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각각 다섯 발씩. 동시에 던져. 다섯 번째 터지자마자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 우리 나오는 거 보이면 보자마자 엄호사격해.
“라져. 셋 하면 던지는 거야. 둘, 셋!”
세 사람의 손에서 동시에 수류탄이 낙하한다. 반원 모양의 포물선을 그린 수류탄은 낙하와 동시에 굉음을 내며 터졌다.
파편이 불꽃처럼 산발하고 연기가 흙먼지를 동반한 채 솟아오른다.
스위퍼가 ‘이야호!’ 하는 감탄사와 함께 휘파람을 불며 두 번째 신호를 냈다.
“이게 몹몰이의 참맛인가! 둘, 셋!”
다시 폭발하는 수류탄들. 손맛이 짜릿하다. 흡사 물고기가 가득한 낚시카페에서 수조에 그물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같은 시각, 창고 안에 있는 요한 일행은 무장을 단단히 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폭발 때문에 구멍은 생기겠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요한이 목 아래로 내렸던 면제 안면마스크를 코까지 당겨 올렸다. 그러고선 안감을 찢어 세리에게 다가간 후 마스크처럼 코와 입을 감싸 밀봉했다. 요한을 보자 눈치 빠른 조원들이 따라 했다.
“폭발 때문에 공기 중 작은 좀비 살점들이 떠다닐 수도 있어.”
멀뚱히 서 있는 신입 조원들을 보며 요한이 설명하자 그제서야 남은 사람들도 황급히 예비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동하면서 쏘려면 조준 사격은 힘들 거다. 감각으로 쏜다고 생각해야 해.”
요한은 지시를 끝내고선 최전방에 섰다. 그 주변을 학익진처럼 수색 조원들이 쐐기 모양으로 자리 잡았다.
“셋.”
세 번째 폭발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완전히 명중했는지 창고 문이 격하게 흔들렸다. 이어서, 네 번째 폭발음이 터지고 몇 초 뒤 다섯 번째 폭발음이 터짐과 동시에 요한이 문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뿌연 안개와 파편처럼 이리저리 산산 조각난 좀비들의 파편이었다. 창고 앞 바닥은 검붉은 핏물로 찐득거렸다. 발을 뗄 때마다 내장과 살점 섞인 피가 쩍쩍 신발에 달라붙었다.
요한은 연기 속을 헤치며 총기를 담은 대차가 있는 곳까지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좀비들이 다가올 때마다 소총이 내는 쩌렁쩌렁한 발포음이 대기를 찢었다.
사위가 좀비들의 으르렁거리는 하울링 소리로 가득하다.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야 속에서 좀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기겁하면서도 침착하게 사격했다. 한 좀비에 총알을 낭비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만큼 급한 상황이니 제대로 사격하는 것만도 감지덕지했다.
대차에 도착하자마자 요한의 지시가 떨어졌다.
“세리. 정은. 차 끌어.”
소총 사격에 익숙하지 않은 두 명이 소총이 채워진 대차를 미는 역할에 배치됐다.
그리고 남은 남자들이 동그랗게 대차를 엄호하며 전진했다. 몇 분을 달리자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시야가 완전히 확보됐다.
오십 미터 앞에서 서서쏴 자세를 한 스위퍼 일행이 보였다.
세 사람은 침착하게 요한 일행을 피해 따라붙는 좀비들을 향해 지원 사격했다.
세 사람까지 합류하자 화력이 배가되며 좀비들과의 거리는 더 벌어졌다.
‘일차적인 위기는 안정적으로 벗어났다. 조원들의 작전 이해도도 좋고 어느 때보다 화력이든 전력이든 뒤지지 않아.’
쩌렁쩌렁한 발포음에 좀비들이 하나둘 쓰러질수록 정신이 점점 또렷해진다.
이전까지의 싸움과는 다르다. 요한의 주변엔 무장한 동료들이 있었다.
좀비 웨이브 때문에 사나워진 좀비일지라도 화기로 무장한 다수의 전투조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근접전에서 어리바리하게 움직이던 옹 상병도 총기를 쥐자마자 사람이 변한 듯 현역 군인의 사격 실력을 뽐냈다.
그는 침착하게 한발 한발 달려드는 좀비들을 쓰러트렸다. 그의 사격은 요한 자신보다도 더 명중률이 좋은 듯 보였다.
어쩌면 부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소총수를 보낸 안 중위의 안배일지도 모른다.
웨이브는 문제가 아니었다. 탄약고까지만 이동할 수 있으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부대 안에 있는 좀비가 수천 마리라고 해도 결국 끝이 있다. 수천 마리쯤.
탄약고에 저장된 탄약은 눈대중으로만 보기에도 좀비 웨이브 세 번을 거뜬히 막아낼 만했다.
변수는 변종뿐.
이 웨이브를 일으킨 게 어떤 변종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어떤 변종이든 까다롭기는 매한가지겠지만, 파훼법만 분명하다면 충분히 피해 없이 웨이브를 비껴갈 수 있으리라.
요한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탄창 다섯 번 이상 썼으면 총기 바꿔서 사격해! 스위퍼, 예비 탄창 던져.”
스위퍼가 챙겨온 탄창을 요한에게 던졌다. 요한이 탄창을 한 손으로 받아 갈아 끼운 후 뒷걸음질하며 다시 사격을 개시했다.
요한이 처리한 좀비의 수는 수색 조원 중에서 압도적이었으나, 사용한 탄창의 수는 가장 적었다.
한 발, 한 발, 침착하고 정확한 사격.
그때, 퍽!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요한의 바로 좌측 후방에 있던 명진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명진을 불렀다.
“명진아?”
“스위퍼! 숙여!”
요한의 외침과 동시에 스위퍼가 납작 엎드렸다. 스위퍼의 위로 묵직한 물체 하나가 바람 소리를 내며 지나가 그의 뒤에 있던 대차를 때렸다.
철제 대차가 내는 굉렬한 진동과 소음을 듣고 나서야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명진인 코뼈가 부러진 것처럼 얼굴이 함몰되어 있었고 코와 입에서 흘러나온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명진아!”
혁이 급하게 달려가 쓰러진 그를 감싸 안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잃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안면을 강타한 건 주먹만 한 쇳덩이였다. 마치 철판을 구겨 놓은 듯한 괴이쩍은 모습이다.
요한의 시선이 쇳덩이가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이곳에서는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1순위의 변종이 건물 지붕 위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 미터도 안 되는 작은 몸. 짙은 회색빛 섞인 붉은 피부. 긴팔원숭이처럼 다리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긴 팔.
변종 다윗.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최악의 변종이었다.
“진짜, 후. 빌어먹을.”
하필이면 지금. 이번 작전만 넘기면 넘치는 탄약으로 캠프의 전력이 단숨에 끌어올려 질 수 있었는데. 웬만한 변종이라면 상대할 자신이 있었는데.
안정을 바랐던 간절한 노력의 결과는 이다지도 가혹하다.
어째서 절대 바라지 않았던 최악의 최악만 벌어지는 건지.
그들에게는 좌절한 시간조차 없었다. 놈은 입을 오물거리며 이내 입속에서 뭔가를 뱉어 냈다. 주먹만 한 쇳덩어리가 놈의 손에 쥐어지고, 이내 손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머리를 보호해!”
저들에게 공격을 피하는 걸 기대할 순 없었다. 머리를 보호해서 즉사라도 막는 게 최선. 요한의 절박한 외침에 사람들이 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변종의 손에서 쇳덩어리가 날아갔다.
쇳덩이가 향한 목표는 스위퍼. 불행 중 다행이었다. 스위퍼는 아슬아슬하게 날아오는 쇳덩이를 피해냈다. 요한은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명진을 부축하는 혁에게 지시했다.
“부축하지 마. 감염됐을 수도 있어. 대차에 싣고 간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총기가 쌓인 대차 위에 명진을 올려두었다. 탄약고가 눈앞이다. 일단 투사체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했다. 이곳은 일방적인 놈의 사냥터였다.
“탄약고로!”
요한은 소총을 들어 다윗이 있는 곳을 겨냥했다.
땅! 땅! 땅! 세 발의 총알이 연속적으로 쏘아졌다. 그러나 놈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을 공격한 사냥감을 인지했는지, 놈의 시선이 요한을 향했다.
“스위퍼, 후방에 좀비를! 놈이 공격할 때 신호할 테니 듣자마자 굴러. 나머진 빨리 탄약고로 이동해!”
스위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종이 던지는 투사체를 피할 수 있는 건 자신과 스위퍼뿐이라는 생각에 가장 희생자를 적게 내는 판단을 내렸다. 요한은 스위퍼에게 좀비들의 발을 묶게 하고 변종을 향해 더 다가갔다.
사격으로 놈을 끝장내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시선 끌기. 시선을 끌게 해서 몇 번의 공격이라도 자신이 받아 내면 그걸로 되는 거였다.
놈은 요한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며 사격하는 요한을 보고서는 그를 향해 투사체를 던졌다.
날아오는 투사체는 빨랐지만, 총알이나 화살만큼은 아니었다. 요한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번의 공격을 피하며 소총을 난사했다. 팅, 팅! 유탄이 튕기는 야속한 소리가 울렸다.
이만하면······.
“스위퍼! 우리도 빠진다!”
인원들이 모두 퇴각한 것을 확인한 요한이 스위퍼를 불렀다. 때마침 변종이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투사체를 던지고 쇳덩이를 토해내기까지 약간의 딜레이. 놈이 가진 유일무이한 패턴이었다.
요한과 스위퍼는 전속력으로 달려 놈이 투사체를 던지기 직전 탄약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요한과 스위퍼가 들어오자 탄약고 문이 닫혔다. 일행은 어두운 탄약고 안에서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안에서는 혁이 명진의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명진의 상태는 심각했다.
마치 날카로운 철퇴에 얼굴을 얻어맞은 듯, 안면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체 뭐야, 저건?!”
“저게 변종이다. 다윗이라는 놈이지.”
“무슨 저런 괴물이-”
요한은 세리의 말을 잘랐다. 궁금한 게 많은 것도 당연하고 그도 천천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다윗이 나타난 이상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후- 시간 없으니 간단하게 설명한다. 놈은 다윗. 내가 본 변종 중에 유일하게 원거리 공격을 하는 변종이다. 놈이 던지는 건 쇳덩이를 뭉친 거고 표면이 날카로우니 웬만하면 맞지 마라. 처음엔 어렵겠지만, 타이밍만 잘 맞추면 피할 수 있어. 아무튼, 저놈을 끝장내지 않으면 이 웨이브는 끝나지 않는다.”
요한은 숨을 다시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놈은 그리고 변종을 부리는 변종이야. 놈이 나타나는 곳엔 필연적으로 골리앗이라고 부르는 변종들이 따라와.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높이가 2미터에 달하고 웬만한 철조망이며 쇠창살은 손으로 휘어버리는 자식들이야. 즉, 시간이 없어. 지체하면 정문이 박살 날 거고 거의 근방의 모든 좀비와 싸우게 돼.”
요한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낯빛이 점점 굳어갔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괴이한 생명체였다.
좀비라는 존재 자체도 납득하긴 어려웠지만, 대체 저 무지막지한 괴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요한의 설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놈은. 총탄이 안 먹혀.”
“······뭐?”
“쇠도 씹어먹는 놈이다. 피부가 쇠처럼 단단해.”
“미친··· 이건 명백한 밸런스 붕괴라고······.”
불만을 토한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생각은 똑같았다.
저런 걸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그나마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하진이 입을 열었다.
이미 변종과 한 번의 전투를 경험했던 하진과 스위퍼는 제법 표정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한이 저것도 상대해 봤다는 거겠군. 그래서 약점은 뭐고, 어떻게 처리했지?”
“처리?”
웬만하면 희망적으로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이번 질문만큼은 솔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몰라 약점 따위. 저놈이 나타난 캠프는 전부 무너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