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 * *
순천향병원 근처에 도착한 네 사람은 진입 전 병원 내부를 외부에서 탐색했다. 위험요소를 가진 다수의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병원은 한 줌의 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고, 군데군데 깨진 유리창이 6개월간의 혼돈을 가늠케 했다. 원래라면 병마의 풍파를 맞은 사람들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심장에 품은 채 그 사람들을 위해 달리는 의료인들로 활기 가득했을 공간. 이제는 깨진 창문 사이로 흔들리는 커튼들만이 을씨년스러운 회색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요한이 쌍안경을 들고 병원 내부를 살펴보는 스위퍼에게 물었다.
“뭔가 보여?”
“아니, 들어가 봐야 알 것 같네.”
“인기척은?”
“사람인지 좀비인지 구분하기 힘들긴 한데, 대부분 좀비인 것 같아.”
요한이 스위퍼로부터 쌍안경을 건네받아 병원 내부를 살폈다. 역시나 그의 말처럼 대부분 좀비의 모습이었다. 얼추 외관만 보기에도 감염자가 가득해 보이는 모습.
“별수 없지. 부딪혀 보는 수밖에.”
“어디로 들어갈까?”
“후문으로 가자.”
대답에 고민은 없었다. 태양이 비치는 방향으로 들어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 안쪽으로 갈수록 어두워질 테니 될 수 있으면 시야가 밝은 곳으로 움직여야 한다.
네 사람은 천천히 병원으로 진입했다.
병원 내부는 깨진 집기들과 유리 조각이 즐비해 마치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흉물스러운 모습이었고, 햇빛이 드문드문 들어온 탓에 완전히 어두운 곳들도 있어 전진을 방해했다.
병원 안은 움직이는 좀비와 좀비 시체로 가득했다. 하지만 워낙 통로가 좁아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요한은 병원 내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좀비 시체와 아직 움직이는 좀비들의 괴리감. 사체가 된 좀비들의 머리에는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고, 상당히 오래 방치되어 있었는지 부패가 심각한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움직이는 좀비들은 비교적 부패 상태가 덜 심각했다.
“생존자가 있었군.”
요한은 생존자가 있었다는 과거형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분명 생존자가 이곳을 지나다녔던 흔적이 역력했다.
그 생존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식당 근처랑 원내 편의점. 두 군데만 확인하면 될 것 같아. 스위퍼, 왼쪽 에스컬레이터 옆 좀비 둘.”
요한이 가장 먼저 기척을 눈치채고 스위퍼를 호명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지나자마자 사각에 가려 있던 좀비들이 아가리를 들이민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스위퍼가 한 손으로 좀비 한 마리를 뒤로 확 꺾은 뒤 다른 좀비의 머리를 내려쳤다. 이어 손에 붙잡고 있는 좀비도 금세 쓰러졌다.
“캬, 정말 귀신같이 알아챈다니까. 어떻게 알았지? 소리도 안 들렸는데.”
요한은 검지를 펴 입술을 두어 번 두드린 후 그를 지나쳤다. 스위퍼가 샐쭉한 얼굴을 했다.
편의점은 거의 모든 물자가 비어있었다. 사람이 머문 흔적은 없었다. 그 대신, 편의점 내부와 근처에 머리가 뚫린 좀비 시체가 상당했다.
내부를 훑어본 요한이 그 규모로 물자의 수량을 간략하게 파악했다. 식당에 식량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두 포인트를 한 그룹이 독점한다면 아슬아슬하게 6개월을 버틸 거란 계산이 선다.
요한이 수신호 하자 세 명의 남녀가 곧바로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캠프 밖으로 나온 이후부터는 웬만해서는 말 대신 수신호가 대부분의 지시를 대신했다.
쓸데없이 떠들다가는 곧장 요한의 타박이 귓가로 박혀 왔기 때문. 안전하다는 수신호가 떨어지기 전까지 잡담은 금지였다.
임직원 식당은 편의점과 같은 층,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요한이 굳게 닫힌 식당의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잠겨있다.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또렷한 어조. 요한은 최대한 편안한 목소리로 생존자를 불렀다.
“······.”
아무런 말이 없다. 두 번째에는 요한의 목소리가 커졌다. 목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 주변의 좀비들을 끌어들일 정도가 되어도 역시 반응은 감감무소식이다.
그리고 차분한 기다림. 기다림이 주는 갑갑함을 참다못한 세리가 입을 열었다.
“오빠,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아니. 안에 생존자가 있다.”
요한의 말에 세리가 눈을 크게 떴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
“안에서 잠그는 문이야. 누군가 들어가서 문을 잠근 거지. 만약 들어간 사람이 좀비가 됐다면 두들긴 소리에 반응했을 거야.”
“그냥 원래부터 잠겨있거나··· 밖에서 누군가 열쇠로 잠그고 간 것일 수도 있잖아?”
“편의점까지 싹 털어 갔는데 식당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지. 생존자가 혼자였다면 일단 물자가 떨어지기 전까진 웬만해서는 나오지 않았을 테고, 물자가 떨어졌으면 굳이 문을 잠글 필요는 없겠지.”
여전히 확신하는 그의 모습이 의아했는지 세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한 명이 아니면?”
“그럼 문을 잠그는 게 아니라 보초를 세워뒀을 테고. 생존자들은 식량 근처에 머무르려는 습성이 있어. 좁은 편의점보다는 넓은 식당이 머무르기엔 안성맞춤이지.”
요한이 말을 맺으며 문을 다시 두드렸다.
“안에 계신 것 알고 있습니다. 구호품을 좀 나눠드릴 테니 문 좀 열어보시죠.”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안 여시면, 생존자가 없는 걸로 알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겠습니다.”
요한이 정말로 문손잡이를 부술 듯 스위퍼에게 도끼를 건네받아 날 쪽이 아닌 등 쪽으로 문손잡이를 쾅, 세 개 내리쳤다.
물론, 정말로 문을 부술 생각은 아니었다. 문 자체가 굉장히 단단한 철제인 데다가, 손잡이조차도 쉽게 부서질 모양새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의 협박은 금세 먹혀들었다.
“···필요 없으니 돌아가요.”
안에서 개미처럼 기어들어 가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이 여봐란듯이 뒷사람들을 쳐다보곤 스위퍼에게 도끼를 건넸다.
“그럼 문 앞에 식량을 좀 두고 가겠습니다.”
요한이 가방을 꺼내 건식품 몇 개를 내려놓았다. 그가 숨으라는 수신호를 하자 세 사람이 뒤로 물러서 몸을 숨겼다.
한참 뒤에, 살짝 문이 열리더니 한 여인이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식량을 주우려던 찰나, 문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요한의 손이 불쑥 문을 붙잡았다. 새된 비명이 울렸다.
여인이 손에 든 파이프를 요한에게 휘둘렀다.
요한은 핸드가드로 파이프를 한 번 막은 뒤, 곧바로 손을 곡선으로 움직여 여인으로부터 파이프를 붙잡고, 뺏어냈다. 발작처럼 몸부림치던 여인은 요한의 손에 들린 권총을 보고서 반항을 멈춘 채 벌벌 떨었다.
과민한 반응에 다소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잠시, 요한은 여인을 제압하고 내부를 경계하며 들어갔다. 병원 식당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내부에 좀비들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혼자입니까?”
여인은 대답할 수 없다는 듯 앙다물었다. 그러나 이어서 들어오며 문을 닫는 세 명의 완전무장을 보고 점점 낯빛이 굳어갔다. 요한이 심드렁하게 내부를 둘러보더니 자문자답했다.
“다섯 명 정도군요.”
확정적인 말에 여인의 동공이 급격하게 커졌다.
“다른 분들은 물자를 구하러 간 듯하고요.”
“당신은 대체······.”
“해칠 생각은 없으니 너무 겁내지 마시고, 잠시 이야기를 좀 할까요?”
“그, 그렇게 총을 겨누고 해칠 생각이 없다고요?”
요한이 어깨를 으쓱했다. 겨누진 않았는데. 들고 있었을 뿐.
“해칠 생각이 있으면 보자마자 쐈겠죠.”
“안심시키고 해코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무슨 해코지요?”
“그··· 몸을 노린다든가.”
요한으로선 다소 억울할 만한 오해였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순간 세리의 ‘약탈자’ 비주얼이라는 단어가 짐짓 스쳐 지나갔지만, 잠시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보장은 없지만 그런 악의를 가진 사람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세요. 그럼 일행분들을 기다릴 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무슨 이야기요?”
여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앙칼졌다.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를 가리기 위해 더 날카롭게 소리 내는 듯.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일행분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등등이요. 혹시 의사십니까?”
“···아니요.”
“일행 중에 의사가 있습니까?”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요한은 손에 쥔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딱히 위협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게 위협이라고 생각했는지 여인이 하얗게 질리며 대답했다.
“···선생님이 한 분 있어요. 간호사 선생님도.”
요한이 쾌재를 불렀다.
의료인. 아주 귀한 인재 중의 인재다. 첫 원정부터 좋은 소식에 절로 얼굴이 밝아진다.
“식량이 떨어진 지는 얼마나 되었죠?”
“일주일이 좀 넘었어요. 여기저기서 구하고는 있는데······.”
“시장하시겠군요. 세리. 물과 먹을 것을 좀 드려.”
세리가 문 앞에 놓인 식량과 물을 집어다 여인에게 건넸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덧붙이며 여인을 토닥거리며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확실히 같은 여자여서 그런지 세리의 말은 제 말보다 더 잘 먹히는 듯했다. 그녀의 떨림이 멎어 간다. 요한은 세리의 밥값을 0.3인분에서 0.4인분으로 상향했다.
여인은 얼마나 굶었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거의 한계까지 버텼던 모양이다. 슬슬 다른 장소로 옮길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던 타이밍. 본의 아니게 시기적절한 방문이었다.
식당은 커튼이 반쯤 쳐져 약간의 빛이 들어오는 정도였다. 아포칼립스 초반에는 커튼을 완전히 치고 죽은 듯이 숨어 지냈으리라.
식당 안에는 테이블별로 각종 생활용품이 나름대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들로서도 위험한 바깥을 나가기보다는 익숙한 장소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물자를 구하러 나선 것일 테지.
문밖의 오래된 시체는 아마 그들이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의 전투 흔적일 터다. 요한은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여인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처음 이곳으로 대피할 때는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스무 명이 넘었어요. 여기로 오다가 대부분 죽었지만.”
여인은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인지 한결 경계심을 푼 모습이었다. 요한이 여세를 몰아 궁금했던 부분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특히나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초기 병원의 대혼란. 병원은 쉽게 추측할 수 있듯, 환자들이 많은 곳이다. 그만큼 전염속도가 빠르고 초기에는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작은 병원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큰 병원에서 생존자가 남아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이곳에 들른 것은 그저 운 좋으면 의료인 생존자를 찾는다는 일말의 기대, 그게 아니면 의약품이라도 챙겨가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병원 생존자는 총 일곱 명. 의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 그리고 영양사와 환자 가족 네 명으로 이루어진 구성이었다.
그들은 사태가 터질 때 같은 병실에 있었고 눈치 빠른 환자 가족 중 한 명의 판단으로 함께 지하 식당까지 움직였다고 한다. 환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희생됐고 자신은 영양사로 이곳에 있다가 그 사람들과 함께하게 됐다고.
“좀비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있습니까?”
“지금 나간 사람들이요.”
요한이 다른 질문을 꺼내려는 찰나, 문밖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높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어 문!”
“사람들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