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0화 (10/176)

<10화>

월월!

청량한 개소리가 마트 안을 요란하게 울렸다.

썩은 눈으로 배회하던 감염자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다. 양쪽 끝으로 좀비들이 빠지자 바닷물이 갈라지듯 공간이 생겨났다.

효과는 굉장했다.

배터리도 충분하니 아마 한동안은 계속해서 어그로를 끌어줄 것이다.

“가자.”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요한이 발소리를 죽이며 전진했다. 일행이 굳은 표정으로 뒤따른다.

끄아아악!

강아지 인형을 쫓아가다가 일행을 발견한 좀비 한 구가 방향을 틀어 하울링을 하며 다가왔다. 좀비의 등장에 뒤쪽으로부터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게 느껴진다.

요한이 좀비의 머리통을 박살 내며 말했다.

“눈 돌리지 마.”

이 자식은 등 뒤에 눈깔이 달렸나?

요한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식겁하며 시선을 돌렸다.

“자기가 맡은 방향에 좀비가 두 구 이상 나타나면 신호해. 거기, 정환아. 세리 쪽으로 너무 치우쳤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해.”

일행은 차분히 전진했다. 다가오는 좀비가 있어도 속도는 느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은 채 일정했다. 멀리서부터 좀비들이 모여든다. 요한은 좀비가 뭉치지 못하게 두 구 이상 뭉쳐 있는 좀비들이 있으면 여지없이 화살을 날렸다.

“왼쪽에 두 마리!”

박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요한이 홱 몸을 돌려 쇠뇌를 조준했다. 좀비 두 마리가 일렬로 들어와 있고, 박 노인의 얼굴이 시야를 가렸다.

“숙여!”

그러나 박 노인은 왼쪽 팔로 좀비들을 지탱하느라 바빴다. 그의 음성을 못 들은 듯.

요한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여기서 자신이 자리를 이탈하면 정면이 빈다. 정면에도 언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여기서 한쪽이 무너지는 것은 더 위험한데.

그때 박 노인이 오른쪽 팔로 들고 있던 정육 칼을 좀비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한 좀비를 뚫고 푹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서 딱 붙어있던 그 뒤의 좀비 심장에까지 연달아 박혔다. 두 좀비는 한참을 버둥거리다 움직임이 멈췄다.

한 손으로 머리를 노려서는 좀비 두 마리를 잡을 수 없었을 텐데. 노인의 놀라운 기지가 발휘됐다.

“좋은 판단입니다.”

“후. 고되구먼.”

요한이 엄지를 치켜세운 후 전진했다.

정면에 다시 한 무리의 좀비들이 보인다. 이번엔 정면으로 뚫기에 많은 수였다.

갈라지는 갈림길까지는 약 오십 미터. 돌아갈 길은 없다. 요한이 잽싸게 배낭을 앞으로 돌려, 옆 주머니의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틀고 최대한 멀리 유도했다. 좀비들의 죽은 시선이 휴대폰 음악 소리로 향했다.

점점 전진하는 일행. 그러나 삼 점에서 시선을 끄는 노력에도 점점 무리를 향해 다가오는 좀비들이 늘어났고, 오십 미터를 전진해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 여기저기서 체력이 달려 헉헉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아, 아무래도 더 전진하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차라리 여기서 한 템포 쉬고 좀비들을 줄이고 가는 게 맞지 않아?”

가장 후방에서 건이 물었다.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좀비가 너무 많아. 여기서 평생 좀비 블러드 하고 싶으면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

“제길, 그런가.”

실제 체력 소모도 문제였지만 긴장으로 인한 피로감이 더 큰 문제였다. 한 번의 실수가 곧 죽음이라는 긴장감이 일행의 근육을 경직시켰다.

경직시킨 근육을 억지로 움직이다 보니 체력 소모는 더욱 극심했고.

적당히 긴장하지 않으면 금방 목숨이 날아가는 게 지금 시대라지만 피로도가 쌓일 정도로 긴장하는 건 반드시 극복해야 했다.

“근데 좀비 블러드가 뭐야?”

“있어, 유즈맵.”

“유즈맵은 또 뭐야.”

세리의 물음에 요한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세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여기서 갈라진다. 기억해. 너무 겁먹지도, 너무 방심하지도 마. 침착하면 아무도 죽지 않아.”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이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여기서부터는 더 속도를 내야 했다.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입구가 코앞이다.

요한은 좀비의 뇌를 쑤시고 발로 밀어내는 동작을 쉴 새 없이 반복했다. 보호대를 낀 왼손으로 좀비를 지탱하는 단계와 처리 후 한발 물러나는 단계는 생략했다. 조금 더 위험하더라도 속도를 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요한이 속도를 내자 일행 전체의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상황은 긍정적.

“후방에 좀비 여섯 마리!”

빌어먹을, 요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하자마자 위기였다. 설상가상, 전방에도 좀비 세 마리가 동시에 다가온다.

전신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위험신호다.

회귀 전에도, 후에도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만큼 위험한 상황에서 신체가 보내는 위험신호. 여러 번 사선을 넘나든 육체가 생존을 부르짖는다.

정환이 좀비를 막아서 보지만 여섯 구의 무게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하다.

“떨어져서 엎드려!”

정환이 요한의 말을 듣자마자 좀비에게서 물러나다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요한이 건빵주머니에서 리볼버를 꺼냄과 동시에 공이를 당기고 조준과 동시에 정환에게 달려드는 좀비에게 사격했다.

탕, 하고 화기의 소음이 고막을 울렸다. 여섯 발이 연속으로 발사되고, 방아쇠를 당겨도 달각거리는 공회전 소리만 들렸다.

총알을 토해낸 리볼버에서 흰 연기가 담배 연기처럼 새어 나온다.

쓰러진 좀비는 다섯. 한 발이 빗나갔다. 요한이 곧장 허리춤에서 소형나이프를 던진다. 나이프가 정확하게 좀비의 이마에 이십 센티미터쯤 꽂힌다.

이어 요한이 뒤로 돌면서 전방에서 다가온 좀비의 관자놀이에 화살을 꽂은 후 재빠르게 쇠뇌를 들어 바로 뒤의 좀비를 넘어뜨렸다.

불과 몇십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진. 나이프 회수해 와라.”

“미친, 개 멋있다.”

세리가 입을 떡 벌리고 중얼거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측면 봐.”

요한이 긴장감에 메마른 입술을 살짝 축였다.

이후로는 거의 한두 마리씩 다가오는 좀비들뿐이었다. 그렇게 한 마리씩 좀비를 쓰러뜨리며 몇 미터를 더 걷자 입구가 보였다.

“정환아. 문.”

요한의 부름에 정환이 앞으로 다가오고 세리와 박 노인이 각각 남동, 남서쪽으로 조금씩 몸의 중심을 이동했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했던 대로.

정환이 열린 문손잡이를 잡기 편하도록 요한이 먼저 마트 밖으로 한발 나아갔다. 퍽! 요한이 왼팔을 들어 좀비 하나의 가슴께에 댔다. 좀비가 이빨을 딱딱거렸다.

요한이 이를 꽉 깨물고 뒷발에 힘을 주었다. 이마에 힘줄이 불룩 튀어나오고 눈에도 핏발이 섰다.

“흡!”

요한이 그대로 좀비를 밀어냈다. 뒤쪽으로 달려들던 좀비들이 우르르 문밖으로 떠밀렸다.

좀비를 한 차례 밀어낸 뒤 백스탭으로 떨어질 때, 다가온 좀비 하나를 쇠뇌로 후려쳤다. 좀비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닫아!”

찰나의 공백. 정환이 잽싸게 유리문을 닫았다. 뒤에서는 세리와 박 노인이 좀비 두 마리와 씨름 중이었다. 요한이 쓰러진 채 세리를 넘어뜨리려는 좀비의 손목을 잘라냈다.

“고, 고마워.”

“힘내라. 거의 다 왔다.”

“형! 문 잠갔어요!”

정환의 외침에 요한이 시선을 돌렸다. 견고하게 닫힌 문 너머로 좀비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요한의 시선에 안쪽 문도 빼놓지 않고 확실하게 잠그는 정환이 들어왔다.

“좋아. 재능 있어. 역시 문 닫기 스페셜리스트야. 칭호 붙여 주마. 셔터맨, 아니면 클로저.”

“······형 지금 농담이 나와요?”

“농담 아닌데.”

요한은 반대쪽 일행을 바라봤다. 이쪽과 마찬가지의 적잖은 수의 좀비들이 몰려 있다.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건과 혁 정도면 수준 높은 생존자다. 개 짖는 소리와 휴대폰 벨소리 덕분에 다가가는 좀비는 간헐적이었다. 충분히 소화 가능할 거다.

근심을 접었다. 믿어야 한다.

요한이 쇠뇌를 등 뒤에 고정했다.

“더페샾으로 가자.”

한편, 2조는 고전했으나 위험하지 않은 수준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총소리 덕분이었다. 1조 쪽에서 들려온 총소리에 대부분의 좀비가 1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만 건의 체력이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오른쪽의 민서가 문제였다. 민서는 좀비를 보면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저 밀어내기 바빠, 건이 계속 왼쪽을 추가로 봐줘야 했다.

왼쪽과 후방을 왔다가 갔다가 하느라 호흡이 달렸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문 앞까지 도착하기는 했다. 혁이 엄호하는 사이 건이 재빨리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끄아아악!

그러나 문틈 사이에 좀비의 손이 껴 닫히질 않는다. 건이 나이프를 세워 좀비의 손을 찍어댔으나 틈새를 붙잡은 손의 개수는 점점 늘어갔다.

“형 빨리!”

혁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기다려 봐라··· 나도 마음이 급하다······.”

한 손으로는 문손잡이를 붙든 채, 다른 한 손으로 열심히 좀비를 쑤셔댔지만, 문은 되레 점점 열리고 있었다.

그때 불쑥 나타난 손이 건의 오른쪽 손목을 붙잡았다. 건이 질색하며 그 손을 뿌리쳤다. 그 반동으로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가 튕겨 나갔다.

“혀엉!”

“젠장!”

다시 한번 육두문자를 난사한 건이 두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힘껏 당겼다.

“으아아아!”

드득, 드드득, 좀비들의 손목과 손가락이 문에 껴 으스러진다. 문틈 사이로 핏물이 줄줄 새어 흐른다.

건이 가죽 장갑을 벗고 바닥의 잠금쇠를 돌렸다. 다시 장갑을 끼려던 건이 흠칫, 멈췄다가 잠깐의 망설임 이후 이내 장갑을 끼었다.

“아악!”

건이 떨어져 나간 나이프를 주워 일행들이 싸우고 있는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푹, 푹 좀비의 머리를 연속으로 네 번 찍은 이후 반쯤 쓰러져 있던 민서를 일으켜 세웠다.

“가자.”

* * *

더페샾에 먼저 도착한 1조는 점차 안정되고 있었다. 세 명이 번갈아가며 좁은 문에서 좀비를 죽이고 있었고 요한은 매장 반대편의 높은 진열대에 올라 그들을 엄호하고 있었다.

“요한!”

“이 조가 온다. 다들 앞으로 나와서 엄호해.”

요한의 말에 1조 일행들이 문밖으로 나와 좀비들을 밀어냈다.

2조가 쇠뇌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지원사격이 시작됐다. 덕분에 2조는 빠르게 합류할 수 있었다.

요한을 마지막으로 모든 일행이 모였다. 요한이 매장의 문을 닫고 부상자를 확인했다.

“부상자는?”

“…없어.”

건의 대답에 일행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많은 좀비를 뚫고 결국은 해낸 것이다.

단 한 명의 감염자도 없이.

사실상 좀비 소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으나, 요한은 부러 분위기를 가라앉히지는 않았다. 지금은 승리감이 필요할 때.

“좋아. 수고했어. 이제 우리가 사냥할 시간이다.”

“잠깐, 할 말이 있어. 요한아.”

건의 말에 요한이 다시 뒤돌아섰다.

장갑을 벗는 건.

손에 피가 흥건하다. 요한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설마. 설마······.’

요한이 배낭에서 물과 깨끗한 천을 꺼내 그의 팔을 닦아냈다.

손목에 할퀴어진 상처가 있었다.

찬물을 맞은 듯 싸해지는 분위기.

“형!”

이어지는 혁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

“이 등신 새끼가······.”

“형! 혀엉!”

“미안하게 됐다.”

“형!!”

“닥쳐. 혁아. 귀청 떨어지겠다.”

요한이 매장을 뒤져 담요를 꺼내 왔다. 배낭에서 다시 깨끗한 물티슈를 꺼내 팔을 닦아 낸 후 담요 위에 엎드린 모양으로 뉘었다. 머리에는 배낭을 받쳐주었다.

“아 해.”

“뭘 하려고······.”

말하고 있는 건의 입으로 천이 우악스럽게 넣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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