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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23화 (23/176)

<23화>

쾅! 종합쇼핑몰 2층 사무실 앞에서 요한이 문을 발로 차내고 진입했다. 사격자세를 풀지 않고 방 내부를 샅샅이 뒤졌으나, 사무실에 상무는 없었다. 그 대신, 묶여 있는 채 기절한 사내가 보였다.

요한이 정찰할 때, 상무에게 잡혀있던 그 남자였다.

‘이곳이 아닌가.’

시선이 사무실 안쪽 회의실을 향한다. 넉넉한 물자들이 쌓여 있다. 상무가 이곳으로 오리라고 판단했던 근거.

‘의무실을 먼저 향했을까.’

어차피 의료인도 없는 마트 의무실이라고 해 봐야 한계는 분명할 텐데. 대기 중 감염을 모르는 인간이라면 차라리 물자가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하는 게 정상적이지 않은가?

잡생각을 지워버렸다. 예상은 언제나 빗나갈 수 있다.

요한의 관심사는 눈앞의 사내로 바뀌었다. 묶인 채 주저앉아 있음에도 그 덩치와 근육이 사뭇 두드러지는 사내. 사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고집부리지 말고, 순순히 내 말을 들으면 편하잖아. 엉?’

사내는 모종의 이유로 잡혀있었다. 아마도 상무에게 적대적으로 대했으나 그에게 패했을 것. 그 이후 상무의 회유를 받았으나 고집스럽게 잡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이 사내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간단했다. 좀비 웨이브에서 벗어날 땐 필연적으로 다수의 좀비와 마주친다. 가득한 좀비를 안전하게 뚫고 나가려면 등 뒤를 맡길 사람이 한 명쯤은 필요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내다. 오히려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 요한은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 자를 풀어내서 등 뒤를 맡길 것이냐, 아니면 혈혈단신으로 저 좀비 밭을 돌파할 것이냐.

긴박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전략적인 판단보다 생존본능에 몸을 맡기는 편이 나았다. 3년 동안 요한을 살게 해준 제 생존본능을 믿어야 한다.

함께 붙잡혀 있었던 스위퍼를 풀어주지 않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그를 구할 이유도 없었고, 스위퍼의 첫 접근은 수상했으며, 은밀하게 다니기 위해서 혼자여야만 했던 상황. 지금은 그를 풀어줄 이유도 충분했고, 상무와의 대화를 통해 사내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있었다.

요한은 사내를 흔들어 깨웠다. 우선 이야기라도 나눠 볼 생각이었다.

“일어나세요.”

“으음. 누구?”

사내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목소리가 심하게 가라앉지 않은 것을 보아, 기절한 게 아니라 그냥 잠든 듯싶었다.

“요한이라고 합니다. 상황이 급해서 친절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네요. 지금 이 캠프 주변으로 좀비가 가득합니다. 일어나서 싸울 수 있습니까?”

“···골드문 녀석들은?”

사내는 거두절미하고 조폭 집단의 상황부터 물었다.

조폭 집단 이름이 골드문인가. 그것참 신세계적인 이름이군. 요한이 실소를 냈다.

“다수가 사망하고 몇 명은 살아있긴 하지만 빠져나가긴 힘들 거예요. 와해했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요한의 말에 사내의 생각이 깊어진 듯했다. 아직 정황을 파악하긴 어렵겠지. 하지만 시간이 없는 건 피차 마찬가지일 터.

“시간이 없으니 몇 가지만 빨리 묻겠습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왜 잡혀있었죠?”

“······.”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도와줄 수 없어요.”

“부천시 실업 태권도팀 강하진이요. 저 괴물들이 터지고 나서 식량을 구하러 동료들과 함께 식품매장에 들어 왔다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운동선수였군. 요한이 그의 잘 단련된 신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일행은 놈들이 풀은 약물에 중독된 채로 좀비에게 던져졌다. 그러나 실업팀 운동선수들의 치부를 처음 보는 자에게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죽었다는 뉘앙스만 보여주면 충분하리라.

요한은 그의 고갯짓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만약 제가 당신을 풀어주면,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제게 협조해주시겠습니까?”

“어차피 다른 선택권은 없는 듯한데 굳이 묻는 이유가······.”

“글쎄요. 의례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저도 모험을 하는 처지에 마음이라도 편해지고 싶어서요. 협조하기로 약속하시겠습니까?”

사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번의 말보다 과묵함이 오히려 더 믿음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요한이 사내의 손발을 나이프로 끊었다. 사내가 일어나려다 잠시 휘청거리다 이내 중심을 잡는다.

“얼마나 붙잡혀 계셨습니까?”

“한··· 사흘쯤 된 것 같습니다.”

사흘이나 저 불편한 자세로 묶여 있었으면 현기증이 어마어마하게 날 텐데. 대단한 정신력이군. 요한이 감탄하며 되찾은 허리 주머니에서 물통을 꺼내 건넸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걸 쓰세요.”

요한이 하진을 묶은 밧줄을 끊었던 나이프를 빙글 돌려 손잡이 부분을 건넸다. 하진이 나이프를 받아들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총기를 두 정이나 갖고 있는데 분배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죄송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총기를 넘길 만큼 대범한 사람이 아니라서.”

요한의 말에 하진이 그를 빤하게 바라본다. 불만을 가진 표정은 아니었다. 의도를 알기 어려운 시선이다. 요한이 덧붙였다.

“사실 이번에 당신을 풀어주는 것도 제게는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해서요.”

“그래요. 이해합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저는.”

하진의 물음에 요한이 잠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1층 유리가 깨졌고, 일단 출구가 뚫렸으니 일 층의 출구 네 곳은 무용지물일 터다.

주차장이 입구와 출구가 따로 나뉘어 있었다. 그나마 가장 뚫기 쉬운 곳이라면 지하주차장 쪽이 아닐까.

어려운 판단이다. 평시의 캠프는 이런 큰 콘크리트 건물이 방어에 용이하지만, 좀비 웨이브가 닥친 시점에서는 오히려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는 탁 트인 공간이 차라리 나았다.

이곳에서 좀비 웨이브를 맞는 것은 가라앉는 배 속에 있는 것과 같았다. 여기저기서 좀비들이 물처럼 쏟아지는.

생각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요한은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비상구를 통해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입구든 출구든 한쪽을 뚫는 거로 하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엄호해주세요.”

요한은 허리 주머니에서 물과 식량을 사용한 만큼만 채워놓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눈앞에 있는 좀비는 세 마리. 요한은 왼쪽 팔로 좀비들을 밀며 한 놈씩 차례로 머리를 꿰뚫었다.

뇌를 관통당한 좀비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찰나, 왼쪽 발에서 선연한 꺼림칙함이 느껴진다. 요한이 급히 발을 뺐다. 하반신이 날아간 좀비가 허공에 이빨을 딱딱거렸다. 요한이 곧바로 구둣발로 놈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요한은 최대한 총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전진했다. 그 대신 총열에 접철식 대검을 착검하고 창처럼 휘둘렀다. 나이프보다 훨씬 무거웠고 힘도 많이 들었지만, 언제든지 총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르니 차라리 이게 안전했다. 총기에 피가 튀는 것도 마찬가지로 감안해야 했다.

등 뒤에서 좀비들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하진의 나이프가 휘둘러졌다. 얼마나 힘이 센지 나이프가 꽂히는 수준을 넘어서 반대쪽 두개골을 뚫고 나갈 정도였다.

보통 뇌를 찔리더라도 3~5초는 버둥거리는 좀비들도 하진의 공격에는 움직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듯 즉사했다.

요한은 자신의 선택을 내심 칭찬하며 후방의 신경을 완전히 껐다.

구름다리 끝. 굳게 닫힌 비상구가 보였다. 요한의 시선은 비상구와 근처의 좀비들에게 집중됐다. 비상구까지의 거리는 약 50미터. 주변의 좀비들은 약 마흔 마리.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좁은 데다가 마네킹이나 매대 좌판 등 잡동사니들이 장애물이 되어 주었던 구름다리와는 달리 백화점 2층은 탁 트인 넓은 공간이었다. 조금만 지체하면 순식간에 둘러싸일 수 있는.

요한의 집중력이 고도로 올라갔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비상구까지 어떤 좀비를 어떤 방식으로 쳐내고 달려갈 것인지 머릿속에 착착 그려진다.

비상구까지 총 8마리. 8번의 공격으로 돌파한다. 위기를 맞는 요한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의 집중력이 오히려 위기를 불러왔다. 눈앞의 좀비와 출구에 너무 초점을 맞춘 나머지, 반대편 3층에서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상무를 보지 못한 것.

탕! 상무의 권총이 불을 내뿜으며 총소리가 백화점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요한이 황급히 소리가 난 지점으로 총기를 격발하려 했지만, 이미 진작에 자신의 몸을 타격한 탄환이 강렬한 고통을 선사하는 게 먼저였다.

“커억!”

요한이 충격에 뒤로 몇 발 물러서다 털썩 쓰러졌다. 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총에 맞은 곳을 바라보다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이봐!”

뒤에서 요한을 엄호하던 하진이 당혹감에 요한을 불렀으나 요한은 기절한 듯 잠잠했다. 이어 두 번째 총소리가 들린다. 하진이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다행히 두 번째 총알은 빗나갔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좀비들이 점점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온다. 하진이 쓰러진 요한을 질질 끌며 바로 옆에 있던 사무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문 앞에는 좀비 두 마리가 하진과 요한을 반기고 있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감염자들이 공복감을 시위라도 하듯 선연한 살기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 * *

같은 시각 마트 주차장.

정환은 탑차와 SUV로 막아놓은 주차장 입구 경계를 강화했다. 철제 사다리를 가져와 탑차 위로 올라가 있던 네 명의 청년들이 좀비들을 쓰러트리고 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일명 좀비 작살. 마대에 날붙이를 케이블타이와 청테이프로 고정해서 만들어 놓은 근, 중거리 무기였다. 은근히 무게가 무겁고 뇌를 뚫기가 힘들어 쓰는 데 조금 힘들긴 했지만, 좀비로부터 위협을 받지 않고 쓰러트릴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장점이었다.

주차장 경계는 그저 심심찮게 나타나는 좀비들을 보이는 족족 죽여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겨울 정도로 일상이 되어버린 좀비 사냥.

그런데 언젠가부터 좀비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정환 형, 좀비가 점점 많아지는데요.”

“그러게.”

정환과 함께 좀비를 사냥하던 기문이 몸서리를 쳤다. 좀비들이 점점 징그러울 정도로 쌓이고 있었다.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주차장 바깥의 좀비들이다. 좀비들이 도로 건너편 H백화점으로 끝도 없이 향하고 있다. 문제는 좀비들이 너무 많이 몰린 탓에 점점 쌓인 좀비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거였다. 자신들을 본 좀비들이 꽥꽥 소리를 질러댄 탓에 그 수는 점점 늘어났다.

탑차와 SUV로 막아놓은 바리케이드는 좀비들의 수를 생각하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특히나 SUV로 막아놓은 곳은 차량의 높이를 보완하기 위해 위에 이것저것 쌓아놓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매한가지.

정환과 청년들은 쉴 새 없이 좀비들을 찌르고 또 찔렀다. 지금 이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면 기껏 확보해 놓은 하역장이 다시 무용지물이 된다. 아직도 하역장에는 옮겨놓지 못한 물자들이 많았다.

이곳이 어떻게 얻은 공간인데. 이렇게 무너뜨릴 순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좀비들을 죽여도 숫자는 늘어날 뿐.

요한 형이라도 있었으면.

정환은 그의 부재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쓰러진 좀비들을 밟고 올라 점점 좀비들의 높이가 높아진다. 좀비들의 손길이 높아질수록 불안감도 함께 높아진다.

그리고 그때,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아아악!”

“상준아!”

결국, 끄트머리에서 동료 좀비를 밟고 올라온 좀비 한 마리가 오른쪽 끝에 있던 상준의 목을 물어뜯었다. 시선이 팔린 사이 좀비들이 꾸역꾸역 위로 올라온다.

“내려가! 못 버티겠어.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정환이 말하는 사이에도 좀비들이 우르르 넘어온다. 이 상황에 사다리를 내려가고 있다간 오히려 좀비들에게 덮쳐질 것만 같은 위협에 두 청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환이 가운데서 시간을 끌며 두 사람을 밀쳤다.

“먼저 내려가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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