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요한은 그들에게 시선을 던지는 좀비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다시 한번 총을 발포했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좀비들의 물결이 마치 홍수처럼 요한을 덮쳐왔다. 요한은 다가오는 좀비들을 어깨로 밀치며 좀비 사이를 빠져나갔다.
하나같이 익숙해진 일들이지만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작업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느 정도 좀비들의 포위망을 뚫고 나서는 좀비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천천히 놈들을 몰았다. 좀비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쥐 떼처럼 요한의 뒤에서 행렬했다.
요한은 좀비들을 천천히 몰며 무전기로 정환을 불렀다.
“정환아.”
-네 형, 어디세요?
“거의 다 왔어. 다른 애들은 먼저 보냈어. 그리고 지금 주차장에서 인원 전부 철수시켜.”
-네?
“근처에 좀비가 많아. 어그로 끌리니까 주차장에서 철수시키라고.”
-네, 네!
요한은 마트와 백화점 사이, 딱 정중앙까지 좀비들을 몰아넣고서 전속력으로 달려 근처 상가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건물로 뛰어들어간 뒤 문을 잠그자 좀비들이 달라붙는다.
좀비들이 유리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지만, 한동안은 버텨줄 거였다. 요한은 천천히 반대쪽 출구로 빠져나와 다시 은밀하게 움직였다.
요한이 도착한 마트 안에는 네 명의 부랑자와 여덟 명의 군인들이 새롭게 모습을 보였다.
부랑자들은 그저 안전한 곳이라는 생각에 무장해제를 당하고도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군인들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짜증이 묻어났다.
“형!”
권총을 손에 쥐고 군인들을 가로막고 땀을 뻘뻘 흘리던 정환이 요한을 보자마자 반가움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요한은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는 군인들 앞에 섰다.
“고생했다.”
“뭘요.”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 앞에서 용케 배짱 있게 버텨냈다. 정환은 갈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캠프의 인원이 점점 늘어나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특히나 수색조의 좀비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을 보고서는 잔뜩 경계한 채 총기를 손에 그러쥐고 있었다.
요한이 군인들의 모습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장교 한 명에, 부사관 한 명, 병사가 여섯 명. 보급을 찾아다니는 한 개 소대 또는 분대인 듯했다. 이 인원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모자란 인원은 어딘가에서 수송 차량을 지키고 있겠지.’
한 개 소대면 그리 위협적인 인원은 아니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 살인 멸구까지 염두에 둔 그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군인들의 행색은 깔끔했다. 전투를 많이 치르진 않은 모양이었고 무장상태나 이 와중에도 인원이 딱딱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아 군인 흉내나 내는 부랑자가 아닌 정식으로 훈련받은 군인인 듯 보였다. 요한이 맨 앞에 선 장교에게 인사했다.
“기다리게 해 유감입니다. 요한입니다.”
“이곳 책임자이십니까?”
요한의 인사에 중위가 꾸벅 묵례하며 화답했다.
“예. 실례지만 무슨 일이신지 다시 물어도 되겠습니까?”
중위는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짜증 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꾹 참고 다시 설명을 반복했다.
악의를 가졌다면 가타부타 설명하기보단 협박하는 걸 선택했을 거다. 요한의 부담감이 한풀 꺾인다.
“약대동 예비군 중대 소속 안준민 중위입니다. 부대의 물자가 떨어져서 전시 긴급 대처로 민간 보급품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약대동 예비군 중대?
요한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화력전을 예상해도 감당 가능할 예비군 중대. 안도감과 동시에 많은 의문이 든다.
전투부대도 아닌 예비군부대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명령체계를 유지했는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약대동에서 어쩌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
멀지 않은 거리래도 그 사이에 마트가 몇 개며 백화점이 몇 개인데······. 왜 하필 이곳에?
“여기가 약대동 중대 관할 구역이던가요.”
이 난리가 난 마당에 군대가 무엇이고 관할이 무슨 의미겠느냐마는, 요한은 군부대와의 쓸데없는 마찰은 피하고 싶었다. 돌변한 군대는 정말이지 성가신 집단이 된다.
요한의 물음은 정중했다. 그러나 안 중위에게는 따지는 것처럼 들렸는지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그것이······.”
찰나의 망설임.
‘아니군.’
요한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다 핵심을 잡아냈다.
저 분대는 지금, 소지한 탄약이 없다.
“부대를 떠나온 지가 좀 됐는데, 여기저기 흘러 다니듯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모쪼록 좋게좋게 협조 부탁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도 입이 많습니다. 이곳에 있는 인원이 전부도 아니고, 다른 캠프에도 생존자들이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다른 곳에서 수급하실 수 없겠습니까? 여기가 아니어도 장소는 많지 않나요.”
요한은 최대한 완곡하게 거절했다. 완곡한 거절과 동시에 제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떠보는 것이기도 했다.
시 전체가 혼돈의 도가니고, 근처에 널리고 널린 게 마트고 대형 할인점이다. 요한의 거절은 듣기에 따라선, 하고많은 마트들을 두고 왜 하필 생존자들이 있는 이곳을 골라서 행패를 부리느냐는 유한 비난이었다.
너네, 총알이 없지?
그래서 좀비들 가득한 다른 곳을 포기하고 다 된 밥에 숟가락 올리러 온 거지?
그런 요한의 언중유골을 파악했는지 중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아무대로 제대로 그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다. 다소 사납게 목소리가 변한다.
“협조하지 않으시면 무력으로라도 진행하겠습니다. 민간인이시지만 전시상황임을 고려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협박 아닌 협박을 지껄이는 안 중위의 시선은 요한이 메고 있는 총기를 향해있었다. 자신의 무장을 신경 쓰는 모습에 요한은 확신했다.
어쩐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협조하지요.”
긍정적인 대답에 중위의 얼굴이 화색으로 물든다. 하지만 요한이 곧바로 덧붙였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숟가락을 얹는 뻔뻔함은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날로 먹게 할 순 없지.
“제 질문에 답변해 주세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많네요.”
“어떤 질문입니까? 보안상 문제 될 만한 부분이 아니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위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부와 연락은 됩니까? 좀비 소탕이나 시민 구조 계획은 있나요?”
시작부터 다소 예민한 질문이었다. 중위는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사단과 군단의 명령 하달이 끊긴 지는 조금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입니다.”
“부대 밖으로 외출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근 일주일 정도 됐군요.”
물자를 구하지 못했다고 일주일이나 거리를 배회할 정도면 어지간히 자존심이 센 소대장이군.
“꽤 되셨군요. 혹시 부대에도 최근에 연락해 보셨습니까?”
이번 질문에는 순간 중위의 대답이 멈췄다.
연락이 끊겼다.
“···며칠 전부터 중대와도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서둘러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오셨지요? 근처 도로가 전부 마비된 거로 아는데.”
“근처 도로가 마비되어서 여기로 오게 됐습니다. 평천로랑 송내대로만 차선이 여유가 있어서.”
그렇다는 건 송내대로까지 수송차를 끌고 와서 서쪽으로 도보 전진하다가 여길 발견한 거라는 시나리오다. 이제야 그들의 기이한 이동 경로가 이해되는 요한이었다.
“부대에 인원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전부 같은 소속인가요?”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요한이 아쉬움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의 질문은 생존자로서 궁금한 부분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었지만, 은근슬쩍 그 부대에 대한 정보를 끼워서 묻고 있었다. 고립된 부대인지, 화력이 얼마나 되는지, 위협이 되는 곳인지 등등.
결과적으로 요한이 판단한 것은 그들은 낙오병이 됐다는 거였다. 아마 부대로 되돌아가더라도 그들을 반기는 건 좀비로 변한 전우들이리라.
그의 기억 속 좀비 아포칼립스는 대한민국 국군을 상류에서부터 무너뜨렸다. 상류에서 댐이 터져 쏟아진 물길은 결국 중류와 하류를 덮쳐갔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이 국방부, 사령부와 육해공군본부였고 군단급, 사단급, 여단급 부대들이 차례대로 무너졌다.
오히려 소수로 주둔하는 특수부대나, 공군 포대처럼 대대급 부대나 기갑여단 같은 무식한 화력을 보유한 부대들이 마지막까지 버티고 버티다 보급 차단과 내부 분열로 무너져갔다.
속된 말로 말라죽거나, 좀비 웨이브를 맞거나. 재수 없으면 훈련 중 다친 병사가 점호 소등 후에 좀비가 되어 생활관을 박살 내는 경우나 부대 내 간부들끼리의 알력 다툼으로 부대가 무너지는 경우도 심심찮았다.
회귀 전부터 군부대는 최대한 피해 다녔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쯤이면 이미 지휘체계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봐야 했다. 연대, 대대별로 각자 생존을 모색하는 시기.
가급적 호의를 보여 돌려보내고, 태도가 돌변할 때는 언제든지 살인 멸구 할 각오도 해야 했다. 군인이라는 특수한 조직문화상 낙오병이 아니라면 동맹은 어려울 터다.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식량은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요한의 말에 안 중위가 물자창고를 천천히 둘러보더니 대답했다.
“여기서 절반 정도만 가져가면 될 것 같습니다.”
요한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었다. 캠프 생존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절반이면 다 들고 가지도 못할 양.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세리가 툭 내뱉었다.
“이거 순 도둑놈들 아니야, 완전?”
그녀의 날카로운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이 자리의 모든 이가 다 같은 마음이었다.
“뭐? 인마, 너 뭐라고 했어?”
“이봐요, 군인 아재들. 여기 사람들 많은 것 안 보여요? 이 식량들 어떻게 모은 건지는 알고 그렇게 헛소리를 찍찍, 하는 거냐고요.”
“이년아, 말 똑바로 안 해?!”
안 중위 옆에 있던 중사가 소리쳤다. 세리가 ‘안 할 거다! 뭐, 어쩔 건데!’ 하며 바락바락 소리친다.
요한은 세리를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요한으로서도 어처구니없는 요구량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다.
“제 일행에게 이년 저년 하지 마세요. 한 번만 더 무례하게 굴면 협조는 없던 거로 합니다.”
“하지만 그쪽이 먼저······.”
“박 중사. 그만 하세요.”
보다 못한 중위가 그를 제지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생존자들의 반응을 보고서도 가져가는 식량의 양을 줄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절반이라. 이래서 호의를 보이면 권리인 줄 안다니까. 요한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차피 줘도 못 가져갈 물건들.
“그러시죠.”
“오빠!”
“형!”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웬만해서는 제게 반기를 들지 않던 정환마저도 언성을 높였다.
식량은 곧 수명이다. 군인들이 모르는 하역장 물자가 더 있다고 해도, 캠프까지 늘어난 마당에 알짜배기 식량을 절반이나 잃는 건 굉장한 타격이 될 것이다.
“괜찮아 날 믿어.”
요한의 말에 세리와 정환이 금세 조용해졌다. 날 믿어. 그들의 난동을 잠재우는 데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요한을 믿는가, 라는 질문은 최소한 그들에게는 대답할 가치도 없을 만큼 답이 당연했으니까.
“차량이 중동대로에 있다고 하셨는데, 이 많은 양은 어떻게 운반하시려고요?”
“천천히 여러 번 나르면 됩니다.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중위의 자신만만한 말에 세리가 작게 ‘재수 없어.’라고 덧붙였다. 요한은 속으로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세요. 그럼.”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박뱀! 애들 데리고 이거 주차장 쪽으로 옮겨.”
“옛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군인들을 보며 요한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봐라.
군인들이 나가고 나서야 요한에게 따가운 시선들이 쏟아졌다.
“형, 대체 왜 그러셨어요!”
“믿으라니까 가만히 있긴 했는데, 오빠, 무슨 생각인데?”
“걱정하지 마라. 쟤들 저 많은 거 들고선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간다.”
“뭐? 왜?”
왜긴, 밖에 좀비가 겁나 많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