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요한이 군용 나이프를 들어, 왼손으로 손잡이 아랫부분을 받쳐 각목의 단면을 찌르듯이 막았다.
몇 센티미터만 벗어나도 빗나갈 공격. 나이프의 칼끝은 첨예하게 각목의 결을 꿰뚫었다. 부딪히는 반동에 요한의 손이 밀려난다. 요한은 그대로 충격을 버티지 않고, 흘리듯이 받아들이며 나이프를 놓는다. 나이프와 각목이 동시에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요한이 놈의 머리를 붙잡고 벽에 강하게 찍는다. 비명. 그리고 등 뒤에 느껴지는 하울링. 요한이 끝까지 허우적거리며 자신을 공격하는 놈의 어깨를 붙잡는다.
“으아아아!”
요한이 힘을 주어 놈의 어깨를 붙잡고 회전한다. 목과 이마의 혈관이 투둑 솟아오른다. 바로 등 뒤까지 접근한 좀비 무리에 던져지듯 놈과 좀비 무리가 부딪힌다. 가장 앞선 좀비가 백종수의 귀를 잡아 뜯는다. 찌익! 놈의 귀가 뜯겨 나간다. 이어 얼굴 가죽이, 옷이, 터진 옷 사이로 보이는 살점이 뜯긴다.
요한이 놈과 붙어있는 좀비들을 함께 걷어찼다. 어두운 골목길 쇼케이스. 좀비들의 해체 쇼가 시작됐다.
“헉, 헉······.”
요한이 그 모습을 보며 급하게 각목에 박힌 대검을 뽑아 들었다.
바로 눈앞, ‘T’자 골목의 반대쪽 길에는 수백 마리쯤 되어 보이는 좀비 떼가 시퍼런 안광을 뿜어 대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어망에 갇힌 물고기들처럼 모여 있던 좀비들.
좀비 떼로부터 도망갈 길이 막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위가 온통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먹잇감을 향해 우짖는 시체들의 벼랑 끝에서, 요한은 낙하하는 심정을 붙들었다.
백종수를 추격했고, 놈은 자신을 사지로 끌고 들어왔다. 절대로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듯.
이곳은 놈의 무덤이자 요한에게도 사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기껏 조심스럽게 쌓아두었던 금자탑이 모래성이 되고, 지난 시간의 노력과 행동들이 먼지처럼 흩어지기 직전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놈을 놓쳤다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에 살았을 테니까.
좀비들이 백종수의 시체를 뜯는 사이, 요한이 활로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양옆으로는 아주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이 높은 장벽을 만들었고, 뒤쪽으로는 셔터인지, 컨테이너인지 모를 철제 구조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창문이 있는 높이는 까마득했다. 반지하로 통하는 창문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판자로 막힌 채 못질이 되어있었다. 붙잡고 올라갈 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고, 콘크리트 외벽은 지지할 손잡이도 보이지 않아 희망의 여지조차 없었다. 날개가 달리지 않는 한 올라갈 방법이 없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로지, 요한이 손 뻗으면 닿을 만한 높이에 달린 작은 도시가스 계량기 함 하나. 그리고 그를 따라 달린 작은 가스 배관. 발바닥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면 꽉 차는, 자신의 무게를 견딜 수나 있을지 모를 연약한 생명줄뿐이었다.
요한의 시선이 다시 정면을 향했다. 차라리 좀비들을 뚫고 가는 것은 어떨까.
답은 불가능하다였다. 끝도 보이지 않는 좀비 떼를 뚫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워 보였다.
요한은 먹잇감 쟁탈전에서 밀려나 자신을 향하는 좀비의 머리를 나이프로 찌르고는 미터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던지듯 밀었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세 마리까지 미터기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백종수의 시신은 이미 갈가리 찢겨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팔다리를 뜯어낸 좀비들은 마치 바비큐 파티라도 하듯 우악스레 제 먹이를 음미했고, 그의 복부는 말리기 위해 배를 가른 명태처럼 완전히 갈라져 검붉은 내장과 피를 쏟아냈다.
요한이 치를 떨며 쌓인 좀비를 향해 도약했다. 세 구의 시체를 밟고 점프해서 벽을 한번 박찬 후 계량기 위에 착지한 순간,
두둑, 소리를 내며 붙잡은 배관이 휘어졌다. 요한은 휘청거리며 그 옆의 배관을 다시 붙잡고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요한의 발아래로 포식을 끝낸 좀비들과 굶주린 좀비들이 모여들었다. 놈들의 허우적거리는 팔이 요한의 군화를 계속해서 건드렸다.
이러다 자칫 발목이라도 붙잡히면 그대로 좀비 떼 속으로 끌려 들어가 처절하게 뜯길 상황.
설상가상, 무전기는 백종수와의 사투 중 떨어졌는지 몸 어디에도 없었다.
완벽한 외통수다.
조각난 백종수의 시체 조각이 자신을 비웃는 듯했다.
요한은 한 손으로 나이프를 휘둘러 자신에게 손을 뻗는 좀비들의 손목을 잘라냈다. 잡고 있는 배관이 끊어질까 나이프를 휘두르는 손길조차 조심스럽다.
팔을 잘라내고, 가까이 붙은 좀비의 얼굴을 찌르고 혹시 붙잡히기라도 할까 봐 다시 팔을 올리는 동작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계속되는 움직임과 열기에 흐른 땀이기도 했고, 위기 속 써늘한 식은땀이기도 했다.
요한은 나이프를 계속해서, 계속해서 휘둘렀다. 양쪽 팔이 모두 저릿저릿하게 아파져 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몇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고작 몇 분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끊임없이 눈앞의 좀비를 쓰러트리는데도 좀비의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듯했다.
한 장신 좀비가 쓰러진 좀비 시체를 밟고 올라와 요한의 발목을 덥석 잡았다. 요한이 흠칫하며 놈의 손목을 걷어냈다.
좀비들을 쓰러트릴수록 동족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는 놈들의 손길이 더 위협적이 됐다. 요한은 좀비의 머리를 공격하기보다는 팔을 잘라내 붙잡히는 걸 막기 급급했다.
하지만 이렇게 좀비들의 팔을 잘라낸다고 해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지?
사흘? 하루? 반나절?
팔의 근육이 끊어질 듯 고통스럽다. 그냥 놔 버리고 편해질까, 하는 나약한 생각이 전신을 지배한다.
요한은 그럴 때마다 땀에 절은 머리카락을 좌우로 흔들며 팔을 휘둘렀다. 팔이 떨어질 것처럼 아파져 올 때마다 배관을 잡은 손과 대검을 쥔 손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계속해서 팔을 휘둘렀다.
“후욱, 후욱······.”
눈앞이 아찔하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마치 일사병에 걸린 것처럼 어지러웠다. 도저히 들리지 않는 팔을 들어 올리며 요한이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질렀다.
“아아악!”
근력이 아닌 중력에 의한 내리침. 나이프 하나가 다시금 좀비의 팔을 떨어트린다. 요한의 주변에 팔이 멀쩡하게 달린 좀비가 없을 지경.
요한은 팔을 늘어뜨리고 등을 콘크리트 벽에 기댔다. 더 이상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온몸에서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렇게 죽는 건가.’
얼마나 오래 싸워왔던 건지 어둠이 내렸던 골목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온다.
아침이 밝아왔다고 해도, 나아지는 상황은 없었다. 여전히 요한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아끼지 말고 배 터지게 먹기라도 할걸. 괜스레 꼭꼭 숨겨 둔 물자들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터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준비를 해놓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지.
회귀하자마자 홀연히 떠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갔어도 됐었다. 아니면 믿을 만한 사람 몇 명만 챙겨서 떠나도 됐었고. 그랬으면 최소한 일이 년은 편안하게 살아남았으리라.
후회는 없었다. 고집인지 아집인지.
요한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었다가 깨면, 모든 게 끝나 있으리라.
“형!”
요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선이 소리 들린 곳으로 향했다. 반대쪽 골목의 끝, 아홉 명의 사람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며 좀비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형! 살아있어!?”
아홉 명 중, 단 한 명만이 아는 얼굴이었다.
건의 장례를 위해 캠프를 떠났던 그의 동생, 강혁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좀비들의 머리를 쳐내며 물살을 가르듯 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요한의 얼굴에 반가움과 화색이 돌았다.
“거 참, 자식이, 등장하는 타이밍 하고는. 죽지도 못하게.”
요한이 중얼거렸다.
* * *
철컥, 마트 옥상의 문이 열렸다. 세리의 시선이 불안감을 담아 출입구를 향했다. 문이 열리고 등장한 사내는 하진과 마트 생존자들이었다.
“아저씨······.”
“동석은?”
“모르겠어, 기절했는데 안 일어나. 밑에 그 자식들은?”
“세 명 남아있었는데, 전부 처리했어. 걱정하지 마라.”
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 전 들렸던 총소리가 적들을 처리하는 소리였나 보다.
세리와 동석은 의무실로 옮겨졌다. 하진이 도착하자, 서준은 적습이 끝났음을 직감하고 상황을 종료시킨 후 마트의 불을 켰다.
의무실에는 박재범 의사와 그의 응급치료를 돕던 박 노인이 화살이 박힌 정환을 치료하고 있었다. 마침 부목을 대고 드레싱을 끝냈는지 한숨을 돌리는 그들.
정환의 몸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기껏 감싸 놓은 붕대도 피에 흠뻑 젖어있었다. 한 손은 케이블타이로 침대 머리맡에 고정한 채였다.
“정환아!”
세리가 그의 부상을 보고선 경악하며 소리쳤다. 정환이 그녀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힘없이 웃었다.
“세리야.”
“으, 응?”
“오빠라고 불러야지······.”
“···뭐야, 너 멀쩡하네······.”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정환이 세리의 옷깃을 붙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자, 하진이 세리와 정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해후는 나중에 하고 일단 치료부터 하자. 박 선생님.”
박 선생은 동석의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선 그의 이마를 소독하고 소염제 주사를 놓은 후 다른 상처가 없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석에게는 큰 상처가 없었다.
반면, 세리는 자잘한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그 흔적들이 옥상에서의 혈전을 예상케 했다. 세리가 상처를 소독하는 박 의사에게 말했다.
“일단 묶고 치료하셔야 할걸요.”
“응? 그렇지만···.”
“괜찮아요. 묶어주세요.”
상처를 입으면 격리하거나 속박한다. 요한이 누누이 강조했던 생존법칙.
세리의 단호한 말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진이 세리의 몸을 의무실 침대 다리에 단단히 고정했다.
“아저씨. 너무 꽉 매는 거 아니야? 앙심 있는 거 아니지?”
세리의 말에 하진이 피식 웃고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요한도 오빠고 스위퍼도 오빤데 나는 왜 아저씨야.”
“어? 그게······.”
그녀는 자유로운 나머지 한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적이더니 헤, 하고 웃었다. 차마 얼굴 나이 때문에, 라는 말은 떨어지지 않았다.
“참, 그런데 요한 오빠는?”
의무실 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싸하게 식었다.
요한으로부터 연락이 없다.
알아서 돌아올 테니 먼저 캠프에 가 있으라는 말을 남긴 지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러잖아도 요한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의견과 이 어둠 속에서 나가는 건 자살행위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세리에게 그 말을 전할 수 없었다. 요한을 죽자사자 따르는 그녀에게 이 말을 전했다가는 한바탕 사달이 나고 말 거다. 혼자서라도 요한을 찾겠다고 나설 아이니까.
“일단 좀 쉬어. 넌 쉬어야 돼.”
하진의 말에 세리가 인상을 썼다.
“뭔데, 왜 말을 안 하는데? 아직도 연락 없어?”
누구도 대답하지 않자 세리가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의 무전기를 꺼냈다. 커다란 눈 속, 흑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요한 오빠, 들려?”
하지만 무전기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세리가 다시 한번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눌렀다.
“오빠, 오빠 안 들려?! 어디야!”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요한을 부르던 세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손목을 붙잡은 케이블타이에 걸려 주저앉았다. 케이블타이를 끊으려 낑낑대자 하진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놔. 오빠 찾으러 갈 거야.”
“너 아직 감염됐는지 아닌지도 몰라. 내가 멀쩡한 사람들 데리고 찾아보고 올 테니 쉬고 있어라.”
“됐어. 아직도 안 가고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건데? 내가 직접 갈 거야.”
그때 박재범 의사가 끼어들어 어설프게 웃었다.
“대화 중에 미안한데, 주사 좀 놔도 될까? 소독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