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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53화 (53/176)

<53화>

요한으로서는 예상 밖의 시나리오였다. 정상적이라면 좀비 웨이브가 끝난 이 부대 내에서는 생존자가 존재하면 안 됐다.

그가 겪은 바로는 생존자가 남아있는 채로 웨이브가 끝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들은 맞지 않는 군용 피복을 입고 있었고, 피부는 꼬질꼬질했으며, 몸과 옷 여기저기에 피딱지가 덕지덕지 굳어 있었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창문 하나로 얼마나 오랫동안 생활해 온 건지 마치 썩은 물고기처럼 눈가가 퀭했다.

창고 내부에는 빈 통조림, 빈 캔과 벗겨진 봉지가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었고, 바닥은 심하게 그을려 있었다.

생존자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다 이내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호, 혹시··· 구조대이십니까?”

“구조대는 아닙니다.”

요한은 단호하게 말하고선 등 뒤의 일행에게 턱짓했다. 창고의 문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몇 분이 지나서야 냄새에 적응했는지 하나둘 사람들이 막았던 코를 떼기 시작했다.

수색조와 생존자들 사이에 묘한 기류의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생존자들이 주는 묘한 위화감과 불안감에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침묵을 깬 건 요한이었다.

“이곳에 얼마나 계셨지요?”

대답이 없는 그들. 대답을 회피하는 건지, 아니면 대답을 모르는 건지 알 수 없다.

“혹시 이곳 부대원들입니까.”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요한의 미간이 좁혀졌다.

답답한 공기 때문에 창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일행을 뒤로하고 요한은 창고 내부를 둘러봤다.

마실 거리는 조금 남아있었지만, 대부분의 식량은 동난 상태였다. 요한의 발걸음이 창고 안, 또 다른 문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무슨 문이죠?”

“아, 열지 마세요!”

한 생존자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세라 황급히 덧붙였다.

“화장실입니다··· 열지 않는 것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손잡이를 붙잡는 요한. 한 생존자가 소리를 지르며 요한에게 달려들었다.

요한은 짧은 고민을 끝내고 글록을 들어 달려드는 생존자를 겨냥했다.

‘형!’하고 부르는 혁의 외침을 무시하고 글록이 연달아 불을 뿜는다.

탕, 탕! 두 명의 생존자가 연달아 쓰러지고 남은 생존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요한의 권총이 천천히 그를 향해 움직였다. 그런 요한을 혁이 덮쳐 왔다.

“뭐야?”

“형이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야!”

“비켜, 시간 없으니까. 빨리 처리하고 나가야 돼.”

“형, 정말 이럴 거야? 아무리 처음 보는 사람이라지만 이런 법은······.”

요한은 말없이 그의 등 뒤 문을 열었다. 끔찍한 악취와 함께 밀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밀실 안에는, 쌓인 오물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인간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만 동그라니 남겨진 채. 혁이 아연실색한 얼굴로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벙끗거렸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

혁의 혼란 상태가 오래가자, 요한이 친절하게 부연했다.

“저 새끼들, 사람을 먹었어. 설명이 됐으면 비켜.”

“아니에요! 우리가 한 짓이 아니에요!”

남은 생존자가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혁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요한의 앞에서 두 팔을 벌렸다.

“잠깐, 아니라는데 저 사람의 말이라도 들어보고······.”

“비켜.”

“아니······.”

더는 기다려줄 시간이 없었다. 요한은 혁을 밀치며 권총을 발사했다. 벌벌 떨고 있던 생존자가 곧 몸을 쓰러트렸다. 굳어 있던 피웅덩이 위에 또 다른 핏물이 스며든다.

“주둥아리에 묻은 피라도 닦고 거짓말을 해야지. 누굴 머저리로 아나. 그리고 설령 이들이 직접 한 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어. 방관자도 살인자와 똑같아. 처먹었으니 지금까지 살아 있었겠지.”

“그래도··· 난 이런 식은 용납할 수가······.”

“용납?”

요한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동료가 아닌 자에게 하는 위협행위는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위험에 대한 정당방위로 친다. 캠프 규칙 잊었어?”

“······.”

“모두의 안전을 위한 규칙을 용납하지 못할 거면 떠나야지. 가. 말리지 않아.”

“······.”

“판단 똑바로 해라 혁아. 네가 무엇 때문에 구조에 목을 매는지, 누구의 짐을 지고 있는지도 아는데. 난 알량한 선비질로 일행을 위험에 빠트릴 생각이 없으니까.”

요한은 말을 끝내고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이곳엔 남은 볼일이 없다.

“일어서, 돌아간다.”

그리고 그때, 스위퍼로부터 무전이 도착했다.

-형씨, 언제 끝나?

“금방. 무슨 일 있어?”

-좀비들의 움직임이 좀 이상해. 어느 순간부터 따라오지 않아.

빌어먹을. 익숙한 느낌의 전조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생각을 끝마치기 무섭게 건물 밖에서 좀비들의 하울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좀비 웨이브다.

요한의 예상에는 없는 시나리오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생존자와 수색 조원 전체를 합쳐도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좀비 웨이브가 분명하게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왜?

자신의 경험상 좀비 웨이브는 그 에어리어의 마지막 생존자를 사냥하기까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 이들이 좀비 웨이브 당시에도 이곳에 있었다면, 좀비들은 이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들이닥쳤어야 맞다.

하지만 완전한 방호에 사람들이 숨어 나오지 않아 더 이상의 사냥이 불가능하다면, 그 대치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진다면, 그럼 좀비들은 천년만년 그들이 나오거나 죽기만을 기다리게 될까?

요한의 머릿속에 확신할 수 없는 하나의 가설이 생겨났다. 그가 겪지 못했던 가설.

좀비 웨이브에는 소강상태가 존재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웨이브가 끝나지도, 계속되지도 않는 상태. 놈들은 근처를 배회하며 이곳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끝나자마자 문을 열었다. 수많은 좀비가 창고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수백 마리, 아니 어쩌면 천 단위를 넘을지도 모를 끝이 보이지 않는 좀비들의 행렬.

문틈으로 보인 그 좀비 떼에 사람들의 눈에 경악이 실린다.

“지금 나가야 돼.”

요한은 말과 동시에 뛰쳐나가며 바로 눈앞의 좀비를 베어냈다. 그러나 순식간에 다음 좀비가 덮쳐온다. 웨이브 상태의 좀비들은 빨랐다. 빠르고, 집요했다.

수색 조원들이 재빨리 합류했으나 오히려 물밀 듯 밀어닥치는 좀비 떼에 전선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아악!”

한 조원이 핏물에 미끄러져 넘어진다. 그녀를 커버하기 위해 혁이 전선에서 빠지고, 전선은 다시금 뒤로 밀려났다.

이러다간 반드시 희생자가 나오는 상황. 뚫고 가기는커녕 여기서 전부 뼈를 묻게 생겼다.

“빠져! 창고로!”

요한은 달라붙는 좀비들을 떼어 내며 창고 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좀비들의 허우적거리는 손이 불쑥불쑥 들어온다.

다른 사람들이 문을 힘껏 미는 사이, 조원을 눕히고 되돌아온 혁이 그 손들을 잘라냈다.

“어떻게······.”

누군가의 절망 섞인 목소리를 시발점으로 사람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창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이제 어떡하지?”

요한을 향해 묻는 세리의 목소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제법 씩씩했다. 요한에게는 대책이 있으리라, 방법이 있으리라고 믿는 듯 견고한 신뢰가 엿보였다.

그 표정 때문에 당황한 티조차 낼 수 없었다.

요한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스위퍼에게 무전을 쳤다.

“스위퍼, 나야.”

-엉, 거기 괜찮아?

“아니. 비상이야. 그쪽은 어때?”

-이쪽은 좀비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어. 다 부대 안으로 기어들어 갔나 봐.

요한이 자그마한 한숨을 내뱉었다. 웨이브의 범위는 부대 안. 부대 밖의 인원들은 멀쩡했다. 불행 중 다행이다. 밖의 인원들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활로를 뚫어낼 수 있다.

도망칠 길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곳에 생존자가 자신들뿐인 이상, 지역을 벗어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웨이브를 일으킨 원인과의 전투는 불가피하리라.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상황. 변종과의 만남.

게다가 백주대낮에 움직이는 변종들에겐 아주 지랄 맞은 공통점이 있었다.

등장한 변종이 어떤 놈이든 상대하기 더럽게 까다롭다는 것.

‘탄약고로 이동해서 화력으로 제압하는 게 최선이다.’

화력은 충분했고 길은 존재했다. 요한은 흐트러지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자신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방법이 있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좀비들이 더 모일 때까지 기다려.”

요한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그제서야 화색으로 물들었다.

어쩌면 예상보다 수월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보다 상황이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요한은 우선 조원들을 안심시켰다.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이 먼저다. 어떻게든 탄약고까지만 갈 수 있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요한은 다시 스위퍼에게 무전을 쳤다. 활로를 여는 열쇠는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이 잘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잘 들어, 지금부터 너희가 우리의 구명줄이다.”

-오, 그래?

“지금 위치는?”

-대장 형씨, 구명줄에 너무 말투가 공손하지 못한······.

이 자식이, 급한 상황에 장난은-

요한이 말에 힘을 주며 다시 또박또박 물었다.

“위치는?”

-부대에서 9시 방향. 푸른색 지붕 건물 보이네.

“좋아. 지금 정문은 막혀 있으니까, 아마 좀비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빙글빙글 돌고 있을 거야. 동석이 공구 통 들고 있지?”

-응. 아까 가져간 노루발이랑 펜치 빼고.

“절단기랑 철사만 있으면 돼. 일단 철조망 자르고 부대 안으로 들어와. 다시 묶어두는 것 잊지 말고.”

-라져. 그다음엔?

“지금 좀비들은 죄다 보급창고 앞에 모여 있으니까 들어오자마자 곧장 탄약고로 달려. 중간에 변종 발견하면 바로 공유해주고.”

요한은 그 뒤의 작전을 차근차근, 그러나 너무 느리지 않은 속도로 작전을 설명했다.

* * *

같은 시각, 부대 밖에서 요한의 지시를 들은 스위퍼가 두 사람을 돌아봤다.

“들었지? 가자고, 제군들.”

요한의 지시는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흥미진진한 작전이었다. 스위퍼가 예의 신나 하는 얼굴로 철조망을 뜯기 시작했다.

단지 철책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도 긴장감 때문인지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철조망 안으로 들어온 세 사람은 전속력으로 탄약고까지 달렸다.

탄약고에 도착한 스위퍼 일행은 요한이 설명한 대로 탄약과 이번 작전의 핵심이 될 물건들을 다수 챙긴 후, 그가 말했던 포인트로 이동했다.

‘좀비들이 너희를 감지하고 달려들지 않도록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접근할 것. 좀비 웨이브 때는 조금만 가까이 붙어도 어그로 끌리니까 최대한 몸을 숨겨.’

대부분의 좀비를 북쪽에 몰아넣은 상황이었고 남은 좀비들은 보급창고 앞으로 몰려 들어간 상태였기에 탄약고에서 보급창고로 가는 길목은 제법 한산했다.

“어디 보자, 창고 옆 초소가··· 저기 있네.”

스위퍼가 안테나와 기관단총에 커버가 씌워진 초소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 사람은 은밀하게 탄약고 위로 올라갔다.

“준비됐어?”

-어. 시작해.

“크, 정말 바글바글하구만.”

요한의 작전은 단순명료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보급창고를 둘러싸고 있는 좀비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져 일행이 나올 길을 뚫는 것.

초소부터 창고까지의 거리는 다소 멀었지만, 초소의 높이 덕분에 충분히 요한이 지시한 창고 입구까지 던지는 게 가능했다. 꼭 입구 근처로 떨어지지 않더라도 수천 마리가 가득 찬 좀비 떼에 수류탄을 던져 대면 소음 때문에라도 충분히 빈틈이 생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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