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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5화 (5/176)

<5화>

쨍그랑!

어둠 속에서 한 약국의 창문이 깨졌다. 혼란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요한은 빠르게 움직였다.

바로 의약품 확보.

해열제, 소염제, 진통제, 구충제,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항생제. 의약품을 확보해 놔야 했다. 붕대나 밴드 등 보조 의약품도 생존을 위해 중요한 물자가 된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생존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요한은 회귀 전에 가장 많이 쓰였던 내복약들을 기억나는 대로 쓸어담았다.

어차피 활동을 시작하면 틈틈이 물자를 모을 거지만, 쉘터에 준비해두는 것은 말 그대로 최후의 대비였다.

그때 요한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거, 거기 누, 누구세요?”

젠장, 요한이 미간을 모았다. 이 새벽에 약국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은. 요한이 나이프를 그러쥐었다.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체격은 크지 않다. 요한은 천천히 조용하게 손에 든 짐을 내려놓고 남성의 뒤로 이동했다.

“으읍······!”

경계하는 눈빛의 남성을 곧바로 제압했다. 버둥거리는 힘이 제법 거셌다. 요한이 나이프를 눈동자 근처에 가져다 대자 사내의 움직임이 멈췄다. 평소라면 대화로 풀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무단침입한 상황. 괜한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저항하지 않으면 해치진 않겠습니다.”

“읍읍!”

“저항하면 죽일 수도 있다는 이야깁니다.”

진심이었다. 무의미한 살생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후환을 남겨두는 것은 더 피하고 싶었으니.

다행히 사내는 얌전해졌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고 결박할 만한 끈을 찾았다. 의약품을 쌓아 둔 상자의 노끈을 풀어 손과 발을 결박했다. 사내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제가 볼일이 있는 건 의약품뿐입니다. 폐를 끼쳐 유감입니다. 얼굴을 기억했으니, 혹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요한은 말하는 와중에도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추정되는 직업은 약사. 충분히 함께할 가치가 있는 직종이었다. 물론 다시 만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겠지만.

“세게 묶지는 않았으니 금방 풀릴 겁니다.”

요한은 깨진 창문을 박스로 가려준 후 약국을 나왔다.

거처로 되돌아온 요한은 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 거처 주변에 낚싯줄과 방울로 경보체계도 만들어 두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따뜻한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다.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쑥 풀려나가는 기분이다.

밖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내일은 더욱, 모레는 더더욱.

비축 식량이 떨어지는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숨어 있던 사람들마저 밖으로 나올 것이고,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도시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되겠지.

요한은 한 6개월간 거처에서만 있을 예정이었다.

그가 가장 많이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것도 발발 후 6개월. 도시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다. 섣불리 돌아다녀선 안 되는 시기다.

좀비의 위협도 위협이었지만, 초기에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예비군으로 징집이라도 당하면 끝장이다.

6개월 동안 인류는 시험대에 오르겠지. 생존의 자격을 시험하는 시험대. 마치 겨를 걸러내는 커다란 채처럼.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된다.

그때가 거리로 나갈 시간이다.

평생 혼자서 버틸 수는 없을 테니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

여러 개의 캠프를 규합하고 거대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회귀 전, 자신이 상대했던 가장 강력하고 잔인했던 조직 ‘서울 생존 연합’이 롤모델이다. 물론 잔인성은 빼고. 냉정하고 매정할 필욘 있지만, 잔인한 조직은 결국 피를 부르니까.

어떠한 집단과 싸워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생존자 조직을 구성하는 것.

그것이 요한의 목표였다.

요한은 생각을 정리하고 티비를 틀었다.

‘아직은 전기가 들어오네.’

어차피 전기가 끊겨도 태양광 발전판에서 소량의 전기는 수급이 가능했다. 요한에겐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빈백 쿠션에 등을 기대고 플레이스테이션을 켰다. 좀비 서바이벌 게임 ‘워킹 데드3’를 마저 할 심산이었다.

블라인드를 쳐둔 창밖으로 좀비와 쫓기는 사람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도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야, 벌써 여기까지 왔나.’

역시 감염이 퍼지는 속도가 빠르다. 혹시 몰라 약국의 깨진 창문을 막아 둬서 다행이었다. 시작부터 사람 한 명을 죽일 뻔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6개월이 아니라 3개월 후에 움직여야 할지도 모른다.

요한이 인상을 찡그리며 화면에 집중했다.

혼란의 시대가 막이 열리고 있다. 잔잔한 BGM이 흘러나온다.

* * *

2. 첫 번째 캠프- 중동 대형마트

2017년 6월.

좀비 아포칼립스 발발 6개월째.

부천시청역, 대형마트 안.

“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1층의 일렉트로닉 마켓 입구에서 한 명의 사내가 좀비들에게 둘러싸였다. 감염자들의 우악스러운 손짓은 이내 사내를 붙잡고, 물어뜯고, 해체했다.

함께 도주하던 사람들의 눈빛에 두려움이 물든다. 물어뜯기는 사내가 꿀렁거리는 피를 토해내다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렸다. 사내의 눈에 고통에 찬 두려움이 가득하다.

“끄으윽······.”

“성현아!”

무리를 이끄는 리더, 강건이 뒤늦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성현의 배에서는 내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에는 흰자위만 보였다.

건이 입술을 짓이겼다. 어쩔 수 없이 지하에서 올라오기는 했지만, 역시 너무 위험한 행동이었다.

처음 따라나섰던 8명 중에 벌써 두 명이 죽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좀비들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흩어지지 마! 딱 달라붙어!”

건은 반대쪽 비상구를 향해 뛰었다. 부엌칼을 쥔 손에 힘을 쥐었으나 두려움에 칼을 놓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라온 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멈춰!”

달려가던 건이 급하게 발을 멈췄다. 정면에서 좀비 세 구가 나타났기 때문.

세 구를 동시에 처리할 순 없다.

결국, 최단 거리를 잃은 건이 방향을 틀었다. 뒤에서 비명이 들린다.

“세화야!”

가장 뒤에서 뒤따라오던 여인이 결국 좀비에게 붙잡혔다. 여인이 어떻게 반항하기도 전에 우악스런 손길들이 피부를 벗기기 시작했다. 끔찍한 비명이 귓가를 고통스럽게 때린다.

“제길, 제기랄!”

한 명을 잃으면서 방향을 틀었지만, 다시 눈앞에 좀비.

아득하다.

“올라와!”

건이 화장품 가게 진열대로 기어 올라갔다. 그를 따라서 세 명의 남녀가 따라 올라왔다. 건의 동생 강혁이 마지막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좀비의 손이 불쑥 나타나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진열대를 붙잡은 손에 힘이 빠지려는 찰나, 건의 식칼이 좀비의 손을 두 동강 냈다.

한 방에 끊기지 않아 두 번, 세 번을 내리쳤다. 혁이 좀비의 한쪽 팔을 다리에 붙인 채로 간신히 진열장 위로 올라왔다.

다섯 명의 남녀가 좁은 진열장 위에서 절망스러운 마른 숨을 토해냈다.

어느새 그들을 따라온 좀비는 서른 구가 넘었고, 좁은 진열장 위에 갇힌 신세.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에 한 여인이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세, 세화야······.”

여인이 죽은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꼈다. 그녀의 흐느낌은 금세 번졌다. 그녀와 그녀 옆의 남자가 동시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 시끄러, 질질 짜지 마!”

한 여인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 또한 불안한지 쉴 새 없이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난 이런 데서 죽기 싫어.”

여인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건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 끊임없이 생각 회로를 굴렸고, 혁은 손을 휘저으며 한 놈의 좀비라도 죽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먹잇감을 향해 휘적거리는 손길이 너무 많았다.

좀비의 손짓에 한 번 할퀴어질 뻔 하고서는 혁이 칼부림을 멈추고 침을 탁, 뱉었다.

“형, 어떡하지?”

혁의 물음에도 건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염없이 서 있는 것도 고작 몇 시간이 한계일 것이다. 심지어 이 공간엔 앉을 자리도 없었다.

좀비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결단을,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내가 내려갈게.”

혁의 말이 건의 생각을 끊었다.

“뭐?”

“내가 내려간다고. 어차피 이런 상황에선 한 명이 미끼가 되는 수밖에 없잖아.”

“미친 소리 하지 마. 여기서 내려가면 넌 백 프로 죽어.”

“알아.”

혁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기백이 동시에 담겨있었다.

“내가 오자고 한 거잖아, 형. 내 책임이야.”

“그게 왜 네 책임이야, 등신아.”

물자를 구해야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결국엔 해야 할 일일 뿐. 혁이 한 것은 그저 용기 있게 나선 것뿐이다. 그리고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건이 내렸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이대로는 다 죽어, 형.”

젠장, 절로 욕지기가 올라왔다.

사태가 터지고 집에 돌아왔을 땐 부모님이 모두 좀비로 변한 뒤였다. 그리고 현관에는 식칼을 든 동생, 혁이 있었다. 얼굴이 눈물과 핏물로 범벅이 된 채로.

살아남아 준 고마운 동생. 하나뿐이 없는 가족.

절대로 너만은 잃을 수 없다.

“내가 간다.”

“형!”

“저기 빈 공간 보이지? 이 좀비 새끼들 최대한 뛰어넘어서 저기에 착지할 거야. 내려가자마자 주의를 끌어서 빙 돌아갈 테니까 수가 줄어들면 비상구 쪽으로 달려. 날 못 기다릴 것 같으면 너희들끼리라도 하역장으로 올라가. 따라가기 힘들면 지하로 내려갈 테니까.”

혁은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거의 3미터를 뛰어넘어야 할 만한 거리였다. 아무리 그가 고등학생 때까지 운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길 뛰어넘는 건 명백하게 위험한 행동이었다. 어찌어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착지하자마자 좀비들에게 둘러싸일 터였다.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내가 한다고!”

형은 죽어선 안 된다. 사람들이 오직 형만 믿고 살고 있다. 형이 죽어버리면 생존자들에겐 희망이 사라진다.

“내가 해야 돼.”

서로 자신이 목숨을 걸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상황. 그사이 불행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왔다. 키가 거의 190cm에 달하는 장신 좀비가 나타나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건 오빠, 저, 저기······.”

건이 민서의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돌리자 장신의 좀비가 눈에 들어왔다. 손만 뻗으면 누구든 끌어당길 수 있는 높이였다. 그리고 불행히도, 놈은 대처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혁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가 칼을 휘둘렀으나 균형을 잃어 날붙이는 허공을 갈랐다.

혁이 진열대 밑으로 끌려 내려가다 칸막이를 붙잡고 간신히 매달렸다.

그러나 버티는 시간은 짧았다.

“혀어어엉!”

진열대를 붙잡은 손에 힘이 빠지고 동생의 몸체가 좀비들 속으로 쑥, 파묻혔다. 건이 핏물 섞인 절규를 토해냈다.

“혁아! 씨발, 놔!”

“오빠, 안 돼!”

“놔!”

건이 당장에라도 뛰어 내려갈 태세였다. 두 사람이 뜯어말렸다.

“으아아아!”

들려온 건 비명이 아니었다. 혁이 좀비의 손목을 자르고 좀비들의 가랑이 사이로 도망치고 있었다. 좀비들의 무리에 파장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때,

핑!

날카로운 투사체가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들렸다.

날아온 화살은 혁에게 주억거리던 좀비 하나의 뒤통수에 박혔다. 좀비가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핑, 핑! 연달아서 화살이 쏘아졌다.

열 구에 달하는 좀비들이 쓰러지고, 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좀비들은 같은 좀비들을 지르밟으며 혁에게 다가왔다.

번개같이 한 인영이 달려들어 좀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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