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49화 (49/176)

<49화>

요한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분명, 그날 느꼈던 기민한 감각이나 화살을 피할 때, 느껴졌던 전신의 세세한 감각은 자신도 놀라긴 했지만, 그저 죽음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 발악적으로 움직인 것뿐이라 생각했는데.

‘제삼자가 보기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군.’

요한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하진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정확히는 본인은 툭, 친다고 쳤으나 충격에 요한의 상체가 휘청였다. 정말이지 힘 하나는 더럽게 세다.

“뭐, 큰 의미는 두지 마라. 넌 리더니까 정확한 전력쯤은 알고 있으라는 의미에서 말해주는 거니까.”

“그래. 고마워.”

하진을 내보낸 후, 요한은 마지막으로 스위퍼에게 사흘 동안의 보고를 받았다. 그들이 있었던 위치, 인원 구성, 물자 상황과 겪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복귀하던 날 겪었던 바이크 집단의 습격까지.

요한은 스위퍼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진이 해준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가도 그의 악의 없이 방긋방긋 웃는 표정을 보면 있던 심각함도 사라지는 느낌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놈들과의 싸움은 어떻게 이겼지?”

“그냥, 팍! 하고 팍! 때려잡았는데? 순 약골들이잖아. 시간을 더 끌면 애들을 인질로 잡을 것 같아서 속전속결로 끝냈어.”

“흠······.”

“왜, 무슨 문제 있어? 형씨, 표정이 안 좋은데.”

“아냐. 아무것도. 고생했어. 나가 봐.”

스위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두각을 드러내는 유능한 동료였다.

행동은 가벼웠지만 생각하는 머리가 있었다. 기절해 있을 때, 착착 일을 진행해 놓은 것도 그랬다.

전투력은 자신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과거가 불투명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감수할 만큼 매력적인 인재였다.

‘어쨌든 주시할 필요는 있겠지.’

요한은 생각을 정리하고선 수첩과 볼펜을 꺼내 생존자 리스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원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만큼 다시 한번 연합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초기인 만큼 최대한 익숙한 사람들끼리 지내기로 하되, 병원 캠프 때 그랬던 것처럼 예비군 캠프 생존자 중에서도 한 명의 인원을 수색초로 충원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정환은 수색조로 뺀다. 마트 캠프의 리더였으나, 의례적인 리더였고, 실질적인 역할은 서준이 맡고 있었다. 굳이 의례적인 리더를 세워 둘 필요는 없었다.

요한이 완성된 캠프 조직도를 눈앞에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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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 캠프 조직도 *

[수색조 캠프-16명]

- 수색 1조 (7명)

리더 : 요한

조원 : 동석, 세리, 스위퍼, 하진, 정환, 군인 1명(예정)

- 수색 2조 (9명)

리더 : 혁

조원 : 혁과 함께 합류한 8명

[마트 캠프-11명]

- 리더 서준 외 10명

[병원 캠프-12명]

- 리더 갑수 외 11명

[교사敎唆 캠프-12명]

- 리더 안 중위 외 11명 (예비군 캠프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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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놓고 보니 벌써 네 개의 캠프와 쉰 명에 달하는 캠프 연합이 만들어졌다.

물론 딱 까 놓고 말해서, 아직은 내실이 없는 연합이다. 연합 전체의 유대감적인 측면도 그렇고, 개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능력치도 그랬다.

적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요한의 머릿속에 내실 다지기라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캠프 간 지속적인 접촉과 교감, 그리고 구성원의 훈련이 필수적.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순조로움 속 산뜻한 고민이다.

6. 변종- 다윗과 골리앗

캠프 구성과 향후 일정을 모두 정리한 요한은, 서준에게 각 캠프에 보낼 생존 수칙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캠프 내 8가지의 대원칙. 그리고 요한이 두 번의 생존을 통해 겪었던 좀비들의 습성들.

새롭게 합류한 사람들은 이 정보들을 보고 자신들의 캠프가 왜 무너졌는지, 어떤 걸 조심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위기가 닥쳤을 때, 얼마나 값진 정보인지도 알게 되겠지.

정보를 독점하거나 갑질할 생각은 없었다. 진짜 적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

서울 생존자 연합.

이번 전투에서 서생연의 간부를 한 명이나마 미리 제거한 것은 행운이었다.

만약 자신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백종수는 그대로 부천, 목동을 지나 상암까지 뚫고 들어가 정예 생존자 예순여 명을 데리고 서생연에 합류하게 되었을 거다.

이 작은 날갯짓이 어떤 태풍을 몰고 올지는 예측할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서생연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기 전에 싹수를 모두 제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한은 선택을 달리했다. 서생연은 갈기갈기 찢어 지워버리고 싶은 복수의 대상임과 동시에 가장 피하고 싶은 적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요한이 하는 캠프 분리, 조직 구조와 생존자 캠프끼리 병력 순환 등의 방식은 전부 서생연에서 하던 방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개백정은 일찌감치 좀비 웨이브의 발동조건을 눈치채고 캠프 연합을 구성했었다.

서생연의 조직 구조는 완벽한 계급사회였다.

모든 생존자에 서열을 붙인 성과에 따른 완벽한 상명하복 구조. 상위 서열의 생존자는 하위 서열의 생존자에게 어떤 명령, 어떤 요구도 가능했고 하위 서열은 어떤 요구라도 반드시 따라야 했다.

불복의 결말은 단 하나. 죽음뿐이었다.

서생연 내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부부도, 연인도 없었다. 오로지 서열과 명령, 복종만이 존재했을 뿐.

서열이 한 자릿수인지, 두 자릿수인지, 세 자릿수인지는 곧 그들의 혜택과도 직결됐다.

그들은 외부자를 서열 외로 취급했다. 서생연에 합류하고 싶은 사람이든, 그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든.

능력이 없어 개백정으로부터 승인과 서열을 받지 못하면 누구라도 서열 외 취급을 받는다.

서열 외는 처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짐승, 또는 벌레.

서생연의 리더 개백정은, 서열 외의 생존자가 구성원을 쳐다보면 눈을 뽑고, 구성원에게 말을 걸면 그 혀를 뽑았다.

절대적인 공포와 복종심, 그리고 절대적인 자유와 쾌락.

그것은 서생연이 사상 최악의 폭력조직이 된 배경이었다.

서생연에 첫 번째로 패해 사로잡혔던 삼 개월 동안, 그는 개백정에게 굴복하고 서열을 받기까지 많은 사람을 보고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전부 외웠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들.

저보다 아래 서열이면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겁탈했던 호색한부터, 저를 수없이 고문했던 간부, 유혹하던 여자 조직원, 백 명의 사람을 학살한 미성년 생존자, 자신이 탈출하던 날 때려죽였던 늙은 간부까지.

단 한 명도 잊지 않고 있었다.

요한은 명확하게 정리했다. 가급적 서생연과의 싸움은 피한다. 피할 수 없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언제든지 서생연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규모의 조직을 준비한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조우하는 최악의 경우에는 설령 준비가 덜 됐더라도 곧바로 2차 쉘터로 이동한다.

단, 그사이에 따로 떨어진 전 서생연 출신 인원들을 만나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반드시 죽인다. 설령 현재 악인이 아니더라도 예외는 없으리라.

요한은 털고 일어났다.

동료들은 더 쉬어야 한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이미 요한의 컨디션은 최상에 가까웠다.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은 도저히 성미에 맞지 않았다.

요한은 수색조를 소집하기 전, 전기 기술자 김 씨를 찾아갔다.

“아저씨, 혹시 태양광 발전판을 해체하고 다시 설치하실 수 있으신가요.”

“태양광 발전판?”

김 씨는 만능 재능꾼이었다. 단순히 전구를 켜는 수준을 넘어서 라디오, 무전기 등 통신시설도 제법 만질 줄 알았고, 한국전력 하청 업체에서 출장 공사를 뛴 경력도 있어 캠프에 제법 신기한 물자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네. 태양광 발전판이 설치된 곳이 있는데, 그걸 떼서 옮기고 싶어서요.”

“흐음······.”

요한의 질문에 김 씨는 다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서 해 봐야 알겠는데,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예. 그럼 잠시 수색조와 같이 외출 준비를 부탁드립니다.”

외출이라는 말에 살짝 긴장하는 김 씨. 요한은 그런 그를 안심시켰다.

“그리 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안전하게 모시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알겠어.”

“감사합니다.”

요한은 곧바로 무전기를 들어 송신 버튼을 눌렀다.

“수색조. 일하자, 10분 내로 주차장으로 모여.”

잠시 후, 수색조 인원들이 줄줄이 내려왔다. 세리는 내려오자마자 못 말리겠다는 듯 툴툴거렸다.

“아무튼, 쉬는 법이 없어요. 오빠는.”

“쉬러 갈 거야. 본격적으로.”

본격적으로 쉰다는 말에 조원들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일하자고 불러놓고서는 본격적으로 쉰다니,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다.

요한이 일행을 한 번 휙 둘러보고 말했다. 큰 위기를 무사히 넘겨서인지 다들 표정이 밝다.

“오늘은 상일중으로 가서 수색 2조 일행들 합류시키고, 새로운 수색조 캠프로 가서 편하게 쉴 거야.”

“새로운 캠프?”

“가보면 알아.”

아주 깜짝 놀랄 것이다.

요한은 슬그머니 웃었다. 그들에게 1차 쉘터를 공개하기로 한 것은 백종수와의 싸움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쉘터에는 아직도 수많은 물자들이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의문사했을 때, 고스란히 주인 잃은 물자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수색조 캠프의 존재는 연합 생존자들에게 아주 좋은 당근이 되어줄 거다.

* * *

요한은 교사 캠프에서 안 중위를 만났다. 안 중위는 요한이 건넨 캠프 수칙과 정리된 좀비의 습성들을 보며 감탄을 반복했다.

“그때 갑자기 막사 내 병사들이 좀비로 변하기 시작한 이유가 이거였어······.”

중위는 아포칼립스 초기, 대피소에서 있었던 전투들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연합을 유지하면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주신단 말씀이십니까. 우선은 수색조에 한 명을 지원해 주고 말입니까.”

“예. 협조 부탁합니다.”

중위는 고민했다. 지휘체계가 완전히 무너져버렸지만, 어쨌든 국가조직의 일원이다. 말은 동맹이라고 해도, 요한의 영향력이나 물자 등의 우위를 생각하면, 그의 휘하로 들어가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중위는 요한의 캠프가 가진 저력을 뼈저리게 느꼈고, 두려움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 지경이었으니까.

“혹시, 제가 가도 됩니까. 간부도 없이 병사 한 명만 보내기에는.”

“죄송하지만 중위님은 이곳의 책임자를 맡아 주셔야지요. 똘똘하고 용감한 병사 한 명이면 족합니다.”

“그럼··· 몇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요한은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로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동맹 관계인 것을 꼭 지켜주십시오. 두 번째로는 우리 부대 내의 상명하복 구조는 유지되길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상부와 접촉이 되면 국가의 명령을 우선으로 따르게 되는 부분을 양해 바랍니다. 캠프를 떠나 부대에 합류하게 되더라도.”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상황에도 중위의 요청은 의도와 목적이 명확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요한은 첫인상보다 후한 점수를 줬다. 그가 6개월 동안 살아남은 것은 그저 운만은 아니리라고 짐작이 됐다.

“좋습니다. 다만 인원들이 종종 섞여서 다른 캠프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는 부분들은 중위님께서도 양해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옹 상병. 네가 수고를 좀 해줘야겠다.”

중위가 한 명의 병사를 지목하면서 동맹은 깔끔하게 맺어졌다. 요한은 새롭게 합류한 옹 상병과 악수를 하고 수색 1조로 보냈다. 수색 조원들은 새롭게 합류한 동료에게 관심을 보였다.

“옹 씨라고?”

“넷슴다.”

“성 진짜 특이하다.”

“그런 소리 많이 듣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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