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7화 (17/176)

<17화>

2017. 06.

좀비 아포칼립스 발발 6개월째.

현재.

요한은 지하 2층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식품 판매장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식품매장엔 더 이상 챙길 게 없을 텐데.’

그림자의 정체는 30대 후반, 또는 40대 초반의 아주머니였다. 지난번 자신이 캠프 사람들을 위협할 때, 갓난아이를 업고 있던, 자신에게 똥귀저기를 던졌던 그 여자. 여인은 허겁지겁 분유를 챙기고 있었다.

“뭐 하십니까.”

요한의 말소리에 여인이 히익, 소리를 내며 분유를 와르르 떨어뜨렸다. 요한은 발밑으로 굴러온 분유를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애 분유가 다 떨어져서······.”

분유는 창고 공간이 부족해 우선 1차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고 식량이 떨어졌을 때 추가 예정인 품목이었다. 사실, 1차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결정에는 갓난아이의 존재도 한몫했다.

“분유는 아직 관리 품목이 아닙니다.”

“그, 그냥 가져가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식량이 없다면 모를까······ 굳이 벌써 분유로 연명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가져다 쓰세요.”

여전히 눈동자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제 행동이 그렇게까지 무서워할 만큼 잔인했던가. 요한이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적어도 이 캠프에서는 상당히 신사적으로 행동한 것 같은데.

“아, 하역장에도 분유가 한 파레트 있던데, 더 필요하면 챙겨드리죠. 정환에게 가져다 달라고 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고선 발걸음을 옮겼다.

1층 정문에는 초병이 서 있었다. 경계랄 것도 없는 게 그저 철제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시트지가 붙지 않은 창문 윗부분을 통해 바깥 상황을 쳐다보는 게 다였다.

경계는 주차장 입구, 옥상, 1층 정문. 총 세 곳을 서게 했다. 두 명이 1조로 경계하다 이상이 생기면 한 명이 발에 땀 나게 뛰어 요한에게 보고한다는 게 전부였다. 상당히 구시대적인 방식이지만 지금으로선 최선이었다.

“형, 근데 이 경계는 뭘 봐야 하는 거예요? 봐도 봐도 있는 건 좀비뿐인데.”

경계를 서던 기문이 요한을 보고 물었다.

“생존자가 있는지. 좀비가 갑자기 수가 많아지진 않는지, 유리가 깨질 것 같은지.”

“아아.”

“괜히 피곤하게 너무 빤히 바라보고 있을 필요는 없어. 어차피 소리 다 들릴 테니까.”

“예, 형.”

경계근무의 효과는 경계 자체에도 있었지만, 생존자들에게는 일감을 주는 것도 중요했다. 삶이 무기력해지는 것을 막아 줄 테니까.

요한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왔다. 손지혜. 24살. 별다른 특징이 기억나지 않은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아, 한 가지가 기억났다. 1층에 올라와서 좀비들을 보고 구토를 하던 그 여자애였다. 요한은 지혜를 ‘토쟁이’로 기억할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꽃다운 여대생에겐 너무 가혹한 닉네임이다.

“오빠.”

“응?”

“이거, 안 쓰는 통조림으로 만들어 본 건데. 드셔보실래요?”

지혜가 건넨 것은 생선요리였다. 주로 가공식품과 통조림 식품, 라면 등이 식사였기에 그녀가 건네는 조리 식품은 사뭇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 맛있네.”

요리는 굉장했다. 제대로 된 요리는 정말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그녀의 요리 솜씨는 제법 발군이었다.

“헤헤, 그래요?”

“요리 잘하나 봐?”

“전공이거든요. 조리과.”

요한은 머릿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에 ‘토쟁이’를 찍찍 긋고 ‘요리사’라고 정정해주었다.

요리사는 굉장히 귀한 인재지. 아무렴.

요한이 그릇을 순식간에 비운 후 돌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총총걸음으로 달려가는 지혜를 보며 보초를 서던 기문과 상민이 툴툴거렸다.

“우리도 입이 있는데, 쟤 눈에는 형밖에 안 보이나 봐요?”

“그러게. 세상 억울한 일일세!”

악의 없는 불평에 요한이 피식 웃었다.

“밖이나 잘 봐라, 공돌아.”

“기문입니다, 형!”

“차 키 없이 시동 거는 법 알아낼 때까지 이름 따위 없는 거로 해.”

“아 그런 게 어딨어요!”

캠프 생존자들이 마트를 완전히 점령한 지 사흘.

캠프는 활력을 되찾았다. 사람들은 배급과 노동에 익숙해졌다.

혁은 건이 죽은 이후에 캠프를 잠시 떠났다. 형을 부모님이 계신 곳에 묻어주고 오고 싶다는 말과 함께. 요한은 함께 가줄까, 라는 말을 고민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필요한 눈빛이 아니었다.

용기가 있는 자들은 주차장에서 좀비를 사냥했다.

용기가 없되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기술로 캠프에 기여했고,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청소부터 시작해 잡일이라도 하며 캠프에 기여하려고 했다.

나흘. 나흘째부터는 더 이상 캠프에서 배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캠프를 덮칠 것 같았던 좀비들은 한동안 잠잠했다. 좀비 웨이브의 전조로 예상됐던 움직임도 사그라들었다.

서둘렀던 움직임이 약간 후회되기도 했지만, 금세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빠를수록 좋다.

요한의 시선에 어린아이들 두 명이 뛰노는 모습이 들어왔다.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투덕거리다가 달리기를 시작했고, 이내 요한과 부딪혔다.

“어!”

“꼬맹이들, 뛰어다니면 다친다.”

“그 형이다!”

한 소년의 외침에 그보다 더 작은 소년이 형의 등 뒤로 숨는다.

“내 동생 건드리지 마세요!”

꼬마 형은 손에 과도를 쥐고 있었다. 요한이 옅은 탄식을 냈다.

“그래.”

어린아이일지라도 제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세상이니.

“네가 형이구나.”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한이 천천히 다가가 소년의 손에 들린 칼을 뽑아 거꾸로 쥐여 주었다.

“칼은 이렇게 쥐거라. 그래야 두 손으로 찌르기도 쉽고, 손에서 잘 안 빠지거든.”

다시금 끄덕이는 소년. 요한은 그런 소년을 보며 빙긋 웃고선 그의 머리칼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동생 잘 지켜라.”

“엄마가 형보고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댔어요.”

“나쁜 사람이지.”

“형 때문에 막내 분유를 먹이기 힘들다고 했어요.”

분유를 먹일 만한 갓난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요한은 자신에게 똥 기저귀를 던졌던 여인을 떠올렸다.

자식이 셋이라. 이 세상에서 세 자식과 제 몸을 지키려면 초인이어도 어려울 터다. 요한은 여인의 깡다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깨달았다.

“제 생각에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마트는 평화로웠다.

* * *

그날 저녁, 요한은 정환의 부름을 받아 지하 1층 창고 앞 회의실로 걸음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잖아도 관리 인원들을 한번 모으려고 했었는데.

“무슨 일인데?”

“그게··· 결정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래, 잘됐네. 나도 할 말이 있었거든.”

마트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된 참이니, 몇 가지 대비를 해두어야 했다.

첫 번째로는 좀비 웨이브를 대비한 인원 분산. 현재 30명 가까이 있는 인원은 요한의 기준에서는 기준치를 넘은 수용인원이었다. 20명 아래로 인원을 줄이려면, 캠프를 늘려야 했다.

두 번째로는 의료인의 부재. 건의 경우처럼 살 수도 있는 사람들이 처치 부족으로 죽는 경우를 막으려면 의료인 동료는 반드시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건너편 건물 H백화점의 조폭 무리에 대한 대비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요한은 위험요소를 눈앞에 두고도 방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요한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시선이 집중됐다. 회의실에는 서준, 박 노인, 병진, 정환, 그리고 민서까지 5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요한이 관리자로 임명했던 사람들이다.

서준의 경우는 적응을 끝냈는지 병진과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 의외로 적극적이시네요.”

“아, 큼, 요한 청년이 생각보다 악의가 없다는 걸 깨닫고 협조하는 것뿐이야.”

“잘 생각하셨네요.”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착석하자 박 노인이 서두를 꺼냈다.

“지금 회의를 요청한 것은 두 가지 문제 때문이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선··· 수인 씨가 감염됐네.”

수인이라면 최근에 전투 인원으로 합류한 사람이었다.

“저런, 어쩌다가요?”

“주차장에서 좀비를 잡다가 발을 헛디뎌 반대쪽으로 넘어진 모양이야.”

“유감입니다.”

죽음은 일상이고, 감염은 피할 수 없는 문제라지만, 이런 식의 죽음은 개죽음일 뿐이었다. 6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의 그저 미숙과 실수로 인한 죽음.

“그 때문에 전투조의 사기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자네가 한번 그들을 봐 주면 좋겠네.”

“네.”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캠프 내의 질서문제인데···.”

박 노인이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조금 전에 세 사람이 지혜를 겁탈하려고 했네.”

요한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거기서 끝이 아닐세.”

“말씀하세요.”

“비명을 듣고 근처에 있던 세리가 달려갔는데, 세 명이 세리까지 겁탈하려고 그녀를 덮쳤어. 그리고······.”

이어지는 박 노인의 말에 요한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을 일이 아님에도.

“세리가 세 명 중 한 명의 고간을 칼로 찔러버렸어.”

“죽었습니까?”

“생명이 위태로워. 그래서 우리는 그 세 명과 세리의 행동에 대한 처우를 논의하려고 하네.”

요한이 생각에 잠겨있자, 관리자들이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답은 나와 있었고, 시기만이 문제였을 뿐.

서준과 병진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으니, 박 노인이 그들을 제지하며 의견을 냈다.

“다수결로 하는 게 어떤가. 의견을 내고 표결에 부치는 걸로. 이곳에는 여섯 명의 사람이 있으니, 네 명 이상의 의사가 표시되면 진행하는 거로. 아니면 한 명의 관리자를 추가해도 좋네.”

일반적이고 무난한 방식이었다. 서준과 병진이 대화를 중단하고 요한을 바라봤다. 요한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어르신. 민주주의 따위가 통하는 세상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요한 군.”

“모든 결정은 제가 합니다. 그리고 제 부재 시에는 제가 지명한 리더가 결정합니다. 나머지 분들은 그에 따라 주세요. 급한 위기상황에서 다수결 투표 따위를 하고 있을 순 없어요.”

요한의 말은 단호하고,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토를 달지 못했다.

“몇 가지 큰 규칙들을 정하고 예외상황들은 상황에 맞춰 판단하겠습니다. 아마 큰 예외사항은 없을 겁니다만······.”

요한은 머릿속으로 잠시 정리하는 듯하더니 줄줄 내뱉었다.

“감염자는 죽인다. 동료에게 하는 강간, 폭력, 살인 등 모든 폭력 행위는 금지한다. 단, 상대가 자신의 일신을 위협할 때의 모든 행동은 정당방위다. 필수 물자는 공동으로 관리한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배급하지 않는다. 배급의 양은 능력과 성과에 따른다. 마지막 항목은 시간을 두고 구체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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