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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44화 (44/176)

<44화>

요한은 대기를 지시했다. 선점해놓은 자리를 이탈하면 자칫하다간 큰 희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요한 일행은 차들이 어지럽게 세워진 거리를 지났다. 마트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무언가 얇은 실 같은 게 요한의 발목에 걸렸다. 몸이 휘청거리며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요한은 몸이 쓸리는 걸 막기 위해 공중에서 몸을 힘껏 틀며 앞으로 굴렀다. 요한이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쐐액!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아악!”

어둠을 가르고 날아온 화살 하나가 정환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정환이 들고 있던 총까지 놓치며 허벅지를 붙잡고 쓰러졌다.

“정환아!”

다시 한번 어디선가 화살이 쏘아졌다.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화살. 위치를 추적할 수 없었다. 요한은 다시 한번 힘껏 바닥을 굴렀다.

의문의 화살이 바닥에 꽂힌다. 요한은 화살이 꽂힌 모양으로 적의 방향을 잡아냈다.

“왼쪽에 매복! 하진! 정환이 데리고 차 뒤로 움직여 몸을 숨겨!”

요한의 말에 하진이 정환을 부축해서 승용차 뒤로 몸을 숨겼다. 요한도 재빨리 합류했다.

“뭐, 뭐야?”

“놈들이다. 길목을 지키고 있었어.”

요한이 이를 부득 갈았다. 양동작전도, 성동격서도 아니었다. 놈들은 덫을 쳐놓고 사냥을 하고 있었다.

외통수에 몰렸다.

놈들은 자리를 선점해서 자신들을 노리고 있고, 앞뒤로 장애물 몇 개를 제외하고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뛰쳐나갔다간 자신들은 그저 움직이는 과녁판이 될 뿐이다.

파지직!

폭죽이 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요한 일행이 숨어 있는 차 근처로 던져졌다. 던져진 폭죽은 불꽃을 내뿜으며 공중으로 타올랐다. 순식간에 요한의 주위가 밝아지고, 주변의 좀비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죽은 자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몰려든다.

요한은 폭죽에 불이 붙고 던져졌던 찰나의 순간,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날아온 곳의 위치를 확인했다. 잠깐 동안 밝혀진 빛이었지만, 잔상처럼 남은 실루엣은 대략 대여섯 명 되는 괴한들의 존재를 증명했다.

정환의 악문 신음이 잇새로 새어 나온다. 상처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어떻게든 빨리 의무실로 데려가서 화살을 뽑고 상처를 소독해야······.

코앞까지 다가온 좀비를 향해 요한이 권총을 발포했다. 발포음에 이어 좀비가 쓰러진다. 하지만 먹잇감을 찾아 다가오는 좀비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시간이 없다.

요한이 접근하는 좀비들의 머리를 사격하며 하진을 불렀다.

“하진, 왼쪽 이 층 유리 벽 깨진 거 보여?”

“어.”

“저 폭죽 집어서 저쪽으로 던질 수 있겠어?”

“가능할 것 같은데.”

“좋아. 셋 세고 뛰쳐나갈 테니까 바로 던져. 그리고 곧바로 정환이 데리고 캠프로 들어가.”

“너는?”

“간다, 하나, 둘.”

요한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달려나간 방향은 괴한들이 있는 건물이었다.

“셋!”

* * *

20분 전.

세리와 동석은 마트 옥상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본다곤 하지만 달빛이 구름에 가릴 때면 빛 한 점 없는 거리라 무언가를 알아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둘 사이에는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단둘이 남겨진 적도 없고,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해본 적이 없는 상대였다. 어색한 게 당연했다. 게다가 세리는 ‘집중하라.’는 요한의 지시를 열심히 지켰다. 그녀에게 요한의 말은 곧 법이었으니까.

침묵을 깬 것은 동석이었다. 동석은 넋두리하듯 내뱉었다.

“안전한 캠프에 합류하면 더 이상 죽을 걱정 안 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들려온 그의 말에 세리가 힐끗 그를 돌아봤다. 동석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자, 세리가 까닥, 턱짓했다.

“말하는 건 좋은데 이쪽은 보지 마. 지금 경계 중이잖아.”

동석은 머쓱한지 머리를 몇 번 긁적이더니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마주 보지 않은 대화가 이어졌다.

“세리 양은 긴장되지 않습니까?”

“아저씨. 떠들 기운 있으면 일이나 똑바로 해. 지금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

“숨이 막혀서 그럽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우리끼리 다니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세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랬으면 이미 저놈들한테 죽어서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있었을걸?”

“그렇습니까······.”

“아 오줌 마려워 죽겠네.”

“화장실이라도 다녀오겠습니까?”

“아니야. 괜히 나갔다가 개죽음 당하긴 싫어. 정 급하면 찔끔찔끔 싸서 말리지 뭐. 아니면 여기 화단에 싸도 되고.”

“······.”

“뭐야, 불만이야?”

“바로 방뇨하는 건 작물에 안 좋습니다. 통 같은 데다 받아서 며칠 삭힌 다음 줘야 합니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래도 우리가 언젠가 먹을지도 모르는 건데······.”

“잠깐만.”

세리가 동석의 말을 끊었다.

대화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미묘한 소리가 지나갔다.

“아저씨,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무슨 소리······.”

세리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동석이 입을 뚝 다물었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팟, 비상용 손전등이 켜졌다.

위치가 노출될 수 있으니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받았지만, 지금은 이 기묘한 소리의 원인을 찾아야만 했다. 그녀가 천천히 마트 옥상을 돌며 소리의 원인을 찾았다.

동석도 그녀를 따라 반대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아무것도 없는······”

동석이 반 바퀴쯤 돌았을 때,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단단히 잠가두었던 옥상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어, 이게 언제······.”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동석이 쓰러진다. 동석이 쓰러진 자리에는 검은 옷, 복면, 마스크로 눈과 코 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칭칭 두른 괴한이 서 있었다. 피 묻은 야구방망이를 든 채.

“어··· 어······.”

세리의 시선이 곧바로 무너지는 동석의 몸을 향한다.

“거봐, 예쁘댔지? 약속대로 내가 먼저다.”

“쳇······.”

한 괴한이 혓소리를 낸다. 놈들이 혀를 낼름거리며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몸이 덜덜 떨리고 소름이 돋는다.

괴한들이 어떻게 올라왔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세리의 손이 움직였다. 무릎 아래 바닥에 내려놨던 무전기. 그리고 허리춤에 있는 권총.

세리가 선택한 것은 권총이었다.

‘배운 대로, 배운 대로······.’

노리쇠를 당기고, 두 손으로 표적의 정 중앙을 조준-

세리가 권총을 꺼내자 사내는 흠칫하더니 양쪽으로 벌어져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세리의 리볼버가 총알을 뿜었다. 탕!

총알은 야속하게도 빗나갔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빗나갔다.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놈들의 희번덕거리는 눈알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 점점 크게 보였다.

차오르는 공포심에 전신이 저려 온다.

탕! 마침내 세리의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침략자의 복부를 꿰뚫었다. 놈의 육체가 점점 넘어지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세리가 흔들리는 팔을 붙잡으며 반대쪽의 괴한에게 조준했다.

그때, 머리를 울리는 거대한 충격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린다. 옥상 바닥이 점점 일어나 다가온다. 쿵! 바닥에 부딪힌 이차 충격에 정신이 점점 희미해진다.

흐려지는 정신 속 말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하, 엿 될 뻔했네. 여기는 무슨 개나 소나 총질이네. 왜 이야기랑 다른 거야?”

신체가 우악스런 손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괴한은 세리의 손에 쥔 총을 꺼내 뒷주머니에 넣고 허벅지에 꽂힌 나이프를 멀리 던져 버렸다.

“야, 죽었냐? 아 뒈지고 지랄이야. 일 층 문은 누가 따라고······.”

세리의 총에 맞은 괴한은 축 늘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괴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에라,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알 바야?”

괴한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발로 두어 번 건들더니 시체 위로 침을 탁 뱉었다. 그러고선 시체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팍, 팍 머리가 깨져 피가 옥상 바닥을 적신다. 한참을 그렇게 한 뒤 괴한은 세리에게 되돌아왔다.

“자아 전리품을 취할 시간입니다. 빠라빠라빠라밤, 와 이렇게 와꾸 지리는 계집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괴한이 썩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들의 역할은 그저 옥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 경계병들을 죽이는 것. 지금 죽은 파트너가 바늘과 철사로 문을 열 수 있는 전문 빈집털이범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었던 것을 확률적으로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조심조심 습격했던 건데, 역시나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망원경으로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젊고 예쁜 여자일 줄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괴한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 순간, 세리의 가느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손··· 떼··· 더러운 개자식······.”

“죽지 말라고 힘 조절하긴 했지만, 벌써 정신을 차렸어? 대단한데.”

하지만 세리는 말 그대로 정신만 차렸을 뿐이었다. 얻어맞은 머리는 욱씬거리고 시야는 흔들렸다. 욕지거리가 절로 나올 만큼 아팠다.

괴한이 다시 그녀를 기절시키려는지 다시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가, 저항하지 않는 모습에 씩 웃고선 물었다.

“뭐, 이것도 나쁘지 않지. 얌전히 오빠랑 홍콩 갈래, 아니면 몸뚱어리만 남겨두고 황천 갈래? 아니면 이걸로 한 대 세게 맞고 끝날 때까지 기절해 있는 거.”

“미친 새끼.”

괴한은 끔찍한 웃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약물이라도 한 것처럼 광기에 가득 찬 눈빛과 행동이다.

“홍콩? 홍콩은커녕 서울 톨게이트도 못 벗어나게 생겨선.”

세리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침을 뱉었다. 입이 터진 듯 쇠 맛이 느껴진다. 세리가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다시 넘어졌다.

“하, 세게도 때렸네. 진짜.”

괴한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뒷주머니에서 그녀의 권총을 꺼내더니 총구를 입속에 욱여넣는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세리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시간 끌지 말자, 응?”

양심적으로 바닥에 뭐라도 깔아 줘라. 쓰레기야.

세리가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머리 울리니까 천천히 해, 개자식아······.”

세리가 몸을 뒤집어 하늘을 보는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입에서 힘 빠진 입김이 샌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괴한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린다.

“좋네, 고분고분하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너 같은 타입은 또 처음인걸?”

괴한이 그녀의 상체에 얼굴을 묻는다. 세리가 괴한의 뒤통수에 양손을 올렸다.

“자, 잠깐만······.”

“뭐야? 왜?”

그 순간, 세리의 두 손이 괴한의 볼을 감싸는 듯한 모션을 취하더니 이내 엄지손가락으로 두 눈을 힘껏 찔렀다. 길게 기른 손톱이 눈알에 박혔다. 푹, 소리가 날 정도로.

“아아악!”

괴한이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부여잡았다. 세리는 곧바로 두 발을 정면을 향하고 괴한의 가슴팍을 밀듯이 걷어찼다. 세리가 빠져나가려던 찰나, 커다란 손바닥이 세리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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