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37화 (37/176)

<37화>

“스위퍼, 이리 와 봐. 부탁 좀 하지.”

스위퍼를 부르는 요한의 웃음은 살벌했다. 그는 이상하게 초여름부터 오한이 드는 느낌을 받으며 요한에게 다가왔다.

안 중위는 여섯 명의 병사들에게 식량 박스를 가득 들게 했다. 여섯 명이 잔뜩 들어도 받은 식량의 절반도 들기 어려웠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근데, 소대장님. 이렇게 많이 들고 가기는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조금씩 여러 번 나르시는 게······.”

“저들이 언제 마음이 바뀔 줄 알고. 걱정하지 마라. 낮이고 올 때 좀비들도 거의 없었으니까 조심히 가면 돼.”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주차장을 한발 벗어나자마자 와장창 무너졌다. 주차장 밖 도로에는 좀비들이 가득했다. 도대체 이 많은 좀비들이 어디서 다 튀어나왔는지 싶을 정도로 빼곡하게 모여 있다.

“소대장님···.”

“오, 올 땐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는데···.”

안 중위와 군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잽싸게 바리케이드 뒤로 후다닥 돌아왔다.

목표도 달성했겠다, 들뜬 마음으로 차량으로 복귀하던 그들의 길목에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있었다.

“젠장······.”

몰래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앞 거리부터 골목, 차량으로 가는 길목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저 많은 물자를 들고 돌아다니다간 꼼짝없이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좀비 밥이 되게 생겼다.

안 중위는 주차장 난간에 궁둥이를 붙인 채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고민했다.

염치 불고하고 도움을 요청할 것이냐, 아니면 한 번에 들고 갈 짐을 줄이고 여러 번 움직일 것이냐.

일단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거른다. 자존심도 문제지만 자신들이 좀비들을 제대로 처리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그들이 어떤 마음을 먹을지 몰랐다.

“네 명이 짐을 들고 네 명이 호위하는 거로 한다.”

혹시 모를 변수 차단을 위해 한 번에 최대한 많은 짐을 옮기려고 했던 건데. 지금 상황에선 두 명이 짐을 들고 있는 여섯 명을 지키는 건 무리였다.

짐을 줄이고 가기로 결정.

절반······. 어떻게든 좀비들을 따돌릴 수만 있으면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들이 출발하고 짐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불안한지 계속해서 중위를 불렀다.

“으으, 중위님. 앞이 잘 안 보이는데. 정말 괜찮은 것 맞습니까?”

“쉿! 조용히 해!”

중위는 최대한 가장자리를 통해 이동했다. 그러나 좀비들이 워낙 많은 탓에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좀비들이 있었다.

빡! 중위가 가까이 다가온 좀비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세게 후려쳤다. 즉사하지 않은 놈이 다시 다가오자 바로 옆에 있던 상병의 기겁하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보다 큰 소리가 울려 주변 좀비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멈춰진 차 사이사이 죽은 자들의 비명이 울려왔다. 어느새 포위된 인원들이 사시나무 떨듯 불안하게 떨었다.

“이거,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중위님!”

“뒤쪽에도 좀비가··· 으아악!”

“강 이병!”

순식간에 찾아온 아비규환이었다. 짐을 들고 있던 한 이병이 물리자 다른 병사들이 모두 짐을 던지듯 내려놓고 주변의 좀비들을 밀어냈다.

“돌아가! 주차장으로 돌아가!”

결국, 중위가 퇴각을 외치자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짐을 버려두고 주차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처진 강 이병만 애꿎은 희생자가 됐다. 좀비들이 달라붙을수록 강 이병의 비명은 점점 커졌고, 병사들은 경악에 찬 얼굴로 자신들의 전우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달렸다.

주차장에는 요한 일행이 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다가 군인들이 탑차 안쪽으로 넘어오자 달라붙은 좀비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새총, 쇠뇌, 좀비 작살 등을 이용해 탑차에 달라붙는 종종 쓰러뜨리는 솜씨가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핑! 날아간 화살 하나가 가장 멀리 있는 좀비의 머리통을 꿰뚫고 요한은 탑차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고선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기껏 드린 식량을 저렇게 길거리에 버리고 오시면 곤란한데······.”

“허헉, 아니 무슨 좀비가 이렇게··· 많아서······.”

“저희는 협조하고 싶은데, 드려도 가져가실 방법이 없어 큰일이군요.”

요한의 말은 높낮이가 없었으나 중위의 속을 박박 긁어놓을 만했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고, 요한의 이어진 말은 그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였다가 하늘에서 내려 준 천사로 탈바꿈시켰다.

“저희가 물자를 좀 함께 옮겨드릴까요?”

“그,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나랏일 하시는 분들인데.”

중위는 여태껏 그를 욕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저도 모르게 그에게 한껏 감사 인사를 했다.

“대신 저희도 위험한 것은 사양하고 싶으니 원래 가져가시려던 물자의 1/4만 가져가시지요. 그리고 물자의 대가로 추가적인 정보를 받겠습니다.”

“추가적인 정보 말입니까?”

“네. 주변에 실탄을 구할 수 있는 부대의 위치를 알려주세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싫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요한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소총으로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의 머리를 사격했다. 쩌렁쩌렁한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멀리서부터 좀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제는 주차장에서조차 나가기 힘들어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참다못한 중위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가만 보니 근처의 좀비들을 모은 것도 모두 이 사내의 짓이 틀림없다. 일부러 자신들을 곤란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부터 민간 캠프에 오셔서 물자를 절반이나 가져간 건 안 중위님입니다. 저희는 어찌 보면 부당한 요구에 순순히 협조했을 뿐이고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을 부린 건 중위님이죠.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세요. 단 중위님께서 두고 가시는 물건은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겠습니다.”

“으으······.”

“그리고 여러분들이 전멸하면 물건들은 원래 자리로 갖다 놓아도 괜찮겠지요?”

중위는 반쯤 정신을 놓은 듯했다. 요한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제 할 말만 이어갔다.

“시체는 식량이 필요 없잖습니까?”

중위의 표정이 ‘내가 졌습니다.’라는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요한은 모든 것이 예상대로라는 듯 담담하게 지도를 꺼냈다. 아직 저를 상대하기엔 내공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탄약고는 22 지원대대에 있습니다. 위치는······.”

요한은 빙긋 웃으며 지도를 꺼내 정확한 위치 표시를 요구했다. 중위가 질린 표정으로 정확한 위치를 표시했고, 부대 내에서의 탄약고 위치까지 꼬치꼬치 캐물은 탓에 기억력을 총동원해 남의 부대 배치도를 기억해내야 했다.

“이제, 됐습니까?”

“아니요, 아직.”

“또 무슨!”

“가진 총기의 절반을 두고 가세요.”

“말도 안 돼!”

총기는 생명이다. 군인에게 총기를 팔라는 건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훈련병, 훈련생도 때부터 철저하게 정신교육으로 무장된 이들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이다.

“지원 소대의 위치까지 알려줬잖습니까!”

“그래서 저희가 물자의 1/4을 드리지 않습니까. 총기는 경호 값입니다. 싫으시면 그냥 들고 가셔도 돼요.”

“이익··· 지금 이 사람이 군권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부대에 사용하지 않는 총기가 많지 않습니까. 어차피 총알도 없을 테고요. 대신 저희가 무기로 쓸 만한 것 드리지요. 정환아, 이분들 나이프든 뭐든 4개만 챙겨 드려.”

“네, 형.”

“······.”

“거, 인상 좀 펴세요. 얼굴에 주름 생기겠어요.”

요한은 얼굴이 무너진 중위의 어깨를 팡팡 쳤다.

총기를 건네받고 탄약을 장전해 한 발 발사해보았다. 총기 수입 상태는 양호했다.

“저희가 엄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짐을 드세요. 수색조, 준비해 일하자. 내가 좀비들을 몰아갈 테니 차량까지 엄호해. 하진. 네가 지시하고, 정환아.”

“네. 형.”

“저기 인원이 세 명이라 한 방향이 비니까 잠시 지원해줘야겠다.”

“네!”

요한은 빠르게 지시사항을 내려놓고선 멀뚱히 구경하고 있는 부랑자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새로 오신 분들은 죄송하지만 잠시만 더 대기해 주세요.”

“저흰 괜찮습니다.”

“그리고 지혜야.”

“네?”

요한이 요리 기술자 지혜를 불렀다. 여전히 그녀는 시체만 보면 토하기 직전인 표정을 지었다. 요한이 비위 좀 기르라며 한 마디 잔소리한 후, 박재범 의사를 소개했다.

“여기, 우리 새로운 동료. 의사 선생님이야. 캠프 안내 좀 해드리고 맛있는 것 좀 해드려라. 필요한 것 말씀하시면 아끼지 말고 내드리고.”

“네. 네!”

그녀는 기합이 바짝 들어간 모습이다. 오버하기는.

“선생님, 인사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 쉬고 계시죠.”

“네, 고맙습니다.”

이미 박 선생의 표정은 수많은 물자와 잘 정리된 마트 내부를 둘러보며 사르르 녹아내린 뒤였다. 거기에 지혜의 요리 솜씨를 쐐기로 박아 넣으면,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게 되겠지.

요한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대부분 이제 어쩔 거냐는 얼굴들이었다. 탑차 바깥쪽으로 좀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주차장 인원들은 일단 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다가 제가 신호하면 차량으로 이동하세요. 신호는 총소리. 세 번 들리면 출발하시고.”

요한은 간단명료하게 작전 지시를 한 후 정문으로 빠져나가 좀비들의 무리 뒤쪽으로 돌아갔다. 첫 번째 총소리가 들린다. 주차장 탑차에 달라붙어 있던 좀비들의 시선이 뒤쪽, 새롭게 등장한 먹잇감을 향한다.

잠시 후, 주차장 바리케이드 반대쪽이 텅 비는 걸 보면서 군인들이 혀를 내둘렀다. 말이 쉽지, 지금 같은 세상에 저렇게 좀비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저 인간이 유일하리라 확신했다.

군인들과 수색조는 무난하게 차량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단지 요한이 좀비들을 몰고 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남아있는 좀비들이 아무리 접근해도 스위퍼, 하진, 세리, 정환은 능숙하게 놈들을 걷어냈다. 처리하는 속도도 빨랐지만, 그들은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좀비들을 죽여 나갔다.

실전에서 터득한 전투방식. 전투가 추가적인 전투를 부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군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군용 차량에 도착했을 때, 뒤쪽에서 요한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분명 자신들과 반대쪽으로 갔는데 벌써 이곳에 도착하다니. 아무튼, 신기한 인종이라는 세리의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차량은 군용 차량은 아니었다. 일반 박스 형태의 수송 트럭에 군용 마크만 붙어있는 차량.

내부엔 전투식량을 담는 박스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요한은 이들의 생존이 가능했던 이유가 조금은 짐작됐다.

짐을 모두 싣자 안 중위가 다가와 묵례했다. 요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의 아니게 그를 기만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마지막까지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니 괘씸했던 마음이 약간은 풀리는 것도 같았다.

차가 출발하고, 요한도 뒤돌아섰다. 사람들이 요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세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요한에게 묻는다.

“근데, 스위퍼 오빠는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어디 갔어?”

요한이 뒤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스위퍼가 군용 탑차 위쪽에 누워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저게 뭐하는 거야?”

“정찰.”

요한의 한 마디는 그와 함께했던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괴롭히고 기어코 정찰까지 보내야 했냐, 인간아··· 나라면 이쪽으로 침도 안 뱉을 것 같은데.

정말 끝까지 매정하고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인간 같으니.

세리는 절대 이 인간과는 척을 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리에 있는 모두의 생각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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