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39화 (39/176)

<39화>

* * *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아침 댓바람부터 요한이 수색조를 불렀다.

“수색조! 일하자!”

“아니, 지금 몇 시야······.”

1층 로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요한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하진이 대충 세수를 마치고 군장을 싸 들고 나왔다.

요한은 병원 캠프에 전달할 물자들을 탑차에 실어 주차장 밖에 준비해놓고선 수색 조원들을 모았다. 기존 수색 조원 네 명에, 새롭게 합류한 신동석. 그리고 동석의 일행들이었다.

“오늘은 병원에 들러서 물자를 놓고 올 거야. 겸사겸사 이분들을 모셔다드리고 여길 중심으로 건물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수색한다. 생존자 체크, 물자확보, 좀비 제거 이 세 가지가 주 임무야. 동석 씨.”

“예.”

“수색조는 임무 특성상 제가 말을 편하게 합니다. 이해하세요.”

“예. 괜찮습니다.”

“원하시면 동석 씨도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동석은 요한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요한은 편하게 말을 놓기로 했다. 어차피 수색조는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만큼 철저한 통제가 필요했다.

기분 나쁘더라도 캠프에 남기로 한 이상, 본인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동석은 아직 실전 검증이 안 되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위치는 항상 후방. 규칙과 수신호는 어제 설명 들었지?”

“예.”

“좋아.”

수색조는 보급품을 탑차에 실어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은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제 내내 시체들 치우느라 고생한 모양인지 생존자들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병원 캠프는 새로운 생존자를 기껍게 받아들였다. 사실, 생존자들과 함께 온 물자들 때문에 다른 걸 신경 쓸 여력도 없어 보였다. 그들은 보급된 식량, 옷, 생활용품들을 보며 울 듯이 기뻐했다.

“솔직히 다시 안 올까 봐 걱정도 했소. 워낙 못 믿을 세상이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요한은 웃으며 갑수에게 리볼버 한 정과 군인들에게 받은 소총 한 정을 건넸다. 탄약은 충분치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도움을 줄 터다.

총을 받아 든 갑수는 이런 귀한 걸 주느냐며 당황하다가 동맹의 증표라는 요한의 말에 주책스러운 눈물까지 흘려댔다.

그렇게 두 번째 캠프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고서, 요한은 곧장 일을 시작했다. 요한은 수색조를 모아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마트의 위치와 병원의 위치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요한이 마트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여길 기준으로 점점 원 모양으로 범위를 넓혀 나간다. 쓸 만한 건 썩은 걸 제외하곤 전부 쓸어담아. 수색이 완료된 곳은 정문을 깨고 문고리를 다 부서뜨리고.”

“왜 그렇게까지 번거로운 작업을? 그냥 빨리빨리 수색하면 되잖나.”

하진이 반문했다. 부러 위험하고 번거로운 작업을 지시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을 부수다 보면 좀비들의 이목을 끌 텐데.

“천천히 해도 돼. 중요한 건 느리더라도 영역을 확실하게 넓히는 거야.”

“······?”

“문이 잠기지 않으면 쉘터로서 기능을 할 수 없지. 불안하니까.”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의 조원들을 보며 요한은 환하게 웃었다.

“우리의 영역에 허락 없이 기어들어 와 지내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란다.”

요한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자 네 사람의 등줄기에 써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역시 이 자식은 최고로 사악한 놈이다. 지옥에서부터 기어 올라온 악마다. 수색조는 기가 질렸다.

* * *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기 전 요한은 병원의 경계를 강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병원은 넓었고 생활 가능 반경은 넓었지만, 현 상황에서 무턱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건 위험했다.

요한은 마트에서처럼 병원에도 경계병에게 소총을 쥐여 주었다. 더불어 잠금장치를 삼중으로 지시했다. 정문, 올라가는 비상구, 그리고 3층 생활관 출입구까지.

식사시간을 아침 겸 점심, 점심 겸 저녁 두 타임으로 지정하고 정해진 시간에 모든 인원이 함께 식당으로 이동한다.

병원 로비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건 식사시간을 포함해서 한 시간. 그 외의 시간은 웬만해서는 3층에서 생활하고 비상구 열쇠는 두 명의 경계병만이 가진다.

삼중 잠금장치는 적의 습격을 받았을 때, 최소한 수색조가 지원을 오기까지 버틸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갑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이제 안전하다는 둥 희망을 잔뜩 불어넣었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본격적인 캠프확장이 시작됐다. 수색조는 마트를 기준으로 주변 민가, 상가, 숙박업소 등 모든 건물을 하나하나 들어가 좀비를 처리하고 물자를 긁어모았다.

“오빠, 저기-”

마트 옆 상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정리하고 건물 옥상에서 쉬는 일행을 보며 마트 옥상에 있던 경계병이 손을 흔든다. 세리가 환하게 웃으며 화답해 주었다.

수색 작업은 순탄했다.

“이 층 클리어.”

“올라가지.”

반복적이고 고된 작업이었지만 일행은 묵묵히 작업에 몰두했다. 스위퍼가 없어서 그런지 사소한 잡담도 오가지 않아 세리가 숨 막힌다며 툴툴거렸다.

“잠깐, 여기는 내가 먼저 들어가지.”

쾅, 요한이 잠겨있던 문고리를 부수며 한 상가 건물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한 손에는 소음기가 달린 글록을, 나머지 한 손에는 나이프를 든 채 나이프를 쥔 손으로 글록을 받친 자세로 내부를 훑는다.

그때, 인기척과 함께 여인 한 명이 요한을 향해 달려든다. 요한은 자신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무언가를 피해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로 하론 소화기 하나가 지나갔다. 소화기를 휘두른 여인이 무게에 휘청거리자 요한이 그녀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꺅, 소리와 함께 여인의 몸체가 무너진다.

그 위로 요한의 발이 그녀의 몸체를 짓누른다. 자신을 향해 겨눠진 총구를 보며 여인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삼 초 내로 밖으로 나와. 안 그러면 이 여자를 쏜다. 삼.”

쓰러진 여인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요한이 허공을 향해 던진 말은 가냘픈 음성으로 되돌아왔다.

“이.”

“살려주세요. 제발······.”

안쪽 방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쓰러진 여인보다 한두 살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요한은 세리에게 턱짓해 그들을 심문하도록 시키고 건물의 다른 층을 수색했다.

찾아온 불청객들의 목적은 습격이 아니라 구출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려움에 자신을 공격했다는 그녀의 사과를 받아준 후, 그들은 병원 캠프로 보내졌다.

요한은 병원과 마트 사이에 하나의 캠프를 더 설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예상대로 인류는 끈질겼고 생존자는 계속해서 등장했다. 거리를 청소하면 청소할수록, 안전해질수록 숨죽이던 생존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거다.

초기 혼란기를 넘긴 인간들은 대체로 좀비를 피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것이 매스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이든, 실제 겪었던 직접 경험이든 일반적인 좀비에 대한 상식은 대부분 통용되었으니까.

그런 환경에서 식수와 식량만 존재한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고, 대한민국은 좀비로부터 생존하기에 나쁘지 않은 국가였다.

수색조는 그 이후에도 한 명을 추가로 구출해서 보급캠프로 보냈다. 본인을 철물점 김 씨라고 소개한 장년은 발전기를 옮겨 주면 캠프에 간이 전구를 설치해 준다고 호언장담했다.

“기대하지요. 자세한 안내는 캠프에서 들으시면 됩니다.”

하진은 수색의 속도가 더딜 거로 예상했지만, 요한의 수색 경로는 깔끔했고 효율적이었다. 철저히 수색하는 것치곤 굉장히 놀라운 속도.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생존자가 있는 장소를 문을 열어보기도 전에 마치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예상이라도 하듯 행동한다는 점이었다.

생존자가 있는 공간에서는 항상 요한이 앞장서는 것만도 그랬다. 요한은 생존자들의 기습적인 공격을 흘려보내며, 상처 없이 그들을 제압해 족족 캠프로 보냈다. 하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동석은 철저하게 짐꾼 노릇을 했다. 수색조가 최대한 좀비들을 피해 움직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물오른 세리가 좀비가 튀어나오는 족족 때려잡은 덕분에 나설 기회조차 없기도 했다.

요한은 세리가 활약할 때마다 그녀를 칭찬하면서도 너무 들뜨지 말고 방심하지 말라고 주의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좀비를 무서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좀비를 우습게 여기는 것도 문제다.

누군가 방심하다 개죽음당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수색조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느리지 않게 영역을 넓혀갔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대차의 물자들은 쌓여 갔다. 사람들이 늘어난 이상 물자확보에 더 박차를 가해야 했다.

조급하지는 않았다. 대량의 물자를 수급할 수 있는 두 개의 포인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상동역, 신중동역.

이 두 개의 역 근처만 합쳐도 대형 마트와 백화점이 6곳이 넘는다. 게다가 지금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물자의 여유는 있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희생자를 줄이는 것.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무리하자.”

요한은 한 요양병원 앞에서 조원들에게 말했다. 대차 두 개가 꽉 차서 더 이상 넣을 공간도 없는 상황.

첫날부터 너무 빠듯하게 몰아붙인 감도 있었다. 그래도 세 명의 생존자를 찾아내고 발전기와 대량의 생수통, 휘발유까지. 상당히 소득이 많은 하루였다.

내일은 반대쪽으로 가서 시청을 수색할 예정이다. 사실 오늘보다 더 기대가 큰 내일이다. 시청 안에는 분명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자들이 많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요한! 이리 와 봐!”

요양병원 안쪽을 수색하던 하진이 요한을 불렀다. 요한이 상기된 목소리에 서둘러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무슨 일······.”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요한은 끔찍한 광경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러게.”

하진의 말대로였다. 뒤늦게 따라 올라온 세리와 동석도 경악했다. 동석은 광경을 보자마자 뒤로 돌아 헛구역질을 했다.

요양원 안, 중앙 로비에 네 명의 시신이 있었다. 요한과 하진에게는 익숙한 얼굴들. 조폭 조직이었던 골드문 상무와 그 부하 세 명.

그들은 모두 좀비가 되어있었다.

좀비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상태였다.

상무는 몸 전신이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고, 부하 중 하나는 턱이 완전히 함몰되었다. 한 명은 눈알이 파였고, 한 명은 두 팔이 잘렸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단면이 날카롭게 잘린 파이프에 배를 관통당한 후, 못 박히듯 나란히 벽에 박혀있었다.

그들은 요한 일행을 발견하고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꺽꺽거렸다. 죽인 뒤 사체를 박아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산 채로 배를 뚫리고 커다란 해머 따위로 벽에 박혔다. 우웩, 동석의 등을 두드려주던 세리마저도 결국 속을 게워냈다.

“놈들의 짓일까?”

“아마도. 아니라면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 이런 짓을 하는 집단이 둘 이상이라면 정말로 골치 아플 거야.”

하진의 물음에 대답하며 한쪽 무릎을 꿇고 장갑을 낀 손으로 주변의 바닥을 훑었다. 피가 굳어있다.

요한이 꺽꺽거리는 상무의 뇌를 쑤셨다. 연이어 하진이 상무의 부하 세 명을 줄지어 처리했다.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 느낌은 있었는데, 이런 시기와 이런 방식일 줄은. 요한은 가슴속에 얹혀진 돌멩이 하나가 사라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더 큰 돌멩이가 자리 잡고 있어 티도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날 저녁, 요한은 미미하게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잠을 깼다. 평소라면 느낄 수 없는 작은 소리였지만,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그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전에도 아주 조금씩 신경 쓰였던 소음. 그전에는 멀리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소음의 정체를 알고 나니 확실하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의 문을 열려던 요한의 손이 멈칫했다. 옥상을 막은 철문 건너에서 희미하게 앓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갈 곳 잃은 요한의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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