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33화 (33/176)

<33화>

목소리를 들은 영양사가 황급히 달려가 문을 열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사람들이 달려오고 그 뒤에는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선 사내는 날카로운 턱선과 그 턱선을 둥글게 감싼 턱수염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신장이 크진 않았지만 다부진 체격에서 그가 리더라는 기운이 뿔뿔 품어져 나온다.

여섯 명의 남녀가 가까스로 들어오고 문이 닫히자마자 좀비들이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식당 안을 울렸다.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헉헉거렸다. 그들의 손에는 황도 통조림 두 개가 들려있었다. 근처 병실을 뒤져 얻은 소소한 전리품.

사람들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다가 뒤늦게 요한 일행을 발견하고 소스라치듯 놀라 일어나 파이프 등 무기를 붙잡자 요한이 권총을 꺼내 들어 소리 나게 장전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얼어붙는다.

“다, 당신들은 누구······.”

요한은 요한입니다, 라고 간단하게 소개한 뒤 우선 물린 곳이 없는지부터 확인하라고 리더를 채근했다. 그는 깜빡했다는 듯 아차, 소리를 내고선 사람들의 상처를 확인했다.

“악의는 없으니 너무 무섭게 노려보진 마세요. 저희는 다른 캠프에서 왔습니다.”

“···신갑수요. 다른 생존자들이··· 많이 있소?”

“적지 않게 모여 있습니다. 이곳의 생존자는 여러분이 전부입니까?”

갑수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불안한 눈빛은 일행 면면을 훑어보는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요한이 미처 입을 다시 열기도 전에 그의 말이 떨어졌다.

“다른 캠프에서 왔다면 혹시 구조대 소식은······.”

“구조대는 없습니다. 6개월 동안 지내셨으면 아실 텐데요.”

초기에는 군부대의 구조 활동도 활발했고 대좀비 전투도 잦았을 테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은 구조 활동을 할 만한 집단이 남아있을 턱이 없다.

변종과 좀비 웨이브는 규모가 큰 캠프를 가장 먼저 타격한다. 활발하게 구조 활동을 벌인 캠프일수록 먼저 무너진다. 겪지 않은 사람들은 알 리 없지만, 이 시대에서만큼은 뭉치는 게 죽는 길이고 흩어지는 게 사는 길이었다.

구조대 소식이 없다는 말에 일행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는지, 갑수의 온도가 냉랭하게 내려갔다.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엔 더 이상 먹을 것도 얻을 것도 없소. 돌아가시오.”

“먹을 게 없다면 여러분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드실 텐데요.”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

사내는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요한이 무표정하게 턱을 쓰다듬었다. 사내는 요한의 손에 든 총을 보고도 적대적인 태도를 멈추지 않았다. 다소 괴이쩍은 모습이다. 요한이 이마를 조프리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당신들, 무슨 일이 있었군요.”

“흥, 이 난리에 무슨 일이 없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침입을 받았습니까?”

흠칫 놀라는 모습에 요한이 확신했다. 그의 말대로 무슨 일이 없는 게 이상한 기간이다. 만약 단순한 고립 생존자였다면 자신들을 내쫓기보다는 도움을 요청할 만한 상황이었으니.

“자세히 이야기해주시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어서 사라져주는 게 도와주는 길이오!”

“아, 거, 아저씨 말 심하게 하시네! 우리는 저기 영양사 언니한테 먹을 것도 나눠줬다고요!”

세리가 발끈해서 소리치자 분위기가 살벌하게 달아오른다. 요한이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악의는 없습니다. 악의가 있었다면 이런 무장상태로 이렇게 대화부터 시도하지도 않았겠죠. 조금만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요한의 말투가 조금 더 딱딱하게 변했다. 찰나에 내려간 온도 차를 느꼈는지 갑수가 몸을 떨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여전히 고민하는 갑수. 그의 고민이 길어지자 뒤에서 관망하던 한 사내가 끼어들었다. 흰 와이셔츠에 통 넓은 면바지를 단정하게 입은 사내였다. 이곳 남성 중 유일하게 깔끔한 머리와 정리한 수염이 눈에 들어온다.

“얘기하시죠, 현수 아버님.”

“선생님······.”

저 사람이 의사다. 요한이 눈을 빛냈다.

“그들과 한패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제가 말씀드릴게요.”

의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감았다.

“불과··· 사흘 전의 일입니다.”

의사는 말을 시작하면서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완전히 걷었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창문 한쪽에는 피를 묻혀 쓴 글씨로 ‘here’라는 글자가 소름 끼치는 모양으로 적혀있었다.

‘h’ 글자는 유난히 많은 피가 묻어 공포영화 포스터처럼 검붉은 핏물이 질질 흘러내린 채 굳어있었다. 요한이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가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창문 밖에서 쓴 글씨였다.

* * *

2017. 06.

수색조 접촉 3일 전.

순천향병원

일행의 마지막 식량이었던 통조림 뚜껑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고작 한 줌의 참치. 일곱 명이 나눠 먹으면 한 입도 아슬아슬한 양이었다.

갑수는 일행들이 최대한 먹을 수 있도록 적은 양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떠주고 남은 참치 기름을 입에 털어 넣었다.

미끄럽고 비릿한 국물이 입에 가득 담긴다. 국물과 함께 입으로 들어온 약간의 참치 조각들. 그마저도 아까워 목으로 넘어갈세라 끝까지 오물오물 씹었다.

마치 설거지라도 한 듯 깨끗해진 캔을 던져놓고 갑수는 일어섰다. 버틸 만큼 버텼다.

좀비 한 마리에 서너 사람이 달라붙어 한 마리, 한 마리씩 줄여나가기 시작한 지 벌써 수개월.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도. 식량도. 구조될 거라는 희망도.

“나가야겠습니다.”

갑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들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편의점과 식당, 두 식량 보급창고를 단 일곱 명이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식당으로 대피 올 때, 많은 희생을 치른 덕분에 1층 A동 편의점부터 A동 식당까지의 길은 좀비들의 수가 적었다.

방화 셔터가 견고하게 길을 막고 있는 B동, 병원 밖으로 나가는 출구는 좀비들이 가득했다. 그간 셔터의 문을 두드리다 죽어간 사람들이 좀비들을 몰고 온 것이 한몫했다.

갑수 일행은 방문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굳게 닫힌 셔터 밖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넉 달 전 느닷없이 방문했던 한 방문자가 있었다. 단신으로 좀비들을 뚫고 합류했던 사내는 늦은 저녁, 일행의 여성들에게 다짜고짜 위협적인 행동을 하다 갑수에게 제압당하고 얼마 후 좀비가 되었다.

그날의 충격 이후 일행의 외부인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살려달라는 외침에 마음이 약해질 때면 복도 한쪽에 버려진 그 사람의 사체를 보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렇게 거북이처럼 등껍질 속에 꼭꼭 숨어 있던 사람들에게도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현수 아버님.”

“밖을 나가면 군부대든 피난민 대피소든 뭐든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로비에 저 수많은 괴물은 어쩌고요.”

그들로서는 당장 이 병원을 빠져나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방화 셔터로 굳게 닫힌 복도 건너에는 열지 않아도 느껴질, 끝없이 우글거리는 좀비들의 하울링이 가득했다. 셔터 한쪽의 비상구는 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창문을 깨고 나가죠.”

식당의 창문은 사람의 허벅지 하나 통과하기 힘든 차양식 돌출 창이었다. 힘껏 밀어도 성인 남녀가 통과하기는 무리.

창문을 통해 나가려면 창을 해체하거나 유리를 깨야 했고 건물 밖에 우글거리는 괴물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으리라.

오히려 실패한다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계획이었다. 최선이 아닌 차악. 하지만 대안이 없다.

“제가 먼저 나가 좀비들을 유인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갑수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죽음을 자초하는 그의 말에 사람들이 기겁하며 그를 만류했다. 그리고 그때, 건물 밖에서 희미하지만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일곱 사람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갑수가 천천히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살짝 걷어 밖을 보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갑수의 뒤로 모여들었다.

건물 밖에는 멀리서부터 두 장년 남녀가 온 힘을 다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쫓는 건 괴물들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일지도 모를.

두 남녀를 쫓는 괴한들은 이륜차를 타고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그들을 따라갔다. 거리가 가까워질 새면 일부러 차를 멈춰 담배를 피우기도 하다가 다시금 그들을 뒤쫓았다. 그 괴기한 추격전이 점점 병원과 가까워진다.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의 수는 열 명. 그들은 하나같이 핏물이 얼룩진 옷을 입고, 마치 미식축구 선수처럼 눈 밑을 검붉게 칠한 말로 형용하기 힘든 괴이쩍은 모습이었다.

굳은 피로 보이는 문양으로 칠한 채 도끼, 망치, 톱 등을 들고 낄낄대며 사람을 쫓는 모습은 실로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그 바로 뒤로 좀비들이 느릿하게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도망치고, 열 명이 쫓고, 수백의 좀비들이 따라오는 이상한 풍경.

두 남녀는 맹수에 쫓기는 초식동물처럼 간절한 표정으로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이곳, 병원이었다.

안 돼, 오지 마!

갑수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쪽으로 오지 마, 제발!

그의 간절한 바람에도 두 사람은 병원 지척까지 달려왔다. 식당 창문과 백 미터 남짓 떨어진 곳까지 달려온 두 사람.

뭉쳐 있는 좀비들을 발견하고 방향을 틀다 여인이 미끄러진다. 야속하게 새어 나오는 비명이 첨예하다.

사내가 그녀를 부축하기 위해 멈춘 사이 한 괴인이 오토바이를 급발진시켜 그에게 접근했다. 괴인이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사내의 머리를 쳤다.

빡!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사내의 몸이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갑수와 함께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새어나가는 비명을 막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저런 개자식들······.”

괴인들은 기절한 사내의 한쪽 발을 붙잡고 오토바이를 빙빙 몰았다. 사내의 얼굴이 아스팔트 바닥에 갈려 피를 쏟아냈다.

그때, 갑작스레 나타난 좀비 한 마리가 창문에 달라붙었다.

“흐억!”

사람들이 놀라 나자빠졌다. 갑수는 숨이 멎을 듯한 기분을 느끼며 황급히 커튼을 쳤지만, 좀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쾅쾅!

쾅쾅!

“살려주세요! 아악!”

이어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 연이어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사지육신이 벌벌 떨려 왔다. 배짱이 두둑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던 갑수마저도 부들대는 손발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저 야속한 좀비가 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

창문을 쾅쾅 두드리던 좀비가 사라졌는지 쿵쿵대던 소리가 사그라졌다. 좀비들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여전했지만, 그 외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숨죽인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억만년 같은 시간이 흘렀다. 몇 시간 같기도, 몇 분 같기도 한.

갑수가 천천히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의 모습은 마치 슬로우모션 같았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 커튼 끄트머리를 살짝 잡고 아주 살짝 들어 올렸다. 그가 살짝 젖힌 커튼 바로 앞에는,

‘거봐. 있댔지?’

히죽 웃고 있는 눈동자가 있었다.

살아 데굴데굴 움직이는.

괴인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만큼 벌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