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46화 (46/176)

<46화>

요한의 몸은 조건반사처럼 일어나 한 좀비의 턱을 팔꿈치로 올려치고 바로 지척에 있는 좀비의 머리를 글록 아랫부분으로 후려쳤다.

시선을 빠르게 적의 우두머리를 향한다. 놈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자신을 향해 쇠뇌를 겨누고 있었다. 요한은 본능적으로 손에 쥔 물건을 그에게 던졌다.

쥐고 있던 물건이 놈의 안면을 강타한 것과 발사된 화살이 팔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거의 동시였다. 팔은 가죽 재킷이 찢겨나갔으나 그뿐이었다.

요한은 곧바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일 초, 놈의 손이 새로운 화살을 향한다.

이 초. 화살을 집은 손이 쇠뇌에 들어간다.

삼 초. 쇠뇌가 자신을 향한다.

사 초. 요한이 놈의 손을 걷어참과 동시에 화살이 발사되어 천장에 박혔다.

뻗어 나간 요한의 주먹이 괴한의 턱주가리를 때렸다. 괴한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듯하다가 곧바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멍키스패너로 요한을 후려쳤다.

요한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보호대로 공격을 막아냈지만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놈의 흉기가 허공을 갈랐다.

이번엔 요한이 뒤로 몸을 젖히며 놈으로부터 물러섰다. 멍키스패너가 바닥을 찍었다.

요한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반대쪽 허리춤에서 대검을 꺼냈다. 이게 마지막 무기. 리치나 무기의 효용을 봤을 때,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다. 요한은 심호흡을 했다.

그때, 놈의 입이 열렸다. 낮고 굵은 목소리라 스산하게 들려왔다.

“정말 이렇게까지 속 썩이게 될 줄은 몰랐군. 처음이야.”

요한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왠지 기시감이 드는 목소리였다.

“피차 위험을 무릅쓰고 싶진 않을 것 같은데. 휴전하는 게 어때. 어깨는 괜찮나.”

요한이 대답 없이 놈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보냈다. 감촉만으로도 좀비의 이빨이 가죽옷을 뚫었는지, 못 뚫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놈에게서 찰나도 시선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대치상황에서 적과 대화를 나누는 취미 따위도 없다. 하지만 요한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배신자의 존재.’

놈들은 마치 연합 캠프를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듯, 함정을 파고 움직였다. 단순히 조사와 짐작만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리라.

세작의 유무. 요한이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었다.

물론 잡아서 죽기 직전까지 몰아쳐 놓고서 고문을 할 생각이었지만. 요한은 놈이 이 대치상황을 두려워한다고 직감하고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무엇을?”

“우리 캠프가 연합인 거, 그리고 내가 리더인 것, 우리가 기습을 대비하고 있다는 것도.”

요한의 말에 복면인이 아하, 하고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더니 씩 웃는다. 복면 사이로 보이는 눈이 괴이쩍게 휘어진다.

“글쎄··· 말해줄까 말까.”

“됐어. 입을 열게 해주지.”

요한이 다시 나이프를 그러쥐었다. 사내가 바닥을 정면으로 들어 보인다.

“성질 급하군.”

그러고선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낸다. 그의 손에는 무전기가 하나 들려있었다. 사내가 반대쪽 손으로 무전기의 볼륨 조정 버튼을 돌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오빠 안 들려?! 어디야!

사내가 동그란 버튼을 돌리자 다시 목소리가 줄어든다.

“통신보안, 몰라?”

요한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무전기는 획득하자마자 채널과 주파수를 조정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사용하던 무전기라면, 기준주파수가 같아서 통신 장비를 조금만 잘 다룰 수 있는 자라면, 도청 감청이 가능할 터다. 과거 ‘서생연’과의 싸움에도 이것 때문에 굉장히 애를 먹었었다.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적이 도청까지 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겠냐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자신은 다르게 생각했어야 했다. 이건 멍청하게 방심한 제 실책이다.

‘아직도 부족하다.’

요한은 자책했다. 그 자책을 신경 쓰지도 않는 무덤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원래 우리의 목표는 너희가 아니었어. 몇 주 전부터 백화점을 노리고 있었지. 딱 실행 며칠을 앞두고 선수를 뺏겨 버렸지만.”

요한을 바라보는 괴한의 시선이 상서롭지 못하다. 백화점 조폭 무리가 무너지는 과정은 사내로서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슬슬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싶던 참이었다. 때마침 총기 몇 정을 지닌 목표물을 발견하고 주변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먹잇감을 뺏긴 사냥꾼의 타겟이 다시 포식자를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사냥감이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백종수는 제 턱을 쓰다듬다가 요한이 경악할 만한 말을 내뱉었다.

“서울 생존 연합이라는 곳을 아는가.”

요한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요한은 ‘서울 생존 연합’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놈을 기습했다. 쏘아지는 대검이 놈의 허벅지를 스치고, 다시 긋듯이 올려친다.

쩡! 하고 멍키스패너와 부딪히는 나이프. 거대한 힘에 손이 저릿저릿하다. 놓치지 않으려 손아귀에 힘을 꽉 주지만, 대검은 야속하게도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다시 휘둘러지는 멍키스패너 를 피해낸 뒤 놈의 두 다리를 손으로 걸어 넘어뜨렸다.

마운트 포지션. 요한의 주먹이 놈을 강타했다. 이가 부러지고 피가 튈 때까지 두들긴 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복면을 벗겼다.

퉁퉁 붓기 시작하는 얼굴이었지만, 요한은 단번에 알아봤다.

수백 번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비열한 얼굴.

서울 생존 연합 수색 2조 조장. 백종수.

굳이 서열을 따지면 서생연에서 아홉, 열 번째쯤 위치한. 서생연의 행동대장과 같은 인물. 그를 직시한 요한의 표정이 일렁거렸다.

“네놈.”

백종수는 자신이 바닥에 깔려 위기상황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는지 으하하, 웃는다.

“너도 들었군. 그 라디오 방송.”

“라디오 방송?”

백종수의 피 터진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간다.

“완전한 약육강식의 세계. 능력 있는 자에겐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좀비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그곳.”

이어진 말은 충분히 어지러운 요한의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지금 서울 생존 연합으로 가는 중이다.”

꼬여있던 실타래가 한 번의 손짓으로 풀리듯 수수께끼가 풀린다. 놈들이 계속해서 이동했던 이유, 이 난리 통에도 저렇게 눈에 띄게 행동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요한의 머릿속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놈은 미래에 서생연의 핵심 간부가 될 싹이다. 만약 자신이 방향을 틀어 이곳에 자리를 잡지 않았다면, 놈은 이곳에서 백화점 무리를 작살내고 그대로 서울로 들어가 ‘개백정’의 휘하에 들어갔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요한이 3번째 캠프로 마트에 도착했을 때, 마트에 있던 사람들은 백화점의 조폭 무리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자신의 기억에도 백화점 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었으니까.

제 개입으로 현실이 바뀐 거다. 백종수가 H백화점 생존자들을 죽이고, 무기들을 챙겨 서울로 향해야 했던 과거가.

그러고 나서 백종수는 서생연의 행동대장으로 수많은 생존자들의 목숨을 앗아갔겠지.

부하들의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고 살아남는 놈들만 추려서 데려가는 건 전형적인 개백정과 서생연 간부들의 방식. 바로 이자가 최초로 시작했던 방식이다.

요한이 놈의 목을 쥔 두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가장 시급한 건 백종수를 죽이는 것. 놈을 살려 보내면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다. 죽여야 한다. 이놈만큼은 절대로 살려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힘껏 목을 조르지만, 목까지 단단하게 근육으로 뭉친 놈은 꺽꺽대며 괴로워할 뿐 쉽사리 죽어주지 않았다. 요한이 주먹을 내려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주먹질.

요한이 떨어진 대검을 쥐어 놈의 숨통을 끊기 위해 옆으로 손을 뻗는다. 그 순간, 놈의 손이 요한의 옷깃을 잡아끈다.

이마와 이마가 부딪히는 충격에 눈앞이 번쩍거린다. 놈이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한 손으로 요한의 턱을 붙잡고 바닥에 찍는다. 요한이 비틀거리며 놈에게서 떨어진다. 다시 세 걸음 거리가 벌어진다.

바닥에 부딪힌 이마가 화끈거렸다. 이마에 뜨거운 땀 같은 게 맺혀 땀을 닦기 위해 상박을 들어 쓸어올린다. 비린내와 함께 찐득거리는 피가 묻어난다.

퉤, 백종수의 입에서 붉은 피가 뱉어진다. 요한이 손에는 여전히 대검을 쥔 채 바닥의 멍키스패너를 발로 차 멀리 내보냈다.

요한이 멍키스패너를 발로 차 보내자마자 백종수가 바로 몸을 틀어 도망쳤다. 놈은 건물 옆 파이프를 붙잡고 수직 낙하했다. 쿵. 바닥에 착지하는 소리가 묵직하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전투의 피로도 상당하다.

모든 건 견딜 수 있었다. 이마의 상처가 문제였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감염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치료할 시간이 없다. 놈을 쫓아야 한다. 불길한 죽음의 기운이 스멀스멀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서생연 수색 2조 조장 백종수.

놈의 얼굴을 본 순간 이미 요한의 머릿속엔 이성이 날아간 뒤였다.

놈은.

저 개자식은 동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제 가장 친했던 동료의 손발을 묶어 좀비들이 있는 구덩이로 던졌다.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산 채로 뜯어먹히게 만들었다.

연인이었던 생존자를 보면 남자를 줄에 매달아 좀비 구덩이에 던져놓고 연인이 뜯어먹히는 광경을 보며 오열하는 여자를 강간했다. 제발 연인을 살려달라며,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여인을 무릎 꿇리고 정말 무슨 짓이든 했다.

그게 놈의 방식이다.

죽음조차 편하게 맞지 못하게 하는 더러운 개자식. 죽어가는 자의 절규를 음악 소리마냥 즐기는 짐승.

그에게 당한 동료 중에선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여인도, 친동생처럼 아끼던 동생도, 반년 가까이 힘을 모았던 친구도, 친한 형도, 아버지 같던 어르신도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그에게 죽어갔던 동료들이 올올히 떠오르며 온몸이 싸늘하게 식는다. 단 하나의 생각만이 몸을 지배한다.

백종수를 죽인다.

놈을 살려 보내면, 결국 언젠가 자신에게 그 사나운 이빨을 들이댈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문 사냥감을 절대로 놓친 적이 없다. 만약 그를 그대로 서생연으로 돌려보내면, 언젠가 서생연은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회귀 전 서생연과의 길고 긴 싸움 당시, 자신의 캠프는 여의도였다. 그리고 서생연은 3년이 지날 때까지도 서울 밖을 나오지 않았다.

반드시 후환을 없애야 한다. 하늘이 내려 준 절호의 기회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회귀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의 손에 아스러진 동료들의 복수를 하고 후환의 싹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요한은 파이프를 타고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무릎이 욱신댄다. 골목 사이로 놈의 뒤꽁무니가 보였다. 요한은 두개골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며 추격했다. 정신없이 뒤쫓았다.

초여름 밤의 더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열기가 뭉근하게 달아오르고 호흡이 달려온다. 어두운 골목길, 끝이 보이지 않는 추격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좀비들. 요한은 미처 튀어나오는 좀비들을 처리할 새도 없었다. 그저 길을 뚫으며 놈을 쫓을 뿐이다.

놈의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다. 절뚝거리며 뛰는 놈과 전속력으로 달리는 요한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또다시 앞을 가로막는 좀비를 어깨로 밀치고 길을 막은 좀비의 머리를 붙잡아 벽에 찍는다. 깨진 날달걀처럼 터진 좀비의 머리에서 질철거리고 끈적한 액체가 손에 묻어 뚝뚝 떨어진다.

호흡이 가빠져 온다. 가빠져 오는 호흡만큼 놈과의 거리가 점점 줄어든다.

얼마나 달렸을까. 눈앞에 갈림길이 보인다. ‘T’자 모양의 갈림길에서 놈은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들어갔다. 요한이 그 뒤를 바짝 뒤쫓았다.

요한이 골목에서 방향을 틀자마자 나타나는 막다른 길.

백종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각목을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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