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45화 (45/176)

<45화>

세리가 소리를 지르며 괴한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괴한은 눈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세리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고선 그녀의 발을 잡아당겨 허공에 팔을 휘두른다.

퍽! 무거운 주먹이 세리의 얼굴을 강타했다. 스치듯 맞은 공격이었지만 스친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바닥에 철퍼덕 엎어진 세리의 시선에 사내가 던져두었던 나이프가 들어왔다. 세리가 손을 쭉 뻗어 나이프를 집으려고 허우적거렸다.

닿을 듯 말 듯, 그녀의 중지에만 나이프 끝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이 개 같은 년이······.”

사내가 욕설을 내뱉으며 뒷주머니에 넣어 둔 권총을 찾았으나 소란 중에 떨어졌는지 주머니에 권총이 없다. 권총에 시선이 팔린 사이 세리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살짝 풀렸다. 세리가 나이프를 덥석 움켜쥔다.

곧바로 상체를 일으킴과 동시에 발을 붙잡고 있는 손목을 향해 전력으로 내리찍었다.

“아악!”

피가 튄다. 콱, 하고 놈의 손목을 관통한 뒤 바닥에 박힌 나이프 주변으로 새빨간 선혈이 흘러내린다. 세리가 힘 빠진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과 사내가 바닥에서 총을 잡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사내의 손에 들린 리볼버가 발포됐다.

그러나 전혀 엉뚱한 방향.

세리는 곧바로 동석에게 달려가 쓰러진 동석의 품에서 권총을 집어 들었다. 원래는 소총을 들고 있어야 했지만, 정환과 임무를 바꾸며 권총으로 바꿔 소지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소총을 들고 있었고, 그게 놈들에게 넘어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괴한은 아직도 시야가 돌아오지 않았는지, 아니면 완전히 눈이 멀어 버렸는지 허둥지둥거리며 허공에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눈과 손목에서 피를 흘리는 끔찍한 모습.

세리는 저 리볼버에 남은 탄환 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단 한 발만 낭비하면 이제 놈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놈도 그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지 권총을 겨누고 이리저리 움직이고만 있었다.

세리는 놈이 남은 한 발을 쏠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납작하게 숙인 채 조심스럽게,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거의 지척까지 다가갔을 때, 그의 등 뒤에서 노리쇠를 당겼다. 딸깍, 소리에 흠칫한 괴한이 총구를 급하게 소리 난 방향으로 돌렸지만,

탕! 세리의 권총이 발사되는 게 먼저였다. 정확히 미간을 꿰뚫은 총알. 괴한의 몸이 뒤로 무너진다.

“잘 가, 사이코패스 쓰레기.”

세리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여기저기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동석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세리는 동석에게 다가갔다.

충격에 의식을 잃기는 했지만, 피를 흘리지도 않았고 숨도 붙어있었다. 괴한의 야구방망이에 묻은 피는 그의 피가 아니었다.

“여기 옥상 경계조. 세리야. 1층 듣고 있어?”

-어, 세리야! 무슨 일이냐, 괜찮고?

서준의 목소리였다. 세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습을 당했어. 두 명 죽였는데 동석 아저씨가 부상을 당했고 나는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 도와주러 올 수 있어?”

-바로 가고 싶은데 지금 주차장에 놈들이 있어. 내려오면 안 돼. 조금만 기다려.

“요한 오빠는? 오빠, 듣고 있어?”

-요한네는 지금 연락 두절이야.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세리의 인상이 구겨졌다.

* * *

요한은 셋을 셈과 동시에, 건물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그가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진이 전속력으로 폭죽을 향해 접근했다.

핑, 하고 들려오는 파공음에 하진이 몸을 멈칫했다. 자신이 달려나가던 방향으로 화살 한 발이 날아와 꽂힌다. 등골이 써늘하게 식는다.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공격.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한다. 바닥에 강력접착제라도 묻은 듯 두 발이 천근만근이다.

발을 떼야 해.

하진이 이를 악물고 발바닥을 뗐다. 오직 폭죽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진 폭죽을 주운 하진은 곧바로 1루를 향해 송구하는 3루수처럼 폭죽을 집어 던졌다.

폭죽이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손바닥이 뜨겁다.

곧바로 정환에게 되돌아온 하진은 정환을 부축했다. 좀비들은 끝없이 몰려들었다.

한 손엔 정환을 부축하느라 총도 쓰기 어려운 상황. 화살은 언제 쏟아질 줄 모른다.

그냥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몸을 강렬하게 지배한다.

“달려!”

그때, 귓가에 들리는 요한의 외침. 요한은 좀비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허공에 총을 난사했다. 탕, 탕! 가장 근처에 있는 좀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총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한다.

하진이 나이프를 그러쥐었다.

믿자. 지금은 그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하진이 걸음을 옮겼다. 요한에게 선물 받은 쿠크리 대검을 휙휙 휘둘렀다. 좀비들이 목 채로 뎅겅뎅겅 썰렸다.

전력으로 휘두르다 보니 몇 번이나 더 휘두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체력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금세 하진의 전신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요한은 하진이 전진하는 걸 보며 주변의 좀비들을 모두 사격했다. 탕, 탕! 예비 탄환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눈을 들어 폭죽이 던져진 곳을 바라본다.

자신들을 외통수로 몰아넣었던 폭죽의 빛은 이제 놈들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몇 초 동안 요한의 총구가 불꽃 사이를 꿰뚫었다. 한 괴한이 폭죽을 발로 차 아래로 떨어트리고선 자신을 향해 쇠뇌를 정조준했다. 요한이 눈을 부릅떴다.

몸이 마치 신경 단위로 움직이는 것처럼 예민하다. 늘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된다. 위기상황을 알리는 위험신호를 육신이 보내온다. 저릿저릿하다. 장전, 발사의 순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인다.

핑! 쇠뇌의 화살이 발사된 순간, 요한의 눈에 화살이 거대하게 보였다. 흡사, 정지화면처럼.

피할 수 있다.

요한이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다. 화살이 눈앞을 스치듯 지나간다. 아슬아슬하고, 느리게. 요한의 눈동자에 30cm도 떨어지지 않은 화살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화살을 피해내고 나서야 시침이 원래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요한은 쏜살같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새카만 어둠이 깔려있다. 피아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

손전등을 켤 수는 없다. 자신의 위치만 드러날 뿐이었다. 요한은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계단 아래로 몸을 숨기고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기를 30초 동안 반복했다. 홍채가 빠르게 어둠에 순응해간다.

적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눈앞에서 들려온 좀비의 하울링. 요한의 손이 허리춤을 향해 나이프를 꺼낸 뒤, 벼락같이 앞으로 쏘아진다. 코앞에 있던 좀비 한 마리가 아스러진다.

“어디 갔어!”

목소리를 통해 적의 거리를 판단한다. 요한이 몸을 돌려 정면의 계단을 향했다.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흑색의 꿀렁거리는 움직임.

요한이 일그러진 공간을 따라 조준점을 조정했다.

탕! 글록이 불을 뿜고,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탄창 하나가 빌 때까지 사격이 계속됐다. 몇 발이나 명중되었을지 모르겠다.

들린 비명은 네 번.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요한은 탄창을 교체하고 몸을 돌려 쏜살같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놈들이 있는 곳은 이 층.

이 층 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겨있지 않았다. 문고리를 전부 부숴둔 탓이다.

이 안에는 몇 명이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심해의 아귀처럼 먹잇감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포식자들.

적이 몇 명이든, 요한은 혼자였다. 혼자만의 싸움이다.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이미 무전기는 음소거로 해두었고 상처를 입은 정환과 하진은 캠프로 돌려보냈다. 결국, 이곳을 정리하는 것은 제 몫이다.

이곳을 침략한 집단에도 서열이 있고 정예인원이 있을 거다. 놈들이 인원을 운용하는 것을 보아, 이곳에 있는 자들이 조직의 핵심 구성원인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쇠뇌를 이용하는 솜씨부터가 달랐다. 병원에서 만난 자들과는 달리, 이곳 괴한들의 한 방 한 방은 위협적이고 정확했다.

이 문을 연 순간 찰나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다. 전신에서 위험신호가 계속해서 저릿저릿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캠프를 버리고 홀로 도망치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마음의 소리가, 나에겐 저들을 구하고, 책임질 의무가 없다고. 네 목숨 연명이 우선 아니냐고.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습격을 늦춘다.

저도 모르는 새.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동료를 위해 위협을 감수하는 일을. 그러지 않기로 다짐해놓고서는.

아니. 그때와는 다르다. 자신이 이 싸움을 하는 것은 그들이 동료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정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힘들게 쌓아 올린 기반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것 때문일 것이다. 요한은 자위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되새김질했다.

정을 줘 버리면, 마음을 주면 잃었을 때의 타격이 너무 컸다. 상실 앞에 담담해져야 했다.

그저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게 싫어 위협을 감수하는 것뿐이다.

요한은 적들이 서 있는 문 앞에 한 발짝 다가섰다. 문고리는 박살 나 있었고, 문 건너에는 저를 노리는 침략자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터다.

요한은 불완전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위에서부터 묵직한 둔기가 내리쳐진다.

요한은 들어가려던 몸을 뒤로 빼며 물러섰다. 동시에 글록이 불을 뿜고, 쓰러지려는 괴한의 몸을 붙잡아 자신의 앞에 세웠다.

괴한의 등 뒤로 화살이 날아와 박힌다.

탕, 탕!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다시 사격한다. 연이어 쏟아지는 발포음. 공간을 바리케이드처럼 가로막고 있는 선반 양쪽 측면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괴한들이 연이어 쓰러진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그저 적을 죽인다는 하나의 문장만이 부유하듯 둥둥 떠다녔다.

생각보다 먼저 몸을 움직인다. 판단보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요한은 선반을 돌아가는 대신, 문 위의 난간을 붙잡고 두 발로 선반을 밀쳤다.

와장창!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선반이 넘어지고 깨진 통유리를 통해 거리를 바라보던 세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요한은 화살을 막기 위해 왼손으로 붙들고 있는 괴한을 최대한 높게 들어 올린 채 차례대로 사격했다.

목표는 정중앙에 있는 사내. 본능적으로 그가 우두머리임을 직시했다. 그리고 그를 향해 조준점을 움직인 순간, 그가 바닥에 있던 테이블을 세로로 세웠다.

뒤늦게 발사된 총알은 철제 테이블에 쏘아지고, 유탄이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마지막 남은 한 발을 왼쪽에 있던 사내에게 사격했다. 사내의 몸은 비틀거리더니 통유리 너머로 떨어졌다.

왼손에 붙들고 있던 괴한을 놓으며 탄약이 빈 글록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집어던진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날아간 단검이 오른쪽에 있던 사내의 목젖을 관통한다.

끄아아아!

그때, 어깨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미 쓰러트렸던 괴한들이 좀비가 되어 요한을 물은 것.

아찔하다. 신경이 찌르르 곤두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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