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 *
스위퍼가 탄 일 톤 트럭이 도착한 곳은 약대동 주민센터였다. 군인들은 주민센터에 트럭을 주차해 놓고선 짐을 내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주변엔 어느 정도 좀비들을 정리해 놓았는지 많은 수의 좀비들이 보이진 않았다.
종종 나타나는 좀비 한두 마리는 선두에 섰던 병사들이 처리했다. 확실히 빈 총으로 상대하는 것보다 나이프류로 상대하는 것이 더 수월했다.
스위퍼도 천천히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이 향한 곳은 한 블록 뒤의 초등학교였다.
“······.”
초등학교 정문에는 ‘임시대피소’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푯말 자체도 피에 얼룩진 지 오래라 푯말의 역할을 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대피소는 황폐했다. 언제까지 대피소의 역할을 했을지 모를 천막들과 널브러진 군용 박스들. 6개월간의 치열한 생존 혈투가 역력하게 느껴지는 현장이다.
군인들은 학교 교문을 지키던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자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닫힌다.
스위퍼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바로 인근의 높은 건물에 자리를 잡고 쌍안경을 들었다.
떠나기 전 요한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부탁 좀 하지.’
‘웬일이야, 형씨가 부탁을 다 하고. 뭔데?’
‘저 군인들을 따라가서 정찰을 좀 해줘야겠어.’
‘정찰? 저들을 그냥 살려서 보내주려고?’
스위퍼의 반문에 요한이 인상을 썼다.
‘그럼 다 죽이기라도 할까. 어차피 일개 예비군 중대인데.’
‘그럴 생각인 줄 알았는데. 얼굴에 쓰여 있잖아. 아니야?’
정곡을 찔린 건지 요한은 입을 다물었다가 한참 뒤에 열었다.
‘···그랬지. 마음이 바뀌었어.’
‘왜? 형씨답지 않은데.’
‘날 무슨 미친 살인귀로 보나. 대화 중에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어.’
‘신경 쓰이는 점?’
‘여러 번 도발했는데도 계속해서 부대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찜찜해. 아무래도 어떤 사람들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
군인들을 규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지만, 후환을 없애기 전에 최소한 후환인지 아닌지는 명확하게 가려내고 싶다는 생각. 요한이 말을 잇는다.
‘변질한 폭력집단인지, 그저 운 좋게 살아남은 생존자인지, 협력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동료가 될지를 알아봐 줘.’
‘그런 것 치곤 너무 빡세게 굴렸는데.’
‘반응을 봐야 했으니까.’
‘만약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무전 쳐. 내가 직접 가지.’
스위퍼는 생각을 접었다. 자신의 새로운 대장은 냉정하면서도 물렁물렁했다. 그 인간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너무 혼자 짐을 짊어지려고 하는 모습이 보여 짠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런 미션이라도 준 게 진일보한 건가.”
여태까지 자신이 본 그였다면 이런 위험한 임무는 본인이 직접 나섰을 거다. 자신에게 맡겼다는 것부터가 어느 정도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리라. 능력이든, 신의든.
“믿음에 배반할 순 없지.”
스위퍼는 중얼거리며 시선을 다시 초등학교로 돌렸다. 군인들이 마당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듯싶다.
운동장 근처에는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일곱, 여덟 구 정도 되어 보이는 시체. 군복을 입은 시체도 있었고,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특히 군복을 입은 한 시체는 마치 깃발이 걸린 듯 잔인하게 장대에 걸려있었다.
끔찍한 모습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설마, 저들이 벌인 짓인가.
하지만 오해는 금방 풀렸다. 그들은 시체를 눈앞에 두고 오열했다. 차마 수습조차 못 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들이, 여간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건 좀비의 짓이 아니었다. 사람의 짓이다.
스위퍼의 눈에 운동장 곳곳에 나 있는 오토바이 바퀴 자국이 보였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습니다.’
놈들인가.
스위퍼는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사냥한다는 잔인무도한 괴한들.
군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스위퍼는 학교 안으로 넘어 들어가기 위해 학교 담에 바짝 붙었다.
‘Here’
정문 한쪽 귀퉁이에 피로 쓰인 글자가 있었다. 병원에서 본 것과 동일한 글자.
순간 그의 뇌리에 무언가가 번쩍, 하고 지나갔다. 뭔가 이상하다. 놈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흘 전에 순천향병원에 있었고, 언제인지 몰라도 이곳도 난도질하고 갔다. 그렇다면 이곳과 병원 사이에 있는 마트를 과연 못 보고 지나쳤을까?
위화감을 느낀 스위퍼가 곧장 요한에게 무전했다.
“형씨. 나야,”
-어, 무슨 일 있어?
“끝나고 한 번에 설명할게. 병원에서 봤던 그 글씨 있지? 혹시 마트 건물 외벽을 한번 확인해줄 수 있어?”
무전기는 잠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다가 대답이 들려왔다.
-알았어.
스위퍼는 무전기의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기척을 죽인 채 천천히 학교 안으로 잠입했다.
깨진 유리와 피로 얼룩진 벽과 미처 치워지지 않은 시체들을 지나, 실험실처럼 보이는 한 교실에서 말소리와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스위퍼가 귀를 바짝 붙였다.
흑, 흑흑······.
괜찮아, 잘 숨어 있었어.
동대장님은······.
이제, 괜찮아. 이제.
교실 안에는 군인들을 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 * *
“형······.”
캠프에 되돌아온 요한은 마트 정문의 한쪽 벽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긴장된 표정의 생존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마트 벽 한쪽에는 피로 쓴 글씨가 적혀있었다.
병원에서 본 그 글씨와 같은.
“이게 뭐예요?”
병원에서의 일을 모르는 정환은 일행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눈치를 보며 물었지만, 요한은 생각에 잠겨있어 그의 질문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스위퍼가 아니었으면 존재 자체도 몰랐을 표식에 절로 몸에 오한이 들었다.
미지의 적이 이미 자신들의 존재와 위치를 안다. 하지만 자신들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기동력 있고, 조직적이고, 잔인한 집단이라는 것뿐.
생각의 회로가 쉴 틈 없이 회전한다.
이런 식으로 표시만 해 두고 공격하지 않은 것을 보아, 자신들이 총기가 있다는 사실마저도 알고 있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요한으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다.
저 표식을 굳이 남긴 이유.
그들은 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지?
표식을 못 볼 거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한이었다면 습격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철저하게 숨긴 다음 그들에게 대비할 여지조차 주지 않았을 거다. 이런 식으로 선전포고하듯 표식을 남기는 게 아니라.
둘 중 하나였다. 그런 걸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멍청하거나, 자신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거나. 어떤 것이든 요한으로선 다행인 일이다.
“정환아.”
“네. 형.”
“일단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전투조만 더 빡세게 경계시켜. 적이다.”
“적이요?”
“그래. 주변에 미친 사이코패스 자식들이 있어.”
“헉.”
“어렵게 생각하지 마. 공격해오면 죽인다. 그뿐이니까.”
아직 시기는 일렀지만, 적의 존재가 드러난 이상 모든 전투 조들을 총기로 무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어떤 적이든 지지 않는다. 요한은 스스로 세뇌하듯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실제로도 ‘서생연’을 제외하고서는 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서생연’과 다시 조우하더라도 그때처럼 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도 있다.
요한 일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캠프로 되돌아가 박재범 의사를 찾아갔다.
“캠프는 좀 어떠십니까?”
“와, 정말 놀랐습니다. 이렇게 생활을 번듯하게 유지할 수 있다니. 옥상의 텃밭은 만든 지 얼마나 된 건가요?”
“얼마 안 됐어요. 이제 막 설치한 겁니다.”
“음식도 음식인데, 옷이나 기호품 같은 건 또 얼마나 많은지······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니까요!”
호들갑을 떠는 그의 모습에 요한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화답했다.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지.
“새 캠프가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생활은 의무실을 단독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의무실이랄 것도 없어서 참 민망하긴 한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요한은 새로운 동료들을 맞이했다.
식량을 찾아 마트에 찾아온 새로운 동료는 총 네 명. 외삼촌, 어머니와 중고등학생 자식 둘인 일가친척으로 이루어진 일행이었다.
그들은 한참을 기다리고도 지루한 표정 없이 묵묵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저 먹을거리가 있는 안전한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한 기색이다. 요한은 그들을 감시하고 있던 조원들을 물리고 그들의 앞에 앉았다.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지루한 심문이 이어졌다. 무엇을 하던 사람들인지, 특기가 뭔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좀비는 몇 마리나 죽여봤는지 등등. 사람들은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그리고 답변의 끝마다 꼭 이곳에서 지내게 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수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형.”
“수상한 사람이 나 수상해요, 하지는 않지.”
어차피 수상한지 아닌지는 겪어봐야만 안다. 요한은 새 생존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희는 조건 없이 방문객을 받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이상, 이곳의 규칙과 통제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괜찮으신가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신동석 씨 한 분은 이곳에 남아 수색조를 지원해 주세요. 나머지 분들은 저 옆쪽 캠프로 보내드릴 테니 그곳에서 생활하시면 됩니다.”
그들 중에 보급캠프에 남길 만한 인재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리더였던 신동석이 작지만 덩치가 있어 수색조 인원으로 키워볼 만했다. 실제로도 이 일행을 책임지고 지켜왔던 것도 그라고 했다.
마침 수색조 인원이 필요하기도 했고 정리도 안 된 캠프에 리더가 둘인 것은 웬만해서는 지양하고 싶었다.
자신이 호명되자 동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름부터 덩치까지 마치 귀요미 별명을 가진 어떤 연예인이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다.
“다른 캠프로 간다고요?”
다른 캠프로 이동해야 하고 갈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했는지 그들이 웅성거렸다.
“그곳은 안전한가요?”
“안전합니다만 일거리가 좀 많긴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서 15분 거리밖에 안 됩니다. 동석 씨와는 매일 보게 될 겁니다.”
“네······.”
“동의했다고 생각해도 괜찮겠습니까?”
사람들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은 빙긋 웃으며 박수를 짝, 쳤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드시고 푹 쉬세요. 얼굴들이 많이 안 좋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캠프 안으로 들여보내고 음식을 내주라고 지시한 다음 정환을 불렀다.
“정환아.”
“네. 형.”
“새로 온 사람들은 계속 감시해. 티 내진 말고.”
“네.”
“참.”
볼일을 보러 가던 요한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정환을 향해 뒤돌아섰다.
“혁이가 나간 지 얼마나 지났지?”
“혁이요? 일주일쯤 됐죠.”
“늦네.”
“그러게요. 늦네요.”
제 형의 장례를 부모님과 함께 치르고 싶다고 떠났던 혁.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신경이 쓰였다. 특히나 근처에 괴한들이 존재한다는 게 더 신경 쓰이는 요소다.
슬슬 돌아와 줬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