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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1화 (11/176)

<11화>

“세리, 민서, 어르신께서는 입구를 감시해 주세요. 유리가 깨질 것 같으면 그냥 열고 싸우시고. 병진 형, 정환아. 건이 잡아.”

“읍, 읍?”

“어금니 꽉 깨물어라. 이래도 죽겠지만, 그냥 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

요한이 한쪽 허벅지에서 쿠크리 대검을 꺼냈다. 뼈를 자르기에 좋은 도구는 아니었다. 복합강 칼이나 뼈 자르는 정육칼이 있으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가진 날붙이 중에 좀비의 피가 묻지 않은 깨끗한 것은 이게 유일했다.

요한은 라이터를 꺼내 다시 한번 칼을 소독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손이 떨린다. 시간이 부족했다. 그 와중에 절규하는 혁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혁아, 넌 질질 짜지 말고 방해되니까 구석에서 주먹이나 입에 넣고 있어.”

고통스러워하는 혁을 애써 외면하며, 요한이 자를 부위를 확인하고 상완을 노끈으로 꽉 압박했다.

자를 부분도 고민이었다. 어디까지 감염이 확산되었을지 모르니, 마음 같아선 팔을 통째로 잘라내고 싶었지만.

혹시 살아났을 때의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팔꿈치는 남겨두어야 한다.

팔꿈치 바로 아래로 반 뼘 부분을 자른다.

‘이 자식아. 내가 너 때문에 여기로 왔는데. 네가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어떡해?’

칠칠치 못한 자식. 죽기만 해 봐라, 네 동생이고 일행이고 다 버리고 떠나버릴 테니.

요한은 조급해지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일부러 매정하게 생각했다.

요한이 긴장감에 손을 여러 번 쥐락펴락했다. 몇 번 겪었던 일이지만 매번 쉽지 않은 일이다. 후, 차라리 마취제라도 있었으면.

손속을 두면 안 된다. 오히려 힘을 빼는 게 환자에겐 독이다. 반드시 뼈까지 한 번에 잘라야 한다. 두 번 이상 시도했다간 감염 이전에 쇼크로 죽을 수도 있다.

요한이 손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건을 붙잡고 있는 두 사람이 질끈 눈을 감는다. 이후 쏜살같이 내려쳤다.

콱! 번쩍거리는 반사광과 함께 요한의 쿠크리가 건의 팔을 지나쳐 바닥에 박혔다.

“으으으읍!”

억눌린 비명과 함께 건의 몸이 요동쳤다. 새빨간 선혈이 파밧, 요한의 얼굴로 튀어 오른다. 절단면은 깨끗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솜씨였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경악과 공포에 물들었다. 혁은 마치 제 손이 잘린 듯 괴로운 표정이다.

건을 보니 충격에 기절한 듯 잠잠해졌다. 요한이 잘린 팔을 천으로 꽁꽁 싸맨 후 심장보다 살짝 높게 올려두었다.

“이렇게 하면, 살 수 있는 거예요?”

“운 좋으면.”

정환의 물음에 요한이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정환과 병진도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감염이 이미 진행된 이후라면 죽겠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쇼크로 죽을 수도 있고, 쇼크로 안 죽어도 피가 안 멈춰서 죽을 수도 있고. 열에 아홉은 죽는다고 생각해.”

그의 말에 두 사람의 입이 뚝 다물렸다. 열에 아홉. 사실 많이 잡아 준 수치였다.

진짜 문제는 쇼크도, 세균도, 과다출혈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좀비에게 물리거나 할퀴어지지만 않으면 감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산이었다.

혈액을 통한 감염이 유일한 감염로였다면 최초 감염자는 어디서 생겼겠는가.

요한이 판단한 감염의 가장 무서운 경로는 따로 있었다. 요한이 생존을 위해 세워 두었던 두 번째 원칙을 떠올렸다.

생존 시 주의해야 할 두 번째 원칙. 상처는 반드시 소독하고 밀봉할 것.

감염은 상처를 통해 대기 중에서도 진행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좀비에 의한 상처가 아닐지라도.

즉, 상처를 대기 중에 오래 노출시키면 환자 또한 감염에 위험이 생긴다. 이른바 ‘대기 노출 감염’이었다.

이 공기 중 감염이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일단 상처가 생기면 그다음 감염 확률은 무작위라는 점이다. 작은 상처도 방치하면 감염될 수 있다. 상처가 생기면 반드시 알코올로 소독하고 밀봉해야 한다.

물론 반대로 큰 상처를 입어 감염이 확실할 거라고 판단됐던 사람도 기적적으로 감염으로부터 살아남기도 했다.

굉장히 희망적인 소식처럼 들리지만, 이 희망 때문에 분열되거나 캠프가 산산조각이 난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상처라 감염이 안 될 것이라 안심하고 있다가 무리 내에서 좀비화되어 친구나 가족을 물어뜯기도 하고, 때로는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을 지레 겁먹고 죽이려 들다가 살육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대기 노출 감염’이 진행될 확률은 정확한 수치로 정의할 순 없었지만, 경험상 굳이 확률을 횟수로 따지자면, 열 번에 한 번. 열 명이 다쳤다고 가정하면 그중 한 명은 반드시 감염자가 생겼다.

10%.

불확실성과 불안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변수를 가진 수치였다.

이게 인간끼리의 싸움이 위험한 진짜 이유였다. 대규모 전투는 다수의 부상자로 이어지고 싸움이 길어지면 결국, 양 측에서 감염자가 속출한다.

패자뿐이 남지 않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

요한이 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죽으면 여기까지가 네 역할인 거겠지. 아니면 혁을 살리느라 바뀐 운명이 결국 너를 데려가기로 결정했거나.’

“형··· 피가 안 멈춰요. 이거 불로 소독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죽일 셈이야? 잘 누르고 있다가 깨어나면 이거나 먹여.”

요한이 항생제를 건넸다.

“어, 얼마나 먹일까요?”

“그거야 모르지. 내가 의사니. 먹고 토할 때까지 먹이든가. 어르신, 지하에 혹시 의사나 간호사가 있습니까?”

“아니, 내가 알기론 없네.”

“의무실은요?”

박 노인이 허공을 보며 고민하는 사이 세리가 끼어들었다.

“고객 만족센터에 있어.”

“좋아. 옮기자. 혁아 네 형 업어라.”

수혈도 해야 하고 소독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혈액 응고제가 급하다.

“일단 지하로 돌아간다. 민서는 건이 팔 계속 압박해. 내가 선두. 혁이랑 민서는 바짝 붙어서 따라와. 세리 오른쪽, 어르신 왼쪽, 정환이랑 병진 형이 후방. 뒤처지지 마.”

“네, 형.”

그들의 대답에는 힘이 없었다.

요한은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무심하게 문을 열고 정면의 좀비를 쓰러트렸다. 이어서 혁과 나머지 일행이 뒤따랐다.

이미 한 차례 지옥을 경험했던 사람들답게 돌아가는 길은 안정적이었다. 좀비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덕도 있었다.

금세 지하로 가는 비상구 앞에 도착한 요한이 문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소리가 들렸으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이 잠겨있었다.

“잠겼어.”

“뭐?”

요한이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안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설마 내부에서 감염자가 퍼진 건가? 가만히 문에 귀를 대고 있던 요한의 귓속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안에서 문을 잠갔군.”

“뭐? 이런 미친 새끼들! 문 열어!”

혁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문 열라고 개새끼들아!”

“진정해. 건이 흔들린다. 여러분, 문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문 건너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염된 사람이나 근처에 좀비가 있습니까?”

“당장 문 열지 못해!”

“없습니다. 문 여세요.”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는다.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셋 셀 동안 열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갑니다. 그다음은 각오하세요. 절대 그냥 안 넘어갑니다. 하나.”

잠시의 정적 이후 덜컥, 문이 열렸다. 문 건너편에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사람들이 있었다. 훅 풍기는 피 냄새에 사람들이 코를 틀어막았다.

일행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하나같이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였다.

쾅! 후방에 있던 병진이 문을 센 소리가 나게 닫았다. 요한은 바로 정면에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가 문을 잠근 주범인 듯했다. 혁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당장에라도 사내를 공격할 태세였으나 요한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지금은 건의 응급처치가 급했다. 혁은 침을 탁 뱉고는 세리를 따라 의무실로 향했다.

“문을 잠근 게 당신인가?”

“······.”

“맞군.”

요한의 말이 방아쇠가 된 듯, 병진이 쏜살같이 튀어 나가 사내를 후려쳤다. 사내가 턱을 맞고 쓰러졌다.

“···어쩔 수 없었어.”

“뒤에 좀비가 있었으면 당신 때문에 전부 죽을 수도 있었어!”

병진의 말 뒤로 요한의 말이 이어졌다.

“그냥 둬. 그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문을 잠그는 게 맞지.”

“······뭐?”

요한이 그의 편을 들어준 것이 의외였는지 병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안에는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밖에는 감염자가 가득한 상황이니, 혹시라도 감염자가 들어왔을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테니까. 문을 잠그고 감염자를 확인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어.”

요한의 말에 사내가 여봐란듯이 턱을 추켜세웠다. 요한이 이어 사내에게 다가갔다.

“앞으로도 웬만하면 문단속은 잘하도록 해.”

요한이 하체를 숙여 그에게 눈높이를 맞춘 후 그의 머리칼을 붙잡은 채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조곤조곤하게 말소리가 이어졌다.

“사적으로는 맞을 짓이었지만, 공적으로는 칭찬받을 만한 판단이었어. 이름은?”

“서, 서준.”

“기억해 두지. 당신도 기억해 둬. 내 목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문을 연다. 지금처럼 늑장을 부렸다간.”

요한의 말은 거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웠다.

“갈기갈기 찢어서 좀비 밥으로 던져 줄 테니까.”

요한이 서준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서준은 힘이 풀린 듯 뒤로 주저앉았다.

요한은 의무실로 향했다.

의무실에는 불행히도 의료도구가 없었다. 그저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법한 기본 의약품뿐. 불행 중 다행인 건 소독을 위한 알코올이 있다는 점이었다. 요한이 알코올 통을 들고 건의 팔에 부으려 하자 박 노인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노인은 의무실 서랍을 뒤져 소독용 솜을 찾아내 절단 부위를 꼼꼼하게 소독하기 시작했다.

“능숙하시네요.”

“워낙 오래 살았다 보니 이것저것 배운 것이 많네. 자, 건 군이 깨어나질 않으니 억지로라도 항생제를 먹이는 게 좋겠어. 캡슐을 깨 주겠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요한이 항생제를 우르르 쏟아부었다. 박 노인이 픽 웃으며 덧붙였다.

“대여섯 알 정도면 충분하네.”

요한이 머쓱한 동작으로 나머지 항생제를 통에 집어넣었다. 3년을 지옥에서 살았으나 응급처치는 보통 의사인 동료가 해왔고 고작해야 어깨너머로 배운 게 전부였다. 미리 1차 쉘터에 의학 서적을 잔뜩 갖다 놓기는 했으나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급한 소독은 끝났다. 혈액 응고제와 수혈 팩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지금 인력으로는 종합병원을 털기도 어려운 상황. 나머지는 그저 천운이 따르길 바랄 뿐이었다.

요한은 건의 한쪽 팔을 들어 케이블타이로 환자용 침대 기둥에 고정시켰다.

“너무 가까이 붙어 계시진 마세요, 어르신.”

요한은 혁에게 나이프를 내밀었다.

“네 형, 좀비가 돼서 일어나면, 네가 보내 줘라.”

“······.”

“건이도 그걸 바랄 거다.”

혁은 대답이 없었다. 요한은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말 안 듣는 짐승들에게 목줄을 채울 필요를 느꼈다.

“병진 형, 정환아. 따라와.”

요한의 지시는 자연스러웠다. 어느새 두 사람은 그의 말에 군말 없이 따르고 있었다.

요한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만한 밀실을 수색하다가 마땅한 공간을 발견했다. 여직원들이 휴게소로 쓰던 공간인 듯했다. 그곳 안에는 세 여인이 흐트러진 채 누워 있었다. 요한이 문을 열자 한 명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아, 뭐야······.”

“나와.”

“뭐?”

“나오라고.”

세 여인은 얼굴을 팍 찡그렸으나 요한의 허리춤 있는 무기들을 힐끔거리더니 투덜거리며 방을 나갔다. 요한은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캐비닛 위에서 열쇠고리를 찾아냈다. 목적을 달성한 그가 열쇠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뒤에서 요한을 지켜보던 정환이 그를 불렀다.

“형?”

“두 사람은 지금부터 모든 식량과 식수를 이곳으로 옮겨.”

“그게 무슨?”

“물자를 통제할 거야. 허락 없이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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