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35화 (35/176)

<35화>

“잠갔어.”

“이동.”

“잠깐 오빠, 여기 네 마리 남았어!”

“하진, 처리해. 세리는 움직이지 말고 왼쪽 경계 계속해.”

세리가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보고 소리치자 요한이 하진을 지명했다. 정면에서 길을 뚫던 하진이 방향을 틀었다.

녀석은 근처에서 굴러다니는 바퀴 달린 응급실 이동식 침대를 쭉 밀더니 좀비 네 마리를 동시에 벽에 처박았다.

그런 뒤 길쭉한 쿠크리 대검을 크게 휘둘러 네 마리의 목뼈를 한 번에 쳐냈다.

“…완전히 현대판 여포가 나타났는데?”

“비주얼은 장비에 가깝지.”

“그러게, 장판파에 세워둬도 되겠어.”

스위퍼와 요한이 그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며 농을 주고받았다. 되돌아온 하진이 대검의 피를 털며 물었다.

“무슨 얘기들 하나?”

“아니. 아무것도.”

가만히 지켜보던 세리가 히죽 웃으며 하진에게 일러바쳤다.

“여기 오빠들이 하진 오빠보고 돌진하는 멧돼지 같대.”

“어이 아가씨. 양념 치기도 그 정도면 거의 창작 수준이잖아?”

하진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스위퍼가 당황하자 요한이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참고로 난 추임새만 넣었어.”

“······.”

스위퍼는 하진의 시선을 홀로 받으며 억울함을 외쳤지만, 다가오는 좀비들로 인해 잠깐 풀렸던 긴장의 끈이 다시금 팽팽하게 당겨졌다.

“썩을 놈들. 쉴 틈을 안 준단 말이야.”

스위퍼가 손도끼를 그러쥐었다. ‘하긴, 이미 썩었지!’ 라고 소리치는 스위퍼를 시작으로 다시금 한바탕 혈전이 펼쳐졌다.

일행의 좀비 사냥은 건물 내부를 돌고 돌아 본관의 정문까지 진행됐다. 남은 하나의 문. 이곳만 막으면 모든 출입구가 통제된다.

“여기, 회전문은 어떡하지?”

“오른쪽 아래 확인해 봐. 잠금쇠 있을 거야.”

스위퍼가 문을 잠그는 사이 세 사람은 몰려드는 좀비들을 상대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게 아니라서 위협은 적었지만, 날붙이를 휘두르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땀에 절어 몸이 무거워졌다.

문을 잠그고 거들려는 스위퍼가 몰려드는 좀비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는 너무 넓어서 들어가는 품에 비해 남는 게 너무 없는데. 손해 보는 장사 아냐? 차라리 다른 데서 살림 차리는 게 빠를 듯하고.”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종합병원은 방어요충지로는 확실히 너무 넓을지 몰라도, 생존자들의 끊임없는 유입 그리고 다량의 의약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캠프였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눈에 보이는 좀비들은 거의 쓰러진 뒤였다. 일행은 힘에 부쳐 씩씩거렸다. 멀찍이서 걸어오는 좀비를 보며 스위퍼가 말했다.

“흐, 일 층은 저놈이 마지막인가?”

“확인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있지.”

요한이 권총을 꺼내 장전했다. 20미터. 10미터. 탕! 권총이 불을 뿜고 다가오던 좀비가 쓰러졌다.

“총알 아깝게.”

“구석구석 퍼진 좀비들을 끌어모으는 데 들일 노고를 생각하면 적당한 대가지.”

과연 그 말대로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멀찍이서 좀비들이 총소리를 듣고선 또다시 스멀스멀 나타났다.

아악, 일행들이 질린 표정으로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1층 정리가 끝난 뒤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나저나 좀비 웨이브 때문에 많이 빠져나갔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끔찍하리만큼 많은 수의 좀비가 남아있다.

스위퍼의 말대로 체력 소모가 너무 큰 일이었다.

문제는 건물이 12층까지 있다는 것.

하아,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는 요한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고된 작업이다.

결국, 만장일치로 의견이 타협됐다. 각종 치료과가 있는 2층과 의료창고 및 수술실, 중환자실이 있는 3층까지만 정리하고 그 위로는 문만 잠그고 천천히 정리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불편한 식당에서 지낼 수는 없을 테고, 중환자실 정도만 있어도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을 터다.

일행은 좀비 시체 가득한 병원 로비에서, 챙겨온 육포를 맛깔나게 씹었다. 요한이 목 잘린 좀비 시체를 육포로 가리키며 ‘색이 비슷한걸.’ 이라고 중얼거리기 전까지는.

충분히 쉰 다음 일행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굳게 닫힌 2층 문을 열고 스위퍼가 선두에서 전투자세를 취했다.

“Holy shit···.”

철문이 열리자 수십, 아니 백 마리쯤 되어 보이는 검붉은 눈동자가 선득거리며 동시에 그들을 바라본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한 모습.

“뭐가 이렇게 많아?!”

문을 열자마자 달려드는 좀비에 다시 문을 닫으려던 스위퍼가 뻗으려던 손을 회수했다. 손을 뻗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빨을 들이민다. 보호구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물어뜯길 뻔했다.

“스위퍼, 엎드려!”

요한이 다가오는 좀비들을 한 발로 밀며 등 뒤의 소총을 꺼내 조정간을 자동으로 바꿨다. 장전부터 견착, 조정간 변경까지 순식간에 매끄럽게 연결 동작이 이어진다.

스위퍼는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고 그를 잡으려다 몸이 기울어진 좀비들의 머리로 총알이 쏟아졌다.

다다다! 요한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열댓 발의 총알이 나가자마자 스위퍼가 쏜살같이 일어나 눈앞의 좀비 머리를 찌르고 쌓인 좀비들 위에 얹었다. 일종의 바리케이드였다. 그걸 본 세리와 하진이 곧장 따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눈앞의 좀비 수는 너무나 많았고 설상가상, 3층에서도 좀비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요한! 이건 후퇴해야겠는데! 잘못하면 앞뒤로 포위되겠어!”

젠장, 요한이 입술을 짓이겼다. 수비선이 점점 밀리고 있었다. 2층 문이라도 닫아놓고 후퇴해야 3층이라도 점령할 수 있는데. 이대로 물러서면 3층마저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때였다.

계단 아래서 일곱 명의 남녀가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가 계단을 맡지요!”

요한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계단을 통해 동시에 내려올 수 있는 좀비는 어차피 많아야 두세 마리. 미숙한 사람들이라도 두 사람이 한 마리씩만 맡으면 되는 상황이다.

싹수가 좋네. 요한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가자.”

“쓸어버려.”

요한의 지시에 스위퍼가 신난 듯 날뛰었다.

* * *

드르륵,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다시금 중환자실 문이 닫히자 사람들이 진이 빠진 듯 여기저기에 기댔다.

사람들의 무기에는 좀비들의 피가 여러 겹으로 굳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협조해주셔서 더 편하게 했네요. 고맙습니다.”

“그저··· 돕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소.”

“큰 도움이 되었네요. 저렇게 많이 모여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저희도 2층 문은 안 열어봐서. 열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

긴장이 풀린 사람들은 휴식을 취할 겸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특히 세리는 낯가림도 없는지 새로운 무리의 여성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정확히는, 남자들보다 더 잘 싸우는 그녀를 보며 여성들이 선망의 말들을 건네는 거였다. ‘대단해요.’, ‘용감해요.’와 같은. 세리는 한껏 고양돼서 그녀들과 떠들어댔다.

한쪽에서는 박재범 의사와 정선영 간호사가 의료품을 챙기고 있었다. 마트 의무실의 의료품이 빈약한 만큼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건 챙겨 달라는 요한의 요청 때문이었다.

“정 간호사, 드레싱 물품은 넉넉하게 챙겨주고 아, 소염제랑 파상풍 주사는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 왕진 가방은 사무실에 있나?”

“네. 가져올까요?”

“그래. 부탁할게.”

정 간호사가 문을 나서려 하자 요한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아직은 혼자 다니지 마시고, 하진아. 같이 좀 다녀와 줘.”

요한의 부탁에 하진이 묵묵히 일어섰다. 간호사는 꾸벅, 감사 인사를 한 후 하진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요한은 복귀지시를 했다. 떠나기 전, 병원 캠프 생존자에게 하는 주의사항도 잊지 않았다.

“얼추 정리는 했지만, 남겨 놓은 좀비도 있고 하니 너무 긴장 풀지는 마시고요. 가급적 좀비 시체는 치워 놓는 게 좋을 겁니다. 생활하실 땐 비상구 문은 꼭 잠가 두시고 돌아가면서 한 명은 경계를 보세요. 그리고 일단 챙겨왔던 식량은 모두 두고 갈 테니, 내일까지만 버티세요.”

“예. ···고맙소. 그런데, 굳이 좀비들을 남겨 놓는 이유는 무엇이오?”

“보험이랄까요.”

“아무렴, 선생님이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아무튼, 고맙소. 정말로.”

갑수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자 요한이 씩 웃고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갑수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는다.

“가시죠, 선생님. 얘들아 잘 모셔라. 귀한 인력이다.”

요한이 막 병원을 나서려던 찰나.

-형!

때마침 정환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에 요한이 곧장 응답했다.

“어. 나야. 캠프는 별일 없어?”

-형, 그······.

“말해. 듣고 있어.”

-빨리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갈 건데 왜, 무슨 일인데?”

-그게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요······.

“침착하고. 두 가지 일이 뭔데?”

-새로운 생존자들이 찾아와서요. 두 그룹인데 한쪽은 일반 피난민인 것 같아서 지금 무장 해제시키고 형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문제는 다른 한 그룹이······.

요한은 가만히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설마 그 괴한들이 벌써 캠프에 들이닥쳤을까.

-군인들이에요. 군인들이 들이닥쳤어요.

군인들이?

요한이 인상을 썼다. 군인들은 지금으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껄끄러운 집단이었다.

아직 눈두덩이 시커먼 놈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또다시 등장한 변수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온다.

“일단 갈게. 소란피우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해.”

-네, 형. 빨리 와주세요. 이 사람들이 식량을 다 가져가려고 해요!

빌어먹을. 어딜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으려고······.

무전기를 쥔 주먹에 힘줄이 툭 솟아났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캠프에 불청객들이 온 모양인데.”

스위퍼의 물음에 요한이 대답했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그가 당황한 모습을 보니 일행들의 마음도 조급해졌다.

수색 조는 서둘러 복귀했다. 빠른 걸음으로 15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올 때는 천천히 좀비들을 잡으며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했다면, 복귀할 때는 눈앞의 좀비들을 거칠게 헤치며 이동했다. 피하거나 숨죽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뒤를 따르는 좀비가 늘어났다.

마트 캠프부터 5분 떨어진 도로에서 요한은 느닷없이 탄창을 갈아 끼우더니 50미터쯤 떨어진 좀비를 향해 사격했다. 쩌렁쩌렁한 발포음이 대로를 울렸다.

“뭐야?!”

요한의 돌발행동에 일행들이 당황했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좀비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어디에 저 많은 좀비들이 숨어 있었는지 작은 규모의 좀비 웨이브를 연상시킬 정도로 많은 좀비들이 쏟아졌다.

“너희는 지금 바로 캠프로 달려가. 난 한 바퀴 돌아보고 갈게.”

마치 동네 마실이라도 나간다는 양 대답하는 요한을 보며 일행들이 기가 질렸다.

“무슨 일인지 설명이라도 좀 해주든가!”

“가자. 무슨 생각이 있겠지.”

세리가 목소릴 높이자 하진이 그녀를 잡아끌었다. 몰려드는 좀비의 수가 심상치 않다. 요한의 말대로 무사히 복귀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수색조는 의문을 가득 품은 채 마트를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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