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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34화 (34/176)

<34화>

* * *

의사는 그 일을 떠올리며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놈들은 곧 병원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그런데 방화문 앞에는 좀비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서 여기까지 들어오진 못했어요. 놈들은 다시 창문으로 다가와 창문을 두드리다··· 좀비들이 너무 많이 몰리자 되돌아갔어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글귀가 있더군요.”

요한은 가만히 듣다가 떠오른 의문을 던졌다.

“왜 곧바로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이곳에 있는 것도 위험할 텐데요.”

“놈들이. 두 사람 중 남자의 다리를 자르고 창문 앞에 던져두고 갔습니다. 좀비들이 정말 끝도 없이 몰려들었어요. 도저히,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유리를 깨는 건 오히려 좀비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자살 행위였을 거예요. 그런데 다행히 어제부터 좀비들이 어딘가로 몰려가더군요.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준비해서 도망치려고 하던 찰나였습니다.”

‘좀비 웨이브 때문이군.’

이곳에 있던 좀비들도 모두 백화점으로 흘러 들어갔을 테지. 요한의 시선이 창문 밖 좀비에게 향했다.

그의 말대로 창문 바로 앞에는 하반신이 잘린 채 사정없이 물어뜯긴 좀비가 있었고, 그 손가락이 두 개나 잘려있었다.

요한을 제외한 수색 조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말도 안 되는 괴담을 들은 듯한 표정. 산전수전을 겪은 스위퍼마저도 질린다는 얼굴을 했다.

아마 그들로서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진짜 적이리라.

흔히 아포칼립스가 터지면 금방 인간성이 나락으로 떨어질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태어나고 자라길 사회적으로 자란 게 사람이다.

초기 6개월 이내에 사람들이 극도로 흉포하게 변하는 경우는 애초부터 범죄자인 경우거나 정말 극단적으로 궁지에 몰린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 드물다.

군대나 정부, 경찰이 어딘가에 남아있으리라는 생각, 이 사태가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믿음이 주는 도덕적 제약. 그렇기에 골드문 같은 어설픈 약탈자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슬슬 그 실낱같은 믿음마저 사라지고 혼돈의 시기가 도래할 때. 요한의 생존본능과 경계심이 촘촘하게 날을 세웠다.

눈 밑에 피를 칠한 무리. 단 한 마리도 살려둘 수 없는 금수 새끼들로 뇌리에 단단히 박아 넣었다.

요한이 의사의 손을 붙잡았다. 마치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러고선 갑수를 향해 말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예?”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 무엇을 도와준단 말이오? 또 조건은 뭐고?”

“병원 내 좀비들을 전부 청소해 드리고, 앞으로 주기적으로 물자를 보급해드리겠습니다. 더불어 그놈들로부터 보호해 드리지요.”

요한이 일부러 소총을 앞으로 꺼내 들어, 보란 듯이 탄창을 빼냈다. 탄창 안에는 총알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고서 건넨 것은 무전기였다.

갑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희는 이곳에서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물자도 넉넉한 편이고 무기도 충분합니다. 급한 경우 무전을 치면 바로 지원 오겠습니다.”

“정말이오?”

갑수는 여전히 의문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이전처럼 적대심을 기반으로 한 의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체 왜 이런 호의를 베푸느냐는 의문.

“우리에게 바라는 걸 먼저 말해주시오.”

바람직한 태도다.

바라는 대가 또는 이유 없는 호의만큼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

그리고 요한의 호의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저희 캠프와 동맹을 맺으세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요한은 카테고리 팸플릿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차분히 설명했다.

“이곳에서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통제에 따라 주시는 것. 협조해주시는 것. 예를 들면 저희가 제시하는 생존 수칙과 규칙을 지켜주시고 저희가 구조한 생존자를 받아주신다거나 저희가 필요로 하는 분들이 다른 캠프로 옮긴다거나 하는 부분이지요. 몇 가지 협조해주실 부분들이 있는데 아마 어렵진 않을 겁니다.”

달콤한 거래다.

“저희는 최대한 많은 생존자 캠프를 모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안전하게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독이 든 사과일 수도 있다고 예감하면서도 눈앞에 놓인 탱글탱글한 붉은 독 사과처럼 한입 베어 물고 마는.

“불신하는 것 이해합니다만, 믿으셔야 합니다.”

천사가 내미는 구원의 손길인지 악마가 끌어당기는 함정인지 모를 그런 제안.

갑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우린 지금부터 어떻게 하면 되겠소?”

요한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미끼가 물린 순간, 대를 잡아당기는 것은 자신의 몫.

“우선 청소부터 하지요. 청소가 끝나면 저희와 동맹을 맺었다는 증표로 일행 중 한 분을 저희 캠프로 모셔가겠습니다. 선생님?”

요한이 의사를 불렀다. 여전히 그의 두 손은 잡은 채였다.

“그건······.”

지목을 받은 의사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병원 생존자들이 난색을 표하자, 갑수가 나섰다.

“그건 조금 곤란한데. 우리 동료를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에 혼자 보내는 것도 불안하고, 또 이분은 의사 선생님이시오. 선생님이 없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오.”

“그 부분은 저희로서도 안타깝지만, 저희 캠프엔 노인들도 많이 계시고, 인원도 많습니다. 대신 저희가 거의 매일 방문하다시피 할 겁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수고해 주시지요. 환자가 생기면 곧바로 선생님께서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동료를 보낼 수는······.”

“신갑수 씨.”

요한의 고저 없는 어조에 갑수가 흠칫 몸을 떨며 대답했다.

“무슨 속셈이 있었고, 의사 선생님만 필요했다면 여러분들을 다 살해하고 선생님을 납치해서 가는 편이 빠를 겁니다.”

“그런 흉악한 말을······.”

“반증하기 위한 말이에요. 이해는 되지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더라도 위험할지 모를 선택을 하셔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겁니다.”

요한의 말이 이어진다.

“그때 가서 후회하시지 마시고요.”

협조하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는 명확한 표현. 갑수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의사가 끼어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서,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현수 아버님. 여기 정 간호사도 어엿한 수술실 경력이 있는 간호사입니다. 정 간호사. 내가 없는 동안 이분들을 잘 부탁하네.”

“네··· 선생님.”

수술실 간호사라는 말에 요한이 입맛을 다셨다. 그의 전공이 어떤 의학인지는 몰라도, 사실 제대로 된 수술을 집도하려면 간호사도 꼭 필요하다. 마음 같아선 둘 다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사를 모두 데려가 버리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지.

“동맹 간의 결속을 위해서 캠프끼리 인원도 자주 교환하고 할 겁니다. 영영 이별하는 게 아니고요.”

요한의 말에 갑수가 부탁하는 어조로 차선책을 제시했다.

“저기, 이곳은 더 이상 남은 게 없소. 차라리 저희도 그냥 캠프를 옮기게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짐이 되지는 않을 테니···.”

좀비 웨이브에 대해 모르는 그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였다. 요한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만약 웨이브만 피할 수 있었다면, 자신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캠프로 모았을 거였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캠프도 더 인원을 수용하기엔 무리라서요. 오히려 캠프 인원들을 이곳으로 모시고 와야 할 상황입니다. 물자를 계속 모으다 보니 공간이 비좁아서.”

좀비 웨이브나 생존 수칙에 대한 부분은 우선 나중에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하고 우선 적당한 변명을 둘러댔다.

아직도 사람들의 표정이 미심쩍다. 요한은 쐐기를 박을 필요성을 느끼고 세리에게 지시했다.

“세리야, 문 열어. 밖이 시끄럽네.”

기겁하는 사람들. 아직도 문밖에는 좀비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채 말리기도 전에 철문이 무거운 소음을 내며 열렸다. 문을 열기 무섭게 죽은 자들의 괴성이 쏟아졌다.

“입구를 둥글게 둘러싸!”

요한의 말에 수색 조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일행들은 입구를 반원 모양으로 둘러싸고 들어오는 좀비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픽픽 쓰러지는 좀비를 보며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저, 저게······.”

하물며 어리고 가냘파 보이는 세리마저도 능숙하게 좀비들의 머리통을 부숴나갔다. 이곳에서 가장 좀비와 잘 싸우는 갑수보다도 더 훌륭한 실력이다.

그들이 죽을 둥 살 둥 도망쳐왔던 수십 마리의 좀비들은 금세 바닥에 축 늘어져 쌓였다. 요한은 나이프의 피를 닦아내며 뒤돌아섰다. 사람들이 다시 한번 흠칫한다.

“저희는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거나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 같으면 즉시 무전 치시고, 한 분은 꼭 창문으로 경계를 보세요. 이 버튼을 꾹 누르고 소리가 난 뒤 2초 정도 후에 말씀하시면 됩니다. 무전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헷갈리지 않게 제 이름을 부르세요.”

갑수는 신들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훈련된 생존자들을 처음 봤는지 얼빠진 모습이 역력하다.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다.

스치기만 해도 감염되는 이 지옥 같은 상황은 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하니까. 느릿하게 걸어 다니며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어뜯기밖에 못하는 좀비일지언정.

움츠러든 몸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높은 장벽이다.

“시작하자. 어두운 곳으로는 들어가지 마. 천천히 해도 좋으니.”

요한은 시작하기 전에 들어오면서 확인했던 병원 내부도를 복기했다.

“왼쪽으로 돌면서 일단 닫을 수 있는 문은 모두 닫을 거야. 출입구가 많으니까 안을 봉쇄해 놓아야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좀비들을 차단할 수 있어. 그다음엔 자리 잡고 좀비들을 불러모으자.”

“마트 때랑 똑같네.”

세리가 중얼거리자 요한이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대견하게 바라봤다. 드디어 1인분에 가까워지는구나. 한 보름만 더 굴리면 한사람 몫은 충분히 하겠어.

세리는 요한의 시선이 기분 나쁘다는 듯 툴툴거렸다.

“뭐야, 그 강아지 배변훈련 시키는 듯한 표정은!”

“오, 넌 가끔 정말 예리할 때가 있다니까.”

“······.”

세리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요한이 작전을 설명했다.

“세리 말대로 앞으로도 새로운 쉘터를 점령할 때는 비슷한 절차로 하면 돼. 출입구 파악하고 봉쇄. 높거나 넓거나 안전한 곳을 찾아서 사주경계를 한 채로 좀비들을 불러들여 정리한다. 시체 정리는 완전히 정리가 끝난 후에 하고. 잘 기억 해둬. 내가 없어도 절차는 똑같아. 속도보다 안전이 최우선이야.”

수색조는 1층을 돌아다니며 문을 잠갔다. 각종 비상구를 차단하고 별관과 본관을 방화 셔터로 가로막았다.

“잠갔어!”

“좋아, 이동.”

“와, 근데 별관엔 좀비가 진짜 많네.”

“내버려 둬 저긴. 어차피 건질 것도 없어.”

요한이 방화 셔터 한쪽의 비상구를 열고 좀비들을 구경하는 스위퍼를 잡아끌었다. 스위퍼가 툴툴거렸다.

“신중하게 하랬지 놀라고는 안 했다.”

“대장 형씨는 너무 빡빡하다니까.”

출발 전 이미 내부 안내판을 통해 시설물 위치를 확인해 둔 뒤였다. 점령 시에 건물의 구조를 먼저 확실하게 외워둘 것.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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