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26화 (26/176)

<26화>

요한의 말에 두 사람이 창문 바깥을 내려다봤다. 말이 3층이지, 어지간한 아파트 6층 정도는 되는 높이였다. 떨어지면 어디 하나 남아나는 곳도 없을뿐더러 그 밑은 좀비의 밭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사무실 안에는 밧줄 대용으로라도 쓸 만한 것도 없었다.

“여길 어떻게 내려가?”

스위퍼의 물음에 요한이 창문 옆 ‘ㄴ’자 모양으로 꺾인 외벽에 딱 붙은 채로 뻗어 있는 둥근 파이프를 퉁퉁 쳐 보였다.

“이걸 타고 내려갈 거야.”

요한의 말에 스위퍼가 불안한지 파이프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당장 떨어져 나갈 것 같지는 않아도 불안하긴 했다.

“···차라리 그냥 문 열고 나가는 게 쉬울 것 같은데. 두 명이 좀비 잡고, 네가 상무가 오나 안 오나 보면 되잖아. 아니면 저 천장 환풍구로 다른 사무실까지 가서 이동하거나.”

“굳이 쉬운 길 놔두고? 아까 소란으로 근처 좀비들은 다 이곳으로 몰려 있을 것 같은데. 믿어 봐. 이게 좀비들을 최대한 적게 만나는 루트니까.”

요한의 단호한 말에 ‘쉬운 길이라고?’ 반박하려던 스위퍼가 입을 꾹 닫았다. 너도 뭐라 말을 해보라며 하진의 팔을 툭 쳤으나 하진은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내려가서 공간 확보할 테니까 바로 따라 내려와서 엄호해.”

요한은 그 말을 남기곤 파이프에 매달려 슬슬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발을 ‘ㄴ’자 모양의 양 끝에 지지대처럼 놓고선 손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낙하 속도가 빨라질 것 같을 때면 중간중간 걸려있는 고정나사가 완충 역할을 했다.

요한이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던 스위퍼가 인상을 쓰며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 얼핏 보이는 좀비들의 형상이 끔찍하다. 좀비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는지 파이프 주변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살아있을 때나 이렇게 인기가 많아 봤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만 좀 쳐다봐라, 아무리 침 흘려도 나 쉬운 남자 아니거든······.”

떨어지더라도 좀비 쿠션 때문에 즉사하지는 않겠구나. 그다음에 시원하게 오체분시 되겠지만.

그가 시범을 보인 자세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워커의 마찰력이 내려가는 속도를 줄여 주었고, 파이프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미끄럽지 않았다.

먼저 내려온 요한은 창문을 퉁퉁 두드렸다. 안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좀비들이 있는 듯. 창문을 열어보지만, 단단하게 닫혀 있다. 요한이 난간에 선 채 한 손으로는 창틀을 꼭 붙들고 한 손으로 총알을 발사했다.

유리가 깨지는 요란한 소음과 함께 반동으로 한 손이 뒤로 크게 흔들렸다. 유리는 와장창 깨져 무너져내렸다. 창문 안쪽으로 좀비들의 시선이 날아와 박힌다.

요한이 곧바로 사격자세를 잡고 반자동 사격으로 좀비들의 머리를 찍어 사격했다. 우선 가까이 있는 좀비 여덟 마리를 쏴 죽이고선 총기를 등에 메려 할 때쯤 스위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간다아아! 총알 아껴!”

휙 점프한 스위퍼가 뒤이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스위퍼의 무기는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손끝에서 팔꿈치 길이 만 한 손도끼였다. 그는 손도끼를 들고 빠른 속도로 좀비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급소를 정확히 노려야 뇌가 박살 나는 요한의 나이프와는 달리 스위퍼의 핸드액스는 경쾌한 손짓으로 좀비들의 뇌를 두개골째 박살 내고 있었다. 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좀비를 잡고 있는 녀석. 역시 제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울리지 않는 무기를 쓰는군.”

“내 보물이지. 나는 아무래도 이게 손에 익어서 말이야. 나이프류는 이가 너무 빨리 빠져서.”

“원래 하던 일은?”

“나?”

스위퍼가 좀비의 머리에 손도끼를 콱 박아넣은 자세로 한 발을 좀비의 명치에 올리고 뒤를 돌아본 뒤, 씩 웃었다.

“보험 팔았는데?”

“농담이 지나친데.”

“농담 아닌걸. 지금 내 고객들 보험금 다 지급하려면 우리 회사는 아주 파산 났겠어. 아, 회사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만!”

스위퍼는 제가 말하고도 뭐가 웃긴지 깔깔 웃으며 좀비들을 후려쳤다.

이어서 하진이 합류했다. 하진의 모습은 더 가관이었다. 그는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나이프로 좀비들의 머리를 박살 냈다.

나이프를 쥐고 있는 손이 얼마나 큰지, 나이프로 머리를 깨는 건지 주먹으로 깨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두 사람의 무기가 바뀐 것 같은 기분에 요한이 헛웃음을 흘렀다.

요한마저 가세하자 좀비들이 모이는 수보다 쓰러지는 수가 많았다. 아마 둘러싸이지만 않는다면 셋이서 동시에 40~50구까지 상대할 수 있을지도. 한 번의 전투였지만, 인원수 대비 순간적인 화력은 회귀 전을 합쳐도 역대급이었다.

“후, 겁나게 많네, 진짜. 형씨들 진짜 잘 싸우는걸.”

“잠깐 스위퍼, 기다려.”

요한이 밖으로 나가려던 스위퍼를 제지하며 매장의 유리문을 닫았다. 스위퍼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는 거야? 점점 좀비들은 많아지는데. 나가려고 한 거 아니었어?”

아니나 다를까 소란을 들은 좀비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요한은 마치 좀비들을 유인이라도 하듯 유리문 근처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이거 곧 깨질 것 같은데.”

“저대로 놔두면 깨지긴 깨지겠지. 곧은 아니겠지만.”

한참을 그렇게 펄쩍 뛰고 있자 세 사람이 있던 매장 앞에는 수많은 좀비가 바글바글하기 시작했다. 근처의 좀비들이 전부 모인 듯한 수였다.

“좋아, 형씨 말대로 우리의 출구 앞에 좀비를 잔뜩 데려다 놨는데, 이제 어쩌게? 수류탄이라도 던질 거야?”

“우리의 출구는 저기가 아닌데.”

의뭉스러운 소리였다. 이 매장 안의 출입구는 분명 저기 하나였다.

요한이 소총을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에 두 사람이 눈을 번쩍 떴다. 요한은 매장과 매장을 가로막고 있는 유리 벽을 총으로 쏘기 시작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내가 길 열 테니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 유리에 베이지 않게 조심하고.”

두 사람은 이제야 요한의 속셈을 깨달았다. 한쪽 끝에서 좀비들을 유인해 놓은 뒤 매장과 매장을 막고 있는 유리문을 깨고 반대쪽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그러면 좀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한 번의 싸움 없이 반대쪽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다다다! 조정간이 자동으로 놓인 총구가 불을 뿜는다. 불을 뿜을 때마다 유리에 균열이 생기고 요한이 발로 와장창 깨트렸다. 몇 개의 유리문이 계속해서 박살 났다.

좀비들은 먹잇감들을 따라 움직여보지만, 이미 너무 많은 개체가 뭉쳐 있어 움직이기 쉽지 않았고, 설령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휙휙 다음 매장으로 넘어가는 이들을 따라잡을 순 없었다.

요한이 마지막 매장의 유리 벽까지 구멍을 내준 후 앞문을 활짝 열었다. 아무것도 없는 에스컬레이터가 그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마치 두더지 굴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매장을 보며 스위퍼가 감탄했다. 요한은 그저 말없이 탄창을 갈아 끼울 뿐.

“형씨는 꼭 악당 같네.”

“악당보다 더하지.”

“머리도 좋은 것 같고.”

“그건 절대. 그냥 경험이 많은 거야. 지하철로 가는 입구가 어디야?”

“좋아, 내 차롄가! 내가 앞장서지.”

스위퍼는 날랜 몸놀림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좀비는 요한과 하진이 상대할 틈도 없이 스위퍼의 도끼가 번쩍거리며 좀비들의 뇌를 갈랐다.

그리고 도착한 지하철역 앞, 통로는 좁았고 닫힌 유리문 앞에 약 쉰 마리의 좀비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달려가던 세 사람이 멈칫했다.

“제법 많은데. 그냥 쏴 버리는 게 어때?”

스위퍼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저 문 너머로 적이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고, 웬만하면 문을 안 깨트리고 싶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덩치 큰 형씨. 더 할 수 있겠어?”

스위퍼가 숨을 고르고 있는 하진을 보며 물었다. 그럴 만도 한 게 꽤 먼 거리를 한시도 안 쉬고 뛰어 왔다. 날렵한 몸의 두 사람도 지치는데, 육중한 몸을 끌고 온 하진은 더 벅찰 터다. 그러나 하진은 코웃음을 쳤다.

“발목이나 잡지 마라.”

“오우, 터프한걸.”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이 요한이 쇠뇌를 꺼내 좀비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쇠뇌의 역할은 한데 뭉쳐 있는 좀비들을 흐트러트리는 것.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은 뭉쳐 있던 좀비들의 중간중간을 타격했고 좀비들은 넘어지거나 휘청거리느라 저도 모르게 대형이 흔들린 채 산발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좀비들을 스위퍼와 하진이 번갈아 가며 학살해댔다. 퍽퍽, 경쾌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쇠뇌를 쏘던 요한이 새로운 화살을 장전하는 사이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재빨리 장전하려던 화살을 뒤로 휘둘러 접근하는 물체의 머리 부분을 공격했다. 다가오던 좀비가 그대로 힘이 풀려 바닥으로 쓰러진다.

세 사람의 진격은 시원시원했다. 어지간한 수의 좀비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호흡이었다.

장신의 하진이 휘두르는 나이프에는 좀비들이 손길조차 댈 수 없었고, 스위퍼의 움직임은 날렵했다. 설령 여러 좀비가 동시에 달라붙더라도 뒤에서 지원사격하는 요한의 사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개찰구 안으로!”

요한의 지시에 스위퍼가 길을 뚫었다. 화려하게 뛰어올라 양 발차기로 좀비를 밀어버리자 뒷걸음질 치던 좀비가 뒤따라오던 좀비들과 꼬여 엉망진창이 됐다.

수동식 출입 개찰구를 건너가자 좀비들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무래도 낮은 장애물이었지만, 좀비들이 그를 인식하고 넘어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했다.

요한이 방방 뛰는 듯한 스위퍼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꼭 그렇게 오두방정을 떨어야 해?”

“오두방정이라니. 말이 심하네. 남자가 싸울 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정말 알고 싶지 않은······.”

“그건 멋이다!”

도대체 이 자식,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지?

멋지게 싸우는 게 최고야! 라고 덧붙이는 스위퍼를 보며 요한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생각 사이로 하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친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하네.”

“동감.”

네가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구나. 요한은 기꺼이 공감해주었다. 싸우면서 기술 이름을 외치고 싸우는 것만큼은 제발 참아 주기를 바라면서.

좀비들을 한 차례 따돌린 이후부터는 다소 여유가 생겼다. 생각 외로 파티 화력이 좋아 결국 총알도 아꼈고.

‘아까운걸.’

확실히 이 파티는 아까웠다. 스위퍼의 진저리쳐지는 가벼움은 아쉬웠지만, 일단 전투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만했다. 마트 캠프의 전 인원을 합쳐도 이 둘 만한 전력이 못 될 터다.

세 명은 지하도를 따라 신중동역까지 걸었다. 우선 웨이브 발생지인 부천시청역을 완전히 벗어난 다음, 좀비들을 피해 다시 마트로 진입할 생각이었다. 지하도는 빛 한점 들어오지 않아 상당히 어두웠다. 요한이 챙겨 두었던 손전등 두 개에 의지하느라 속도는 처음보다 다소 느려졌다.

“형씨.”

앞서가던 스위퍼가 걸음을 멈추고 요한을 불렀다. 요한이 하진에게 손전등을 다시 건네받고 스위퍼의 옆으로 다가갔다. 지하철 철로 한가운데에 무언가 이상한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신장은 족히 2미터에 달했고, 비쩍 곯은 몸에, 마치 피부 껍데기가 다 벗겨진 듯 시뻘겠다.

변종이다. 아무리 지상 위를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지하도에서 좀비들을 조종하고 있었던 건가.

변종은 마치 영화 ‘주온’에서 소년 귀신 토시오가 내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는 것 같던 흰색 눈깔이 그들을 발견했는지 붉은빛으로 변했다. 스위퍼가 진저리를 쳤다.

“으, 저 징그러운 건 뭐야.”

“골룸이군.”

“골룸?”

“별명이야. 내가 붙인 거지. 저건··· 변종 좀비란 건데 이 난리를 일으킨 주범이지. 아무래도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냥 좀비랑 뭐가 많이 다른 건가?”

“다르지. 상당히.”

요한이 대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