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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41화 (41/176)

<41화>

손가락질하며 저를 쫓는 사람들의 반대쪽으로 통통 튀는 몸짓을 보이며 재빠르게 복도를 가로질렀다.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거기서!’라고 소리치며 삼류 액션 영화 악당들처럼 뒤쫓는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스위퍼의 앞에 한 고등학생 소년이 가로막는다.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큰 키로 스위퍼를 잡겠다는 듯 두 팔을 벌리고 있다.

“이얍!”

스위퍼는 림보를 하듯 허리를 젖혀 소년의 두 팔을 피해내고선 그를 지나쳤다.

‘잠깐만.’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굳이 왜 도망쳐야 하지?

생각해보니 도망갈 이유가 없다. 안면도 있고 이미 한 번 대화가 통했던 사람들도 있는 데다가, 학생들을 지키겠다고 이곳에 캠프를 차린 사람들이라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데.

자신처럼 선한 인상의 사람이라면 굳이 도망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할 거였다.

생각을 마친 스위퍼가 뒤로 폴짝 돌더니 두 팔을 벌려보았다. 달려들던 사내들이 그의 앞에서 우르르 멈춰 섰다.

“누추하지만 하룻밤 실례했어, 형씨들. 나랑 이야기 좀 할까?”

“너는······.”

“중위님, 우리 구면이지?”

스위퍼는 정면에 있는 안 중위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스위퍼를 알아본 중위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여길 어떻게··· 설마 우릴 미행했나! 무슨 속셈이지? 혹시 협조적으로 군 것도 우리 캠프를 노려서······.”

“하나만 맞고 둘은 틀렸어.”

스위퍼가 난처한 듯 대답했다.

“미행한 건 맞고, 속셈이 있거나 캠프를 노린 건 아니야. 당신들이 위험한 사람들인지 혹시 보복하진 않을지 알아봐야 했거든. 일단 들어가서 편하게 이야기할까? 차라도 한 잔 내주면 고맙겠어.”

모든 사내의 표정이 마치 도플갱어처럼 일그러졌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러다 결국 방긋방긋 웃는 스위퍼를 보며 무기를 내렸다. 중위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장해제를 해주십시오.”

“그건 좀 곤란한데. 어차피 머릿수도 그쪽이 훨씬 많잖아. 그리고 형씨들도 우리 캠프에서 무장해제 안 했으면서.”

다시금 찾아온 불편한 침묵. 병사들이 눈치를 보자 중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따라오십시오.”

그들은 스위퍼를 과학실로 안내했다. 과학실 안에는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내부가 세 개의 실험실로 이루어져 있고, 무엇보다 유일하게 출입문이 단단한 현대식 철문이라는 점 때문에 이곳을 숙소로 선택한 듯싶었다.

‘여러 가지 쓸만한 도구들도 보이고.’

스위퍼가 각종 실험도구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튼, 이렇게 미행을 한 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물자를 나눠주셨지만······.”

스위퍼가 얌전히 두 손을 모으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건 죄송. 사과할게. 원래는 그냥 몰래 엿듣다가 가려고 했는데 잠결에 그만. 걸릴 줄은 몰랐어.”

“······.”

“덕분에 좋은 구경··· 아, 아무튼.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먼저 질문에 대답하십시오.”

“그럼 번갈아서 하지 뭐. 먼저 질문해.”

중위는 잠시 고민하더니 질문을 결정한 듯 물었다.

“며칠 전에 대피소에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혹시 일행이거나, 아는 사람들입니까?”

“아니. 그리고 응.”

“네?”

“일행은 아니고, 아는 사람들은 맞아. 아마도 적이지. 내 차례. 여길 습격했다는 놈들. 놈들은 몇 명이었지?”

스위퍼의 질문에 중위가 학생들을 바라봤다. 한 학생이 머뭇거리더니 대답한다.

“한 사십 명 정도······.”

“많네.”

“제 차례입니다. 당신들은 정체가 뭡니까?”

“어려운 질문인데. 나도 합류한 지 얼마 안 돼서. 내 생각을 말하자면··· 거기는 그냥 생존자들이 모인 캠프야. 리더가 감과 경험이 좀 있지. 이제 내 차례. 놈들의 무장상태는 어때?”

이번에도 중위는 대답하지 못하고 학생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예비군부대 소대장이라도 군인인데, 나타난 적의 숫자와 무장상태도 파악하지 않는다는 게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 잘 모르겠어요.”

“총을 썼니?”

“아니요······.”

“활은?”

“활! 활을 든 사람은 있었어요!”

“어떤 활이었는데? 양궁 선수들이 쏘는 그런 활?”

“아니요. 십자가 모양 석궁이었던 것 같아요.”

쇠뇌를 쓰고 있군. 일단 원거리에서도 습격이 가능한 집단. 스위퍼는 놈들이 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다음. 더 질문할 것 있어?”

스위퍼가 중위를 향해 묻자 그가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는지 머뭇거린다.

“없으면 생각날 때 하고 다음 질문. 당신들, 혹시 우리 쪽으로 합류하지 않을래?”

* * *

요한은 생존자들에게 총기를 다시 배분했다. 수색조인 하진과 동석에게는 M16 소총을, 여성 생존자들에게는 리볼버를, 남성 생존자들에게는 맥서스 엽총을 배분했다.

여태까지처럼 경계병들이 총기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는 1인당 하나씩의 총기를 가지는 셈이었다.

모든 생존자에게 배분하려니 총기도, 탄약도 부족했다. 요한은 군필자, 남성, 청장년층, 마트 캠프를 우선순위로 총기를 배분하고 모자란 인원에게는 아쉬운 대로 새총의 사용법을 익히게 했다.

‘역시 조만간 군부대에 들러야겠어.’

쉽사리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니, 괴한들의 정리만 끝나는 대로 안 중위가 말해준 탄약고에 들를 계획이었다.

“오빠, 팔 아픈데 언제까지 들고 있어?”

주차장 한쪽에서 생존자들은 보급받은 총기 조준 훈련을 하고 있었다. 탄약이 부족해 실제로 쏴볼 순 없었고 조준하는 방법, 장전 및 발사하는 과정, 탄약 교체를 위주로 훈련했다.

특히나 리볼버나 맥서스 엽총은 탄약 교체가 상당히 번거롭고 제법 숙련도가 필요했으니까. 숙련되지 않으면 실전에서 허둥지둥하기 일쑤였다.

요한의 뒤, 주차장 한쪽에서는 생존자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총으로 건물 아래편 좀비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적당히 움직이다가 다시 조준하는 것도 연습해. 가만히 서 있을 필요 없어.”

“진작에 얘기해 주지.”

“진작에 얘기하는데, 한 명이라도 실수로 실탄 쏘면 전부 다 주차장에 머리 박는 거야. 안전장치 풀지 마. 그리고 총구 사람한테 들이대면 팬티까지 다 벗겨서 1층으로 던질 거야.”

“어우, 살벌하기도 하셔라.”

무전기가 울렸다.

-대장 형씨.

“잠깐. 놀지 말고 훈련해.”

스위퍼로부터 온 무전이었다. 요한이 주차장 반대편으로 내려가 조용한 곳에서 무전기 소리를 키웠다.

“어. 나야.”

- 군인 캠프랑 접촉했어. 오토바이 자식들 정보 줄게.

“말해. 듣고 있어.”

-인원수는 대략 마흔 명. 무장상태는 쇠뇌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대부분 둔기류야. 총기는 불분명.

“그렇군.”

-놈들. 물자나 사람이 목적이 아니야.

의미심장한 말에 요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오로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찾아다녀.

역시 예상대로의 말이 흘러나왔다.

-여기 사람들을 데리고 캠프로 갈게.

“인원은?”

-군인 여덟 명, 애들 다섯 명.

“우리한테 원한은 안 품고 있나? 한 명이 죽었잖아.”

-자기 판단 때문에 죽은 거라고 자책하던걸. 걱정하지 마.

“그렇군. 알겠어.”

-짐이 많아서 오늘 낮이나 내일 오전에 출발할게.

“확인. 수고해.”

무전을 끝내고 사람들을 훑어보니 다들 땀에 절어 헉헉대고 있었다. 요한이 아날로그 시계를 흘깃 바라봤다. 시작한 지 딱 두 시간 됐는데.

마침 비상구에서 손지혜가 다가오고 있었다. 요한은 일행들에게 손짓해 쉬어도 좋다는 뜻을 전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퍼지듯 드러눕는다.

“오빠, 훈련은 끝나셨어요?”

“거의.”

“김 씨 아저씨가 전구 설치 다 됐대요!”

“오, 그럼 가 봐야지.”

슬슬 양초도 수량이 달리던 참이었다. 요한이 희소식에 화색을 띠었다.

철물점 김 씨는 가게에서 가져온 휴대용 발전기로 1층과 지하 1층에 전기를 공급했다.

구경꾼들이 몰려오자 김 씨는 발전기가 어쩌고 정류기와 인버터가 어쩌고 설명했으나 세리는 어차피 들어도 못 알아듣는다며 빨리 불이나 켜달라고 김 씨를 재촉했다.

파앗, 백열전구가 환한 빛을 내뿜었다.

사람들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선정리도 제대로 안 된 투박한 문명의 작은 조각이었지만 반짝거리며 밝기를 과시하는 백열전구를 보며 생존자들은 묘한 감상에 젖었다.

요한은 감상에 젖기보다는 단점에 아쉬움을 느꼈다. 일단 발전기의 소리가 생각보다 소음이 컸고, 원료가 태양광이나 태양열이 아니라 가솔린이라는 단점.

물론 아직까지 가솔린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밤에도 더 이상 완전한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전구 빛은 최근 활기차진 캠프 모습에 더욱 활력을 더해주리라.

“천천히 개인 숙소에도 달아줄게요.”

김 씨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최근, 캠프 생존자들을 위한 개인 방이 만들어졌다. 매장이었던 곳들의 짐을 치워 열 개의 방을 만들고 침구류까지 들여놓자 제법 그럴싸한 숙소의 모습이 됐다.

이인 일조로 생활해야 했지만, 아무 바닥에서 피난민 노숙하듯이 자던 때보단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전구 빛으로 밝아진 실내만큼 사람들의 얼굴도 밝아진 듯했다.

“참, 어르신.”

오랜만에 지하로 내려온 박 노인을 요한이 불렀다. 그는 요즘 옥상의 텃밭을 가꾸는 낙으로 사는 듯했다.

“아, 요한 군. 무슨 일인가?”

“다른 건 아니고, 몇 가지 회의할 내용이 있어서요. 아저씨도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요한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정환, 그리고 수색조 전원도 들어와.”

요한은 관리 인원들을 모았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괴한들과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제가 여러분들은 모은 이유는 앞으로 있을 전투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들은 좀비만 죽여보았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경우에는 가급적 요한 혼자 움직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껍질 속에 숨어 제 보호 아래에서만 있을 순 없었다.

요한이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것이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평화를 깨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마치 위험한 걸 알면서도 수술을 권해야 하는 의사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을 죽여야 한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표정이 심각해?”

수색조 세 명과 관리인 세 명이 모인 회의실. 서준이 굳은 표정의 요한을 보며 물었다. 항상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다니는 그였지만, 오늘은 유독 그 감정의 변화가 티가 났다.

“아마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요한은 생각의 정리를 끝내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저희는 의문의 집단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위협이라면······.”

요한은 차분히 그리고 빠짐없이 자신이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 요양원에서 본 시체들, 그리고 스위퍼로부터 무전 받은 이야기들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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