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42화 (42/176)

<42화>

마흔 명 가까이 되는 괴한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벌인 만행과 위협. 캠프가 점점 살기 좋아진다고 생각하던 두 사람, 서준과 박 노인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적의 숫자가 두 캠프를 합친 인원보다 많았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들만 치면 절반에도 못 미치리라.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그놈들은 저희의 주변을 돌면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 나가고 있습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목적은 알 수 없습니다만··· 물자나 생존은 수단에 불과하고 살육과 폭력 행위 자체가 목적이라고 판단이 드네요.”

“······말도 안 돼.”

처음부터 그들이 살육을 목적으로 돌아다녔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처음에는 생존을 목표로 했던 일반적인 생존자들이었을지 모른다.

정부와 군대가 무너지고 어떤 계기로 인해 폭력성이 눈을 뜨게 된다면, 한번 눈을 뜬 폭력성은 일말의 인간성마저 완전히 잡아먹게 된다.

처음부터 조직의 폭력성을 눌러 놓지 않으면, 이 시대에서는 점점 그 조직은 도가 지나치게 된다.

생존자들 사이에 일어난 갈등, 폭행, 그리고 이어진 살인과 살육이 주는 자극은 점점 그들을 갈증으로 이끌었으리라.

“요한 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나. 회의를 소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동요가 드러나는 서준과 달리 침착한 표정의 박 노인이 물었다.

“사실 우리의 무장상태는 웬만한 위협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탄탄합니다.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단독행동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보급도 충분하고요. 하지만.”

요한은 하지만, 다음에 심호흡을 깊게 한 뒤 덧붙였다.

“우리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습니다. 많은 수의 좀비를 죽였어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는 궤가 다릅니다. 그들을 죽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그들과의 싸움을 치를 수 있어요. 놈들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죽이는 걸 망설인 순간 놈들의 칼이 저희를 난도질할 겁니다.”

“······.”

“그래서 각오와 협조를 부탁드리기 위해 회의를 요청했습니다.”

중력보다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는다.

“그들을 죽일 각오를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에 없는 분들께도요.”

직접 겪고, 보고, 미리 상황을 알고 있던 수색조들이야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를 해왔을 테지만, 캠프 안에서 내실을 다시던 사람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들에게 적은 오로지 캠프를 위협하는 좀비와 굶주림, 그러니까 생존 그 자체뿐이었다.

사람을 죽일 것이다. 각오와 협조를 부탁한다.

요한은 그 이상 강요하지도 설득하지도 않았다. 자신들이 밖에서 외부활동을 하는 동안 세 사람은 캠프 내 생존자들에게 적잖은 신임을 쌓았다.

어차피 한 사람 한 사람을 제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결국 중간 관리자인 그들이 힘을 써주어야 한다.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나부터가 총을 다시 쥐어야겠구먼. 민방위 끝난 지가 언젠지 기억조차 나지 않네만, 허허.”

“난 왜 갑자기 총을 쥐여 주나 했잖냐. 역시 이런 속셈이 있었어.”

박 노인과 서준이 한 마디씩 대답했다. 요한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분명 일단 대화를 시도해보자는 둥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요한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 서준이 말을 이었다.

“이봐, 요한. 얼굴 풀어. 뭘 그렇게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예?”

“우리가 먼저 나서서 놈들을 죽이러 가자는 것도 아니고, 쳐들어오는 놈들을 막자는 건데 그럼 반대라도 할 줄 알았냐? 아니면 자기 목숨도 나 몰라라 하고 죽여 주십쇼, 할 줄 알았어?”

서준이 늘 들고 다니던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찢어 요한에게 건넸다.

“우리도 우리 목숨 귀한 줄 알아. 오랜 기간 한심하게 지내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때의 우리가 아니다, 이 말이야. 그리고.”

요한이 그가 건넨 쪽지를 살펴보았다.

그 안에는 몇 줄의 글이 적혀있었다.

-캠프 규칙

1. 감염자는 예외 없이 죽인다.

2. 동료에게 하는 강간, 폭력, 살인 등 모든 폭력 행위는 금지한다.

3. 상대가 자신의 일신을 위협할 때의 모든 행동은 정당방위다.

4. 동료가 아닌 자에게 하는 모든 행동은 확인되지 않은 위협에 대한 정당방위로 친다.

5. 캠프에 후환이 될 수 있는 외부 생존자는 확실하게 처리한다.

6. 필수 물자는 공동으로 관리한다.

7.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배급하지 않는다.

8. 배급의 양은 능력과 성과에 따른다.

“이건······.”

캠프 장악 초기에, 요한이 그들에게 강요하듯이 말했던 규칙들이었다.

“이걸 왜?”

“우리 캠프 사람들에게 모두 이 쪽지를 나눠줬어. 아예 한쪽에 품고 지내라고.”

서준은 피식 웃더니 쪽지를 빼앗아 요한의 가슴주머니에 넣었다.

“너만 제대로 숙지하면 될 것 같아.”

요한은 한 방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이들을 얼마나 무능하고 성장이 없는 사람들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

분명히 성장했다고 의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실 속 화초처럼 그저 얕보고 있었던 것뿐이었나.

“정환아, 밖의 사람들 들어오라고 해.”

서준이 말하자 정환이 회의실 문을 열었다. 회의실 밖에서 내용을 엿듣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푸다닥 흩어진다.

“모두 들어오세요.”

이 자리에 없던 여섯 명의 생존자가 회의실 밖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쭈뼛거리며 들어온다.

“사실, 우린 모두 알고 있었어. 정환이 이야기해 줬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더 이상 어린애 취급하지 말고, 작전 지시를 해 줘, 대장.”

서준은 마치 생존자들을 대표하기라도 하듯 요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널 믿고 있으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캠프 생존자들의 눈빛을 받으며, 요한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 * *

긴 회의가 끝나고 요한은 홀로 제 거처에서 마트 내부도와 도시 지역 지도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수십 가지 상황과 가정을 반복하고 그에 따른 행동 양식과 변수를 예측한다. 최악의 최악의 최악까지 가정하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머릿속에 복잡한 돌발상황이 휘몰아치듯 몰려들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져 오면서도 요한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 그리고 복기만이 요한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였다. 남들보다 경험이 많고, 다년간 쌓인 노하우에서 비롯된 직감이나 조금 뛰어난 운동신경, 사격 실력 따위를 제외하고는 내세울 게 없었다. 무슨 영화 속 히어로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뛰어나게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남들보다 더 절박하게 삶을 갈구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자위하면서.

“후······.”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불완전한 정보와 불확실한 예측들이 머릿속에 뒤엉켜 혼란스럽다.

놈들이 과연 이곳을 습격할까?

습격한다면 그때는 언제일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위협적으로?

대비는 철저했고 무장상태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 뭔가 놓친 게 없는지 끊임없이 생각해도 불안한 위화감만 들 뿐, 딱 이렇다 할 도착점이 닿질 않는다.

놈들은 왜 살육을 저지르고 다니는가.

-그게 그들의 즐거움일 테니까.

놈들은 어떻게 사람들을 무너뜨리는가.

-사전에 생존자들을 확인하고 그 캠프의 주변에 배회하며 정보를 수집하다가 한 번의 기습으로 무너트린다.

놈들은 왜 바로 기습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다니는가.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의 이유는 무장을 강화하기 위함이고, 최악의 이유는 지형지물 파악을 위함이다.

놈들은 왜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가.

-······.

요한의 자문자답은 코너에 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싸한 대답을 덧붙이려 해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건가?

아니다.

안전상 캠프를 정해 놓고 살육을 하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이고, 아직도 인류는 충분히 많이 생존해 있다. 물론 그랬으면 좀비 웨이브를 맞아 살아남지 못했겠지만.

‘설마······.’

생각의 끝이 한 가지 가설에 다다랐다.

그들이 좀비 웨이브에 대해 알고 있다.

고개를 절로 저을 수밖에 없는 결론이다. 단 육 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말도 안 된다. 자신조차 일 년 반이 지나고, 많은 캠프를 잃고 나서야 깨달은 규칙이다. 육 개월 만에 깨달았을 리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다.

“오빠!”

“아, 깜짝이야.”

요한은 문을 벌컥 열고 자신을 부르는 세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워낙 생각에 집중한 탓이었다.

“뭐야, 웬일로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그러실까?”

“무슨 일이야?”

“지혜가 간식 만들었어. 와서 먹으래.”

“난 괜찮아.”

“아아, 그러지 말고 와서 먹으라고오- 오빠 안 오면 지혜 실망한단 말이야.”

요한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그녀는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요한의 옆자리 의자를 끌어 앉았다.

“가만 보면 오빠는 어떤지 알아?”

“······.”

“오빠는 맨날 일만 해. 완전 심각한 수준의 일 중독자야. 한시도 쉬는 걸 본 적이 없다니까?”

“난 괜찮다니까.”

“열심히 훈련하는 것만큼 쉬는 것도 중요하다. 오빠가 했던 말이잖아?”

얘는 정말 가끔 쓸데없이 예리할 때가 있다니까.

요한이 숨을 푹 내쉬었다.

“간식이 뭔데?”

“감자전!”

“감자 싫어해. 맛없어.”

“······.”

“쉴 테니까, 좀 나갈래?”

세리가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그러더니 장난기를 잔뜩 머금은 표정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더니 손으로 얼굴을 받친다.

“그럼 세리는?”

눈을 한껏 뜨고 올망졸망하게 깜박거리는 폼이 퍽 요망하다.

“거절. 넌 내가 쉰다고 할 때만 그러더라. 솔직히 말해, 내가 쉬는 게 싫지?”

“에이, 무슨 섭섭한 말씀을.”

“그리고 섹드립 성희롱 좀 자제하지?”

“왜? 싫어?”

세리가 보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거린다. 요한은 확 풍겨 오는 과일 향수 냄새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밀어냈다.

“후, 내가 첫날 버르장머리를 확실하게 고쳐 놨어야 했는데. 내 과업이다.”

“그러게 누가 여지를 남겨두랬나.”

여러 번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가자 가. 감자전 먹자.”

“감자 맛없다며?”

“무슨 소리야, 감자가 얼마나 맛있는데. 너, 편식하면 못 쓴다.”

요한이 앉아있던 의자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휙 나간 요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리가 허, 하고 헛웃음 소리를 냈다.

요한은 종이컵에 담긴 감자전을 오물오물 씹으며 옥상에 올라갔다. 올라가자마자 뭉근한 초여름 바람과 함께 회색으로 물든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도 황량하고 어두웠지만, 수색 작업에서 태운 좀비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잿더미와 먼지가 쌓여 대낮에도 흐림은 점점 짙어져 갔다.

요한이 쌍안경으로 주변을 확인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괴한들의 흔적이 잡혔다가 사라졌다. 이곳에서 이십 분쯤 떨어진 거리.

그 이후에도 움직임은 드러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확실히 놈들은 이곳 주변을 빙빙 돌 듯이 돌고 있었다.

감시는 어스름이 지고 해가 구름에 가려져 노을이 내려앉을 때까지 계속됐다. 회색 하늘이 점점 붉은빛을 띠었다가 주황색으로 변색할 무렵, 놈들의 움직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도.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는 계남초등학교. 두 캠프와 십분 남짓 떨어진 거리.

요한은 결전을 직감했다.

‘오늘 밤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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