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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28화 (28/176)

<28화>

어느 정도 전투가 종료되고, 요한이 싸움 내용을 복기했다. 근접 전투 직전에 한쪽 팔을 날린 것이 천운이었다. 만약 세 번째 공격에서 놈이 멀쩡했다면, 긴 리치로 휘두르는 놈의 발톱을 막기 어려웠을 터다.

위험도가 낮은 변종이라곤 하지만 역시 변종과의 싸움은 힘겨웠다. ‘골룸’은 그나마 어둡고 좁은 동굴과 같은 구조에서 나타나는 놈이라 전투력 자체는 높지 않은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고생이다.

요한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변종과의 전투는 정말로 사양이었다. 놈들을 상대하는 건 정확히는 국군의 몫이지 제 몫은 아니었다. 주변 군부대를 몰살시킨 변종이 한 마리 더 남았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치가 떨려 왔다.

“형씨, 괜찮아? 아주 피로 샤워를 했네.”

“좀비는?”

“보이는 건 전부 끝냈어. 많진 않더라고.”

“하진은?”

요한의 물음에 스위퍼가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당한 건가. 요한이 후방을 향해 귀를 기울였으나 별다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봐! 살아있어?”

스위퍼가 하진을 불렀다. 약간의 침묵에 뒤이어 후방에서 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바탕 거친 전투를 치렀는지 요한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을 만큼 전신이 땀과 좀비 피로 가득했다.

얼마나 팔을 휘둘렀는지, 한쪽 팔이 부풀어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동료애를 느끼기엔 이른 시기였지만, 최소한 지금 순간만큼은 든든하기 짝이 없는 모습. 이어 하진이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후방도 클리어.”

“물리거나 할퀴어진 사람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요한은 확실하게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우선 밝은 곳으로 나가는 게 먼저였다.

다시 한번 요한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안도의 숨이었다.

“좋아. 수고했어.”

요한이 앞장서서 움직였다.

이제 놈들이 기껏 준비해놓은 캠프에서 떨어지도록, 좀비들을 위한 노래를 불러줄 시간이다.

* * *

“그 괴상하게 생긴 놈은 뭐지?”

터널을 걷는 중 하진이 요한에게 변종 좀비에 관해 물었다. 아마 그는 요한의 전투 장면을 끝까지 보지 못했으니 더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변종 좀비. 군대와 정부체계를 무너뜨린 주범이지.”

요한의 대답은 이미 하진이 알고 있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진은 질문을 바꿔 물었다.

“좀비라는 게 무슨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니었어? 좀비한테 물리거나 할퀴어지면 인간이 좀비가 되어버리는 것 말이야.”

“아마도?”

“그럼 대체 저건···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잖아. 어떻게 저런 생물체가 생길 수 있지.”

하진의 말에 요한이 픽 웃었다.

“좀비라는 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나 그럼?”

“그건 아니지만.”

대답이 썩 맘에 들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자 요한이 덧붙였다.

“내게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진 모르겠지만, 나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야. 이 망할 좀비들이 어디서 왜 나왔는지도 모르고. 변종은 또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몰라.”

좀비 사태 이후 회귀 전후를 합쳐 3년 6개월을 살았지만, 사실상 밝혀진 것들은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갈 뿐.

“어느 비밀 기업이나 정부에서 생화학 무기를 만들다 실패한 결과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구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을 정화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일 수도 있을 거고. 그것도 아니면 성경에 예고한 대로 종말을 맞게 하려는 여느 신의 멋진 계획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건.”

요한이 잠시 뜸을 들인 뒤 덧붙였다.

“이 빌어먹을 재앙의 원인이 무엇이든, 그 원인과 해결책은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윗대가리들이 해결할 문제라면 모를까. 물론 높으신 분들이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면 말이야. 우리의 과제는 그저···.”

두 사람은 빨려 들어갈 듯한 요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지랄 맞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살아가는 것. 그뿐이지. 아포칼립스 이전에도 그랬듯.”

요한의 말은 두 사람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했는지,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계속됐다.

그렇게 말없이 걷던 사이 세 사람은 신중동역에 도착했다. 신중동역 앞에서 적당한 편의점에 들어가 물자를 충당하고 한숨 돌린 일행에게 요한이 물었다.

“일단 우리의 동행은 여기까지로 보이는데···. 두 사람은 어쩔 셈이지?”

그 물음에 먼저 대답한 건 스위퍼였다.

“일단 뭐, 나는 해왔던 것처럼 혼자 돌아다니면서 살아가겠지. 뭐 별 게 있나.”

“하진은?”

“몸담을 곳을 알아봐야겠지. 이렇게 물어보는 걸 보니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군.”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캠프에 합류를 제안하지. 나와 함께해. 제 명줄보단 길게 살아남게 해주마.”

요한의 다소 강한 말투에도 두 사람은 그리 거북스럽지 않은 듯했다. 아마 본인들도 느끼고 있었을 터다. 요한의 리더십, 그리고 세 명이 함께하는 게 생존율이 더 높아지리란 사실을.

사실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함께 행동하는 동안에도 선을 지키는 그의 모습을 봐 왔기에, 이 제안이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스위퍼는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궁금증이 남아있었다.

“형씨는 대체 누구야?”

“통성명을 아직 안 했던가?”

“이름을 물어보는 게 아니야. 똑같이 6개월을 이 재난 속에서 살았는데, 형씨는 내 생각에 절대 평범한 생존자가 아니야. 나를 바보로 보면 곤란하지. 정체가 뭐야? 어떻게 이 좀비에 대해 그 정도로 잘 알지? 이 난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스위퍼의 질문은 제법 예리한 데가 있었지만, 요한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굳이 아직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줄 이유가 없었고, 설령 대답해준다 하더라도 그가 믿을지 미지수였다.

“말할 것도 없지만, 말해도 믿지도 못할 텐데.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하면 믿을 텐가?”

“뭐?”

“아니면 신이 내린 사도라고 하면? 미래를 보는 예언자라고 하면?”

“그런······.”

“생체병기 실험실의 정부 관계자라는 건 어때? 그나마 믿을만한가.”

“저, 정말?”

“당연히 농담이지. 순진하긴. 그냥 평범한 생존자일 뿐이야. 단기간에 많은 걸 겪었을 뿐. 내 경험담이 궁금하면 합류해. 알기 싫어도 점점 알게 될 테니.”

스위퍼는 사실상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였다. 요한은 입을 다문 스위퍼로부터 고개를 돌려서 하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어때?”

“합류하지.”

하진의 대답은 깔끔했다. 어차피 요한에게 받은 목숨값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처음부터 요한이 내치지 않는 한 가능한 그의 곁에 머물 생각이었다.

하진의 선 대답 후 질문이 이어졌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뭔가 계획이 있나. 지금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목적은 아닐 거라 생각이 드는데.”

과연 A급 생존자들인가. 요한이 그들의 질문에 감탄했다. 일반 사람들은 그저 요한의 무력이나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을 놀라워할 뿐이었다.

그를 의심했던 사람도 드물었고, 요한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찰한 사람도 드물었다.

두 사람이 한 번씩 저를 놀라게 했다. 요한은 하진의 질문에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역 단위의 광범위한 조직을 만들 거야.”

하진은 아리송한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좀 더 쉽게 설명해주면 좋겠어.”

“생존자들을 모아서 생존에 최적화된 전문가로 만들고 부천시 내에 여러 개의 캠프를 점조직처럼 만들 거야. 조직의 목표는 셋. 첫 번째로는 좀비로부터 안전해지는 것, 두 번째는 물자확보와 자력 생존을 위한 순환고리를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는 악의를 가진 집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무력을 기르는 것.”

20명 내외의 작을 캠프를 여러 개 만들어 캠프끼리 연합을 구축한 뒤, 하나의 거대한 쉘터를 만들 생각이었다. 쉘터의 유효기간은 2년 정도로 계산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다른 계획이 준비되어있다.

“악의를 가진 집단? 골드문 같은?”

하진이 되물었다. 요한의 안면에 명백한 비웃음이 걸렸다.

“그런 멍청한 삼류 악당들은 신경 쓸 것도 없지.”

골드문은 조직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삼류 양아치 집단이었다. 기반과 동료가 부족했던 시점에 스위퍼와의 충돌 때문에 일부러 붙잡히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종과 좀비 웨이브라는 불운에 불운이 겹친 결과물이었다.

요한이 생각하는 진짜 적은 그들과 레벨이 달랐다.

진짜 까다로운 적들은 자신의 캠프 인원에게 저열하고 일차원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종교를 이용해 맹목적인 충성을 불러일으킨 뒤 생존자들을 기꺼이 죽음으로 내몰거나, 집단 전체를 폭력성에 물들게 해, 그 폭력성을 외부 집단에 끝도 없이 분출하게 한다.

또는 조직 내에서 계급사회를 만들어 안전을 담보로 폭력과 착취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등, 어떠한 류의 방법이든 조직 자체를 똘똘 뭉치게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렇게 만든 단결력으로 적대 세력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다. 그런 조직과의 싸움은 불가피하고 불가해한 영역이다.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는데 쉽사리 대처할 수가 없었다.

“살아가다 보면 그놈들은 동네 양아치 수준으로 느껴질 만한 인간 같지 않은 종자들을 많이 만날걸. 예를 들면··· 사람을 사냥해서 인육을 먹는다던가.”

요한이 씩 웃으며 덧붙인 말에 두 사람이 입을 똑 다물었다.

“그럼 일단 두 사람 모두 동의한 걸로 알고. 캠프에 대한 소개는 가면서 하도록 하지. 참, 하나만 기억해 두면 좋을 거야. 지금부터 동료로 맞이한 만큼 믿고 등 뒤를 맡길 텐데. 혹시라도 배신하거나 동료를 팔면 고민하지 않고 죽일 거야. 싫으면 지금 돌아가.”

진심 어린 말이었다. 두 사람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무덤덤하고 높낮이 없는 말이 콕 박혀 들어 오는 서늘한 느낌.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요한이 앞장서고 두 사람이 뒤따랐다.

그들은 신중동역에서 부천시청역 쪽으로 움직였다. 도로는 제법 한산하고 적막했다. 모든 좀비가 전부 H백화점에 몰려 있는 것마냥 좀비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우선 캠프 근처에 몰려 있는 좀비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소리로 유인하는 것.

소리에 반응하는 놈들에게 큰 소란을 내서 이곳으로 향하게 하는 거다. 요한 일행은 부천시청역 근처까지 이동해서 적당한 차량을 골랐다.

워낙 조용한 거리기에 차량에 있는 도난경보음 정도로도 충분히 근처 좀비들을 유인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쨍그랑! 요한이 개머리판으로 외제 차 한 대의 유리창을 깨트렸다. 삐- 하는 도난경보음이 거리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요한과 두 사내는 근처 외제 차 두어 대의 창문을 더 깬 뒤 재빨리 골목으로 들어갔다.

좀비들을 더 멀리 떨어트려 놓으면 좋겠지만, 멀리서 이곳까지 들리게 하려면 음향장비가 필요했다. 사실상 그림의 떡. 우선 입구의 좀비들을 끌어내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며 소음을 쫓는 사이 요한은 마트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주차장 출구 쪽 방향에 좀비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좀비 웨이브에서 흘러들어온 좀비들이 이곳으로 향한 듯 보였다. 요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탑차 바깥쪽에 좀비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고, 안쪽엔 넘어간 좀비들이 다시 되돌아오지 못하고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탑차 위, 한 팔다리가 다 물어뜯겨 움직이지도 못한 채 서글프게 하울링하는 한 구의 좀비가 눈에 들어왔다.

요한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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