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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50화 (50/176)

<50화>

혁이보다도 어린 막내 병사의 합류에 수색조원들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세리와 스위퍼는 옹옹거리면서 옹 상병을 놀렸고 옹 상병은 금세 귀가 터질 듯 발갛게 달아올랐다. 환영을 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만 놀고, 출발하자. 중위님. 수고하세요.”

“예. 참.”

“네?”

안 중위의 부름에 돌아서려던 요한이 고개를 돌렸다. 안 중위가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린다는 게 늦었습니다.”

요한은 그저 웃어 보였다.

수색조와 김 씨는 대량의 탑차를 끌고 중동을 지나 까치울로 넘어갔다.

지금의 방문은 쉘터를 캠프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까치울에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연합 캠프와 거리가 너무 멀기도 했고, 수색 활동을 하기에는 지리적으로도 불편했다.

새 캠프는 상동역 인근의 신축 전원단지를 봐 두었다. 탄탄한 울타리와 낙하식 물탱크가 있는 곳.

여차하면 굴포천에서 생활용수를 수급해 오기도 적절한 위치였다. 이곳을 위치로 잡으면 마트, 병원, 중학교와 전원단지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자리를 잡는다.

안정적인 구조다.

김 씨를 데려가는 것도 그런 의미였다. 수색 조원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 시설은 모두 옮겨져야 했다.

“1조는 탑차를 끌고, 2조가 호위한다.”

요한은 새로운 2조의 전력을 확인하기 위해 1조가 아닌 2조와 옹 상병만을 전투에 투입했다. 혁이 사전에 무언가 당부해 놓은 듯, 그들은 요한에게 협조적이었다.

“애리야, 왼쪽에 좀비 둘 온다!”

혁은 익숙하게 전투를 리드했다. 2조 개개인은 1조 조원들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숙련도가 있었다.

반면 옹 상병의 전투력은 약간 아쉬웠다. 착검한 소총을 무기로 쓰는 것도 어느 정도 움직임에 제한이 생겼다.

굳이 근거리 무기를 원거리 무기랑 같이 쓰는 게 거슬렸지만, 총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젊은 만큼 많이 경험하면 금방 성장하리라 믿는 수밖에.

“정지. 여기서부터는 긴장해.”

요한은 까치울 전원단지 앞에서 일행을 멈춰 세웠다. 전원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엔 요한이 설치해 둔 유리 조각 바른 낚싯줄이 반짝거리며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옥상을 통해 지나다녔겠지만, 어차피 며칠 묵고 버릴 공간이기 때문에 트랩과 좀비들을 제거해 두어야 했다.

“여기서부턴 절대로 맨손으로 다니지 마. 나한테서 앞서지도 말고. 발밑 잘 봐. 바닥에 깔린 건 첫 번째 장판을 빼면 전부 트랩이야. 박스 종이든 장판이든 풀더미든.”

“트랩? 무슨 트랩인데?”

“구덩이를 얇게 파고 대못을 거꾸로 박아 놨지.”

“······.”

“나무랑 나무 사이에는 낚싯줄 걸어놨으니까 옆길로도 다니지 말고.”

“낚싯줄은 또 왜?”

“유릿가루로 코팅해 놨어. 스쳐도 깊게 베여.”

대체 무슨 요새를 만들어 놓은 거야. 조원들이 경악했다.

“참고로 안에는 좀비도 많아. 다수의 좀비랑 싸우는 훈련 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지. 적당히 위험하고.”

그 외에도 요한은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이야기했다. 주의사항을 들으면 들을수록 조원들은 기가 질렸다.

듣기만 해도 웬만해서는 통과가 힘들어 보였다.

대체 안에 뭐가 있길래.

수색 조원들은 요한의 치밀함과 냉정함에 치를 떨었다. 적어도 이 사람과는 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요한이 신호하자 한바탕 혈투가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좀비 떼에, 이번에는 열외 없이 진형을 짜고 좀비들을 죽여 나갔다.

가장 정면에 있는 스위퍼와 세리가 사이좋게 가장 많은 좀비를 처리하고는 뿌듯한 얼굴을 했다.

마침내 요한의 캠프에 도착한 일행은, 그가 왜 이렇게까지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파 놨는지 한 번에 이해했다.

이 층짜리, 정확히는 반지하까지 삼 층짜리 전원주택은 깔끔하고, 넓었다. 특히 떠돌아다녔던 조원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집의 보존상태가 좋았다.

전투의 흔적도, 핏자국도 하나 없이 마치 홀로 아포칼립스를 피해간 듯한 모양.

흡사 펜트하우스에 온 것 같은 기분에 사람들은 기함했다.

“우와······.”

“침 떨어진다 세리야. 일단 다들 옷이 더러워졌으니 옷부터 갈아입고. 씻을 사람은 씻고.”

“나! 나!”

세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요한이 손가락으로 욕실을 가리키자. 세리가 누가 먼저 들어가기라도 할까 봐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화장실은 2층에도 작은 거 하나 있어. 옷은 옷장에 있는 티셔츠 아무거나 꺼내 입고.”

“오빠!”

세리의 비명 같은 목소리에 요한이 급하게 욕실로 달려갔다. 세리는 샤워기에 손을 댄 채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왜?”

“따, 따뜻한 물이 나와······?”

마치 감격에 빠져 눈물이라도 흘릴 모양새에 요한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간 따듯한 물은커녕 제대로 씻은 적도 없으니 저런 반응도 이해됐다.

“나, 감격했어. 오늘은 특별히 훔쳐보는 것도 용서해줄게.”

“닥치고 씻으쇼.”

조원들은 쉘터 여기저기를 구경하기 바빴다. 다른 방들은 대부분 생활용품이나 여갓거리로 차 있었고, 진짜 놀란 것은 반지하의 창고였다.

쉘터의 창고는 물자가 2/3 이상이나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물과 식량. 오히려 마트보다도 더 풍성한 모습이다.

마트의 물품 종류가 다소 단조롭게 느껴질 만큼 각종 통조림부터 비상용 전투식량까지 꽉꽉 채워져 있다.

아예 작정하고 수입 통조림까지 종류별로 모아 놨으니 그럴 수밖에.

“형, 이거 플레이스테이션도 돼요?!”

“되긴 하는데 워킹데드3 이랑 위닝 밖에 없어.”

“······.”

아무래도 위닝이 낫겠어. 조원들이 저들끼리 중얼거렸다.

“지금이야 완전 충전 상태니까 그렇다고 쳐도, 공급되는 전력이 센 건 아니니까 전기 아껴 써라.”

금세 거실 소파에는 대학생들이 북적거리며 몰려들었다. 하진은 킹사이즈 침대에 자리 잡아 드러누웠고 여자들은 따듯한 물이라는 말에 눈을 빛내며 화장실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한 명쯤은 이런 좋은 곳을 혼자만 알고 있었냐고 따질 법도 한데, 다들 마냥 좋은지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방방 뛰어다니기 바쁘다.

요한의 눈에 노트북을 켜는 스위퍼가 들어왔다. 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인터넷도 안 되는 노트북은 왜. 지뢰찾기 밖에 안될 텐데.”

“글쎄, 부하 된 도리로서 대장의 컬렉션과 취향을 알아보기 위함이랄까?”

요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스위퍼는 노트북에서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는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흐음, 이상하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때, 정환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참고로 요한 형 취향은 훔쳐보기고요. 스위퍼 형, 어딘가에 외장 하드가 있을 거예요. 찾아보죠!”

그만둬 미친 자식들아.

* * *

요한은 해가 지기 전,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철책과 쉘터 근처의 트랩들을 손본 후 되돌아왔다.

수색 조원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오랜만에 주어진 휴식시간을 만끽하고 있었고, 김 씨는 태양광 발전 키트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요한은 저녁 시간을 알리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1차 쉘터에서의 첫 식사를 기념하며, 간단한 술자리를 준비했다. 술자리라고 해 봐야 술은 맥주가 전부였으나, 자신이 쉘터로 데려올 첫 손님을 위해 준비해 둔 냉동고기가 있었다.

열여섯 명의 배를 채우기엔 무리라고 해도 오랜만에 섭취하는 생생한 기름기는 생존자들의 사기를 한껏 끌어올려 줄 터다.

아쉬운 점은 그 양이었다. 태양광 전력으로 대형 냉동고를 가동하기엔 역부족이었으니까.

그나마 박스 형태의 작은 냉동고라도 돌릴 수 있는 게 다행이다. 통조림이나 건식품이 아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신선한 고기.

지글지글 익는 고기를 바라보는 생존자들의 눈빛은 흡사 짐승과도 같았다. 입을 벌리고 고기를 바라보는 생존자들의 입에서는 당장에라도 침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고기다!”

괜한 분란을 막기 위해 고기는 정확히 개인별로 지급했다. 어떤 생존자는 일회용 접시 위에 담긴 고기를 보며 주책맞은 눈물을 보이는 사람까지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고기를 보며, 평화로웠던 때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한은 한 사람당 마실 수 있는 맥주는 두 캔으로 제한했다. 편히 쉬는 건 좋았지만, 너무 풀어져서는 곤란했다.

“오늘은 제가 경계를 볼 테니, 오늘까지는 푹 쉬시고 내일부터는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할 테니, 마음의 준비들 하세요.”

요한의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미친 듯이 고기를 흡입했다.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나서야 자리는 술자리 분위기가 났다.

세리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시대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흥겨운 모습. 다들 이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듯했다.

대부분 그 와중에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는 한결 풀린 편안한 분위기였다.

“대장님, 한마디 하시죠!”

세리가 스마트폰을 요한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그 유쾌한 모습에 요한이 절로 웃음을 지었다.

“좀 길게 해도 괜찮습니까?”

“어유, 얼마든지요! 우리 대장 오빠 잔소리라면!”

요한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몇 명의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호사가 누구 덕분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일종의 선망과 경외, 그리고 감사가 담겨있었다.

부담스러운 시선 끝에 요한이 섰다.

“마침 잘됐네요.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사람들은 요한이 하고 싶다는 말이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은 말을 꺼내기 전에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어떻게, 무엇부터 얘기해야 할까. 이들에게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짧지 않은 고요 끝에, 요한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세상은 망했습니다. 육 개월 동안 정부와 군대는 열심히 싸웠으나 패배했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그저 살아남기 급급할 뿐이죠.”

시작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미증유의 천재지변과 지리멸렬한 생존 싸움.

요한은 묵직하게 현실을 읽어나갔다.

요한이 입을 열자 조금씩 잡담하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모두 그의 말을 집중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저희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문명의 조각들을 조금이라도 간직하면서요.”

몇 명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러분. 저는 작은 목표가 있습니다. 살아남는 거요. 좀비와 식량난과 약탈자와 그리고 절망으로부터 살아남고 싶습니다.”

요한의 말은 담백했고, 담담했다.

“꿈 같은 이야기라는 것 압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기 계신 수색조 여러분은 저와 함께, 좀비를 없애고, 침략자에 맞서 싸우고, 식량난을 해결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새겨주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곳에 선두에 서서요.”

그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거운 주제였지만, 그의 말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마치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 온 사람도 그랬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그래서 여러분은 누구보다 강하고, 용감한 사람이길 원합니다. 뒤처지거나 동료의 발목을 잡거나, 위험을 자초하는 분,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적에게 칼끝을 겨눌 수 없는 분은 저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지금 이야기하세요. 수색조에서 빼 드리겠습니다. 자의로 오지 않으신 분도 계실 테니까요. 대신, 남는 분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우를 약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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