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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3화 (13/176)

<13화>

물론 진심 담긴 소리가 아니라는 것도, 혼자 나가는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라는 걸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딱! 세리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자, 세리가 아앗, 하고 약한 신음을 흘렸다.

“쉬라며 인마. 그게 쉬는 거야?”

“왜, 오빠도 좋잖아. 안 갈 거지?”

“하고 싶으면 혼자 해. 넌 손이 없냐. 요망해가지고는.”

세리가 인상을 팍 썼다. 제법 무서운 표정도 할 줄 안다. 요한이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입구를 막아두긴 했지만, 후속 조치를 빨리해놓지 않으면 기껏 막아놓은 게 의미가 없어. 목숨 하나랑 바꿀지도 모를 작전인데 무용지물로 만들 순 없지.”

“후속 조치라면······.”

“유리문이 얼마나 버틸지 모르니 일단 내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뭐라도 붙여 놔야 해. 일단 좀비들은 움직이는 거에 반응하기 때문에 좀비들이 매장 안에서 돌아다니면 멍청한 좀비들이 계속 몰려. 유리문이 놈들 무게 때문에 깨지기 전에 1층의 쓰레기들을 빨리 정리해야 해.”

요한이 휙 돌아서서 나가려다 무언가 잊었다는 듯 뒤돌아섰다.

“참, 세리야. 글씨 잘 쓰니?”

“어? 어······.”

요한은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근처 진열대에서 A3 사이즈의 POP 용지 몇 장을 꺼내 왔다.

“받아 적어.”

세리는 요한이 POP 용지 뒷면에 요한이 불러 주는 대로 받아적기 시작했다.

“용건이 있으면 주차장 쪽으로. 유리를 깨거나 소란을 일으키면 즉각 발포함.”

“용건이 있으면······. 발포함.”

글자를 적는 세리를 바라보는 요한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세리야, 내가 남녀차별적 발언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닥쳐. 오빠. 나도 알아.”

“남자가 써도 이거보단 잘 쓰겠다. 이건 발바닥에 손가락 달린 수준인걸.”

세리가 울화를 터뜨리며 요한을 때렸으나 제 손만 아플 뿐이었다.

왜 자학을 하고 그러니. 몸에 두르고 있는 게 몇인데.

“그런데 형, 이건 어디에 쓰시게요?”

“입구 유리문에 붙여 놓을 거야. 기껏 막아놓은 문을 누가 깨 버리면 안 되지. 위협용도 되고.”

“위협용?”

세리가 물었다.

“우리에겐 총기가 있으니 불순한 마음을 품으려거든 다른 데 가서 알아봐라.”

물론 총기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총기 탈취를 목적으로 한 약탈자들을 끌어들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론 전력을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는 것이 더 안전하다. 지금처럼 캠프가 안정화되지 않았을 때는 더더욱.

일종의 허풍이었다.

이 큰 마트에 고작 삼십 명의 사람들, 그리고 두 정의 총기만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거다. 웬만큼 배짱 있는 약탈자가 아니고서야 충돌은 피하고 싶겠지.

그리고 그만한 배짱 있는 약탈자가 나올 시기는 최소한 아직은. 아직은 그럴 시기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글씨를 못 알아보고 암호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요한이 개발새발 쓰인 경고 문구를 보며 진심으로 고민에 빠졌다.

* * *

세리와 정환의 끈질긴 설득에 요한은 결국 발목을 잡혔다. 요한은 1층 가구․침구매장으로 향했다. 요한이 근처로 오자 젊은 남녀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어지간히 미움받고 있군.

침구류를 들고 와 아무 재고창고나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들의 권유대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아직 남아있는 체력은 여유 있었지만, 사실 애매한 시간이기도 했다.

곧 어둠이 내려앉을 시간이다.

한 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는 낮과 달리, 좀비 시대의 밤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암흑이 찾아온다. 1차 쉘터처럼 자체 발전 시설을 구비해 놓거나 여기처럼 물자가 풍부해 초라도 틀어놓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어둠이 옴과 동시에 죽은 듯이 웅크려 어둠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것이다.

요한은 실없는 생각들을 하며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쾅쾅!

철문 두드리는 소리가 얕은 잠을 깨운다.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요한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오빠! 안에 있어요?”

“어, 나가.”

재고창고의 문 앞에는 세리가 서 있었다.

요한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물이 안 나온대.”

“물이?”

“응. 오늘 아침부터 물이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 확인해 봤는데,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모두 안 나와.”

“물탱크가 바닥났네.”

요한이 세면대에서 손잡이를 들어 올려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배수 버튼을 눌러도 마찬가지로 반응이 없다. 변기 뚜껑에는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좋은 시절도 다 갔군.’

이제 이곳 사람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주제에 과분한 생활을 누려왔는지 느끼게 될 거다. 그나마 자신이 이 캠프에 합류한 것이 그들에게는 호재였다. 그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람들 전부 모이라고 해.”

요한의 말에 세리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또 무슨 일인가 싶은지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요한이 손가락으로 인원수를 세어 보니 5명 정도가 빠져 있었다.

“혁이는?”

“꿈쩍도 안 해.”

중요한 전력이 둘이나 무용지물이다. 요한이 보일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불러올까?”

“그냥 둬라. 건이 곁을 지킬 사람도 필요하겠지.”

요한은 수고했다며 세리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는 자리로 돌려보냈다. 좌중을 바라보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든다.

“아시다시피 급수가 끊겼습니다. 물탱크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보려 했는데,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네요. 우선 방안을 찾을 때까지는 절대로 물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물 내리지 말고 싸세요. 몸은 물티슈로 닦으시거나 휴지에 생수 조금 묻혀서 닦으시고.”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이 올올이 드러난다. 단지 물이 떨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인지, 자신에 대한 불만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제가 이러는 게 불만스럽습니까?”

요한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잘 생각해보세요. 만약 6개월 전부터 상황을 통제하고 물을 아껴 썼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깨끗한 물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과정은 화기애애하지 않았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이 마트의 모든 물자가 떨어진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요한은 말을 하면서 보호구를 착용했다.

“제 말은 이 마트를 확보해서 여러분께 밝은 빛을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둘 증명해 보지요. 좀비들을 다 처리하고 다시 뵐 땐 얼굴들이 좀 펴지셨으면 좋겠네요. 정환아, 준비 다 됐으면 가자.”

“네, 형.”

요한은 전투 인원들을 데리고 1층 비상구로 이동했다. 물자는 박 노인과 혁에게 맡겨 두었다.

이번에 참여하는 인원은 총 11명.

요한은 경험자와 미경험자를 반반씩 섞어서 다시 2조를 만들었다. 그러고선 고지로 올라가 그들을 엄호했다.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싸울 때는, 4일 때와 마찬가지로 각 네 명이 사방을 경계하고, 나머지 한 명이 중앙에서 다수의 좀비가 나타나는 곳을 지원한다. 네 명일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안전한 진형이다. 게다가 원거리 지원도 있겠다, 위험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설령 예상 못 한 위험이 닥치더라도 비상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위치라 위기가 닥치면 언제든지 단단한 철문이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다.

처음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던 신입들도 몇 번의 처치 이후 익숙해졌는지 자신 있게 좀비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끄아아!

좀비 두 마리가 다가온다.

“오른쪽에 둘!”

이번이 첫 전투인 성배가 좀비 한 마리를 공격하는 사이 가운데에 있던 정환이 잽싸게 나머지 좀비 하나를 처리한다.

“됐어. 처리했어!”

사실상 요한이 거들 필요도 없었다. 요한은 멀찍이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위주로 사냥했다.

청소는 순탄했다.

점점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좀비들은 거의 3시간 가까이 싸웠을 즘, 그러니까 앞에 쌓인 좀비들의 시체가 산이 되어 시야를 가릴 때쯤이 돼서야 등장을 멈췄다. 좀비들의 그르렁거림이 멈춘 마트 안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끝난 거예요?”

신입 전투 인원 중 하나가 물었다.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고선 나이프로 근처 쇠 손잡이를 탕탕 쳤다. 숨어 있는 좀비가 있으면 나오라는 의미였다.

잠잠하다.

“다 끝난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봐.”

요한이 탕탕 두드리는 소리를 점차 키워갔다. 저 멀리서 좀비 한 마리가 뒤늦게 반응한다.

쐐액! 하고 날아간 화살촉이 좀비의 머리를 관통한다.

요한이 계속해서 두드렸다. 탕탕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 정문 밖의 좀비들까지 소리를 듣고 방향을 틀어 유리문에 달라붙는다. 마트 내에서의 움직임은 없었다.

“얼추 정리된 것 같네.”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수고들 했어.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처음치고는 재능들이 상당하네. 왜 여태까지 겁쟁이처럼 숨어 있었어?”

“그러게요. 이렇게 쉬울 줄은······.”

“그거야 요한 오빠 덕분이지 멍청아, 잘난척하지 마.”

꼭 그렇게까지 타박할 필요는 없는데. 요한이 피식 웃고선 지시했다.

“정환이가 남자들 상처 있나 한번 점검하고 세리가 여자들 점검해. 조그마한 상처라도 있으면 바로 전해주고. 난 잠깐 주차장 쪽 상황 보고 올게.”

“네, 형.”

“응. 알겠어.”

요한은 2층 비상구로 올라가 주차장으로 나왔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차들이 빼곡하게, 불규칙하게 어질러져 있다. 좀비의 수가 제법 많다. 게다가 엄폐물이 상당히 많은 점은 위험요소였다.

지상에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하나였다. 그건 다행이다.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는 주차장이었으면 두 곳을 막아야 했을 테니까. 입구의 넓이를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했다.

2.5톤짜리 짜리 탑차 하나에 1톤 트럭 하나면 충분히 입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좀비들의 수와 차량의 위치 등등을 파악한 요한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되돌아온 요한은 부상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앉아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그를 보자 일어났다. 요한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주고선 정환에게 물었다.

“더 쉬어도 돼. 다친 사람은?”

“없어요.”

“다행이군.”

“주차장 쪽은 어때요?”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

차량으로 입구를 막으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일단 차내에 키가 있는 차량이 확보되어야 하고, 그 차량의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았어야 한다. 또는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교체할 수 있거나.

미션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장기전이 되면 될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 어쩌면 정문을 막을 때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번만 잘 넘기면 될 것 같은데.’

요한은 고민을 계속하며 가방에서 검은색 시트지를 꺼냈다. 유리를 가릴 용도였다. 우선 문이 있는 입구에 경고 문구가 적힌 POP 용지를 붙이고, 그 위에 검은색 시트지를 덧붙였다.

유리 전체를 가릴 필요는 없었다. 요한은 전체 유리의 3/4 정도만 가렸다. 바깥 상황을 경계하기도 편하고, 매장을 밝은 상태로 유지하려면 빛이 들어와야 했다.

좀비의 시야에 걸리지 않을 정도만 가려 놓으면 충분하다.

빈틈없이 마무리한 요한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움직인 김에 주차장까지 마무리하고 싶은데, 체력들 남아있지?”

요한의 무덤덤한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엄살은. 참, 혹시 자동차 정비할 수 있는 사람?”

“아, 저 자정과예요.”

“자동차정비과?”

“네.”

“아주 좋아. 덕분에 고민 하나 덜었다. 몇 학번?”

“공팔 학번이요.”

“정비 경력은?”

“사 년이요.”

요한의 고민거리를 한 번에 씻겨 준, 이 친구의 이름은 김기문.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가 눈에 띄었으나, 막상 행동은 조용조용해서 존재감을 보이지 않던 청년이다. 요한은 손뼉을 치고 싶은 마음을 추슬렀다.

“좋아. 공돌이. 키 없는 차 시동 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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