. 놈은 앞에서 얼쩡거리는 좀비들의 트래픽 때문에 전진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앞의 좀비들을 짓밟고 으스러뜨리고 던지며 전진하곤 있었지만, 그런데도 역부족.
“가만, 한 놈이 아니네?”
눈에 보이는 덩치 큰 놈들이 못해도 세 마리였다.
놈들은 눈앞에 있는 좀비들을 계속해서 던져 댔다. 바닥에 떨어진 좀비는 그대로 머리가 터져 즉사하거나 팔다리가 하나씩 부러진 채로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끔찍한 광경이다.
“형씨들, 저거 좀 입구에 갖다 대 주고, 밑에서 지원 사격 부탁해. 유탄 조심하고.”
스위퍼가 검문소용 접철식 바리케이드를 가리키며 간단한 지시를 남기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더니 부대 간판이 붙은 붉은 벽돌 기둥을 향해 달려갔다.
세 사람이 ‘어어?’하는 사이 스위퍼가 기둥 측면을 박차더니 접지력을 이용해 탁탁 튕겨 기둥 위에 안착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고급스러운 파쿠르 기술이었다.
월업과 클라임업의 깔끔한 연결 동작.
스위퍼는 챙겨 온 수류탄의 안전핀과 안전고리를 제거하며 손목을 풀었다.
“그럼, 껍데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볼까.”
스위퍼가 수류탄을 가장 가까운 골리앗에게 던지고 재빨리 벽돌 기둥 아래로 매달렸다. 몇 초 뒤 다시 기둥 위로 올라온 스위퍼가 휘파람을 불었다.
“와, 터프한데?”
수류탄이 폭발한 장소 인근의 좀비들은 대부분 머리에 파편 하나씩 꽂고 쓰러져 있는 반면, 저 변종은 머리의 반절이 날아가 뇌가 덩그러니 보이는 상황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였다.
그저 잠깐의 비틀거림 뿐, 어느새 멀쩡히 서서 다시금 좀비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수류탄은 못 쓰겠네.”
스위퍼가 입맛을 다셨다. 폭발 때문에 좀비 파편이 너무 많이 튄다. 미세한 좀비 혈액들이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 상당히 거슬렸다.
게다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놈을 잡겠다고 무턱대고 수류탄만 던졌다가 입구가 붕괴될 수도 있었다.
다행인 점은 일반 좀비에 비하면 상당히 위협적이었지만 다윗처럼 피부가 강철같이 단단한 편은 아니라는 것. 입구까지 접근하지 못 하게만 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위퍼가 사격을 준비했다. 자세를 바로잡은 스위퍼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간 총알이 놈의 몸통을 관통했다.
명중했지만 정확히 원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체감 거리가 생각보다 멀었다. 조준점을 살짝 내리고 사격. 다리를 노리고 쏴도 아예 몸통에 맞거나 바닥을 때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흐음······.”
점점 다가오는 변종을 골치 아픈 얼굴로 바라보며 탄창을 가는 스위퍼. 자신을 향해 공격하는 스위퍼가 거슬렸는지 총알 세례를 받던 변종이 좀비 하나의 발을 집어 들어 스위퍼에게 집어 던졌다.
좀비 한 마리가 허공에서 이빨을 딱딱거리며 그에게 날아왔다.
스위퍼는 으앗! 소리를 내며 허리를 틀었고, 그대로 휘청거리다가 바닥으로 빙그르르 돌아 착지했다. 공격 패턴이 상당히 거칠고 무식하기 짝이 없다.
“난 스타일리시한 싸움을 좋아하는데 말이지.”
“형님, 괜찮아요?!”
그를 향해 세 사람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스위퍼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보였다.
“현역 형씨, 나 좀 도와줘야겠어. 생각보다 사격이 쉽지 않네. 나머지 형씨들은 계속 날아서 떨어진 좀비 정리해주고.”
“예.”
스위퍼는 아까와 같은 반복 동작으로 다시 기둥 위로 파밧, 올라간 후 멀뚱히 서 있는 옹 상병에게 손짓했다.
“형씨, 뭐해? 올라와.”
“네? 저··· 그······.”
“응? 왜?”
스위퍼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 못 올라가는데요··· 거길 어떻게 올라가요······.”
그처럼 팔딱팔딱 뛰어 기둥 위로 올라가는 건 무리였다. 저길 올라가려면 철조망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철문에는 좀비들이 손을 내밀고 허우적대고 있어 무조건 긁히거나 붙잡히기에 십상이다.
그렇다고 손도 안 닿는 2m 높이의 기둥을 사다리도 없이 뛰어 올라가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맨몸으로도 힘든 걸 어떻게 총이며, 탄약이며, 수류탄까지 들고서 올라갈 수 있는 건지.
“최대한 빠르게 달려와서 한 발로 벽을 발로 밟고 선다고 생각해. 몇 초간 유지하면 내가 끌어올려 줄 테니까.”
그는 마치 간단한 산수 셈하듯 설명했지만, 여전히 옹 상병의 표정은 어두웠다. 잠깐 바리케이드를 치워서 밟고 올라갈까도 싶었다.
“뭐 해? 어서, 컴 온!”
그래 까짓것, 뭐 위험한 일이라고.
옹 상병이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한 발을 디디고 아주 잠깐 머물러 있다가 뒤로 넘어갈 듯 손을 허우적거렸다.
어어, 하고 떨어지려는 그를 스위퍼가 그 손을 휙 낚아채 기둥 위로 끌어올렸다. 기둥 위에 올라온 옹 상병이 진땀을 흘렸다.
“헉······!”
철문 너머로 볼 때도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위에서 바라보니 더 가관이었다.
“대체 이게 몇 마리······.”
부대 밖에서부터 좀비의 해일이 몰아치고 있었다. 근처의 모든 좀비가 다 몰려들었다고 해도 믿길 만한 수였다.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오금이 저려온다.
“형님, 저희 죽는 겁니까?”
기둥의 넓이는 두 사람이 서기에 부족하지도, 여유 있지도 않은 넓이였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하면 그대로 좀비 풀에서 헤엄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팔다리가 조금씩 경련한다.
그런 상병의 마음을 아는지 스위퍼가 등을 팍! 쳤다. 옹 상병이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형님!”
“쫄지 마라고. 저기 덩치 큰 좀비 보이지? 저놈의 발목을 쏴서 날릴 수 있겠어?”
“해, 해보겠습니다.”
옹 상병은 사격 자세를 잡았고 스위퍼는 그를 엄호할 준비를 했다. 옹 상병이 서서쏴 자세로 변종 좀비에게 조준점을 맞췄다.
그러나 변종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일반 좀비들 때문에 다리 부분을 정확하게 겨냥하기가 어렵다.
“과녁이 안 보이지 말입니다······.”
“엉, 조금만 기다려 봐. 알아서 치워줄 테니까. 참, 이어플러그 있어?”
“아. 네.”
상병이 귀마개를 꺼내 스위퍼에게 건넸다. 이 정도로 지척에서 총을 쏘면 그가 소음에 충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슬슬 온다. 잘 봐. 조준점 내리지 말고.”
옹 상병은 한쪽 눈으로 계속해서 변종을 조준했다. 그때 변종이 양손으로 주변의 좀비들을 밀 듯이 치워버리고, 한 좀비를 들어 올려 던지기 위해 자세를 잡은 순간, 일시적으로 놈의 발목이 드러났다.
“지금!”
들이켠 숨의 1/3이 빠져나가고, 호흡이 멈춘다. 곧이어 천천히 당겨지는 방아쇠.
탕! 발사된 탄환이 정확하게 변종의 발목을 관통하고 뒤쪽 바닥에 꽂혔다.
“나이스 샷. 계속 쏴. 발목 날아갈 때까지.”
스위퍼의 지시에 따라 옹 상병의 사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놈이 집어 든 좀비를 던졌다.
조준하고 있던 옹 상병이 황급히 소총을 내렸지만, 이미 좀비는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상병이 저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
“으아악!”
스위퍼가 날아오는 좀비를 허공에서 옷자락을 잡아서 낚아챈 뒤 그대로 방향을 틀어 등 뒤로 떨어지게 유도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쫄지 마라고, 소총수 형씨. 확실히 엄호할 테니까.”
“알겠습니다아······.”
옹 상병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사격 자세를 취했다. 탕, 탕! 탄창 하나가 비워질 때까지 상병의 사격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몇 발이나 맞은 건지 세기도 힘들어질 즈음, 드디어 변종의 한쪽 다리가 끊어져 나갔다.
균형을 잃어 쓰러진 좀비 위로 일반 좀비들이 끊임없이 그것을 밟고 올라섰다. 놈은 금세 다시 일어섰지만,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도 연발 사격의 희생양이 되자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어야 했다.
“형씨는 총 진짜 잘 쏜다. 무슨 특등사수야?”
“에이, 그 정돈 아닙니다.”
대형 좀비 한 마리를 쓰러트리자 자신감이 붙었는지 옹 상병의 목소리가 점차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여전히 긴장감에 몸은 빳빳이 굳어 보였지만, 목소리가 떨리지 않은 것만 해도 발군의 발전이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사격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아마 형님이 힘드신 건 영점 조절을 안 해서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근거리는 웬만하면 맞추기 쉽지만 50m 넘어가면서는 영점이 맞아야 하지 말입니다. 남이 쓰던 총 쓰면 영점 안 맞아서 명중이 잘 안 됩니다.”
“그건 그렇지. 어쨌든 대단한걸.”
“헤헤. 감사합니다. 일반 좀비들도 처리합니까?”
“아니, 저건 놔두자구. 자기들이 스스로 길을 막아주고 있네. 요한네가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야. 천천히 시간 끌면서 저기 가까이 오는 놈만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잡자.”
“옛슴다.”
생각보다 최악의 사태는 아니었다. 요한은 정문이 뚫리는 상황까지 계산한 모양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쉽게 정문이 뚫리지는 않을 듯 보였다. 그의 말대로 골리앗은 크게 위협적인 변종이 아니었다.
‘웬만해선 저 철문도 무너질 것 같지는 않고. 날아오는 좀비만 조심하면 되겠군.’
좀비들이 눈앞에 보이는 먹잇감을 쟁취하기 위해 기둥 위로 손을 뻗거나 올라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허사였다.
스위퍼는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무전을 쳤다.
“여기 정문, 탄약고 상황은 어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그쪽은?
“변종 한 마리 처리했고, 두 마리 남았어. 어, 정정. 세 마리째가 나타났네.”
-그렇군. 수고해.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가.
스위퍼는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두 인원에게 외쳤다.
“여긴 둘이서도 충분할 것 같은데, 형씨들. 부탁 좀 해도 될까?”
“예?”
“이쪽 라인은 다 벽이 콘크리트라서 별로 걱정이 없는데, 산기슭 쪽으로는 방벽이 철책이라 좀비들이 너무 많으면 무너질 수 있을 거야. 혹시 좀비들이 몰린 곳이 없는지 확인해주겠어?”
“예. 그러지요.”
동석이 대답하고 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자신들이 없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보였다.
“그래. 조심하라구.”
스위퍼는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들어 보이곤 날아오는 좀비의 관자놀이를 허공에서 후려쳤다. 그의 모습은 마치 직구를 받아치는 홈런타자 같았다.
* * *
탄약고의 상황은 말 그대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네 명이 끊임없이 사격하는 통에 뜨거워진 소총을 몇 번이나 바꿨고, 그들의 화력을 유지해주기 위해 탄약을 보충하는 네 명의 전신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단지 탄약을 탄창에 끼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 쓰고 남은 탄창을 받아오고 새로운 탄창을 건네주는 것까지 그들의 몫이었다. 탄창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
세리는 묵묵히 바지런하게 움직였다.
보통 때 같았으면 자기도 요한을 따라 싸우겠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싸움 중에는 그에게 토를 달지 않는 게 그녀의 마음가짐이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을 하는 동안에는 그저 묵묵히 따를 뿐이었다.
땀에 절어 몸에 찐득하게 달라붙는 안감의 느낌이 찝찝하고 불쾌했지만, 불만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임을 반복했다.
“아! 젠장, 더워 죽겠잖아······.”
세리가 가죽 재킷을 벗어 집어던졌다. 도저히 더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가죽 재킷을 벗어 던지자 그녀의 몸에 딱 달라붙어 몸의 굴곡을 도드라지게 하는 흰색 면티와 땀에 젖은 속옷 라인이 은근하게 드러났다. 같이 작업하던 남자들이 흠칫하며 힐끔거렸다.
“그 와중에 동공 흔들리는 게 진도 3.0은 되겠다. 아저씨들. 여유 있어?”
“아, 아니.”
“눈 돌리지 말고 일하세요, 응?”
정은의 피식하는 웃음소리에 두 남성의 얼굴이 새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